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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1

21화 사냥하는 거미(4)

“다수의 적을 상대로 단기필마로 돌진하는 그 용맹! 이 사자심왕이 상찬하는 바!”

“용안을 배알할 영광과 이 사자심왕과의 결투의 명예를 수여하노니. 본왕에게 맞설 것을 윤허한다, 전사여!”

말의 의미를 해석할 필요도 없다. 야크트 스피너는 멍청할 정도로 정직하게 기다려주는 기병에게 레일건을 겨눴다.

길태성을 향했던 탄자가 초전자가속에 요동친다.

「레일건 가속타이밍 셋업. 출력 13%.」

세이브 캡에 한정된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하며 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 사이즈 상대로는 충분.

이 파멸의 초전자포를 정면에서 맞고도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은 없다. 있다면 그건 이계의 존재나 이형의 힘을 가진──

“달리자, 나의 맹우여.”

────!!

스탈리온은 기꺼이 화답했다.

네 다리가 폭풍처럼 지면을 박차고 정면의 적을 향해 돌진한다.

그것은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말을 타고 기사가 랜스를 겨누며 돌격한다.

오랜 시간 인류의 최강병기로 활약한 고대의 전차.

명예와 영광, 용맹과 용력을 두른 구시대의 기사가 달려드는 모습은 누구나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하지만 육탄병기는 전락한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

이미 헌터라는 직종이 생물의 한계를 넘은 시점에서 말 따위로 자아내는 질량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초중장갑, 초고속포로 무장한 장갑병기에게 도전하는 육탄병기. 그 어리석음을 말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콰앙!

초음속의 초전자포가 시인할 수 없는 속도에 돌입한다.

이것이 기계병기와 생체병기의 차이. 원거리에서의 압도적인 화력 차. 그것을… 레온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터다.

“기사는! 비겁한 원거리 무기 따위에 당하지 않는다!”

레온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성력이 전방에 얇은 막을 형성했다.

-콰앙!

격돌하는 탄자와 막. 초전자포가 놀랍게도 얇은 막 따위에 저지된다. 아니… 저지됐다 정도가 아니다.

마치 무언가에 강요된 것처럼 탄자가 휘더니 튕겨 나가버렸다.

“……?!”

찰나의 순간, 야크트 스피너의 고성능 AI조차 연산이 멈췄다.

눈앞에서 벌어진 현상을 논리가 증명하지 못한 것이다.

야크트 스피너는 헌터를 사냥했다. 마법사를 목격했다. 이상물리현상을 일으키며 제 주포와 기관포를 막아서려 했던 가엾은 시도를 데이터로 남겨왔다.

무형의 기운을 끌어올린 ‘술식’이 물리적인 작용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이번은 다르다.

격돌, 저지라는 과정을 거쳐 관통 또는 방어라는 결과가 도출된 게 아니다.

그냥 튕겨 나갔다. 과정 없이 결과만이 도출됐다.

성법 화살막이의 가호.

그 어떤 ‘원거리 공격’이라도 ‘한 번’은 ‘무조건’ ‘튕겨낸다’.

성배기사들이라면 누구나 숨 쉬는 것처럼 전개하는 성법.

인류 최강의 초력병기 성배기사들이 가진 기적.

규칙을 강요하는 법(法).

레일건의 포격을 가볍게 튕겨내 버린 기사가 믿기지 않는 속도로 돌진해왔다.

빠르다.

신마는 폭풍과 고열의 잔해를 흩뿌리며 순식간에 야크트 스피너 코앞까지 달려들었다.

-삐익!

기계는 판단한다.

들고 있는 무기는 구시대적인 마상창, 속도가 빠르다곤 하나 아무리 속력이 증가해도 질량이 가진 충격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

초인적인 움직임과 ‘마력’이라는 특이 에너지를 무기에 싣는 헌터들과 달리 저 창에는 아무런 에너지도 담겨있지 않다.

정말 순수한 물리력과 돌파력만으로 덤벼드는 것이다.

위협레벨 0.

대응할 필요조차 없는 위협. 고작해야 제 다리와 부딪쳐 멈춰버리겠지. 그렇다면──

합리적인 대응방법을 도출. 대미지 제로의 랜스 챠징을 받아내고 멈춰선 위협인자를 기관포로 압살한다.

기계의 합리성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쿵!

-콰직!!

기계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3번 센서가 감지한 ‘다리가 관통되는’ 소리를 기록하지 못했다면,

보조 카메라가 관절부의 중장갑을 푸딩처럼 관통하는 모습을 포착하지 못했다면,

야크트 스피너는 제 다리를 순식간에 관통해버린 게 저 남자의 랜스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조차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불가.

불가능.

세워진 가설을 부정하는 인공지능. 그도 그럴 게, 관절의 견고한 장갑은 랜스 챠징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구시대적 육탄돌격에 부러질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학과 물리법칙이 성립시킨 ‘상식’의 틀은 구 문명의 산물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증명은 기계의 몫이 아니니──

닥쳐온 현실이 곧 증명이다.

-꽈앙!

“……??!”

휘둘러진 성창에 부딪친 관절부가 삐거덕거리며 휘청거리는 야크트 스피너.

“튼튼하군.”

정보개찬. 재분석.

논리분석 불가. 물리현상 이해 불가.

적 위협레벨 강제상승.

위협레벨 5.

강제적으로 주력전차를 상정한 위협 판정을 내리고서야 야크트 스피너의 대응이 후퇴로 변경됐다.

본래라면 무시하거나 압살해야 할 적을 두고 관절부에 무리가 가는 것을 감수해가면서 크게 뛰어오르는 야크트 스피너.

다리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고, 또 하나의 관절이 찌그러진 덕에 안정적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거리를 벌린 야크트 스피너의 보조 관절부가 움직였다.

-사악!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와이어 커터. 숱한 헌터들을 반 토막 낸 살인적인 채찍이 레온을 향해 휘둘러졌다.

동체시력이 인간을 초월한 헌터들이 인지조차 힘들 초음속 와이어 채찍.

그러나 레온의 동체시력은 헌터들 따위와 비견할 바가 아니다. 그는 창을 세운 것만으로 간단히 와이어를 휘감아버렸다.

휘감아진 와이어를 당기는 야크트 스피너. 자연스럽게 둘 사이의 힘 대결이 성립한다.

“이 나와 힘 싸움이더냐. 재밌구나.”

성창에 휘감긴 와이어를 끌어당기는 레온.

-우직!

본래 사소한 장애물이나 폭발물을 치워내기 위한 보조 관절부는 레온이 끌어당긴 악력을 견딜 수 없다.

-콰콰쾅!

레일건과 와이어 커터를 잃은 야크트 스피너가 미친 듯이 기관포의 화망을 퍼부었다.

건물 옥상에 착지한 야크트 스피너는 기관포의 화망을 모조리 레온에게 집중시켰고, 신수 스탈리온은 경이로운 연속도움닫기로 순식간에 화망에서 벗어났다.

-콰콰콰콰쾅!!

적중을 기대하지 않은 견제사격이었음에도 화망 그 자체에서 벗어나 버리는 기동력.

어쨌든 거리는 벌렸다. 기관포 사격은 어디까지나 견제. 레온을 제게서 멀리 떨어뜨리려는 것이었으니 목적은 이루었다. 다시 한번 레일건을…….

“────!!”

다음 순간, 공기를 찢으며 무언가가 날아왔다. 그것이 레온이 들고 있던 창이라는 것을 카메라 센서가 잡아내고 0.02초.

기계의 대응은 늦었고 레일건과는 비교도 안 되는 관통력이 야크트 스피너의 좌뇌부를 뚫고 레일건 동체를 박살냈다.

-끼릭! 끼리릭!

센서의 반수와 비장의 레일건마저 박살난 야크트 스피너가 구동관절의 동작계산이 늦어 축 늘어졌다. 그 와중에도 사격을 통한 견제는 계속된다.

이 위기 속에서 후퇴를 위한 유일한 가망은 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기에.

인간으로 치면 즉사에 가까운 중상을 입고, 찌그러진 관절부가 내는 삐걱거리는 소리는 마치 분노나 고통에 찬 포효 같았다.

-끼릭! 끼리릭!

싸구려 B급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살육기계의 삐걱거리는 기계음을 남기며, 야크트 스피너는 모래폭풍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

바깥은 여전히 모래폭풍이 휘몰아치는 헌터 캠프 안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야크트 스피너의 습격과 그로 인한 대량의 사망자 발생.

그 위기감이 불러일으킨 경각심이 개인주의인 헌터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다.

“몇 명이나 죽은 거야?”

“조각을 끼워 맞출 수 있는 것만 열일곱. 건물에 깔려 죽은 놈들은 못 셌어.”

“대충 서른은 죽었다는 소리구만.”

단 한 번의 습격으로 헌터 캠프의 헌터들 3분지 1이 사망했다.

만약 야크트 스피너가 후퇴하지 않았다면, 필시 이보다 더한 피해가 발생했겠지.

“레일건을 파괴한 건 불행 중 다행인가…….”

헌터들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로 향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보았던 것이다. 야크트 스피너를 단신으로 격퇴한 괴물을.

‘……뭐하는 놈이지?’

‘최신 데이터에도 기록되지 않은 헌터라니.’

‘이 녀석… 마력 같은 건 안 쓰지 않았나? 설마 진짜 육체능력만으로 저 괴물을 상대했다고?

추측은 여럿 있었지만, 무엇도 확실하지 않았으며 어떤 경우의 수도 그들의 의문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확실한 건 이 남자가 야크트 스피너를 단독으로 쓰러뜨릴 유일한 전력이라는 것이다.

“당신,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군.”

황금철은 레온이 보여준 무위를 보고 확신했다. 이 남자는 생존자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어쩌면 천마나 살성 같은 규격 외일지도 몰라.’

만약 그렇다면 그에겐 철저하게 협력적으로 임해야 한다. 그가 대한민국에 자리 잡는 이상, 앞으로의 한국은 그를 중심으로 움직일 테니까.

“…….”

이는 황연하나 길태성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야크트 스피너에 의한 피해는 훨씬 커졌겠지.

특히 길태성은 마음이 급해졌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마탑과 거래를 하시지 않겠습니까? 지혜의 보옥만 획득해주신다면 앞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시시하군.”

한 마디. 단 한 마디로 레온은 모든 가능성을 깨뜨렸다.

“주문쟁이와 힘 깨나 쓰는 것들이라고 기대했다만, 결국 어중이 떠중이었나. 진정한 기사의 자격을 지닌 자는 짐뿐이었군.”

그 시선과 표정에는 터럭의 흥미조차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오만함만은 흔들림 없는 채로 헌터들과 마법사를 흘겨본다.

“최소한의 자격은 갖추고 짐을 배알해라. 기사왕인 짐과 마주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건 쉽지 않다..”

끝까지 오만과 오연한 태도를 유지한 채, 그는 자리에서 떠나갔다. 댕기머리의 검객 소녀만이 허리를 숙이며 다급히 그를 따라나설 뿐이다.

“아~ 진짜 희한한 생존자가 나와부렀네.”

황금철은 어이가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길태성은 치욕에 파르르 입술이 떨렸고…….

“씨이발… 존나 머싯어.”

의외로 어린애처럼 동경의 눈빛을 보내는 황연하였다.

* * * *

야크트 스피너는 삐거덕거리는 관절부를 질질 끌면서 정비소 건물로 진입했다.

「봉인을 지켜라. 누구도 접근하게 두지 마라.」

오랜 세월 ‘최상위 오더’를 수행하며 부품의 노후화로 교체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처참하게 박살나고 찌그러진 경우는 처음.

야크트 스피너는 방해만 되는 관절부를 잇는 볼트를 차근차근 분해했다.

-쿵!

떨어지는 관절부. 스페어 파츠는 없다.

야크트 스피너는 부지런히 정비소의 남은 무장과 부품목록을 검색한다.

주무장 사용불가능. 정규탄자 다섯 발, 수제탄자 서른 여섯발 잠정적 폐기처분.

부무장 60mm 기관포 사용가능. 잔탄 657발. 수제탄약 제조 필요.

와이어커터 재수급. 보조관절 진단, 파손. 무장사용에 심각한 불균형 야기.

보조관절 폐기.

주무장 폐기.

부무장만으로 위협레벨 5를 사살하는 건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위협레벨 5. 본래는 적 주력전차나 공격헬기 또는 제1종 생물병기를 대상으로 하는 등급.

야크트 스피너는 레온을 제1종 생물병기를 넘어선 무언가. 근 천년 간 나타나지 않은 적대세력의 신형 개체라고 판단했다.

자신보다 기민하고 알 수 없는 파괴력을 선보이는 신형 개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AI는 자체적으로 전력을 비교, 전투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유효한 전술을 찾아내고 가장 승리 가능성이 높은 선택지를 골라 실행했다.

정비소의 모듈형 로봇 팔들을 스스로에게 장착. 조작하여 제 몸을 하나하나 떼어내기 시작하는 야크트 스피너.

주력전차의 주포급도 견뎌내는 두터운 장갑은 필요 없다. 떼어낸다.

하중을 견딜 다리도 필요 없다. 남은 여섯 개의 다리 중 두 개를 추가로 떼어낸다. 남은 다리에서도 최소한의 장갑만 남겨두고 해체했다.

무기로서 의미가 없어진 레일건의 잔여 포신과 에너지 공급을 위한 전용 배터리도 제외하자 100톤에 달하던 다목적 전차의 무게는 46톤까지 경량화됐다.

지속적인 보급 미달로 탄약 제한이 있는 화기를 대신해 평소 수집한 도시의 잔재를 종합.

강철 와이어들을 보급하고 정비용 로봇팔들을 추가로 장착한 야크트 스피너의 모습은 카탈로그 원본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다리는 소총탄과 폭발물만을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장갑을 덜어냈으며,

관절은 앙상하게 뼈대만 남았으나 줄어든 무게를 감당하기엔 충분했다.

화력과 방어력을 잃은 거미는 대신 끔찍한 기동력을 손에 넣었다.

기계의 철저한 합리성은 불필요한 모든 것을 덜어내어 적을 격퇴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럼에도──

「야피. 도시를 지켜줘서 고맙다.」

오래된 메모리 모듈 속, 파기되지 않은 목소리는 지금도 재생되고 있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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