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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8

207. 거지남매 – 목걸이의 행방

쿠스를 탄 레오가 평야를 가로질렀다. 다그닥 다그닥. 레브의 힘 좋은 흑마가 내달려 초가을 선선한 바람을 주인에게 쐬어주었으나, 레오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낙마하지 않으려 애썼고, 간간이 허벅지를 모질게 움켜쥐며 몽마와 사투를 벌였다.

잠들고 싶다.

그는 몇 주일째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레브를 만난 그날 밤, 끈적하게 느껴지는 시선이 신경 쓰여 야밤에 산책하다가,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기어이 일어나 술잔을 기울였다.

마침 심란하게 어슬렁거리던 레브가 좋은 술동무가 되어 주었다. 촌장의 집, 고요한 객실에서 두 청년이 서로의 술잔을 채웠다.

레브의 손바닥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바르바토스 나팔 문양도, 레오처럼 오리아스의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평범한 맨손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로써 분명해졌다.

오리아스는 레오가 아닌 민서에게 낙인을 찍은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처음 디버프를 받은 사람이 레오 드 예리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소꿉친구 회차, 레브의 손에 발자국이 있었던 것이고.

바르바토스의 사도가 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된 줄로만 알았다. 나팔 문양에 쫓겨 영영 사라진 줄로만 알았는데…

‘바르바토스는 어떻게 된 걸까.’

그 해답은 {아신의 역사} 정보에 있었다.

피조물의 갈망으로 탄생한 아신들은 저를 섬기는 이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췄다. 아까 그 자식이 바르바토스를 믿던 마지막 신도라면 앞뒤가 맞았다. 레브의 아버지, 도프 비자인은 굴레에서 풀려난 이후로 바르바토스를 믿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 신을 죽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 때문에 고대의 아카이아 제국이 이종족들을 섬멸했고, 현대의 십자교회가 개종하지 않은 야만인들을 몰살하는 것이겠지만.

허나 그가 바르바토스를 잡은 건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밟은 격이었다. 그 자식이 바르바토스의 신도인 줄도 몰랐을뿐더러, 레오가 이 타아문 마을에 들른 이유도 별것이 아니었다. 한때 카시아와 머물렀던 곳이라 어렴풋한 목적지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이건 정말 우연이다. 라고 레오는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레브가 나지막이 물었다. 지금 네가 느끼는 시선의 주인이 만약 오리아스라면, {혈통}을 되찾는 게 가당키나 하겠느냐 묻는 것이었다.

레오는 깊은 한숨을 숨기지 않고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혈통을 포기할 순 없다. 레나를 공주로 만드는 게 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방안이 맞는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거지남매의 {혈통}을 되찾는 건 거의 유일한 정답지였다. 레오는 민서와 견해가 달랐으나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도는 해 보려고.”

“…그래.”

두 청년이 술잔을 힘없이 맞부딪쳤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잠들기는 틀렸으므로 앞으로 어찌할 것인지를 밤새 의논해나갔다.

– 히힝!

화들짝 놀란 레오가 고삐를 잡아당겼다. 잠깐 조는 바람에 경로를 이탈했다. 이상함을 느낀 쿠스가 투레질해주지 않았더라면 진창에 처박힐 뻔했다.

그는 중언부언 혼잣말했다.

“후우. 정신 차리자. 졸면 안 돼. 조금만 더 참자.”

그러나 사실 말이 의논이지 두 사람은 갑론을박할 것이 많지 않았다. 기억과 경험을 다수 공유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레브가 레오의 계획에 토를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마디 의문을 제시했다.

“하리에의 목걸이는 대체 뭐야?”

– 히히힝!!

“우왓!”

그는 어느새 숲에 들어서 있었다. 하마터면 나무둥치에 갖다 박을 뻔했고, 가까스로 피했으나 잔가지에 몸이 걸렸다.

우당탕 낙마한 레오는 다행히 가지에 긁힌 찰과상을 제외하면 크게 다치진 않았다.

찰싹!

그는 양 뺨을 사정없이 때리고는 쿠스의 등에 올랐다. {추적술}로 바르트 경의 위치를 가늠해 다시금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러나 이윽고 다시 잠들어버렸다.

레브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보니 동이 터 오고 있었다. 레오는 섬찟한 느낌이 아침햇살과 함께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다소 안심하며, 레오는 어제저녁 무척 놀랐을 동생과 크세니아, 온통 멍투성이가 된 티안을 차례로 방문했다.

잠시 잡담하여 그들의 심정을 달래주었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이야기하지 못했으나, 함께 아침을 먹으며 갑작스럽게 나타난 친구(레브)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 업적 : 레나와의 첫 만남 – 레나는 레오에게 높은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

레나는 레브를 잠시 묘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허나 이내 고개를 돌려 티안의 식기에 반찬을 덜어주었고, 레오가 본론을 꺼낸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저는 따로 어딜 좀 다녀올게요.”

그는 자신을 따랐던 근위기사 몇 명이 살아있음을 고백했다. 그들을 데려올 테니 먼저 모나크 남작가에 가 있으라는 게 요지였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또 자리를 비우겠다고 말하기 미안하다.

하지만 레나와 크세니아, 티안과 함께 마차를 타고 가서는 이로타시 강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었다. 마침 내게 이상한 시선이 붙었으니 잠깐 떨어져 있는 것도 좋으리라.

일행의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회차가 돌지 않아서 아직 소드마스터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왕국의 기사단장과 맞먹는 실력자, 레브가 그들을 호위할 것이었다.

“금방 돌아올게요. 먼저 모나크 남작령에 가서 좀 쉬고 계세요. 페테르 백작이 연락을 넣어두었을 거고, 여기 편지도 있으니까 손님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레오는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의 편지를 건넸다. 크세니아는 그걸 받아들고는 빙긋,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네, 왕자님. 저희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기다릴게요. 무척… 기대되네요.”

뭐가요? 물으려는 찰나에 동생이 끼어들었다. “얼마나 걸리는데? 빨리 와야 해.” 왕방울만 한 눈으로 재촉하기에 레오는 차마 왔다 갔다 넉 달쯤 걸리리란 말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만큼 여기서 이로타시 강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레오는 일행과 헤어졌다. 레브가 훔쳐 온 쿠스를 빌려 타고 한발 앞서 콘라드 왕국을 향했다.

국경을 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페테르 백작에게 받은 모나크 남작가의 증표로 관문을 손쉽게 통과했는데, 콘라드 왕국에 들어선 이후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섬찟한 느낌이 피부에 닿았다.

매일 밤마다 레오는 무언가에 쫓기듯 말을 몰았고, 어느 비 오는 날에 무엇이 자신을 몰아세우는지 알게 되었다.

구름 낀 하늘.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한 날이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하려 잠시 숲에 들어선 레오는 이내 쿠스의 투레질과 자신의 숨을 틀어막았다.

이족보행 하는, 희끄무레한 형상들이 빗줄기 사이로 보였다.

거대한 뿔이 달린 그것들은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앉았다 일어섰다, 코를 땅에 대었다가 두어 걸음 레오를 향해 다가왔는데, 시력이 좋지 못한 건지, 아니면 표식이 손상되었기 때문인지 간혹 레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도 확신하지 못하고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러나 그렇게 허튼짓을 하면서도 차근차근 레오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꿀꺽, 침을 삼킨 레오는 조심스럽게 쿠스를 끌고 숲을 빠져나왔다.

– 쏴아아!

흠뻑 젖은 레오의 눈썹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렸다. 굵은 빗줄기가 몸이 무겁도록 쏟아졌으나 고삐를 움켜쥔 레오는 이를 악물었다.

오리아스(Oriax)는 본인의 영역에 민감한 신이다. 저를 믿었던 미노타우르스(Minotaur)의 성격을 쏙 빼닮아 작은 실수도 두고두고 기억했으며, 집요하게 응징했다.

에릭 왕자의 섬김을 받게 된 이후, 오리아스는 이 콘라드 왕국을 저의 영역으로 삼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영역에 웬 이상한 놈, 자신이 낙인을 찍은 기억이 없는 녀석이 침범했으니 이렇게 몸소 찾아 나선 것이었다.

걸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다는 게 오리아스를 통해 에릭 왕자에게 알려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모든 게 끝장이었다. {혈통}을 되찾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때부터는 살기 위해 대륙 끝까지 달아나야 할 터였다.

소드마스터라 할지라도 칼 맞으면 죽기는 매한가지고, 수십만의 병사를 부리는 왕국을 개인이 상대할 순 없었다. 내겐…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부터 레오의 고통스러운 여정이 시작됐다.

밤에는 도망 다녀야 할 처지라 조심조심, 쿠스의 고삐를 잡고 걸었다. 나는 상관없는데, 야밤에 말을 타다가 실족해서 쿠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동이 트면 그때부터 쿠스를 타고 달렸다. 밤낮이 바뀐 데에 불만이 많은 녀석을 다독여 최대한 빨리 달려 나가다가, 더운 햇살이 쏟아지는 정오에 잠시 눈을 붙였다. 쿠스도 그제야 여물을 얻어먹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가 기울거든 조금 달리다가. 어둠이 깔리면 다시 말에서 내려 걸었는데…

– 기우뚱.

“허업!?”

레오가 번쩍 잠에서 깨어났다.

여, 여기가 어디지? 이게 무슨 일이지? 혼란스러워하던 그는 이윽고 본인이 또 말 등에서 잠들었음을 알아차렸다. 고삐마저 놓아버렸으니,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던 쿠스가 더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내려오라고 몸을 기울인 것이었다.

벌써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걸 본 레오는 초조해졌다. 안 그래도 시간이 촉박한데, 하루를 날려버렸으니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야 할 것이었으나, 쿠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게 우선이었다. 쿠스는 피곤했는지 레오가 내리자마자 벌러덩 드러누웠다.

“쿠스, 미안하다.”

– 푸르륵.

“여기 당근 먹고 좀 자라.”

– 히잉! 푸르륵.

“그리고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이 속도라면 앞으로 한… 삼 주일만 더 달리면 돼.”

– 와각와각.

쿠스는 당근을 먹느라 레오의 말을 듣지 못했다. 알아듣지도 못했겠지만, 그로서는 다행이었다.

* * *

“…늦었구나.”

그렇게 무진 애를 썼음에도 레오가 이로타시 강에 도착했을 때는 바르트 경이 팔라스 테르탄을 습격한 직후였다. 돌다리는 바르트 경과 그의 동료들이 만든 시체로 가득했다.

시체들의 상태를 보아하니,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추적술}로 확인한 결과, 바르트 경은 하류로 달아난 상태여서 쫓아가 봤자 소용없을 공산이 높았다. 그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버린다.

별로 좋지 못한 기억을 떠올리며 레오는 시체들을 건너뛰었다. 저기 레브와 레아가 죽었던 강기슭을 잠시 눈에 담고는 돌다리 한가운데에 있는 마차로 다가갔다.

박살이 나서 떨어진 문짝. 붉은 방패가 매달린 테르탄 공작가의 마차다. 잠깐 심호흡한 레오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예상한 대로 거기엔 하리에 가이단이 있었다.

“팔라스. 제, 제발 일어나요.”

어찌나 울부짖었는지 하리에가 쉰 목소리로 애원하고 있었다. 목이 관통당한 연인을 끌어안은 채.

저 여자는 저대로 며칠 밤낮을 울부짖을 예정이었다. 사람들이 감히 슬퍼하는 대귀족의 영애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피했기 때문이다.

휴.

저대로 두면 또 지난번처럼 정신줄을 놓아버리겠지.

레오는 하리에의 손목을 붙들었다. “파, 팔라스! 노, 놓아라!” 외치는 그녀를 마차에서 끌어내 양어깨를 붙잡고 눈을 맞췄다.

“하리에.”

“이, 이것 놔라. 팔라스를… 팔라스가…”

[ 업적 : 하리에 가이단의 마음을 녹인 남자 – 하리에 가이단에게 미약한 호감을 얻음. ]

하리에가 몸부림쳤다. 그러나 레오는 그녀를 붙들고 거듭 눈을 맞췄다. 또렷하게 바라봐 현실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붙들어주었다.

무어라 말하지는 못했다.

뭐라고 위로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방법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가슴을 펑펑 때리는 걸 묵묵히 맞아줄 수밖에…

그의 손에 붙들려 한참을 발버둥 치던 하리에는 무너졌다. 그를 끌어안고 서럽게 울더니 그 울음은 아주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괜찮으십니까?”

“…”

“진정되셨다면 팔라스 님을 마차에서 내리겠습니다.”

“…그래.”

부들부들 떨면서도 제 발로 서려는 여자.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레오는 하리에를 놓아주었다.

레오가 팔라스의 시신을 꺼내 눕히자 하리에는 다시 쓰러졌다. 그러나 전처럼 죽은 사람에게 말을 거는 추태를 보이진 않았다. 차갑게 식은 손을 붙들고 맹세하는 것이었다.

“전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을 죽인 그 기사를 절대로 용서치 않겠어요. 반드시 복수하고, 그가 빼앗아간 목걸이를 되찾아오겠어요. 그러니 편히 눈을 감아요. 내 사랑.”

바르트가 목걸이를 뺏어갔다고?

하리에의 서슬 퍼런 맹세를 듣는 한편, 레오는 의문에 휩싸였다. 바르트 경이 그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목걸이가 가진 특수성 때문이었다.

바르바토스가 그 목걸이를 상당히 탐냈었다. 깜박 잊고 있었는데, 비교적 최근에 바르바토스의 사도였던 레브가 이를 상기시켜준 것이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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