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12

광대와 공연 (6)

휘이이이이―

거대한 협곡 위.

그곳으로 기묘한 성채가 날아들어 왔다.

그 성채 안쪽에서는 끊이없이 도르레가 돌아가고 뭔가가 계속해서 철컥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와, 듣는 이로부터 하여금 기묘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철컥철컥철컥철컥….

그러나, 계속해서 허공에 떠서 앞으로 나아가던 성채는 어느 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쿠구구구구―

저 멀리, 새하얀 산맥들이 있는 곳에 희미한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지족 진룡맹 영역.

그 안쪽이었다.

우우우웅―

더군다나 결계 안쪽에서는, 기묘한 성채를 보고서 합체기 태수 셋이 나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요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네놈이 최근 사방에 악명이 자자한 괴군이구나!]

태호족의 요왕이 으르렁거리며 요기를 잔뜩 곤두세운 채 기묘성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본 진룡맹 영역에 무슨 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네놈이라도 진룡맹 영역에 들어오고자 한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거다! 썩 돌아가기를 강력하게 권고하는….]

그리고.

철컥, 철컥, 철컥!

기묘성채의 안쪽에서, 무수한 포신(砲身)들이 튀어나와 포구를 결계 방향으로 겨누었다.

위이이잉!

벌떼 울리는 소리와 함께, 기묘성채 안쪽에서 무수한 벌 괴뢰들이 튀어나와, 대포 안쪽으로 포탄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포탄은 사축기 급 장군 괴뢰였다.

펄럭, 펄럭!

기수 괴뢰들이 깃발을 펄럭여 신호를 보내자, 포수 괴뢰들은 대포를 격발시켰다.

콰앙, 콰앙, 콰앙!

합체기 요왕들의 설득은 듣지도 않은 채, 괴군의 기묘성채는 장군 괴뢰들을 결계를 향해 쏘아 내 버렸다.

쩌어어엉!

장군 괴뢰들은 결계까지 날아간 채, 그대로 머리부터 결계에 틀어박혀 결계에 균열을 내 버렸다.

하지만 합체기 요왕들은 피식피식 웃으며 결계에 힘을 불어넣을 뿐이었다.

[하, 아무리 괴군, 네놈의 악명이 높다 한들 본 진룡맹의 결계는, 개열기 시조님의 몸체에서 힘을 빌려오는 결계로….]

그와 동시에 장군 괴뢰들의 전신에서 광선이 사방으로 튀겨나가며 결계의 한쪽에 무수한 회로들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번쩍!

끼이이이익!

마치 전염이라도 되듯이 결계의 한쪽 귀퉁이에 회로가 퍼져 나갔고, 얼마 후 결계는 그대로 시원하게 열려 버렸다.

[….]

그 모습을 본 합체기 요왕들은 할 말을 잃고 잠시 허공에 떠 있다, 모두 황급히 본체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저 미치광이 인족을 막아 세워라!]

[아무리 제 놈이라도 비승한 지 100년은 간신히 됐을 애송이 주제에 합체기 요왕 셋이 지키는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러나, 기묘성채의 문이 열렸다.

끼이이이익!

철컹!

그와 함께, 기묘성채의 안쪽에서는 어마무시한 괴뢰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우웅!

수십억, 아니, 수백억은 될 정도의 괴뢰들이 미친 듯이 터져 나오며, 천지사방이 괴뢰들로 인해 새까맣게 물들었다.

그 중에는 사축기 급 괴뢰들 역시 어마무시하게 많았다.

요왕들은 사축기 장군 괴뢰들의 기세를 느끼며 긴장했으나 자신감을 잃지는 않았다.

[괘, 괜찮다. 아무리 사축기가 많아도 합체기 요왕 셋이 모였는데….]

그리고, 어느 순간 기묘성채에서는 합체기 괴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웅!

어마어마한 기세와 함께, 안쪽에서는 28기의 합체기 수준의 기세들이 나타났다.

그 기세에, 합체기 요왕 셋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자 산개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합체기 급 괴뢰들은 한 명에게 9기씩 붙어서 요왕들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최강의 괴뢰이자, 마지막 합체기 괴뢰.

[그녀]는 다시 기묘성채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기묘성채의 최심부, 기묘성채의 조종실로 들어가, 안쪽의 옥좌 밑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는 한 곱사등이 노인에게 걸어갔다.

곱사등이에게 걸어간 [그녀]는 꼽추 노인을 공주님처럼 안아 든 후, 자신이 옥좌에 앉았다.

[그녀]의 품에 다소곳이 안긴 채 손가락을 빨던 꼽추.

괴군 조연은 눈알을 이리저리 번들거리며 [그녀]를 조작해 옥좌 위에서 기묘성채를 지휘해, 앞으로 나아가게 조작했다.

“아아… 드디어, 내 생전에 서휼의 혼례식에 가 보게 되다니. 서휼 녀석, 그동안 몇 명의 여인과 혼인했음에도 여태껏 나를 초대하지 않았겠다!? 그럴 순 없지, 이건 분명 잘못된 일이었어. 내가 바로잡아 주마. 바로잡아 주겠어. 서휼도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야. 혼례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순간과 함께 새로운 존재로 진화시켜 주는 거야!”

서휼을 혼인의 순간 박제해서 영원히 길이 남을 작품으로 만들 생각에, 괴군은 그의 모든 재능을 총동원해서 합체기 태수들을 닥치는 대로 습격하고 잡아들여 괴뢰로 만들 어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이번에 만들어낸 27기의 합체기 급 괴뢰들.

서휼을 사랑의 순간에 박제할 생각에 흥분하여, 괴군의 광기는 최고조로 치달았고, 그의 악마적인 재능 역시 최고조에 도달했다.

이것이 그 결과물,

비록 급조해 낸 합체기 괴뢰들인지라, 유지력도, 그 강함도 진짜 합체기 태수들에 비하면 한참은 부실하다.

하지만 27기나 된다면 진형만 잘 짜도 합체기 태수 10명은 상대할 수 있다.

괴군은 희망에 찬 채, 서휼을 진화시켜 줄 생각에 감격과 흥분의 눈물을 찔끔 흘리며 기묘성채에 명령했다.

“전진해! 전진해라! 서휼에게로! 서휼에게로! 서휼의 혼례식에 늦으면 아니 되지 않으냐! 내 앞에 서휼을 데려와라! 서휼을! 서휼을! 서휼을 잡아서 진화시켜 줄 테다! 서휼을! 서휼을서휼을서휼을서휼을서휼을서은현도서휼을서휼을서휼을서휼을서휼을반드시잡아서아름다운순간에영원히머무르게진화시켜줄것이야…!!!”

눈이 회까닥 뒤집힌 채.

괴군과 기묘성채는 진룡맹 본부, 봉명주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느껴진다.

괴군의 기묘성채가 진룡맹 영역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명백한 합체기 태수 급의 이동 속도였다.

‘기묘성채가 합체기 급으로 진화했다.’

단순히 서휼을 개조시킨다는 일념이 아니다.

서휼의 혼인식에 참석해서, 서휼이 혼인하는 순간을 반드시 본인의 손으로 박제하겠다는 집념이 만들어 낸 결과물.

‘저 속도면 아마 두 시진 후에는 봉명주에 도착할 터.’

그리고 그 소식은 그 이전에 이미 이쪽으로 도착해 진룡맹의 모두에게 알려질 것이었다.

조금 있으면 계획이 실행에 들어갈 때였다.

그러나, 나는 왠지 기이한 기분에 사로잡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혜서를 만나고부터다.’

오혜서를 만난 이후부터, 무언가 기이한 기분이 정신을 지배하는 느낌이었다.

왜인지 기묘한 부조화가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부조화가 무엇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체 이건 또 무슨….’

나는 이를 악물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눌렀다.

‘설마 오혜서도 모르는 사이에 서휼이 그녀에게 함정이라도 심어 둔 건가?’

가장 합리적인 의심은, 일단 서휼이 오혜서를 통해, 그녀도 모르게 내게 함정을 발동시켰다는 것이었다.

나는 통증의 원인을 짚어 나가며 생각을 했다.

‘일단 영기의 흐름이 어딘가와 교신하고 있지는 않아. 서휼은 현재 내게 실시간으로 뭔가를 시도하는 건 아니야. 오히려 저주 같은 쪽인가? 오혜서를 자신 외에 누군가가 만나면 바로 걸리는 저주?’

하지만 초일류의 저주술사인 내가 보건대, 저주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저주는 아니야. 그렇다면 뭔가가 있다는 말인데….’

도대체 이 부조화는 뭘까.

나는 지끈거리는 뇌리를 억누르며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시간이 없다. 조금 있으면 괴군이 서휼을 찾아 봉명주 쪽에 들이닥칠 거야. 그렇다면….’

철컹!

나는 일단 부조화가 느껴지는 의식 부분을 잠시 오행혈주번을 사용해서 봉인해 버렸다.

거기에 음혼귀주문까지 잔뜩 끼워넣어 봉인을 변형시켰기 때문에, 설령 서휼이 오행혈주번을 통해 뭔가를 또 하려 한다 해도 소용 없을 터였다.

‘좋아, 이제 수작을 부린다 해도 소용없어.’

느껴지는 영력 흐름이 없는 걸로 보아서, 서휼이 나를 감시한다거나, 내가 돌아온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나는 이제 계획을 실행하면 될 뿐이다.

츠츠츳!

나는 마지막으로 김연에게 가 의해은산을 사용했다.

파아아앗!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의식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에 비해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으, 음….”

그 퀭했던 초반의 눈빛에 비해, 지금의 그녀의 눈빛은 상당히 맑아져 있었다.

이대로 두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적으로 다시 의식을 되찾으리라.

홍범에게 말해두었으니, 내가 죽어도 홍범이 그녀를 돌볼 터였다.

“그럼, 잘 있어.”

나는 아직도 조금은 멍한 눈을 한 김연의 뺨을 쓰다듬고 뒤를 돌았다.

“아, 아아….”

그때였다.

“…?”

츠츠츳….

김연에게서 뿜어져 나온 기묘성심전이, 그녀의 의식 실 한 가닥이 내게 달라붙었다.

어쩐지, 내가 곧 멀리 갈 것을 알고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

나를 잡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애처롭게 내게 붙어있는 김연의 의식 한 가닥을 본 나는, 구태여 그 의식을 떼어 내지 않고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우우우웅!

천지영기가 진동한다.

사방에서 합체기 태수들의 기운이 들끓는다.

[비상! 비상! 괴군이 쳐들어왔다!]

[괴군이 봉명주로 온다!]

[저 미치광이를 막아! 막으란 말이다!]

이제 괴군이 침입해 왔다는 사실이 전 지족에 널리 울려 퍼진 상황.

나는 전음부를 사용해 유화에게 전음을 날린 후, 월수궁무록을 사용한 채 봉명주로 날아갔다.

그리고, 저 하늘 위.

쿠구구구구!

그곳에서, 한 마리의 푸른 용이 재빠르게 봉명주로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서휼이, 괴군이 온다는 소식에 봉명주로 대피하는 것이었다.

서휼의 주변으로는 수많은 사축기 수준의 요족들이 그를 따라서 봉명주로 날아가고 있었다.

‘역시나, 수많은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대피하는군.’

봉명주는 유사시에는 최하층에서 하계로 내려갈 수도 있으니, 정말로 최고의 대피 장소이자 탈출로였다.

‘물론 하계로 도망치게 둘 생각은 없다.’

서휼은, 절대로 우리 앞에서 도망칠 수 없다.

나는 봉명주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규백을 데리고 봉명주를 향해 올라갔다.

* * *

봉명주 안쪽에는 서은현이 미리 깔아 놓은 수천 기의 초소형 서 장군들이 있었다.

서 장군들은 서휼이 어디에서 들어와 어디로 향하는지를 관찰했고, 실시간으로 서은현과 교신하며 서휼의 위치를 고했다.

서휼은 현재 봉명주 4층의 대피 공간 중 한 곳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대피 공간에 있던 이들 중 수많은 요족들은 서휼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서휼 님, 괴군 조연과 같은 하계에서 비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도대체 그 자가 얼마나 강하기에 서휼 님께서 도망 오신 겁니까?”

“그 자가 정말로 그 악명만큼이나 위험한 자입니까?”

“너무 걱정이 많으신 게 아니신지….”

그러나, 그들의 말에 서휼은 안심이 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괴군은 분명 위험한 자가 맞습니다. 절대로 경시하면 아니 되지요. 하나, 이곳은 지족 진룡맹 최고수들이 모여 있는 봉명주. 너무 긴장하실 것도 없으십니다. 합체기 요왕님들께서 전부 모이셔서 괴군을 처리할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고 그냥 모든 분들이 함께 모이는 몇 안 되는 기회라고 생각하지요.”

“이런 위기도 기회라 하시다니, 역시 서휼 님은 비범하신 생각을 가지고 계시군요.”

“별말씀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담소를 나누던 그들은, 문득 흠칫 놀라 한쪽을 바라보았다.

서휼 역시 갑자기 세로로 찢어진 동공을 어딘가를 향해 노려보며 눈을 흘겼다.

“이, 이건….”

“혈음계 마공의 기운이 아닌가!?”

요족들의 표정에 경악의 기운이 서렸다.

“봉명주에 혈음계 마족이 침입한 게 분명하오!”

“내 당장 본때를 보여 주겠소!”

요족들은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진한 혈음계의 탁기를 느끼며 이를 갈았다.

한 요족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일단, 우리 전부가 그곳으로 가는 건 위험하니 저희 중 몇몇만 꾸려서 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음, 그것도 좋지. 느껴지는 기운도 잘 쳐 줘야 천인기 정도이니….”

이곳에 모인 이들은 서휼을 필두로 대다수가 사축기 수사들.

아무리 혈음계 천마의 힘이라도 딱히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서휼이 싱긋 웃으면서 좌중을 향해 외쳤다.

“안 됩니다, 여러분.”

그 말에, 수많은 사축기 요족이 이해가 안 된다는 눈으로 서휼을 바라보았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서휼 님?”

그리고 서휼은 친절한 얼굴로 설명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무릇 맹수란 사냥감이 얼마나 크든 작든 사냥할 때 전력을 다해야 하는 법’입니다. 대다수의 요족들은 이 격언을 알고 계실 겁니다. 아무리 천인기 급 혈음계 마족이라고 해도 방심해서는 아니 되지요.”

서휼의 말에 수많은 사축기 요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혈음계 천마가 이곳에 왔다면, 혈음계와 이어지는 차원문을 봉명주 안에 열었다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천마가 혈음계의 존자를 부를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이야말로 상책입니다.”

“과연 그렇군요. 저희가 경솔했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너무 과민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일단 정말로 천인기 급 마족밖에 아니 되더라도, 산책 삼아 전부 같이 가 보도록 하지요.”

서휼은 빙긋 웃으며 무수한 요족들의 중심에서 그들을 이끌고 함께 탁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몸을 띄웠다.

그리고.

우뚝!

문득, 서휼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 서휼 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서휼이 그 자리에 멈춰서자, 요족들이 의아한 듯이 서휼에게 물었다.

그러자 서휼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 생각해 보니 제가 이 근처에서 지난번에 놓고 갔던 물품이 있어서 말이지요. 금방 챙겨서 합류할 테니, 여러분들은 먼저 가 주시기 바랍니다.”

“도와드릴 일은 없으십니까?”

“마음은 고마우나 괜찮습니다. 모두 먼저 가 주시지요.”

“예, 뭐. 알겠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요족들이 혈음계의 탁기가 느껴지는 곳.

서은현이 원유를 통해 마기를 흩뿌리는 장소로 전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서휼만이 남게 되었다.

서휼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후.

치이이이이―

서휼의 전신에서 시꺼먼 저주문들이 뿜어져 나오며, 서휼의 전신을 결박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서휼은 빙긋 웃으며 한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서 도우. 그간 강녕하신 걸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 * *

서휼이 내게 준 피를 먹어 연화시켜, 서휼의 해룡진혈을 받아들인 건 단순히 흑룡진혈로 덮어 버릴 생각만 하고 먹은 게 아니었다.

저주술사에게 피를 준다는 것은, 저주의 가장 근원적인 매개체를 준다는 것이니까.

서휼에게 서휼의 피를 받은 그날부터, 나는 언제든지 서휼에게 저주를 걸 수 있는 상태였었다.

그때 받은 서휼의 피를 매개체로, 나는 언제라도, 얼마든지 서휼에게 저주문들을 떠넘길 수가 있다.

그래, 본래대로라면 이때 저주문으로 서휼의 발을 잠시 묶은 후.

잠시 후 유화가 오면 유화의 도움을 받아 서휼의 곁에서 서휼을 돕는 몇몇 요족들을 다 떼어 낼 요량이었었다.

그런데, 왜일까.

“왜지?”

나는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끼며 서휼을 노려보았다.

“왜 너를 지켜 줄 요족들을 모조리 보내 버린 거냐.”

한 명도 그를 돕지 않게 하고 보내 버릴 줄은 몰랐다.

오히려 서휼이 저러니, 나는 그에게 어떤 꿍꿍이속이 있는지 몰라 불안해졌다.

서휼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렇게 빠르게 하계에서 다시 비승하는 데에 성공하시다니, 거기다가 하계는 영기가 한참 옅어서 경지를 회복하는 데에 오래 걸릴 텐데…. 이렇게 빠르게 경지를 다시 올렸다는 것은 역시, 당신은 높은 존재였다가 영락한 이라는 것이겠군요.”

“말하지 않겠다는 건가.”

유화가 막 백녕을 구출하고 있을 지금.

서휼은 순수하게 나의 기지와 능력 만으로만 상대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나는 딱히 걱정되지 않았다.

서휼이 제아무리 합체기 요왕에 준하는 실력자라 한들, 이미 서휼에게는 저주가 걸려 있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나는 저물도에서 홍범이 제작해 준 독을 꺼내들었다.

고통의 감각을 일정 시간 동안 6만 배 증폭시키는 독액.

그에 비해 살상력은 거의 없다시피 한, 오직 고통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약품.

나는, 망설임 없이 옥병을 열고 독액을 삼켜 버렸다.

그런 다음, 오행혈주번을 꺼내 들어 저주문을 듬뿍 먹여 흑색귀주번을 만든 후, 그대로 내 가슴에 꽂아 넣었다.

푸욱!

“…!!!”

고통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아니, 나간 게 틀림 없다.

뇌가 새하얗게 백열하는 느낌이다.

범인이라면 고통에 진즉 죽었겠지만, 수도자는 강인한 육신과 드넓은 의식을 지닌 만큼 고통에 쉬이 기절하지도, 죽지도 않는다.

그 말인즉슨, 나는 6만 배로 증폭된 고통의 감각을 온전히 느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나, 정신이 기화하고 의식이 분해될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나는 한 줄기 미소를 지었다.

치이이이이―

서휼에게 걸어놓은 저주문들이 빛나며, 서휼은 내가 느끼는 고통을 저주에 의해 증폭된 채로 맞고 있다!

“…!!!”

서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무리 합체기급 요왕이라 해도 이건 꽤 견디기 힘들 거다…!’

내 고통에 대한 내성은 이미 한참 강해진 상태다.

그런 나조차도 정신이 기화해 버릴 정도의 고통이다.

이 정도의 고통이라면, 합체기 최고봉 수사에게도 어느 정도는 통할 터!

찌이이이잉!

나는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흐릿한 시야로 서휼을 마주보았다.

‘서휼, 저놈….’

그리고,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서휼을 보며 굉장히 기괴한 느낌을 받았다.

서휼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부여잡은 상태에서도 웃고 있었다.

눈가와 동공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그의 심상 역시 고통에 흔들리고 있는 게 맞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얼굴은 여전히!

여전히 상냥하고 친절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은 상냥한 순간의 모습이 얼굴에 박제된 것만 같은 기괴함이었다.

나는 그 순간, 정말로 서휼이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 상냥한 미소는, 얼굴에 고정되어 있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저런 미소밖에 짓지 못하기라도 하는 건가?

나는 분명히 고통을 느끼면서도 상냥한 표정을 풀지 못하는 서휼을 보며, 기괴한 심정이 느꼈다.

‘서휼, 네놈은 도대체….’

뿌드드득….

나는 이를 악문 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움직임을 눈치챈 서휼 역시 머리를 부여잡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했을 뿐 고통에 절어 무언가를 하지는 못했다.

우우우웅!

그때, 서휼의 몸에서 빛나는 저주문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치치칫!

저주문에서 불꽃이 튕긴다.

나는 서휼이 저주를 밀어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우웅!

서휼의 몸에 박혀 있던 저주문이 불꽃을 튀기며 그의 몸 위쪽으로 떠오르려 하기 시작했다.

‘그렇겐 안 되지.’

위이이잉!

나는 고통 속에서, 음혼귀주문의 고통을 더더욱 저주에 불어넣으며, 서휼의 몸에서 떨어지려는 저주를 더더욱 서휼의 몸 깊숙이 박으려 했다.

치치치칫!

저주문에서 불꽃이 튀기며 팽팽한 구도가 이어졌다.

저주를 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다수의 저주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했다.

저주술사가 대상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있을 것.

술사가 대상을 잘 알고 있을 것.

술사의 저주문이 대상에게 닿았을 것.

술사에게 대상이 위해를 가한 적이 있을 것.

술사가 대상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을 것.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하지 않고 그냥 저주를 걸려 하면 그 저주는 위력이 한참 반감되고 떨쳐 내거나 해주하기도 쉬워진다.

하지만, 조건들을 충족한다면 저주는 훨씬 떨쳐 내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조건들을 대부분 충족한 상태였다.

저주가 발동하기 전이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내가 기습적으로 저주를 발동시킨 이상 이 대결의 판도는 분명 내가 유리했다.

쿠구구구구!

수천수만 개의 저주문들이 서휼에게 흘러 들어간다.

서휼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기운을 뿜어댔다.

치치치치칫!

분명 내가 유리한 판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체기에 준하는 서휼의 저력은 어마무시했다.

내가 서휼의 심장을 쥐고 있는 것과도 다를 것 없는 상황이었으나, 서휼은 조금씩.

분명 조금씩 내 저주를 밀어내고 있었다.

‘경지 차이는 어쩔 수가 없는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천, 지, 심족의 힘을 모두 익혀 증폭률이 어마어마하게 강했지만, 경지 자체는 고작 원영기에 불과했으니.

이대로라면 분명 저주는 풀린다.

그러니까….

대락 1시진쯤 지나면?

씨익.

고통에 벌벌 떨면서도, 나는 웃었다.

분명 서휼의 저력은 대단했지만, 1시진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 많았다.

‘이 고통도 슬슬 익숙해지고 있으니, 조금만 더 익숙해진 후, 남은 1시진 동안 서휼을 몰아넣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서휼은 무언가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저건…!’

진득한 탁기가 서휼의 주변에서 흘러나온다.

끔찍한 귀곡성과 비명이, 서휼이 수결을 맺을 때마다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법술도, 요술도 아니다.

저것은 차라리 마술(魔術).

분명한 혈음계의 술법 중 하나다.

나는 서휼이 사용하는 혈음계의 술법, 그 마력의 흐름을 눈여겨보았다.

‘느껴진다.’

내가 쓰는 기괴고의 술법과 비슷하다.

누군가에게 미리 몰래 술법을 기생시킨 후, 천천히 잠복시켜 필요할 때 격발시키는 마술.

거기에, 원립이 사용했던 혈제(血祭)의 술법 역시 섞여 있다.

나는 빠르게 서휼이 사용하는 술법의 정체를 간파해 냈다.

‘미리 타 상대에게 잠복시켰던 기생 법술을 격발시켜 대상을 죽인 후, 그 대상을 혈제로 쓰는 술법!’

치이이이―

서휼이 마지막 결인을 맺으며 입을 열었다.

“탁혼식명(濁魂食命)의 주(呪).”

치이이이이―

저 멀리서 갑작스레 피비린내가 풍겼다.

원유가 있는 곳으로 향했던 사축기 요족들이 향한 방향이었다.

‘자기를 따르는 이들에게 전부 저 법술을 걸어 놓았던 건가?’

언제든지 죽여서 혈제를 바쳐 자신의 여벌 목숨이 될 수 있게 조치해 놓았던 것이리라.

쿠구구구구!

약 이십여 명의 사축기 수사를 모조리 혈제로 바친 탓일까.

저 멀리서 느껴지는 혈제의 기운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저게 지금 서휼에게 보급된다면….’

단박에 내 저주를 떨쳐버릴지도 모른다.

뿌드득….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나는 고통에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저물도에 손을 넣었다.

원래는 조금 더 고통에 익숙해지고 난 후에 하려던 것이었지만, 이왕 이리된 것, 지금 일을 마친다.

촤라락!

나는 저물도 안쪽에 있던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괴뢰였다.

괴군과의 연락용으로 써 왔던 괴뢰!

괴뢰는 저물도에서 나오자마자 눈알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주변 상황을 확인하더니, 서휼을 보고 눈알을 고정시켰다.

“괴, 군… 선배님. 들리십니까?”

씨익….

나는 히죽 웃으며 괴뢰 너머에 있을 괴군에게 외쳤다.

“서휼이 있는 곳의 좌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 * *

위이이이잉!

지족 진룡맹.

봉명주 인근에서 12명의 합체기 요왕과 전투를 벌이던 기묘성채.

기묘성채의 주변에서 날갯짓을 하던 벌 괴뢰들이,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기묘성채의 곳곳에 내려앉았다.

위이이잉!

벌떼 우는 소리와 함께, 기묘성채에 내려앉은 벌 괴뢰들이 파닥거리며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와 동시에, 기묘성채가 어느 한 방향으로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합체기 요왕들과의 전장에서 도망치려는 것 같았기에 합체기 요왕들의 얼굴에 희색이 맴돌았다.

“괴, 괴군이 후퇴하려는 건가?”

그러나 다음 순간,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던 괴군의 기묘성채에 붙어 있는, 수백억 기의 벌 괴뢰들이, 공간을 찢었다.

합체기 요왕들은 깨달았다.

“저건, 공간 전송?”

“너무 먼 곳으로 가는 건 불가능할 텐데, 어디로 가는….”

“자, 잠깐…! 저 공간 전송 방향….”

“안 돼!”

“막아라!”

요왕들은 사색이 된 채 기묘성채를 향해 달려들었다.

“괴군이 봉명주로 공간 도약을 하려 한다…!!!”

서은현의 신호를 받은 괴군이, 봉명주 4층으로 공간 도약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