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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1

21화 합류 (1)

21화 합류 (1)

“웬 놈이냐!”

동료의 죽음을 본 다른 기사가 세실에게 말을 달려왔다.

세실이 단검에서 휙! 핏물을 털어냈다.

그리고 사라졌다.

팟! 파파팟!

세실의 몸이 점멸하는 조명 아래를 달리듯 연속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에 맞춰 전신을 뒤덮은 이질적인 어둠이 잿개비처럼 흘렀고, 그 변칙적인 움직임에 기사가 반응하기도 전에 세실은 기사의 뒤를 잡았다.

“이게 무슨······!”

기사가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는 군마를 타고 있었고, 그래서 회전 범위에 한계가 있었다.

카앙! 세실의 단검이 기사의 갑옷에 부딪혔다. 노련한 기사였다. 그는 조금 전 동료의 죽음을 통해 세실의 공격 방식을 봤다. 그래서 목을 베이기 직전 어깨를 내밀어 갑옷으로 막았다.

기사가 고삐를 당기자 군마가 앞다리를 들었다. 그 바람에 세실이 말 등에서 미끄러졌다. 하지만 곡예를 하듯 바닥을 튕기며 자세를 잡았다.

휘리릭! 휙!

나는 세실의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카인과 같은 14세이지만 강함의 차이는 확연했다.

그 카인조차도 세실의 힘을 뛰어넘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다. 지금의 세실은 향후 무한회귀의 주역이 될 여러 등장인물 중에서도 압도적인 강자다.

“······네놈. 정체가 뭐냐.”

기사가 말에서 내려오며 물었다.

세실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검 한 자루를 더 꺼내 들며 기사를 응시할 뿐이었다. 세실의 몸에서 발하는 이질적인 어둠이 더욱 깊어졌다. 그것이 세실의 전신을 새까맣게 덮었다.

“무슨 사악한 술수를······!”

기사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다시 점멸하며 이동한 세실이 기사의 코앞으로 근접했기 때문이다. 부웅! 기사의 검이 허공을 갈랐고, 직전까지 그곳에 있던 세실은 미끄러지듯 보폭을 넓혀 기사의 뒤로 넘어갔다.

가히 인간 같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관찰력 특성을 발현했는데도 따라잡을 수 없다. 뒤를 잡힌 기사가 아까처럼 어깨를 내밀었다.

핏! 피피핏!

순간 내 눈에는 세실의 두 팔이 대여섯 개로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그리고 그 모든 공격은 갑옷의 틈새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크흑······! 컥······!”

기사의 팔다리에서 피가 흩어졌다. 기사가 이를 악물며 반격을 꾀했다. 하지만 세실의 비열할 정도로 적확한 공격은 기사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기사는 몇 번 검을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세실에게 목이 따였다. 푸슈슛······! 흩날리는 혈액이 달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털썩.

기사가 쓰러졌다. 단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세실이 고개를 돌렸다. 서늘한 연녹색 눈동자는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내가 통찰을 발현한 것과 세실의 몸이 사라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

◎ 세실■■ ■■■■■ [1■세], [Lv.4■]

◎ 속성: [■■■]

◎ 특성: [침착■], [■■■], [■■■ 감각], [■■■], [■■■], [강박적], [기만적], [밤눈], [■■■], [■■■], [■■], [■■■ ■■■]

◎ 적성: [■■ Lv.3], [단검술 Lv.5], [■■ Lv.3], [■■ Lv.2], [■■■ Lv.2], [■■■ Lv.2], [투■술 Lv.5], [승마술 Lv.3]

◎ 일반 스킬: [■■ Lv.3], [■■ Lv.3], [매복 Lv.4], [■■ Lv.3], [절삭 Lv.5], [■■■■ Lv.3], [■■ ■■ Lv.2]

◎ 전용 스킬: [■■■ ■■■■ Lv.6(■■)], [■■■ ■■ Lv.4], [■■■ ■■ Lv.3], [■■■ 도약 Lv.3]

————————

[대상과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파팟! 하는 세실의 발소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나는 그 와중에도 침착을 강제하며 카피할 스킬을 확인했다. 서둘러라. 이대로면 죽는다.

[■■■ 도약 Lv.3]

찾았다. 당연하게도 스킬명은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저 스킬의 이름을 알고 있다.

[스킬명이 완전해야 카피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 도약.’

[그림자 도약(Lv.3)을 카피합니다.]

[대상과의 레벨 차이로 인해, 열화 버전으로 카피됩니다.]

뭐라고?

.

.

.

[그림자 도약(Lv.1)을 카피합니다.]

3레벨이 아닌 1레벨의 그림자 도약으로 카피됐다. 아쉽지만 괜찮다. 카피에 성공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그림자 도약(Lv.1)을 발현합니다.]

지금의 내가 세실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균열을 파괴하며 20레벨이 됐지만 세실과는 여전히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그뿐 아니라 세실은 눈에 보이는 레벨보다 더욱 강하다.

피핏!

세실의 단검이 내 목을 스쳤다. 치명상은 피했다. 그림자 도약(Lv.1)을 발현한 내가 점멸하듯 옆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동그랗게 눈을 뜬 세실이 다시 단검을 뻗었다. 어디를 베였는지도 모르는 채 피가 솟았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행운이 따라 주었는지 이번에도 죽음을 피했다.

더욱 눈이 커진 세실이 두 발짝 뒤로 물러났다.

“너. 누구.”

단어를 나열하듯 말하는 독특한 어조. 직접 들으니 신기한 기분이다.

동그래졌던 세실의 눈이 살기로 채워졌다. 나는 서둘러 말했다.

“세실.”

키잉! 세실의 단검이 내 눈앞에서 멈췄다. 등골이 오싹했다. 언제 여기까지 다가온 걸까.

“너. 누구.”

세실이 다시 물었다. 단검의 끝은 여전히 내 눈을 겨눈 채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의 세실은 내게 차원의 그림자 못지않게 위험한 존재다.

“난 데미안. 데미안 라플라스.”

“데미안. 라플라스.”

고저가 없는 목소리가 내 이름을 따라 말했다.

“너는 세실이지?”

“어떻게.”

“레이븐에게 들었어.”

세실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이어 놀란 고양이처럼 파파팟! 네 걸음 뒤로 물러났다.

“너. 어떻게.”

대답할 틈도 없이 세실이 다시 물었다.

“조금 전. 기술도?”

“맞아. 레이븐에게 배웠어.”

레이븐은 세실의 외숙부다.

세실이 믿었던 두 인물 중 하나.

안타깝게도 두 사람 모두 지금은 살아있지 않다.

“레이븐이 네 이야기를 많이 했어. 자신의 하나뿐인······.”

나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느 틈에 코앞으로 다가온 세실이 내 목에 단검을 드리웠기 때문이다.

“거짓말.”

세실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 기술. ‘블레오파드’만. 가능해.”

진심으로 생명의 위협이 느껴졌다. 카인이 단검을 겨눴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세실의 눈동자가 불꽃처럼 일렁거렸다.

“너. 거짓말했어.”

“거짓말이 아니야.”

나는 눈동자만을 굴려 세실을 봤다.

“너도 알고 있잖아.”

“무엇을.”

“레이븐이 블레오파드가 아니라는걸.”

“······.”

세실의 의심은 타당했다.

세실이 지닌 ‘그림자의 마력(영력)’은 오직 핏줄을 통해서만 전해지는 힘, 블러디드(Blooded)니까.

그러나 무한회귀의 작가인 가이아마저 이유를 밝히지 않은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레이븐이다.

“게다가 거짓말은 오히려 네가 하는 것 같은데.”

“무슨.”

“이 기술은 블레오파드 안에서도 세실, 너만이 발현할 수 있잖아.”

“······!”

나는 세실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흔들리는 것을 봤다.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이제 자신뿐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것을 아는 또 하나의 인물이 눈앞에 있다. 이제 세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레이븐과 깊은 관계를 맺은 인물이라는 것을.

“내 말이 틀렸어? 세실.”

세실은 단검을 치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레이븐이. 말했어?”

침묵을 깨뜨리는 세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요해진 세실의 눈동자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데미안. 라플라스.”

세실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페이드린. 아니야.”

페이드린은 레이븐의 성씨다.

레이븐 페이드린.

혹은, 페이드린 혈족의 레이븐.

“그런데. 어떻게.”

세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의문이다. ‘그림자 도약’은 블레오파드와 페이드린의 블러디드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특별한 기술이니까.

하지만 나는 블레오파드도, 페이드린도 아니다.

“레이븐이 내게 물은 적 있어. 조상 중에 먼 북동쪽에서 온 사람이 있느냐고.”

페이드린 혈족의 땅은 여기서 아주 먼 북동쪽에 있다.

이 정도만 말해도 세실은 상황을 유추할 거다. 어눌한 어조와 달리 세실은 머리 회전이 빠르니까.

사실 세실의 원래 말투는 이렇지 않다. 지금의 어조는 소중한 이의 죽음을 겪으며 발생한 후유증이다.

“넌. 그럼.”

거기까지 말한 세실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감정이 실린 눈으로 나를 봤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세실의 눈빛에서 애틋함을 느꼈다. 아마도 레이븐을 향한.

뜻밖의 죄책감이 다가왔다. 하센베르크 격투술을 카피해 카인을 속였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때와는 많이 달랐다.

‘카인은 미친놈이니까.’

카인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인물이다.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소설의 극초반부터 천하의 개새끼로 불렸을 거다.

하지만 세실은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살수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타인에 의해 덧씌워진 가면일 뿐이다.

세실의 내면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여리다.

나는 그것을 잘 안다.

***

소설 속의 세실은 카인이 장악한 용병단을 추격하는 살수로 처음 등장한다. 당연하게도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세실이 카인을 암살하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의 트릭이었다. 오히려 세실은 위기에 처한 카인을 도와주며 독자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세실의 그런 행동이 다소 뜬금없어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세실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카인의 가문을 멸망시킨 것이 블레오파드니까.’

물론 하센베르크 가문이 멸망할 때 세실은 그곳에 없었다.

그러나 사건 직후 도망자 신세가 된 세실은 어디선가 카인을 만나고, 그가 자신의 혈족 때문에 가족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세실은 큰 죄책감에 빠진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의지할 이 하나 없던 세실이 카인에게 집착하는 결과를 낳게 하고, 이후 세실은 카인의 가장 믿음직한 동료이자 측근이 된다.

“몰라. 난.”

돌연 세실이 말했다. 우리는 근처의 나무에 군마를 묶어둔 뒤 숲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뭐?”

“C조. 위치.”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데미안. 알아.”

“내가 안다고? 뭐를?”

“C조. 위치.”

······그래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던 건가.

“그렇지 않아. C조가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몰라.”

“거짓말.”

“거짓말이 아냐.”

물론 근처에 가면 미니맵으로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근처에 도달했을 때의 이야기고.

게다가 그들은 군마까지 가졌는데 어느 방향으로 얼마큼이나 달릴지 내가 어떻게 알겠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먼지에게 물어봤지만, 이미 상당한 거리가 벌어졌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거짓말.”

그러나 세실은 내 말을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말했어. 카인이.”

“뭐?”

“너. 특별하다고.”

“내가?”

세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찾아.”

······대화하기 힘들다.

“누구. 와.”

나는 세실이 말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까부터 주머니 속의 먼지가 기분 좋게 꼬리를 흔들었으니까.

“데미안!”

나를 발견한 테오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저렇게 환하게 웃는 테오는 처음이었다. 그 뒤로 족제비와 덩치도 보였다.

“무사했구나!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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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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