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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6

205. 거지남매 – 우반

– 턱.

우반이 짊어진 꾸러미를 가볍게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딴에는 상냥하게 답했다.

“으흐흐. 사냥꾼이 육포 팔러 내려오지 다른 이유가 있겠어? 섭섭하게 왜 이래?”

“…이번엔 사고 치지 말고 곱게 있다 가라.”

“체- 내가 무슨 사고를 쳤다고… 자, 술이나 좀 줘.”

그가 이렇게 저자세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는 타아문 마을의 회관, 그리고 눈앞의 사내는 회관의 물자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타아문 마을도 여타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생산한 물건을 다른 마을이나 도시로 가져가 팔아치웠다.

그런데 때로는 그 물건이 타아문 마을 주민에게 필요한 경우가 있었으므로 회관에서는 주민이 다른 물건을 가져오거든 필요하다는 것과 적당히 교환해 주었다.

피붙이 하나 없이 산에서 홀로 살아가는 우반에게는 편리한 일이다.

이 나이에 술 좀 먹겠다고 새파란 마을 청년들이 꾸리는 상행에 동행하기도 마뜩잖고, 대신해달라 부탁할 만큼 친한 녀석도 없었다.

다행히 그가 원하는 건 다름 아닌 술이다. 그리고 타아문 마을에는 가져다 팔 수 있을 만큼 질 좋은 술을 빚는 집들이 제법 있었다. 다만 문제는…

과거, 그 집 아낙네들이랑 우반 사이에 다소간의 의견 불일치가 있었다는 정도일까? 물자를 관리하는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또 마을에서 술 먹고 난동부리면 두 번 다시 안 바꿔줄 건지만 알아. 내가 중간에 끼어서 얼마나… 으휴, 말을 말자. 기다려.”

마음 같아선 그냥 안 바꿔준다고 선을 긋고 싶지만, 그러면 그때부턴 나한테 지랄하겠지.

창고로 내려간 그는 두 동이 술통을 억세게 밀봉했다. 어지간해선 끄르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마개를 쑤셔 넣은 뒤, 올라와 한때는 나름 친구였던 우반에게 경고했다.

“산장에 가져가서 먹어라. 통은 파는 거 아니니까 나중에 가져오고.”

뒷간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사람 마음이 다르다고, 원하는 걸 손에 넣은 우반은 매우 불쾌한 안색으로 회관을 빠져나왔다.

터벅터벅. 제법 무거운 술통을 양손에 쥐고 마을을 가로지르는데, 하하 호호 뭐 그리 재미있는 일이 있는지 저들끼리 떠드는 일단의 마을 사람들을 마주했다.

“아까 마차 봤어요? 전 그렇게 큰 마차는 처음 봤…”

그들도 우반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반에게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시선을 피하는 아낙네들과 안색을 딱딱히 굳히는 남편들. 기분이 더 나빠진 우반은 흥! 걸음을 서둘렀다.

이윽고 그는 산 초입에 올라와 있었다. 산에서부터 흘러온 개울가에 앉아 한탄했다.

빌어먹을 세상이다.

아주 좆같은 세상이야.

아까 지나친 아낙네 중에는 젊을 적, 그가 정말로 좋아했던 여자가 끼어 있었다. 고백했었고, 차였다.

꿩 대신 닭이라고 ‘내 눈이 너무 높았나.’ 반성하며 그 옆에 있던 여자한테도 고백했었다. 나랑 살자고.

“빌어먹을 년.”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마을 처자들 전원이 짜기라도 한 듯이 고백을 거절했는데, 그가 외지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고말고. 그렇지 않고서는 여자가 나 같은 남자를 거부할 리 없지 않은가.

너희 같은 촌닭들과 달리 나는 루테티아라는 대도시에도 가봤던 사람이란 말이다.

나지막하게 욕지거리한 우반이 품에서 육포 한 조각을 꺼냈다. 질겅질겅 씹으며 술을 마시려 했는데,

– 삐기긱…!

“아 씨발. 이건 또 왜 안 열려.”

빌어먹을 마개가 쉬이 빠지질 않았다. 술통을 붙잡고 얼굴에 열이 오르도록 용쓴 다음에나 뽕! 뚜껑이 열렸다.

빌어먹을. 좆같은 거.

씨근덕거리며, 우반은 술을 동이째로 들이켰다. 저녁노을에 반짝이는 개울물과 하나둘씩 기어 나오는 반딧불들. 나쁘지 않은 경치였다. 그러나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심사가 뒤틀렸다.

나만 씨발 외지인이라고.

나도 씨발 그 배신자 새끼처럼…

우반은 마을을 향해 욕설을 쏟아부었다. 삐죽이 솟은 교회를 향해서는 아예 대놓고 저주를 퍼부었는데, 그의 눈에는 체념 어린 증오가 맺혀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갔다.

한 동이 술을 다 마셔버린 우반은 그만 갈까, 생각하다가 다른 술통을 끌어당겼다. 빌어먹을 세상, 한 모금이라도 더 마셔야 똑댁이 보이지.

– 첨벙.

그런데 또 마개가 열리질 않았다. 술에 좀 취한지라 아까처럼 바로 열 수가 없었던 우반은 한참을 몸부림치다가 술통을 개울에 던져버렸다. 이내 후회하고는 떠내려가는 술통을 쫓았다.

올라왔던 길을 도로 내려왔다.

물살이 약한 지점까지 다다라서야 술통을 건질 수 있었는데, 그새 마을이 근처였다.

에이, 술맛 떨어졌다.

우반은 그만 산장으로 돌아가려고 젖은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얘들아. 너무 멀리 가면 위험해.”

“네~”

“티안! 티안! 저것 봐봐. 반딧불이야. 우리 오빠가 옛날에…”

가족인가?

내 가족은 다 살해당했다. 소년과 아마도 소녀일 거라 추정되는 꼬맹이 그리고 젊은 여성을 멀거니 바라보던 우반은 그들이 가족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날이 저물어 사위가 희끄무레해졌음에도 저 여성이 제법 예쁘장하다는 것까지 눈치챈 우반이 손에 침을 뱉었다.

장년의 나이. 그러나 아직 삼십 대 중반이다. 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저 이쁜이는 그의 조카뻘이지만, 가래침으로 머리를 넘기고 자신 있는 걸음걸이로 휘청휘청 다가갔다.

다가가 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예쁘다.

물결치는 검은 머리가 신비롭다. 하얗게 고운 턱선은 그녀가 도시에서 왔음을 알려주었다. 옷매무새가 단정하고 늦은 시간임에도 화장을 한 게, 마을의 자기관리 할 줄 모르는 촌년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물론 여자랍시고 남자가 뼈 빠지게 일하는 동안 외모나 가꾸는 꼴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가 아름다운 것인 거늘… 하지만 이렇게까지 예쁘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줄 만하다.

크흠! 헛기침한 우반이 말했다.

“저기, 아가씨.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좋은 밤이네요. 티안, 레나! 이제 그만 들어가자.”

“처음 보는 분인데, 언제 왔어요? 아 참.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우반이에요. 돈 잘 버는 사냥꾼이죠. 이 털가죽 옷 봐보세요. 제가 만든 거랍니다. 근사하죠?”

“아… 네. 저는 크세니아고, 오늘 왔어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잠깐 산책하러 왔는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티안! 레나! 얼른 와.”

“어이쿠, 벌써 가게요? 여기 경치가 괜찮답니다. 저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아니에요. 그건 날이 밝았을 때 제대로 보고 싶네요. 저흰 촌장님 댁에서 머무는 ‘손님’이니 실례가 안 된다면 내일 찾아와 주시겠어요? 기억해 둘게요. 그럼 좋은 밤 되셔요.”

“아, 아니. 그러지 마시고 저랑…”

우반이 크세니아의 손목을 붙들었다. 엉겁결에라도 손을 뺄만했으나 크세니아는 붙들린 채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애들도 있고,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요. 우반 님이라고 하셨죠? 내일 한… 점심쯤에 괜찮으시다면 식사라도 같이하시겠어요? 시간을 비워둘게요.”

실례가 되지 않도록, 이 만취한 남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최대한 에둘러 말했다. 하지만

촌장이 날 보면 분명 안 좋은 소리를 지껄일 텐데!

이름을 괜히 말했다고 생각한 우반은 급해졌다. 이게 얼마 만에 내게 호감을 보이는 여자냐.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뭐 어때요. 크세니아 양. 아니다, 우리 말 놓을까? 크세니아. 내가 근사한 곳을 보여줄게. 애들도 좋아할걸?”

침착하자. 크세니아가 다소곳이 말했다.

“근사한 곳이라니 기대되네요. 하지만 오늘은 정말 곤란해요. 너무 어두운걸요.”

“어둡긴. 별로 어둡지도 않구만. 반딧불이 있어서 밝지 않아? 그리고 여긴 아무것도 아니야. 반딧불이 잔뜩 나오는 장소를 내가 알아. 얼마나 예쁘다구. 너는 더 예쁘지만.”

손을 붙든 채(붙들린 채) 실랑이가 오갔다. 그러나 무슨 일이 생겼음을 눈치챈 아이들이 다가오면서, 예의 바르지만 완곡한 거절이 반복되면서, 여자에게 수도 없이 까여본 우반은 지금 이 여자가 자신을 밀어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런 쌍년이 날 가지고 놀아?

호감은 급격한 분노로 변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그가 크세니아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고는 억지로 입을 맞추려 들었다.

– 짜악!

“이게 감히…!”

뺨을 맞았다. 똑같이 뺨을 때려주려 팔을 치켜든 우반은 서슬 퍼런 눈동자를 마주했다.

“네놈이야말로 어딜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느냐. 썩 놓지 못할까!”

우반은 아주 잠깐 얼어붙었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위엄에 놀랐으나, 그건 술기운을 뚫지 못했다. 어디서 또 연기질이야 생각하며 크세니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남자 무서운 줄 모르는 건방진 년의 뺨을 인정사정없이 갈겨주려는 찰나에

“누나한테 무슨 짓이야!”

산티안 라우노가 달려들었다. 소년이 팔에 매달리자 우반의 몸이 비틀, 흔들렸다.

하지만 그래봤자 소년이다. 건장한 체구의 성년 남성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우반은 “이런 애새끼가!” 버럭 소리치며 소년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고, 한방에 떨어져 나간 티안은 쓰러져 우웨엑, 좀 전에 먹은 것을 쏟아냈다.

다음은 크세니아 차례다. 험상궂은 우반의 눈이 크세니아를 향했다.

“왜, 왜 이러는 거예요!”

망토 두건을 눌러쓴 레나가 크세니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소녀라고 봐줄쏘냐. “저리 비켰!” 우반이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그녀를 밀어 찼고, 꽈당 넘어진 레나의 두건이 벗겨져 버렸다.

우반은 다시 움찔, 얼어붙었다.

초저녁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황금빛 머리카락, 금빛 눈동자. 아직 앳되지만 성숙한 감이 있는 붉은 입술과 가지런히 새하얀 치아. 소녀 태를 벗기 시작한 곱상한 턱선.

연지 한 번 찍어본 적 없음에도 발그레한 뺨이 우반의 가슴을 할퀴었다. 본래라면 음심이 돋아나지도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으나, 우반은 어둠과 술기운, 꼬맹이를 단번에 날려 버린 승리감에 취해 있었다.

그는 목표를 바꿨다.

좀 어리긴 하지만, 저만하면 다 컸지. 남자 마음을 가지고 장난이나 치는 저런 더러운 여자 따위보다는 훨씬 나았다. 외모도 훨씬…

“이 나쁜 놈아!”

우반이 레나에게 고개 숙이며 다가간 순간, 티안이 재차 달려들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선 그는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우반의 허리에 매달려 소리쳤다.

“누나, 누나. 도망쳐요! 빨리…!”

“이런 콩알만 한 자식이. 이거 안 놔!?”

– 퍽! 퍽!

우반이 배에 엉겨 붙은 소년의 머리를 거듭 내리쳤다. 하지만 한참을 쳐도 녀석은 그냥 여기서 죽겠다고 달라붙었다.

“어, 어… 억, 어서…”

도망치라고. 덩치가 세 배는 차이 날 법한 성인에게 매달린 산티안이 발을 휘저었다. 손짓할 여력이 없어서 매달린 발로 땅을 긁었다.

그러나 레나는 달아날 수 없었다. 크세니아 언니가 가서 사람을 불러오라며 팔을 당겼으나 멍하니 티안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 도망치라 외치는 저 자그마한 등을 어디선가 봤던 것만 같았다. 그때도 산티안은 웬 뚱뚱한 아저씨에게 매달렸었다.

그때, 우반이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걸 때려서는 떼어내지 못할 걸 알아서 소년의 허리를 잡아 거꾸로 들어 올렸다.

바닥에 머리부터 메다꽂을 요량이었는데, 레나가 안 돼! 소리 지르며 티안을 붙잡았다. 크세니아까지 달려들어 티안을 잡아당기면서

– 부욱!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산티안이 필사적으로 쥐고 있던, 우반이 자랑하는 털가죽 옷이 찢어져 버렸다.

이런 개 쌍노무 새끼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우반이 사냥감을 손질하는 단도를 꺼냈다. 날붙이와 술기운에 붉게 달아오른 덩치로 소년과 소녀, 젊은 여성을 위협하는 그때,

“저, 저런 개새끼가.”

검을 뽑아 들고 미친 듯이 달려오는 두 사람이 있었다. 연한 갈색과 선명한 금발을 가진 청년들이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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