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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1

20. 거지남매 – 면접

도시에 저녁 어스름이 깔렸다.

레오는 일부러 은화를 가지고 장난치듯 만지작거리며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걸렸다.’

왜소한 거지가 가진 은화를 탐내는 놈들, 하릴없는 건달들이 그를 쫓았다.

{뒷골목의 규칙} 덕분에 뒷골목의 세계를 조금 안다.

깡패들은 이런 사소한 것에는 관심이 없고 ‘패밀리’에 소속되어 일했다.

암흑가를 지배하는 패밀리들은 불법적인 사업을 전담했는데, 대부분 귀족에게 상납하고 이름값을 빌려 썼다.

패밀리들은 나름 엄격한 규칙을 준수해서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물론 납치한 노예는 예외였다. 그건 일반인이 아니라 상품이니까.

반면 건달들은 패밀리에 들어가지 못한 한량들이었다.

일반인을 위협해서 돈을 뜯어내는 불순분자들, 도시의 경비병에게 두들겨 맞는 게 예정된 인간들이다.

레오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막다른 골목길을 찾았다. 길을 잃은 척 돌아 나오자 건달 세 명이 실실 웃으며 앞을 막아섰다.

“그대로 들어가. 얌전하게.”

“거지 놈이 제법 반반하게 생겼네? 적선 많이 받겠어.”

그는 반항하지 않고 막다른 길 끝까지 들어갔다.

무기는 없었다.

하지만 레오는 약혼관계 시나리오에서 죽도록 수련했고, 살벌한 전쟁터에서 몇 달을 굴렀다. 건달 세 명쯤은 {검술}도 필요하지 않았다.

“너 돈 좀 있는 것 같… 엌!”

건들건들 급소를 다 노출하고 다가온 놈의 젖꼭지 옆 겨드랑이를 팔꿈치로 쳤다.

이 레오의 몸은 워낙 허약해서 주먹을 쓰면 손목이 부러질지도 몰랐다. 조심해서 때려야 했다.

“뭐야? 붸엑!”

뒤에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놈의 면상에 발차기를 시원하게 꽂아 넣고, 그대로 달려서 도망치지 못하게 골목길 입구를 막았다.

“이 거지새끼가!”

남은 한 명이 작은 단검을 꺼내 들고 성급하게 찔렀다.

이놈은 단검 쓰는 법을 모른다.

단검은 대치상황에서 찌르라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한 뼘도 안 되는 리치가 가장 짧은 무기, 그걸로 찌르기를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단검은 대치한 적의 팔을 베어버리는 견제의 용도로 사용하거나, 몸을 밀착시켜 서로를 난도질할 때 빛나는 무기였다.

하지만 지금 이놈은 단검 찌르기에 정신이 팔렸다.

레오는 찔러오는 팔을 팔뚝으로 밀어내며 품속으로 파고들고는 놈의 턱을 손바닥으로 뻥! 올려쳤다.

그의 머리가 흔들린 사이, 단검을 쥔 손을 붙잡고 손목을 강하게 수도로 내려치자 ─ 땡그랑, 단검이 떨어졌다.

“고마워. 무기가 필요했는데.”

단검을 놓친 녀석을 세게 밀자, 급소를 맞아 아직도 비틀거리는 녀석과 부딪쳐 우당탕 넘어졌다.

단검을 주워들었다.

발차기를 맞은 놈이 바짝 경계하며 자세를 일으켰지만, 이놈들은 이제 죽은 목숨이다.

[ 업적 : 뒷골목 청소 – 어두운 골목길에서 더 강해집니다. ]

레오는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단도 두 개와 동화 열댓 잎, 잠깐 일한 것치고는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그는 시장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달들이나 때려잡으면서 돈을 벌 생각은 없었다. 그놈들을 잡는 것도 한두 번이다.

뒷골목의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패밀리에 들어가야 했다.

그가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능력은 {검술}뿐. 레나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 없으니, 도시에서 칼 쓰면서 돈이 되는 일은 깡패밖에 없었다.

오르빌 경비병에 지원하는 것도 고민해봤지만, 경비병도 결국 군인이어서 어디로 어떻게 파견될지 모르고, 돈도 되지 않았다.

레오는 마차 대여소를 찾았다. 도시에서 2인승 마차를 빌려 탈 수 있는 곳이었다.

슬슬 문을 닫을 시간이라 대여소 창구를 정리하던 한 청년이 다가오는 웬 거지를 보고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말했다.

“여긴 거지가 오는 곳이 아니야. 저리 가.”

하지만 그 거지는 불쑥 단검을 꺼내 그를 겨누었다.

“무, 무슨 짓이야? 어디서 보낸 놈이냐?”

당황해서 물었지만, 거지는 단도를 치우지 않았다. 청년은 내밀어진 단도와 거지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의자 밑에 달린 줄을 밟았다.

지난 소꿉친구 시나리오에서 레나가 납치됐을 때, 레오가 마구간으로 끌려간 건 우연이 아니었다.

성 안팎으로 불법적인 물품을 숨겨 나르기 위해서 패밀리들은 마차 대여소를 가지고 있었다.

도시에 있는 거의 모든 마차 대여소는 패밀리에서 운영되는 것이라 해도 무방했다.

곧 거구의 사내가 대여소 문을 벌컥 열며 뛰쳐나왔다.

“뭐야 이 거지새끼는?”

“모르겠어요. 그냥 와서 다짜고짜 무기를 들이댔어요.”

“신종 구걸 수법이냐? 칼 안 치우면 좀 아프게 될 거다.”

깡패가 위협적으로 눈을 부라렸지만, 거지, 아니, 레오는 오히려 단도를 하나 더 꺼내어 피 묻은 옷자락과 함께 들어 올렸다.

“시장터 서쪽 부근 골목길에서 건달 세 명 잡았다. 신고식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별 개소리를 다 듣네. 헛소리 말고 꺼져.”

“내일 다시 올 테니까 확인해봐.”

패밀리에서 사람을 뽑는 방법은 다양했다.

그들은 용병 생활을 때려치운 놈을 소개받아 고용하거나, 건달 중에 쓸만한 놈을 뽑아가거나, 신원이 분명하고 힘 좀 쓰는 일반인을 꼬셔가곤 했다.

레오가 쓴 방법은 가장 과격하고 보기 드문 방식이었다.

피 묻은 손과 무력을 증명하는 방법. 가장 빠르게 패밀리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패밀리에서 직접 데려온 게 아니어서 신뢰를 얻기까지 제법 오랫동안 외부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레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키가 작고 왜소한 그는 패밀리 눈에 띄기 어려워서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었다.

레오는 청년과 깡패를 뒤로하고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옷을 몇 벌 사 갈 생각이었는데… 이미 다 닫혔겠지?’

벌써 어둠이 깔렸다. 건달들을 낚고 마차 대여소를 찾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신발가게로 돌아왔다.

카시아는 가게에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돈을 왕창 내보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성격이 독특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카시아는 탁자에 돈 통까지 그대로 둔 채 자리를 비웠다.

레오는 레나가 보기 전에 상의를 벗었다.

오기 전에 먼지를 묻히고 몇 번 털어냈지만, 혹시라도 피 묻은 것이 눈에 띌지도 모른다.

“레나, 안에 있지?”

“오빠!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동생은 문을 벌컥 열고 레오를 반겼다.

“일자리 구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네.”

“근데 옷은 왜 벗고 있어?”

“걸어오느라 더워서.”

“힘들었겠네…”

“아냐 아냐. 하나도 안 힘들었어.”

둘은 자리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이 시나리오의 레나는 과묵한 편이었다.

레오가 이야기를 하면 레나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가끔 맞장구를 치긴 했지만, 자기 이야기는 거의 안 했다. 조금 끈질기게 오늘 뭐 했느냐고 물어봐도

“그냥 방에 있었어.”

라고 말하곤 끝이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을 수도 있다. 내일은 꼭 옷이랑 가지고 놀만 한 걸 사 와야겠다. 선생님도 찾아봐야 하고…

남매는 좁은 침대에서 나란히 잠이 들었다.

레나에겐 정말 오랜만에 맞이한 따뜻한 침대였다.

* * *

레오는 밖에서 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새벽이다.

“안녕하세요.”

“안녕.”

카시아는 물통을 새로 사서 들여놓고 있었고, 가게 앞에 서 있던 물차는 삐걱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찍 일어났네?”

아침이 서서히 밝아오고는 있지만, 아직도 사위가 어두침침했다.

“미안한데 나 지금 씻을 거야. 봐도 상관은 없지만 들어가 줄래?”

“네.”

밖에서 카시아가 씻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청결한 걸 좋아하는지 몸을 오랫동안 씻었다.

레나는 아직도 꿈나라다.

곤히 잠든 걸 깨우기 미안해진 레오는 동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저는 나갔다 올게요.”

“그래.”

“레나가 일어나면, 저 일하러 나갔다고 알려주시겠어요?”

“그래.”

“…감사합니다.”

레오는 먼저 선생님을 구하러 나섰다. 이곳 오르빌은 사람이 많아서 선생님들도 많았는데, 대부분은 일종의 학원 같은 걸 차려놓고 학생들을 받았다.

이곳에는 공립학교 같은 무상교육이 없기 때문에 공부하고 싶으면 수업료를 내야 했다.

하지만 성안의 선생님들은 귀족이나 부호의 자녀를 가르쳤기에 수업료가 만만치 않을 터였다.

‘아무래도 성 밖에 있는 선생님이 돈이 덜 들겠지?’

레오는 성 밖으로 나가기에 앞서 먼저 시장을 향했다. 단검은 레나의 방에 두고 나오기 뭣해서 들고 나왔는데, 성문을 통과하려면 이걸 숨겨놔야 했다.

딱히 둘 만한 곳을 알지 못해서 그는 시장 근처에 지어놓은 남매의 집을 찾았다. 한데 도착해보니 어떤 사람들이 집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딱 하루만 머물 수 있는 곳이었네.’

지난 시나리오에서 새벽같이 일어나서 자리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건물주인에게 두들겨 맞았을 거다.

건물주인에게 맞아 죽는 엔딩이라니… 그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역시 카시아에게 의탁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레오는 근처 쓰레기통 뒤에 단검을 숨기고 남문 근처의 가게에서 옷을 한 벌 사 입었다.

성문을 거지가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고, 선생님을 구하러 가는데 거지꼴로 갈 수는 없다.

이윽고 레오는 남문 앞 시장통으로 나와서 발품을 팔았다.

“죄송한데요. 여기 근처에 선생님이 계신가요?”

“선생님? 글쎄? 난 애가 없어서 잘 모르겠네.”

“저쪽에 가면…”

몇몇 선생님들을 찾아 만났지만, 대부분은 한눈에 보고 걸렀다.

‘저 사람은 너무 젊어.’

선생님들은 전부 남자였다. 레오가 찾는 선생님은 레나의 외모를 이용하지 않을만한 인격자이면서도 가능하면 나이 든 선생님이었다. 가르치는 실력은 어지간하기만 하면 됐다.

그는 어렵게 환갑을 넘겼을 법한 선생을 찾았다.

나이가 많아서 멀리까지 가정교육을 나가기 힘들다는 것을 간신히 설득했다. 몇 권의 책을 챙겨 신발가게에 도착한 선생님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린 아가씨가 정말 예쁘시군요. 왜 늙은 저를 한사코 데려왔는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레오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이 아가씨에 관해서는 어디서도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 일주일에 두 번 들려서 수업하지요.”

레오는 책값과 수업료를 기꺼이 지불했다.

{초기 자금} 대부분이 책값으로 나갔지만, 한동안은 레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레오가 선생님을 데리고 오자 매사에 무관심해 보이던 카시아도 흥미를 느꼈는지 옆을 떠나지 않았다.

“좋은 오빠네.”

그녀는 그가 선생님을 부른 게 퍽 인상 깊은 모양이다.

“저는 다시 나갔다 올게요.”

“일은 구했어?”

“아마도요.”

레오는 책을 만지작거리며 신기해하는 레나를 두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패밀리의 대답을 들을 시간이다.

* * *

“잠깐만 기다려.”

레오가 단검을 챙겨 마차 대여소에 도착하자, 전의 그 청년이 안으로 후다닥 들어가 한 깡패를 데리고 나왔다.

“뭐야? 한가락 하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이런 작대기였어?”

어제 봤던 깡패가 아니었다.

“들어와 봐.”

그 깡패는 마차들이 즐비하게 세워진 곳을 지나 작은 건물로 레오를 안내했다.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돼있었지만 이렇다 할 가구도 없이 황량했고, 말똥 냄새가 풍겼다.

“대장, 어제 그놈 데려왔어요.”

“들어와.”

방에 들어가니 대장이란 놈이 책상에 앉아있었다.

대머리인 그의 머리는 울퉁불퉁 근육처럼 생겼는데, 보기와 달리 든 것이 있는 듯 책상에는 서류들이 쌓여 있었다.

그는 레오를 보더니 얼굴을 씰룩거렸다.

“듣긴 들었는데 정말 작군.”

“……”

“뭐, 일단 반가워. 건달 세 명을 요런 몸으로 죽였으면 실력이 대단한 거겠지?”

“보잘것없는 실력입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그는 치아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움찔거리는 턱의 흉터가 위협적이다.

“주 무기는 단검이야?”

“양손검을 더 잘 씁니다.”

“어이고. 어디 기사님 댁 자제분이셨구먼.”

“……”

“따라와. 일단 실력을 봐야 하니까.”

그는 랜턴을 들고 레오를 마구간으로 안내했다. 기름 랜턴 빛이 지나가자 말들은 푸르륵 고개를 돌렸고, 짚단을 깔고 앉아 빈둥대던 깡패들은 벌떡 일어났다.

“니들이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죄송합니다!”

깡패들의 고개가 구십 도로 꺾였다.

“됐어. 혼내러 온 건 아니고 신입이 한 명 왔는데, 어디 보자… 다올, 네가 얘랑 붙어봐. 누가 목검 두 개만 가져오고. 하나는 양손검이야.”

“네!”

이윽고 레오의 손에는 양손검이 들렸다.

다올이란 깡패는 한손검과 본인의 방패를 들었다.

주위는 기둥에 걸린 여러 랜턴들로 제법 밝았고, 바닥은 조금 젖어서 지푸라기가 눅눅하게 밟혔다.

“좀 세게 해도 되니까 알아서들 붙어.”

대장이란 놈이 혼자 짚단에 앉았다. 몇몇 깡패들은 구경났다며 몰려와서 길목을 막았다.

만약 진다면 몸 성히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다올이라는 거구의 깡패가 레오를 위압적으로 내려다봤다.

키도 머리 두 개는 넉넉히 들어갈 만큼 차이나고, 몸무게로 따지면 세 배에 가까워 보이는 이들의 싸움.

누군가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말할 것이었다.

동감이다.

다윗이 이기니까.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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