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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5

204화.

내 말에 박시형은 마치 충격과 분노가 섞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긴, 누가 현직 대통령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나 되니까 하는 거지. 그리고 본인 걱정이나 하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일식집을 나온 나는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택규는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혹시 누가 쫓아오진 않겠지?”

“왜? 암살이라도 할까봐?”

“자동차사고로 위장할 수는 있잖아.”

“…….”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이게 나 하나 없어진다고 해서 끝날 일이냐?”

“그래서 뭐라는데?”

“뻔한 얘기지.”

난 안에서의 대화를 정리해서 말해주었다.

“에어백 결함도 문제지만, 알면서도 은폐한 건 더 큰 문제야. 토요타 급발진 결함 은폐 이후 미국에서 관련법이 강화되었어. 결함을 인지하고도 고의로 은폐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책임자는 최고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지.”

“그럼 PAS에서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 거야? 바지사장이야, 실소유주야?”

“글쎄.”

택규는 웃으며 말했다.

“형제간의 우애를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 위해서도 고의로 은폐했다는 증거를 찾아야지.”

* * *

카로스에서 보내온 충돌실험 자료를 계속 검토하는데, 누군가 날 찾아왔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빅원 이후에는 특히나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직접 찾아오는 경우 로비에서 명단을 작성해 비서실로 올려 보내면, 웬만해서는 내가 직접 확인한다.

창업자나 개발자의 경우 K컴퍼니 직원이 미팅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정치인, 시민단체, 기부단체, 동창이나 친구 등은 일체사절이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온 사람은 좀 달랐다. 난 이름과 찾아온 이유를 듣자마자 올려 보내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40대 중반의 남자가 CEO실로 들어왔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강진후입니다.”

“안녕하세요. 탁원식입니다.”

그는 다름 아닌 TKT정밀 탁권택 사장의 아들이다.

우리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커피 괜찮으신가요?”

“예.”

그는 나를 보더니 왠지 주눅 든 모습이었다. 보통사람이 재벌2세나 대기업 회장을 만나 것과 비슷한 느낌이려나?

비서가 커피를 내왔다.

“무슨 일로 절 찾아오신 건가요?”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회장님께서는…….”

“그냥 편하게 진후 씨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직원들한테나 대표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니니까요.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내 말에 그는 조금은 편안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미국에서 은성차 충돌실험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굳이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것도 아닌 만큼 먼저 동종업계에 소문이 퍼졌고, 이어서 미국언론이 보도를 시작했다.

한국언론들은 아직 침묵하고 있지만, 슬슬 인터넷언론을 중심으로 기사가 흘러나오는 중이다.

“맞습니다.”

그는 나를 보며 물었다.

“혹시 에어백 때문입니까?”

충돌실험의 목적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잘 아시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때 회사에 있었으니까요. 에어백 개발에도 참여했었습니다.”

“부친께서도 이 일을 알고 계신가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재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왠지 동병상련의 아픔이 느껴졌다.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네요.”

“크게 힘들 건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회사를 되찾는 걸 포기하신 뒤로는 다시는 사업에 손도 대지 않겠다며, 건물을 몇 채 올리셨거든요.”

“아…….”

3차 밴더에 납품하던 DHK엔지니어링과는 달리 TKT정밀은 에어백을 개발할 정도로 규모가 있는 중견기업이었다.

게다가 완전히 망한 우리 집과는 달리, 저쪽은 그래도 300억 받고 회사를 매각했다.

그 돈으로 건물을 올렸으면, 일가족이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 없었을 것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아니겠나?

동병상련은 개뿔…….

“에어백을 개발할 당시 테트라졸 대신 질산염 암모늄을 분사제로 택한 것은 아버지의 판단이었습니다. 사내 기술진들은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물질을 쓰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 얘기를 듣지 않으셨고, 당신 뜻대로 밀어붙이셨습니다.”

기존 업체와 똑같은 제품을 비슷한 가격에 만들면 경쟁력이 없다. 후발주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결함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걸 알게 된 건 회사를 빼앗긴 뒤의 일이었습니다.”

사장은 바뀌었어도 개발자들과 직원들은 여전히 회사에 남아있었다. 그들은 사고 사실을 탁권택에게 알렸고, 소식을 접한 그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만든 에어백으로 인해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사셨습니다. 술만 마시면 자신은 살인자라며 한탄하셨지요.”

“사실을 알리려는 노력은 안 해봤나요?”

그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왜 안 했겠습니까? 먼저 은성차와 PAS에 사실을 알렸습니다. 회사를 되찾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에어백 판매를 중지해달라고 말입니다.”

“당연히 안 들어줬을 테구요.”

“언론에 제보도 하고 여기저기 신고도 해봤습니다만,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회사를 잃은 복수심에 음해하는 것으로 여겼고, 은성차는 아버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박필현 교수 때와 마찬가지다.

결함을 지적하려거든, 처벌받을 각오를 하라는 건가?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은성차 측과 합의했습니다. 다시는 회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을 것, 에어백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 합의사실을 비밀로 할 것 등을 약속한 후 은성차에서 고소를 취하해주었습니다.”

대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은 길고 외로운 투쟁이다. 끝까지 싸우지 않고 합의를 한 것도 이해가 된다.

그는 가지고 온 가방에서 서류봉투와 USB를 꺼내 내밀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모으신 자료입니다.”

난 서류봉투를 열고 안에 있는 자료를 꺼내보았다.

그동안의 사고사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에어백 사고사례는 우리 역시 수집 중이었지만, 놀랍게도 카로스에서 받은 자료보다 더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은성차와 PAS에 에어백의 위험성을 여러 차례 알린 자료와 검찰, 공정위, 소비자보호원, 국토교통부 등에 고발한 내역,그리고 합의서도 있었다.

결함 있는 제품을 만든 것은 실수다. 하지만 결함을 인지하고도 숨긴 것은 고의다. 도의적인 것은 물론, 법적책임도 피할 수 없다.

이건 결함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명확한 증거다.

이런 중요한 자료가 이렇게 쉽게 넘어오다니!

“이걸 저한테 주시는 이유는요? 복수 때문인가요?”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은성차와 PAS에 대한 어떠한 원한도 원망도 없습니다. 웃기는 얘기지만, 만약 PAS가 인수하지 않았다면 TKT정밀이 책임져야 했을 테니까요.”

열심히 가꾼 과수원을 수확을 앞두고 통째로 빼앗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독이 든 사과를 재배하고 있었다. 빼앗은 놈은 그걸 모른 채 사과를 따다가 사람들에게 팔았고.

“아버지께서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결함 있는 제품을 만든 것과 그로 인해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셨습니다.이제는 그 한을 풀어드리고 싶습니다. 그 에어백으로 인해 더 이상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께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문제의 시작은 탁권택 사장이다. 그가 질산염 암모늄을 분사제로 에어백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테니.

적어도 탁권택 사장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려 했다. 하지만 은성차와 PAS 모두 숨기기에 급급했다. 누구 하나 바로잡을 마음이 있었다면, 상황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말에 탁원식은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진후 씨.”

* * *

카로스는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은성차 충돌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외부전문가로 충돌실험을 주관한 박필현 교수가 직접 발표에 나섰다. 먼저 충돌실험 영상과 사진을 공개했다.

에어백이 폭발하는 순간 튀어나온 금속파편이 더미의 얼굴과 목에 꽂히는 장면이 슬로우로 재생되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백여 차례 충돌실험 결과 대다수의 에어백은 이상이 없었지만, 습도가 높은 지역에서 오래 운행한 차량일수록 사소한 충격에도 에어백이 폭발하거나, 강한 폭발력을 일으켜 파편이 날릴 위험이 커집니다.”

기자들이 질문했다.

“관련 사고사례가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실험에 참가했던 연구원에 대답했다.

“최근 5년 동안 발생한 사고는 약 200여 건, 그중 13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PAS 에어백을 장착한 모든 차량을 대상으로 즉시 리콜을 실시해 교체해야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충격인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미국 법무부가 나섰다.

“은성차와 제조사 PAS는 에어백 결함을 오래 전에 인지하고도 숨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증거 자료를 충분히 확보했고,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입니다.”

가뜩이나 빅원 발생 이후 안전에 대해 민감한 상황이다.

은성차 에어백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5년 간 숨겨왔다는 것은 미국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과 법무부는 즉시 은성차와 PAS를 상대로 조사에 들어가는 한편, 강제리콜명령 검토에 들어갔다.미국정치권은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미국전역에서 은성차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판매량은 반토막 났다.

소식은 바로 한국으로 전해졌다.

장이 열리자마자 은성차 주가는 18퍼센트 폭락하고, 제철, 글로마스, 리노스 등 그룹주도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와아! 지렸다. 대체 에어백 결함을 어떻게 알아낸 거야?

-ㅋㅋㅋ미친. 강진후 제대로 터트렸네.

-은성차와 PAS 한 방에 날리네.

-오타쿠 VS 각하 마지막 라운드인가?

-에어백 결함 실화냐?

-미국 법무부가 조사 들어갔다네요.

-망했네. 나 은성차 타는데. 내 차에도 살인 에어백 장착 됐겠네.

-응. 님 사고 나면 사망. 영정각.

-미국은 리콜할 테고, 한국은?

-또 은성차의 기적의 논리가 나오겠지. 내수차와 수출차는 다르니, 리콜 안 해준다고 할걸요.

-한국소비자는 튼튼하니 금속파편이 얼굴에 꽂혀도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을까?

-에어백 리콜 들어가면 PAS 망하는 거 아님?

-대통령 임기도 끝나 가는데, PAS도 망하면 어떻게 되나?

-PAS에서는 누가 책임지나? 바지사장? 아니면 각하?

-그러게 왜 강진후를 적으로 돌려서는.

-ㅋㅋ각하 이번에는 진짜 적 됐네.

-적 된 각하. 적 같은 각하ㅜㅜ

* * *

미국검찰은 은성차 미국법인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한국정부에 공문을 보냈다.

탁권택 사장이 검찰과 국토교통부 등에 고발한 내역과 처리결과를 보내달라는 것이다. 또한 PAS 사장과 임원들이 미국의회 청문회에 출석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은성차와 PAS는 별 다른 해명자료를 내지 못했다. 취재진들이 몰려갔지만, 입장정리 중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가뜩이나 혼란스런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발생했다.

하나는 경찰이 극우 사이트에 ‘지누효수’라는 닉네임으로 수백 개의 댓글을 작성한 국정원 여직원을 오피스텔에서 체포한 것이다.

경찰이 문을 두드리자 여직원은 문을 걸어 잠그고 버티며 국정원과 연락을 취했다. 국정원에서는 경찰 측에 연락해 자신들이 알아서 할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경찰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강제로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오피스텔 내부는 PC방처럼 꾸며져 있었고, 그 안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수백 개의 아이디를 돌려가며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았다. 심지어는 포르노 사진에 강진후 얼굴을 합성해서 유포시키기까지 했다.

휴가를 내고 잠적했던 청와대 이일선 비서관은 자진해서 경찰청에 출두했다. 경찰이 오늘까지 출석하지 않으면 강제구인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포토라인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국민들께 사죄드립니다.”

기자들은 일제히 질문을 던졌다.

“보수단체 시위를 지시한 것 인정하십니까?”

“왜 그런 지시를 내렸습니까?”

“본인이 지시한 게 맞습니까?”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연락을 취한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지시에 따라 행동했을 뿐입니다.”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본인이 아니라면, 누가 지시한 겁니까?”

“윗선이 있습니까?”

“어디까지 연관되어 있습니까?”

이일선 비서관은 기자들을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모든 지시는 대통령님께서 내리셨습니다. 전 그저 전달하는 역할만 했을 뿐입니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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