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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9

208. 거지남매 – 외동딸

레오는 분노에 잠긴 하리에 가이단을 두고 이로타시 강을 떠났다.

바르트 경에 대한 원한이 골수까지 미친 그녀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곧 팔라스가 죽었다는 걸 알아챈 테르탄 공작가가 전력을 다해 추적에 나설 것이기 때문에 레오는 갈 길을 서둘렀다.

하지만 추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콘라드 왕국의 서부 변경백이 미디언 테르탄(라퍼트 공작의 아들)이었으므로 연락을 받은 각 도시에서 군대가 출동했다.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통행을 제한하고, 포위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지금쯤 테르탄 공작가의 기사들도 부리나케 달려오는 중일 것이었는데, 레오는 자신이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였음을 깨달았다. 바르트를 잡기 위해 옥죄어오는 포위망은 그에게도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에라이, 빌어먹을.

그놈의 오리아스 때문에 난 야간에도 이동해야 한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 수는 없으므로 언제고 들키긴 들키겠지만, 그 시일을 하루라도 늦출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기사도 좀 모으고, 귀족들을 내 편으로 돌려놓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바르트 경을 찾아오지 않았을 텐데.

두건을 깊이 눌러쓴 레오가 머리를 박박 긁었다. 아무리 모나크 남작가의 증표가 있다지만, 깜깜한 야밤에 살금살금 이동하는 나를 병사들이 내버려 둘 리 없었다. 최소한 두건을 벗기려 들 것이고, 그러면…

에릭 드 예리엘 왕자와 쏙 빼닮은 청년을 보게 되겠지.

에릭 드 예리엘은 테르탄 공작의 외손자라 공작가의 사병들은 그의 얼굴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바르트 경은 훨훨 도망쳐버리고 애꿎은 나만 포위망에 걸렸구나.

짜증이 난 레오는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말을 몰았다. 이렇게 된 이상 힘으로, 공작가의 기사들이 도착하기 전에 포위망을 뚫어버릴 생각이었다. 포위가 좁혀지길 기다린 레오는 횃불을 든 병사들에게 태연히 접근했다.

“정지! 말에서 내려라. 오밤중에 어딜 가는 거냐?”

“길을 비켜라. 네까짓 것들이 귀족의 행차를 막아도 된다 생각하느냐? 난 모나크 남작가의 방계(傍系)다.”

레오가 모나크 남작가의 증표를 꺼냈다. 허나 병사들은 공손히 고개 숙이면서도 길을 트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현재 테르탄 공작가가 통제 중입니다. 두건을 벗어주겠습니까?”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못 벗을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병사들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레오도 그럼 그렇지, 슬그머니 검집에 손을 대려는 그때,

– 삐익!

요란한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밤하늘에 푸른 실선이 치솟으면서 병사들의 태도가 급변했다.

“저쪽이다!”

“찾았구나! 별로 안 먼데? 발만 묶어두고 있어도 포상을 주겠다고 하셨어. 대장, 어떻게 할 거예요?”

“…속임수일 수도 있다. 우린 이 자리를 지킨다. 그보다 두건을.. 앗!”

푸른 실선을 보고 무언가가 번쩍 떠오른 레오는 말머리를 돌렸다. 이 기억이 맞다면, 여기까지 온 게 완전히 헛수고는 아닐 터였다.

그는 신호가 터진 장소를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어? 기마병이 벌써 도착했나?” 놀라는 병사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아군인 척, 이미 한 번 뚫린 포위망을 손쉽게 빠져나갔다.

그러나 포위망은 세 겹, 네 겹에 걸쳐 있었고, 레오는 이내 일곱 필의 말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포위를 뚫어나가는 한 기사를 발견했다.

“치잇! 기마병이 근처에 있었나.”

그 기사는 레오를 보더니 훌쩍, 타고 있던 말에서 뒤쪽 말로 건너뛰었다. 기다란 채찍으로 툭툭, 앞서가는 말들의 방향을 정해주더니 고삐를 당겨 아주 부드럽게, 레오를 향해 돌아서는 것이었다.

대단한 기마술.

그는 뒤쫓아온 기마병을 처리하고 달아날 생각인 듯싶었으나, 레오가 소리쳤다.

“갈렌!! 나다!”

“어?!”

레오가 살짝 두건을 벗자 갈렌이 얼어붙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들고 있던 검까지 놓쳐버렸다.

“왕, 왕자니…!!”

“설명할 틈이 없다! 달려라!”

“네, 넵!”

갈렌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일단 시키는 대로 말머리를 돌리긴 했으나 제 머리가 왕자님을 향해 돌아가는 것까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이, 이게 어찌 된…? 왕자님이 살아계셨…? 여긴 또 어떻게?

그때, 저 멀리 또 다른 병사들이 장창을 들고 기마병을 상대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제야 왕자로부터 눈을 떼어낼 수 있었던 갈렌은 침음을 삼켰다.

검을 잃어버렸으니 이걸 어쩐다. 고민하는데, 왕자님께서 바짝 따라붙으며 질문하셨다.

“어떻게 하면 되지? 내가 먼저 가서 저것들을 쳐내면 되나?”

“네. 하, 하지만 위험합니다. 제가 어떻게든 할 수 있…”

“이럇!”

왕자님께서 박차를 가해 달려 나가셨다. 기다란 장검을 높이 뽑아 들고 창병을 상대하러 가셨는데, 갈렌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말에 올라 검을 다루는 건 어렵다. 그가 아까 놓쳐버린 한손검 같은 게 아닌, 저런 무거운 장검을 휘두르려면 고삐를 놓고도 말을 다룰 줄 알아야 했다.

하지만 척 보기에도 왕자님의 기마술은 대단치 않았다.

과연 검을 다룰 줄은 아실까?

검술 실력마저도 의심스러워서, 갈렌은 톡! 왕자님이 타신 말 옆구리를 몰래 채찍질했다.

병사들이 딱 찌르기 좋게 비켜 가도록. 전투마 같지도 않은 저 말이 창에 찔리거든 왕자님을 낚아채 달아날 생각이었다. 갈렌은 다른 말들도 병사들을 적당히 우회해 가도록 조정하였는데…

– 쓰아아아아아악-!

극한에 달한 기마술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낙마했으리라. 갈렌은 왕자님의 손에 들린 섬광에 넋을 잃었다.

오러블레이드다.

왕자님께서 몸을 크게 기울이셨고, 한 손에 들린 작렬하는 섬광이 열이 넘는 창과 병사들을 단번에 갈라버렸다.

“마, 말도 안 돼.”

갈렌은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왕자님에 대한 그리움이 지나쳐 환상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환상이라 하기엔 뺨에 스치는 바람이 날카로웠다. 터질 듯이 두근대는 심장은 이게 꿈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너덧 번,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포위망이 충분히 뚫렸다고 생각될 무렵, 왕자님께서 말을 멈춰 세웠다.

“갈렌.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구나.”

“저, 저를 기억하십니까?”

– 푸르륵.

어슴푸레 밝아오는 동녘이 왕자님의 금빛 머리칼을 비췄다. 번쩍이는 황금빛 눈동자. 갈렌은 “당신은 누구십니까?” 물어볼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분은… 이분은 우리가 십여 년 전에 잃어버린 왕자님이시다.

“기억하다마다. 오랜 세월 애써온 나의 기사여. 그간 수고 많았다.”

“으흑. 어흐흐흑.”

말에서 내린 갈렌이 무릎 꿇었다. 한 맺힌 인생. 청춘을 잃은 기사의 뺨으로 눈물이 뜨겁게 흘러내렸고, 그 격정적인 침묵 속에서 불현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 업적 : 주종 관계.2v – ‘1’, 충성을 맹세한 자들은 레오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습니다. ]

하지만 레오는 쓸모를 느끼지 못했다. “일어나라.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겠구나.” 말하며 기사를 일으켰는데, 장년의 기사는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되뇔 뿐이었다.

* * *

갈렌은 보기보다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추격을 피하고자 눈에 띄는 말 여섯 마리는 초원에 풀어주고, 레오와 나란히 말을 모는 그는 곧잘 입을 열었다.

들었던 대로 꽤 활달한 사람이구나, 생각하는 레오는 사실 갈렌을 만나긴 처음이었다. 그는 바르트와 함께했던 근위기사들 중 한 명이었는데, 팔라스 테르탄을 습격한 직후 혼자서 돌발행동을 감행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쯤 절 엄청나게 욕하고 있을 겁니다.”

그의 말마따나 예전에 만났던 바르트와 그의 동료들은 갈렌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체통을 잃고 개새끼 소새끼, 빌어먹을 자식, 욕설을 늘어놓곤 했다.

물론, 거기엔 진심이 묻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추모의 감정이 듬뿍 섞여 있었는데, 이로타시 강에서 배를 타기 직전, 갈렌이 그들이 타고 온 말들을 죄다 끌고 달려가 미끼를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마디의 논의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동료의 희생으로 달아난 꼴이 된 기사들은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그들이 솔직하게 고마워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갈렌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모나크 남작령을 향해 북상하는 길, 갈렌이 말했다.

“아이론이… 아참, 아이론 경이 누군지 모르시죠? 노야르 항구에서 태어난 친구인데, 어부의 아들입니다. 그 친구 말로는 어선으로 위장하면 괜찮을 거라 했지만, 전 그럴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기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거기에 강이 있으면 어디로 갔을지가 뻔하잖습니까.”

“그렇군. 하지만 상의라도 하고 달아나는 게 좋지 않았겠는가?”

“음… 그랬으면 제 동료들은 모두 절 따라왔을 겁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말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면 다들 왕자님을 일찍 뵐 수 있었을 테니까요. 왕자님, 그런데 바르트를 데려가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모르시겠지만 그는 대단한 검객입니다. 뭐… 왕자님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요”

“아쉽지만 그럴 시간이 없네.”

레오는 에둘러 말했다. 바르트가 노야르 항구로 돌아올 때는 내년 여름 즈음일 것이었다. 바다로 도망친 그들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고, 그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레오는 그냥 모나크 남작가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갈렌은 남의 사정을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이 아니었다.

왕자의 이상행동, 야간에 이동하고 정오에 잠깐 눈을 붙이는 것에 대해 “추격을 피하시려는 겁니까?” 한 번 물어보고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그 대신 다소 사소한 이야기, 이를테면

“그 말보다는 다른 말을 타시는 편이 낫지 않았겠습니까?”

“빌린 말이어서 그러네.”

를 나누며 꾸준히 북쪽을 향했다.

여행하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다. 약 한 달간 말을 타고 달리면서 갈렌에게 기마술을 조금 배웠다는 정도일까? 두 사람이 모나크 남작령에 도착했을 때는 미적지근한 눈발이 날리는 겨울이었다.

콘라드 왕국 최북단에 위치한 모나크 남작령은 벨리타 왕국, 그리고 아이셀 왕국과 국경을 접한 영지였다. 국경지대에 있는 영지들이 으레 그러하듯, 모나크 남작령도 군사적인 목적으로 세워진 산성을 영주성으로 삼고 있었다. 다만 그 규모가 상당히 작아서 조금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초라함을 한층 더한 건 산성 주위로 다닥다닥 붙은 민가들이었다.

후줄근한 판자촌. 비바람이나 간신히 면할까 싶은 그 집들은 서로의 얇은 벽에 기대어 지붕을 가까스로 얹혀둔 것에 불과했다.

이 또한 국경지대에 위치한 영지의 특징이다. 다른 왕국에서 죄짓고 달아난 이들이 무작정 살림살이를 펴는 곳이라 영주가 꼼꼼하지 못하면 금방 이 꼴이 나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여긴 가주인 게스타브 모나크가 나 몰라라 벨리타 왕국에 가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레오는 초라한 민가들을 지나쳐 영주성에 발을 들였다.

경비병에게 증표를 보이고, 총관을 만나 우리보다 앞서 온 일행이 있지 않으냐 물었다. 어둑어둑한 영주성 만큼이나 의욕이 없어 보이는 총관은 레오에게 시녀를 붙여주었다.

여긴 내게 아무 도움도 못 되겠군. 생각한 레오는 시녀의 안내를 받아 레나와 크세니아, 티안이 머물고 있다는 바깥채를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대하지조차 않았던 사람을 마주했다.

새하얀 백발의 거물. 베르크 추기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놀라운 건…

“크세니아?”

크세니아의 행동이었다. 담갈색, 기품있는 드레스를 차려입은 그녀가 베르크 추기경과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레오에게 폭탄을 던졌다.

“할아버지. 소개해드릴게요. 이분이 바로 저와 장래를 약속한…”

레오는 충격에 몸이 굳었다. 베르크 추기경은 마뜩잖다는 표정이고, 크세니아는 제 할애비에게 손녀사위를 살갑게 소개했다. 그녀의 본명은 크세니아 페테르,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의 외동딸이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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