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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1

미래를 보는 투자자 020

20화.

OTK컴퍼니 계좌에 찍힌 금액을 본 택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6850억!”

잔고를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돈을 이 정도로 벌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택규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만기일 더 떨어졌으면 진짜 대박이었는데.”

만약 추가 하락했다면, 수익은 1조가 넘었을 것이다.

장중 계속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기관과 연기금은 마감 동시호가 때 장마감 2분여를 남겨놓고 무려 3조 원을 집중 매수했다.

그야말로 매수폭탄이었다.

과매도에 따른 반발매수도 있었지만, 옵션만기일에 맞춰 주가를 끌어올려 손실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주가조작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오늘까지 하락세가 이어졌다면, 옵션을 발행한 금융사들이 줄줄이 파산했을 것이다. 정부든 금융사든 어쩔 수 없었겠지.

옵션만기일에 주가가 상승하며 우리 수익률은 크게 줄어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경이적인 수익률이다. 계좌에 찍힌 숫자만 봐도 머리가 어지러워질 것 같다.

뭔 0이 이렇게 많아? 

리디노미네이션이라도 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택규가 나에게 물었다.

“너한테 얼마 주면 되지?”

“응?”

“이익이 나면 반반씩 나누기로 했잖아.”

6850억 중 130억은 투자원금, 이익은 6720억이다. 이중 절반이 내 몫이니······.

계산을 끝낸 택규가 말했다.

“3360억이네. 맞지?”

“······.”

돈다발 쌓으면 빌딩 높이 정도 되려나? 

전역할 때까지만 해도 앞날을 걱정해야 했던 빈털터리였다. 그런데 이제 수중에 3360억이 들어오게 생겼다.

정말로 이런 엄청난 금액을 받아도 되는 걸까?

투자는 이익과 손실을 동반한다.

내 자본은 8억 밖에 투입하지 않은 만큼, 만약 손실이 발생했다면 거의 대부분 택규가 책임져야 했을 것이다. 실제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수십억의 손실을 떠안고 있었고.

이제까지 겪은 일을 생각하니, 이익의 절반을 가져가는 게 좀 미안한 느낌이다.

내 말을 들은 택규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안 받게? 그럼 나야 고맙지.”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택규는 피식 웃었다.

“어차피 너 아니었으면 130억도 날렸어. 130억을 6850억으로 만들지도 못했을 테고.”

나는 정보를 제공했고, 택규는 자본을 투입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누구 역할이 더 큰지는 의견이 엇갈릴 것이다. 그래도 사람인 이상 자기 기여도가 더 크다고 생각하기 마련.

그러나 택규는 처음부터 거리낌 없이 나에게 절반을 주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키려 한다.

세상에 이런 놈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문득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예지력이라는 게 이 정도라니······.”

고작 핸드폰 하나가 단종되는 것을 예지했을 뿐이다. 그런데 수천억을 벌어들였다.

만약 911테러나, 금융위기를 예지했다면? 전쟁이나 천재지변을 예지한다면?

마치 전기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듯했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택규가 말했다.

“역시 오라클 아이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

“그러네.”

우리의 표정은 아까와는 달리 심각하고 진지했다. 예지력이 얼마나 대단한 초능력인지 새삼 깨달은 것이다.

“만약 이게 알려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정보기관 같은 데서 끌고 가려나?

“그런데 자기 입으로 예지력 가졌다고 떠들어대는 놈들은 많잖아.”

그중 일부는 무당, 관상가, 점술가, 역술인, 예언가, 전문투자가(아마 이쪽이 제일 많을 거다) 등등으로 열심히 활동 중이다.

세상에 예지능력자가 유독 많은 이유는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

염동력 같은 물리적인 초능력은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예지는 본인에게만 보이는 것인 만큼 검증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맞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가짜지만, 넌 다르잖아.”

만약 진짜 예지력이 있다면 뭐 하러 길거리에서 사주나 타로카드를 봐주고 있겠는가?

카지노 가서 카드 뒤집거나, 주식매매만 해도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맞는 말이네.”

이 능력에 대해 아는 사람은 나와 택규 둘뿐.

이 녀석은 내가 어머니 외에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나에게 위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심각한 얘기가 끝나고 나자 택규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우리 진짜 엄청 벌었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기분이 좀 찝찝해졌다.

금융시장은 간신히 안정을 되찾았지만, 향후 전망은 그리 좋지 않았다. 서성전자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줄줄이 하향되었고, 스마트폰 수출부진으로 당장 다음 달 무역수지부터 악화될 게 예상되었다.

반면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엔플과 중국 업체들의 주가는 상승했다.

“이런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우리만 이렇게 이익을 챙겨도 되는 건가?”

내 말에 택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뭐가 어때서? 우리가 단종 시킨 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우리가 아무 짓을 하지 않았어도 L6는 단종되었을 테고, 서성전자는 하한가를 쳤을 테고, 코스피와 코스닥은 폭락했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손해 보는 와중에 누군가는 이익을 챙겼겠지. 지금은 그 이익을 우리가 가져갔을 뿐이다.

“전부 오라클 아이 덕분이지.”

그것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정보가 있어도 투자할 돈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만약 택규가 내 말을 믿고 투자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기회를 흘려보내고 손가락이나 빨고 있었을 것이다.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 해도 실제로 투자까지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얘는 감이 좋은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야.”

“응?”

“돈은 어떻게 받을 거야? 니 계좌로 받으면 세금이 나올 텐데.”

해외법인에 있는 돈을 국내로 송금하면, 세금이 발생한다. 금액이 수천억인 만큼 세율이 50퍼센트에 달한다.

세금만 1600억이 넘는다. 게다가 돈의 출처를 입증해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현찰로 받을래?”

“3360억을?”

사과박스를 5만 원짜리로 채우면 얼마나 들어가더라? 한 박스에 6억씩 들어간다고 쳐도 500박스가 넘잖아.

아니, 그전에 3360억을 현찰로 뽑을 수 있나? 5만 원짜리로 672만 장인데?

내가 이런 문제로 고민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려나? 나도 조세회피처에 법인 하나 만들어야 하나?

열심히 고민하는데, 택규가 물었다.

“이 돈으로 뭐할 생각이야?”

난 택규에게 되물었다.

“너는?

“글쎄. 딱히 할 건 없는데. 그런데 이대로 끝내기는 너무 아쉽지 않아?”

택규는 날 보며 말을 이었다.

“130억을 투자해 6700억을 벌었어. 이 돈을 다시 투자하면 더 큰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130억으로 50배를 벌 수 있었던 것은 자본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자본의 규모가 수천억으로 불어난 이상 한 번에 이런 수익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본이 수천억인 만큼 꾸준히 수익을 낼 수만 있다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난 두 배씩 늘어나는 것에 대한 얘기를 떠올렸다.

신문지를 20번만 접으면 100미터가 넘는다. 거기서 10번만 더 접으면, 100킬로미터가 넘는다.

카지노에서 1억을 걸고 딴 돈을 계속 베팅해 20판을 하면, 104조8576억을 벌 수 있다. 여기서 10판만 더하면, 1경이 넘는다.

현대는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 돈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고, 돈이면 사람 목숨도 살 수 있다.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에서는 말라리아와 영양실조 등으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단돈 1달러짜리 알약과 식량이면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이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단 한 번의 투자로 평생 써도 다 못 쓸 돈을 벌어들였다. 앞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 돈 펑펑 쓰며 살아도 충분하다.

하지만······.

이걸로 된 걸까?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끝내는 게 맞는 걸까?

난 술에 취한 날 밤에 보았던 예지를 떠올렸다.

CEO는 최고경영자.

최고경영자가 반드시 최대주주일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건 내가 택규와 손을 잡고 앞으로 OTK컴퍼니를 운영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 게 아닐까?

난 택규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손 잡아.”

“잡으면?”

“나랑 끝까지 가는 거야.”

택규는 내 얼굴과 손을 번갈아 보았다.

“안 잡으면?”

“나 혼자 끝까지 가는 거지.”

잠시 생각하던 택규는 이내 내 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같이 가보자.”

“크크!”

“푸하하!”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 * *

돈을 나누는 문제에 대해서는 간단한 해결책을 찾았다.

“투자원금은 일단 한국으로 옮기자. 그리고 법인명의를 개정하는 거야. 현재 100퍼센트 네 지분으로 되어있는 OTK컴퍼니 법인 지분을 반반씩 나누는 거지.”

이 경우 돈은 여전히 해외법인에 있으니 한국에 세금을 낼 필요는 없다. 법인 지분을 나눠주는 것 역시 증여지만, 델라아일랜드는 증여세 역시 면세다.

“어때?”

“······.”

어째서인지 대답이 없었다. 

택규는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입을 열었다.

“내가 전에 준 계약서 가지고 있지?”

“지갑에 넣어 놨어.”

“잠깐만 줘봐.”

난 별 생각 없이 계약서를 꺼내서 건네주었다. 택규는 계약서를 펼쳐보더니, 갑자기 양손으로 잡고 찢기 시작했다.

찌익찌익!

계약서는 순식간에 수십 개의 종잇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 황당해서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임마?”

택규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반반은 말이 안 돼.” 

“뭐?”

“8대2은 어때?”

난 할 말을 잃었다.

얘 표정을 보니 그냥 장난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다. 

절반이 아니라 20퍼센트만 먹고 떨어지라는 건가? 이제 와서 내 뒤통수를 치겠다고?

돈이면 사람도 죽이는 세상이다. 그러니 수천억이라는 돈 앞에서 마음이 바뀌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래도 얘가 이럴 캐릭터가 아닌데······.

어이없어 하는 나를 보며 택규는 계속 말했다.

“니가 8, 내가 2.”

“······.”

이건 또 뭔 소리야?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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