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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5

204. 거지남매 – 실뜨기

“바깥쪽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새끼로.”

“이렇게?”

“에이- 풀렸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마차 안, 마주 앉은 산티안과 레나가 실뜨기를 하고 있었다.

실이 사르륵 풀어지자 티안이 다시 실을 감았다.

‘날틀’이다.

실뜨기의 시작점으로, 날틀은 실태를 두 손에 한 바퀴씩 감고 중지로 다른 손바닥에 걸린 실을 떠서 만드는 것이었다.

레나는 티안이 내민 날틀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젓가락’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평범하게 날틀 양쪽의 교차한 부위를 엄지와 검지로 잡았다. 그걸로 바깥 줄을 두르자 짠! ‘쟁반’이 완성됐다.

쟁반은 4개의 실이 교차한 틀이다. 실뜨기를 제법 해봐야 아는 것이지만, 쟁반에는 두 가지가 있다. 뒤집힌 것과 뒤집히지 않은 것인데, 이건 뒤집히지 않은 쟁반이었다.

티안은 ‘가위줄’로 갈 것을 고민하였으나 이내 평범한 노선을 선택했다. 레나가 했던 것과 비슷하게 교차 부위들을 잡아 돌리자 ‘젓가락’이 나왔다.

“난 이거 나왔을 때가 제일 재미있더라.”

“나도.”

젓가락은 네 가닥의 실이 평행하게 선 틀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레나는 젓가락 안쪽 줄을 각각 새끼손가락으로 교차해 잡은 뒤, 엄지 검지로 바깥 줄을 둘러 잡았다.

그러자 레나의 손에 들린 건 ‘베틀’이었다. 날틀이 뒤집힌 것으로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순서를 받은 산티안의 손에는 ‘뒤집힌 쟁반’이 들려 있었다.

여기부터가 실뜨기의 오묘한 매력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실뜨기를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뒤집힌 쟁반으로 만들 수 있는 건 ‘가위줄’과 ‘방석’, ‘뒤집히지 않은 쟁반’이다. 하지만 레나가 새끼손가락을 이용해 가위줄을 만들어 봐야 거기서 나올 수 있는 건 뒤집힌 쟁반밖에 없었다.

순서에도 변화가 없고, 아무 일도 없이 원상태로 돌아오는 건 재미없으므로 레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티안의 손에 들린 쟁반을 젓가락을 만들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떠 올렸다. 그러면 (뒤집힌 쟁반이기 때문에) 젓가락이 아니라 ‘방석’이 나온다. 이윽고 레나의 손에 소눈이 선명한 방석이 들렸다.

방석은 중앙에 마름모가 있는 틀이다. 이 마름모를 보통 소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실…

이 ‘소눈’이 나오면 패한다.

소눈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 퍼 올리면 ‘물고기’가 나오는데, 가운데 사각형 안에 두 줄이 평행하게 선 그 틀로는 만들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떻게 실을 떠도 풀어지게 되어있으니 레나가 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 게임에서 이겨야겠다 ─ 작정했다면 애당초 레나가 선택했어야 했다.

처음에 티안이 날틀을 쥐었을 때 평범하게 쟁반으로 가는 게 아니라, 날틀의 양쪽 십자를 잡아 눌러서 바로 젓가락으로 갔어야 한다. 그랬으면 티안이 베틀을 만들었을 테고, 레나가 뒤집힌 쟁반을 쥐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뜨기는 이기려고 하는 게임이 아니다.

여기서 물고기를 만들면 게임이 끝날 것이지마는, 산티안 라우노는 상냥하게 레나의 검지와 엄지 사이에 걸린 줄을 새끼손가락으로 잡았다. 물고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러자 ‘가위줄’이 나왔다.

때로는 거미줄이나 절굿공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름이 많은 만큼 아주 복잡한 형태였다.

가위줄은 ‘여섯 가닥의 실이 중앙으로 모인’ 틀이다. 눈대중으로도 대강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은 다른 틀들과는 다르게 가위줄은 양쪽의 교차 부위를 잡아당겨 숨겨진 실을 찾아내야만 했다.

레나는 티안이 게임을 끝내지 않고 자신을 살려준 걸 고마워하며 가위줄을 잡았다. 숨겨진 실을 찾아 빙글 돌리자 가위줄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루트, 뒤집힌 쟁반이 그녀의 손에 들렸다. 양보를 받은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반복이었다.

뒤집힌 쟁반을 주욱 찢듯이 넘겨받으면 뒤집히지 않은 쟁반이 나온다. 그걸로 ‘다시 처음부터’ 놀이를 이어갈 수 있었다.

레나와 산티안은 재잘거리며 실뜨기를 이어갔다. 무료한 여행길이지만, 덕분에 소년 소녀는 마차에 잠자코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 무료하지 않았다.

한편, 레오는 실뜨기하는 동생과 산티안 라우노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이 녀석과 동생이 얽히는 걸까?’ 생각하는 그는 더 이상 민서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언제는 그랬겠냐 마는 [18/22], ‘18’번째 레오 업적이 쌓여 거지남매 시나리오가 시작된 지 고작 몇 주일 만에 민서의 자취가 녹아내린 것이었다.

이에 따라 산티안을 보는 레오의 시선도 바뀌어 있었다.

처음 티안이 짐칸에서 튀어나왔을 때, 민서의 자취가 묻은 레오는 그를 짐덩이로 여겼다.

이런 꼬맹이가 뭐 도움 될 것이 없는지라 당장 돌려보내려 했으나, 레나가 “아- 왜! 같이 갈 거야! 오빠도 크세니아 언니 데려왔잖아.” 막아서면서 언쟁이 붙었다.

그런데 민서든 레오든 동생에게 약한 건 매한가지다. 특히 민서가 동생 레나에게 유난히 약해서

‘그래. 오르빌로 돌아갔다 올 만큼 시간이 넉넉하진 않은걸… 마차로 반나절 달려온 거리를 얘더러 혼자 돌아가라 할 수도 없고.’

티안의 동행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좋게 생각하면 몇 달이나 이어질 여행길에 동생과 놀아줄 친구가 생겼으니 잘된 것 아니겠는가?

오르빌의 상권을 움켜쥔 깡패집단, 라우노 패밀리가 “유괴범 잡아라!” 쫓아온다 해도 증인이 되어줄 크세니아가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무섭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몇 주일이 흐른 지금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레오는 “흐음…” 턱을 쓸면서 레나보다도 한 살이 어린 곱슬머리 소년을 관찰했다. 은근히 자주 등장하는 녀석이라 생각하면서.

사실 이 산티안이라는 소년에 대한 레오의 시선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혈통}을 되찾으러 가는 길에 별 쓸모없는 게 끼어들었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소년 자체만 두고 보았을 때는 되려 호감이었다.

세 번째 거지남매 회차 엔딩 때문이다. 타티안 후작에게 쫓겨 동생과 생이별했었던 회차인데, 당시의 레오는 똑같이 후작의 추격을 받았을 동생을 엄청나게 걱정했었다.

{추적술} 능력도 없던 시절이라 온 왕국을 손으로 뒤졌고(눈동자 색을 바꾸려고 데파레 뿌리 즙을 눈에 넣어서 시력이 정말 안 좋았다), 찾다 찾다 못해 오른 왕국까지 헤맸었다.

동생은 어떻게 됐을까. 죽지는 않았는데, 혹시 후작에게 잡혀가 몹쓸 짓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말이지 피 말리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절실하다 못해 십자교회의 신도가 된 레오는 돌아다니던 중에 문득 엔딩을 맞았다.

천만다행으로 티안과 레나가 결혼한 엔딩이었다.

레오와 마찬가지로 눈동자가 바짝 마른 낙엽 색깔이 되어있는 동생의 결혼식 사진.

예쁜 눈가를 잔뜩 찡그리고 혹시 오빠가 오지 않았을까… 하객들을 둘러보는 동생의 모습에 가슴이 저렸다. 나 여기 있어. 가슴이 미어졌으나, 저만해도 다행이었다. 저렇게 예쁜 동생을 데리고 달아나기도 참 힘들었을 텐데 티안 녀석이 잘해주었구나 ─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 이후로도 레나는 티안과 두 번 더 결혼한다. 동생이 분노한 공작이 되었던 네 번째 거지남매 회차가 바르바토스의 사도가 됐던 소꿉친구 회차의 영향을 받아 변경되면서, 제니아 재커리의 도움으로 오르빌로 돌아온 레나는 티안과 결혼했다.

지난 다섯 번째, 레나가 홀로 극장에 남겨져 연극배우가 됐던 회차에서도 레나는 티안과 결혼했었다.

단순한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슷한 일이 세 번 반복되면 그때부터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가? 생각하게 되는 게 사람의 심리다. 레오는 산티안 라우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맞은편에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조용히 잠든 크세니아가 있었다. 나 때문에 애먼 사람까지 고생이구나, 생각하며 레오는 마부석 쪽의 작은 창문을 열었다.

마부에게 조금만 더 천천히 가달라고 부탁하였는데, 페테르 백작이 딸려 보내준 그 마부는 이상할 정도로 예의 바른 태도를 보였다.

* * *

조우한 마을에 들러 레나와 크세니아, 산티안과 레오가 각각 방을 잡아 숙박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나날이 반복됐다.

레오가 여정을 서두르는지라 그들은 거의 매일매일을 마차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었는데, 레나와 티안은 아직도 재미있게 놀았다. 이번에는 티안이 새총을 만들어다가 레나에게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마차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곤 지나치는 풍경을 향해 쇽! 조약돌을 날리는 것이었다.

새총이라지만, 민서가 아는 현대의 물건은 아니다. 손잡이가 Y자 모양인 것도 아니고, 고무의 탄성으로 돌을 날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탄성이랄 게 있는 가죽끈으로 돌을 휘감아 휘리릭 던지는, 말하자면 일종의 슬링(sling)이다.

슬링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쓰였다. 이 원시적인 사냥 도구는…

알게 뭐냐.

레오가 저들끼리 잘만 노는 애들에게서 눈을 뗐다. 여독이 쌓였는지 그의 어깨에 기대고 잠든 크세니아의 머리칼을 살살 쓸어 깨워주고는, 덜커덩, 멈춘 마차에서 내렸다.

“여기에요?”

“네, 도착했어요. 여기서 이틀 묵고 떠날 거예요. 레나야, 모자 써야지.”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도보나 성터가 멀지 않은 ‘타아문 마을’이었다. 길버트 포르테를 죽이고 달아났던 회차에서 나와 동생, 카시아는 저기 보이는 산에 숨어서 겨울을 났다.

‘그때는 이 마을에 들어와 보지도 못했었지…’

아련한 추억이다. 굴레에서 풀려나기 이전의 카시아가 요리하고, 동생은 움집을 청소하며 글과 예법을 배우고, 나는 사냥하던…

카시아는 산중 생활을 힘들어했던 것 같지만, 당시 우리는 꽤 화목했었다.

{혈통} 이벤트에 처음으로 도전할 때기도 해서, 나를 섬겼음이 분명한 근위기사 ─ 바르트 경을 만나면 어떤 길이 열리지 않을까, 두근두근 기대하던 시기였다.

물론 이번엔 쫓기는 형편이 아니다. 길버트 포르테는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이 해결해주기로 했다.

길버트는 아스틴 왕국의 왕자가 오르빌에 도착했을 때의 그 연회에만 참석하지 않으면 되었으므로 레오는 페테르 백작에게 길버트를 멀리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근사한 여행을 베풀건, 광란의 파티를 준비해 초대하건, 방법은 상관없었다. 길버트 포르테가 공주와 키스하는 바람에 수도교회로 보내지는 것만 막으면 될 일이었다.

잘 해결해 둔 것 같지만, 사실은 불안하다. 페테르 백작이 이 엉뚱한 부탁을 잘 이행해줄지 모르겠다.

그에겐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어서 자칫 레아가 길버트 포르테를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럼… 레아가 수도교회에서 쫓겨난다.

‘…그렇게 되면 이번 엔딩에서 소꿉친구 시나리오가 변경됐다고 뜨겠지. 다음 소꿉친구 회차에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도와주면 돼.’

레오는 최대한 담담하게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다. 안타깝지만 이번에는 다소간의 확률에 그녀의 미래를 점쳐둘 수밖에 없었다.

바르트 경이 팔라스 테르탄과 하리에 가이단을 습격하는 걸 막기 위함이다. 그러려면 하루빨리 콘라드 왕국으로 가야 하는데, 길버트 포르테라는 골칫덩이를 죽이지 않고 무난하게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레아에게 미안하다. 아무래도 레브를 수도교회로 보내줘야겠다.

“우와. 저게 마차야? 엄청나게 크네.”

“대단한 귀족님이 행차하셨나 봐.”

그때, 페테르 백작의 거대한 마차를 본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쑥덕쑥덕거리면서도 그들은 귀족임이 틀림없을 레오 일행을 피하지 않고, 꾸벅 인사했다.

예상했던 대로 귀족의 손이 덜 탄 순박한 마을이다.

그래도 조심할 필요가 있으니 레오는 동생이 살그머니 벗으려는 모자를 꾸욱 내리눌렀다. 티안에게 “레나가 모자 못 벗게 감시해줘.” 임무를 부여해주고는 촌장을 만나 숙소를 잡았다.

여기서 이틀을 머무를 생각이었다. 목적지인 콘라드 왕국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이곳에 멈춰선 이유는 지금쯤 헐레벌떡 오르빌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레브를 데려오기 위함이었다.

콘라드 왕국은 동남쪽, 레브가 출발한 오른 왕국은 남서쪽에 있었으므로 길이 약간 엇갈린 것이다.

숙소를 잡은 뒤, 이런 순박한 마을이라면 괜찮겠거니, 레오는 크세니아에게 잠깐 친구를 데려오겠다고 말했다. 이르면 오늘 내로 돌아올 것이라 언질하고 {추적술}로 레브가 있는 방향을 향해 말을 몰아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타아문 마을 근처의 산에서 한 장년의 사내가 내려왔다. 허리에 달린 노끈과 가죽 주머니를 건들건들 흔들면서.

“우반, 왔네. 또 무슨 일이야.”

마을의 한 사내가 탐탁잖게 물었다. 사냥꾼은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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