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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16

공연이 끝나고 (3)

서휼은 뇌성을 울리는 나를 보며 웃었다.

우르르르릉―

“후후, 아무리 심도공법이 대단해도 안 맞으면 그마….”

꽈르르릉!

뇌성이 울리며, 나는 다음 순간 서휼의 머리통을 무릎으로 찍고 있었다.

녀석의 머리는 그대로 예기에 잘려 나갔다.

“우선 한 개.”

“하….”

쿠구구구구!

서휼이 본체로 변한다.

거대한 해룡의 거체가 어둠의 공간을 채웠다.

[요술, 대해천리주(大海千里珠).]

촤르르륵!

반경 오백 리.

직경 천 리는 될 정도로 거대한 물방울이 어둠의 공간 속으로 생겨났다.

순식간에 나와 서휼은 둥그런 바다 속에 갇힌 형국이 되었고, 서휼은 바다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나를 압박했다.

[요술, 삼억근수밀도(三億斤水蜜桃).]

우우웅!

우드드드득!

갑작스레, 물의 수압이 어마어마하게 무거워졌다.

그리고 물방울들은 내 얼마 남지 않은 육신으로 흘러 들어오며 내 육신을 물복숭아처럼 물컹물컹하게 불려 버리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내 전신을 감싼 무색의 번개는 황금빛으로 변화하였다.

첫 번째 번개.

보이지 않고 감지도 되지 않으며 모든 방어막을 관통해서 원영을 타격하는 천겁.

그리고 두 번째 번개.

번쩍!

내 몸이 대해천리주의 요술을 넘어 그대로 공간을 뛰어넘었다.

이것은 말 그대로 능광.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내리꽂혀 공간째로 갈려지는 천겁.

내 공격은 서휼의 목덜미에 적중하였다.

물론 썩어도 사축기 최정상인지, 서휼의 몸 자체는 멀쩡하였다.

하지만.

“이제 두 개.”

심족들이 혐오당하는 이유는, 후에 경지를 올릴 때 내리치는 천겁 때문이다.

서휼이 합체기로 올라가려 할 때쯤이면, 상당히 재밌는 꼴이 되리라.

세 번째 천겁.

‘할 수 있을까.’

내가 능광도를 재현 가능한 이유는, 김영훈의 무공이 나와 함께 발전했기 때문이며, 동시에 능광도와 무형검의 뿌리가 되는 단악검과 단맥도의 근간이 같기 때문이다.

규백에게 호언장담하기는 했지만, 나는 과연 다른 이들의 마음도 재현할 수 있을까.

나는 깊숙히 참오하며 더더욱 의식을 집중했다.

* * *

우우웅!

서휼의 장막 바깥.

그곳에 있던 김연의 형상이 더더욱 밝게 타올랐다.

그녀와 연결되어 있는 서은현이 밝게 빛나자 더더욱 빛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동안 미동도 없던 그녀의 형상이 손을 움직였다.

“으음…?”

괴군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제자의 의식체… 원영은 아니지만 뭔가 더더욱 진화한 것…. 저것이 기묘성심전이 향해야 할 방향인가?”

우우웅!

김연의 형상의 손이 기묘성채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녀가 하려는 것을 알아챈 괴군이 헛웃음을 흘렸다.

“연의 연을 발동시키겠다고…? 혼자서? 아니, 아니군. 안에 들어간 서은현과 뭔가를 합작하려는 거야. 그래, 어디 한번 해 보거라.”

괴군은 기대감이 서린 눈으로 김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김연이 손을 움직였다.

그녀의 손아귀 안에, 무수한 의식의 실이 잡혔고, 그 실이 기묘성채로 들어가 기묘성채의 최후단계를 발동시켰다.

쿠구구구구!

우우웅!

연의 연의 황금빛 광휘가 발동한다.

그리고, 서휼의 장막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괴군은 잠자코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리 바깥에서 연의 연을 발동시키려 해도, 안쪽에서 시공간의 좌표를 만들어서 그 좌표를 향해 힘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다. 너는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 * *

‘더욱더, 더욱더 깊숙히 파고든다!’

내가 의식을 집중하며 타인의 마음을 펼쳐내려 할 때였다.

우우웅!

나와 연결되어 있는 김연의 의식 실이 빛났다.

그와 동시에, 황금빛 광휘가 나를 둘러쌌다.

‘이건….’

광휘에 닿자마자 느껴졌다.

이건 연의 연이다.

김연이, 바깥에서 연의 연을 발동해 그 힘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 어찌해야 하는가.

어찌해야….

‘…잠깐.’

뇌리를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가….’

나는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실행하였다.

우우우웅!

기묘성채를 연구하며 연의 연의 작동 원리는 이해했다.

그리고 두 번이나 그걸 보면서 괴군이 어떻게 시공간을 끌어오는지도 이해했다.

바라 왔던 그때의 그 순간을 우선 꼭두각시극으로 재현해서 시공간의 좌표를 잡는다.

그리고 자신의 인력을 이용해 시공간을 일그러뜨리며 끌어올 시공간과 현재 사이의 길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좌표를 잡는 것.

그리고 괴군의 꼭두각시극과, 내 만상인연도는 재료의 차이일 뿐.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부우우웅!

나는 연의 연의 힘을 만상인연도에 불어넣었다.

만상인연도에 담긴 힘이 무색유리검으로 몰려들었다.

운명은 인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운명에 버금가는 역사도 비슷한 인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파아아앗!

만상인연도에 쌓인 나의 역사가 빛을 발하며 시공간을 일그러뜨린다.

나는 검무를 추었다.

그리고 검무를 추는 내 바로 옆에, 한 사내의 그림자가 나타나 나와 함께 춤을 추었다.

나는 그 춤을, 그 마음을 무형검에 투명하게 담아 내 펼쳐냈다.

꽈르르릉!

다시금.

황금빛의 빛살이 서휼에게 직격했다.

나는 만상인연도로 구현된 사내의 옆모습을 보며 미소지었다.

“오랜만입니다.”

이번에 구현해 낸 능광도는 방금 전 억지로 구현해 낸 능광도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사내는 내게 미소를 남기고 만상인연도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그렇군….’

나도 몰랐지만, 나의 만상인연도는 연의 연을 펼쳐 내기에 최적의 공법이었던 것이었다.

자신감이 든다.

지금 이 순간.

만상인연도와 연의 연.

그리고 나의 답천과 뇌전화의 저주가 모두 합쳐진 지금.

나는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츠츠츳!

만상인연도에서 녹색의 소인이 튀어나왔다.

녹색의 소인은 박도를 든 채로 연의 연에 의해 구현되었다.

사보멸천도.

함선멸천(陷仙滅天).

사보멸천도의 마지막 멸천도.

녹색의 소인이 함천(陷天)존자라는 존호를 받게 된 일격.

하늘마저 함몰시켜 버리는 최강의 일격.

준 쇄성기에 달한 기묘성채를 두 쪽 내 버렸던 말도 안 되는 힘의 결정이, 내 무형검에서 펼쳐졌다.

꽈르르르릉!

녹빛의 번개가 서휼의 옆구리를 때렸다.

세 번째 번개.

모든 것을 공간째로 뜯어 내 파괴해 버리는 천겁.

서휼의 옆구리는 그대로 비늘이 벗겨져 근육과 혈관이 드러났다.

그러나 서휼은 대해천리주의 술법 안으로 들어가 수 속성 영기를 빨아들이며 차분히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요술, 멸릉우천(滅陵雨天).]

쏴아아아아!

대해천리주의 물이 날카로운 빗물이 되어 천지사방으로 비산한다.

빗줄기 하나하나는 능히 구릉을 파괴할 수 있는 정신 나간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꾸구구국!

거기에 서휼이 인력을 내게 집중시키자, 빗줄기는 모조리 내게 내리꽂히는 것이 보였다.

거기에 백녕이 법기 속에서 인력에 힘을 더해 준다.

그러나, 내 만상인연도 속에는 백녕의 모습 역시 있었다.

백녕이 구현되고, 나는 백녕의 절기 역시 받아 내어 펼쳤다.

척산편!

무형검이 채찍처럼 늘어나며 사방으로 뻗쳐 나가 [무게]를 왜곡한다.

결국 나를 덮친 빗줄기는, 영기는 담겨 있으나 먼지 한 톨만큼도 무게가 없는 그런 물줄기가 되어 버렸다.

우르르릉!

나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물줄기로 형성된 구름을 뚫고 나가 서휼의 등에 공격을 박아 넣었다.

백녕의 미숙한 입천 역시 내 무형검 속에서 천겁이 되어 서휼을 때렸다.

네 번째 번개.

맞으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무거워지는 천겁.

쿠르르릉!

나는 서휼의 등에서부터 무형검을 휘두르며, 놈의 앞발을 향해 달려들어, 앞발에 매여져 있는 작은 목걸이의 끈을 잘라 내고, 목걸이를 걷어찼다.

파앙!

백녕의 혼이 담긴 수정 조각은 유화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고, 나는 마지막 공격을 준비했다.

쿠르르릉!

다시금 전신에 황금빛이 맴돌았다.

그리고, 만상인연도 속에서 규백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니, 단순히 규백이 아니었다.

규련의 첫 모습부터 시작해서, 서휼과 사랑에 빠지고, 배신당하고, 규백으로 변하고, 다시 이 자리에 도달하기까지.

모든 그녀의 모습이 만상인연도 속에서 나타나 구현된다.

황금빛은 사슬이 되었다.

나는 사슬을 무색유리검에 감고서 서휼을 쳐다보았다.

[요술, 환무만영(幻霧萬影).]

서휼도 이것만은 맞으면 큰일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맞지 않기 위해 환무를 일으키고 숨어 버렸다.

하지만 소용없다.

천, 지, 심족의 시야를 합친 눈을 가진 것이 나다.

보인다.

나는 황금빛 사슬을.

규련의, 규백에게 받은 마음을 가슴에 품고, 다시 무형검에 불어넣었다.

“간다.”

내 등 뒤로, 규련과 규백이.

그리고 이번 생에 만났던 모든 인연들이.

이전 생부터 쌓아 왔던 무수한 과거의, 역사의 기록들이 나를 떠밀어 주었다.

‘아아….’

나는 순간.

만상인연도에 기록된 모든 장면들 하나하나가.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듯한 환영을 보았다.

츳, 츠츠츠츳!

‘흑룡진혈이….’

어째서, 선수혈합에는 천 살 이하의 어린 요족들만 참여하게 하는 걸까.

어째서 그 이상에게는 선수의 힘을 주입하여 종족의 전력을 강화하려 하지 않는 걸까.

나는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진혈이, 몸 바깥으로 배출된다…!’

선수는 역사를 관장하는 존재들.

자신의 원래 수명의 9배 이상을 살아내며, 장대한 역사를 쌓아 낸 모든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선수의 씨앗이다.

나는, 이미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살며 그 자체로 선수가 될 자질을 개화했던 것이었다.

거추장스러운 흑룡의 힘은 필요 없다.

흑룡의 진혈은 자칫하면 내가 내 자신이 선수로 개화할 수 없게 가능성을 틀어막을 재액이 될 뻔했다.

그러나 이 순간 깨달았다!

쉬이이이이―

내 몸에서 용의 형상은 사라지고, 만상인연도의 희뿌연 안개가 나를 감싸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기 시작했다.

아직은 이 정도지만, 계속해서 역사를 쌓아 나간다면….

나는 정말로 새로운 선수로 등극할 수도 있으리라.

파아아앗!

* * *

흑룡의 형상도, 뇌전의 힘도.

일순간 서은현의 몸에서 밀려났고, 서은현은 백의를 입고, 새하얀 안개를 두른.

그냥 서은현의 모습으로 황금빛 사슬을 잡고서 서휼에게 쏘아져 나갔다.

서은현이 서휼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최후의 번개.

서휼이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내리는 천겁.

규백에게 받은 서교정표가 구현된 천겁이, 일순간 새하얀 안개의 힘을 받아 더더욱 빨라진 서은현에 의해 뇌속을 잠시 뛰어넘었다.

서은현의 검은, 규백의 마음은.

그대로 서휼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파치지지직….

서휼은 피를 토했고, 어둠의 공간을 자신의 몸 안으로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네 개의 축이 서휼의 체내로 돌아갔다.

서휼은 서은현을 쳐다보고는, 기묘성채 바깥에서 그를 쳐다보는 괴군을 쳐다보았다.

스르르륵―

일을 마친 김연의 형상이 점차 사라져 갔고, 그에 괴군 역시 다시 광증이 도지기 시작했다.

“서, 서휼? 서휼… 서휼. 오… 서휼!!!”

서휼은 인간형으로 변해 잠시 미소를 짓다가 푸른빛이 되어 어딘가로 사라졌다.

괴군은 침을 질질 흘리며 기묘성채를 이끌고 서휼의 발자취를 따라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리고, 서은현은 그대로 쓰러졌다.

파치지지직….

서은현의 옆에서는 유화가 백녕의 혼이 담긴 법기를 깨뜨려, 백녕을 성불시키며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만족하셨습니까?”

“만족했소.”

“다행이군요….”

“한 가지….”

서은현의 전신은 희뿌연 안개와 뇌전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안개는 뇌전을 몰아내려 했으나, 뇌전에게 서은현의 육신이 잡아먹히는 속도가 더 빨랐다.

서은현은 번개가 되어 흩어지며 유화에게 말했다.

“함천존자께서… 규백에게 불어넣은 것이 있소. 규백이 나에게 마음을 전달하며 지금 내 안에 왔지…. 당신에게도 전달해야 할 것 같아, 전달하겠소….”

이것은, 함천존자가 규백에게, 규련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

동시에 마음이라는 것에 대한 존자의 깨달음의 일부.

―어떤 수사는 마음을 폐 속에 담긴 공기의 양이 마음이라고 하며, 폐가 금에 대응되니 마음을 금속성이라 한다. 하지만 너희 수사들의 논리대로라면… 오행의 금(金)은 팔괘의 건(乾)에 대응되니….

“‘마음은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겠는가. 하늘과 맞닿아 살아가는 것이 너의 마음이며 하늘을 부정할 수 없듯이 마음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마음을 부정당했어도, 네 마음이 절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장익이 규련과 규백에게 전했던 말.

그리고 그녀를 통해 그들에게 불어넣었던 말이자 깨달음이었다.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늘이 운명이고 땅이 생명이라면, 명과 명 사이에서 와, 명과 함께하는 것이 마음이 아닐는지.

공연은 끝났으나, 마음만은 끝나지 않고 남아 이어진다.

서은현은 장익의 깨달음을 유화에게 전해 준 후, 마지막으로 번갯불 조각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것이, 서은현의 열여섯 번째 회귀(回歸)였다.

17회차의 첫날

홍범과 5백 년을 떠돌아다니며 힘을 기르기 위해,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행을 쌓았다.

하지만 결국 저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홍범의 눈앞에서 녀석에게 유언을 말한 후 죽었다.

그것이, 나의 열일곱 번째 회귀(回歸)였다.

* * *

17번째 삶.

나는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서휼의 모습.

그리고 비승대의 인물들이었다.

“…?????”

‘뭐지?’

나는 너무나도 위화감이 드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했다.

분명 이것은 ‘17번째 회귀’였다.

하지만 ‘15번째 회귀’에서 바로 17회차로 넘어온 것만 같은 기시감이 전신을 엄습했다.

아직도 눈앞에서 규백의 마음을 받아 서휼에게 찔러 넣고, 유화에게 장익의 말을 전한 후 죽었던 그 기억이 생생하다.

바로 방금 전의 일이었던 것만 같다.

아니, 정확히는 ‘16번째 회차’가 그냥 통으로 날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가 잘못되었어.’

16회차가 있었다는 기억은 있었다.

그런데 16회차가 기억나지 않는다.

15회차에서 그냥 17회차로 건너뛰기를 한 것만 같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는 당혹스러움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찌이잉!

구주(九疇).

내 뇌리에, ‘구주’라는 단어가 틀어박혔다.

‘구주?’

뭐지? 이 단어는?

잃어버린 16회차의 기억과 관련이 있는 건가?

‘구주, 구주….’

나는 혼란스러움에 ‘구주’라는 말을 속으로 뇌까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구주…!’

나는 ‘구주’가 뭘 뜻하는 건지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구주는 [이름]이다!’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되뇌면서 순간 흠칫했다.

천뢰번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가 낭패당했던 15회차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그러나 어슴푸레한 기억이 뭔가 더 떠올랐다.

‘아니, 아니야….’

[구주]는 천뢰번의 주인이나 천뢰번처럼 무시무시한 무언가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굉장히 친근한 누군가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되어 있다.

내가 ‘구주’라는 단어를 입에 담아도 어쩐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을 것이리란 근거 없는 믿음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구주가 누구인 거지?’

혹여나 내 16회차를 통으로 뇌리에서 지워 버린 누군가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진선, 혹은 최소 쇄성기 이상의 존재가 내게 개입한 건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보게?”

그때, 나는 나를 친숙하게 부르는 서휼의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상태가 괜찮은 건가? 갑자기 눈에 공황이 오더니 너무 혼란스러워 보여서 말이네.”

“아….”

나는 일단 ‘구주’와 잃어버린 16회차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서휼을 바라보았다.

16회차를 잃어버린 탓인지.

나는 15회차에서 느꼈던 감정이 지금도 여실하게 서휼에게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서휼을 잠시 바라보다, 서휼의 뒤쪽에서 요족들을 진룡맹으로 데려가려 하는 규련을 쳐다보았다.

규련은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는 서휼과, 서휼이 영입하려는 나를 보며 불만족스러운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내가 알던 15회차의 규련은 사라졌고, 그때의 인연 중 하나인 규백 또한 영원히 더는 만날 수 없다.

나는 그러한 심정을 느끼며 우선 규련에게 요족어를 통해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작게 예를 취했다.

“지족의 관주사자께 인족 서은현이 인사 올립니다.”

[흥, 말 걸지 마라, 인족 놈.]

“….”

나는 귀찮다는 얼굴을 한 규련에게서 시선을 돌린 후, 흑색귀골곡을 이끌고 있는 허곽,

그리고 금신천뢰문을 이끌고 있는 금벽호를 바라보았다.

금신천뢰문과 흑색귀골곡.

이 두 문파만이 이제 내가 가지 않은 세력이었다.

우우웅!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의식 영역을 풀어헤쳤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의식이 장내를 메웠다.

그리고 내 의식 크기에, 서휼을 비롯한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영 후기 수준 의식 크기!

‘16회차 당시, 원영 중기, 양신을 형성하는 경지까지는 갔던 것 같다.’

내 의식은 오기조원 당시부터 동급 수도자보다 더 컸었고, 기묘성심전을 익힌 이후부터는 동 경지의 수도자보다는 무조건 컸다.

16회차 때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원영 중기에 이르렀으니 그보다 한 한계는 위인 원영 후기 수사의 의식과 크기가 비슷한 것이었다.

“우리 창천개벽문에 들어와라! 의식 크기를 보니 연체공법을 훌륭히 소화할 인재로구나!”

“하하, 훌륭하군. 자네… 혹 지족에 들어오는 게 어떤가?”

“흠~ 음흠. 음흠흠흠흠~ 흠흠~”

창호자와 서휼이 서로 내게 손을 뻗었고, 내 의식 크기를 지켜보던 괴군이 갑자기 몸을 들썩거리며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괴군은 여차하면 납치라도 하고 싶은 모양.

그리고 금벽호와 허곽 역시 눈이 뒤집힌 채로 내게 달려들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너는 꼭 우리 흑색귀골곡에 와라! 흑색귀골곡이야말로 네가 재능을 펼치기에 최적의 장소야! 혼에 죽음이 가득 쌓여 있는 것도 그렇고, 네 의식 크기라면 지금 상태로도 귀도공법의 기초만 배우면 귀왕을 수십 마리씩이나 부릴 수 있단 말이야!!!”

“우, 우리 금신천뢰문도….”

“닥쳐라, 금벽호! 이 녀석은 정말로 우리 흑색귀골곡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란 말이다! 귀도공법을 익히기에 최적의 재능을 두루두루 갖춘 놈인데 너희 뇌도공법이 무슨 끼어들 틈이 있다고….”

바로 그때였다.

찌이잉!

“…!?”

금벽호가 가지고 있을 천뢰번.

그 천뢰번이 내게 근접하자, 나는 전신에서 갑자기 열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파직, 파지지지직!

“…!?”

나는 내 몸 곳곳에서 튀기는 뇌전을 보며 기함했다.

‘이런, 제길…!’

16회차 때의 기억이 또다시 어슴푸레하게 떠올랐다.

15회차.

진선 천뢰번의 주인을 직시하고 얻은 뇌전화의 저주.

그것은, 회귀를 넘어서까지 따라왔었다.

나는 뇌전화의 저주를 벗기 위해, 16회차 당시 5백 년 동안 홍범과 함께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고군분투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뇌전화의 저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가, 죽기 직전에는 뇌전화되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느려졌었다.

그리고, 다시 17회차인 지금.

‘빌어먹을….’

나는 내 몸에서 튀겨지는 이 뇌전들이, 내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내 체내의 피.

그 핏방울들이, 느릿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뇌전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난 회차보다는 ‘확실히’ 느리게 저주가 진행된다.

그러나 분명히 내 신체는 ‘확실하게’ 뇌전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나는 15, 16회차 때에 두 번이나 죽었음에도 여전히 진선의 저주에 의해 시한부인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난 생에서는 그래도 5백 년을 살다가 뇌전으로 변해서 몸이 흩어졌었으니, 이번 생에서는 시간 자체는 꽤 널널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번 생에서도 뇌전화의 저주를 벗기 위해 힘을 쓰긴 해야겠군….’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금벽호의 눈이 돌아갔다.

“이, 이, 이것은…! 뇌성체(雷聖體)…!!! 저리 썩 꺼져라, 허곽! 이 녀석의 체질은 우리 금신천뢰문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뇌성체와 매우 흡사하다! 분명 하계에서 검사할 때는 아무 반응도 없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 녀석은 우리 금신천뢰문에서 데려가야 한단 말이다!”

“미친 소리 하지 마라! 귀도공법의 천품을 타고난 녀석을 왜 금신천뢰문에 줘야 하는 거냐!?”

“귀도공법의 천품? 이 녀석은 뇌성체를 타고난 뇌도공법의 천재임에 틀림없는데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잡소리를 하는 거야!?”

허곽은 흥분한 표정으로, 금벽호를 무시하며 나를 보며 소리쳤다.

“뇌도공법은 50만 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 흑색귀골곡에도 충분히 많다! 금신천뢰문의 태극진뢰신에 비견되는 육극음뢰신부터 시작해서, 원뢰진마공, 대혈뢰벽력전 등, 네가 뇌도공법의 자질을 타고났어도 흑색귀골곡에서도 재능을 꽃피울 수 있다! 하지만 역사가 짧은 금신천뢰문에는 귀도공법이 없기 때문에, 금신천뢰문으로 간다면 네 또 다른 자질들은 절대 개화할 수 없어!”

“흥! 귀도공법 같은 거야 다른 종문에 있는 걸 뺏어오면 그만이 아니냐? 본문에 와서도 충분히 익힐 수 있다! 그리고 허곽이 말하는 흑색귀골곡의 뇌도공법은 파사현정의 힘을 지닌 우리 금신천뢰문의 뇌도공법에 대항하기 위해서 개발한 것일 뿐이다! 저놈이 예를 든 태극진뢰신에 비견한다는 육극음뢰신의 경우, 실제로 두 공법을 익힌 이들이 붙으면 육극음뢰신이 두들겨 맞다가 목숨만 부지해서 달아나는 경우가 부지기수! 금신천뢰문에 들어오면 흑색귀골곡의 마공들을 상성에서부터 이겨 먹을 수 있다! 실제로 흑색귀골곡 제자와 금신천뢰문 제자가 대련했을 때 승률은 금신천뢰문이 7, 흑색귀골곡이 3 정도다!”

“헛소리! 이놈이 말하는 예시는 ‘친선 대련’일 뿐이다. 실전에 임하면 대등한 걸 넘어서, 본 곡의 마공이 유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허곽과 금벽호는 나를 두고 눈이 뒤집혀서 침을 튀겨 가며 설전을 벌였다.

그 과열된 분위기에, 서휼이 앞으로 나서 둘을 중재하기 시작했다.

“두 분 중 한 분이 양보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시기에 이렇게 얼굴을 붉히시면 안 되지요.”

“흠, 그것도 그렇지만….”

“정 그러시다면 두 분이 후학에게 왜 꼭 자신들의 문파로 와야 하는지를 차근히 설명해 주시지요.”

서휼은 몇 마디 말로 두 사람을 조금 더 타일러 준 후.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서휼의 중재에 의해 일단 금벽호가 앞으로 나서 말했다.

“본문의 뇌도공법을 어떻게 익히는지는 영근을 가진 수도자라면 다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본문의 의기는 뇌도공법의 수행 방법에 따라, 흑색귀골곡보다도 더욱더 끈끈하다. 거기에 뇌성벽력의 힘을 익힌다면 차후 천겁을 극복할 때에 확실한 도움이 되지. 수도자에게 있어 천겁을 극복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또 어디 있겠느냐.”

금벽호의 다음으로, 허곽이 나왔다.

“다 필요 없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뇌성체를 타고났고, 귀도공법에 최고의 재능을 지닌 너는 육극음뢰신의 공법을 익히기에 최고의 인재다. 금벽호는 태극진뢰신에 진다고 말했지만, 그건 본문 역사상 육극음뢰신을 대성한 이들이 한 명도 없기 때문이야. 만약 육극음뢰신을 대성할 수만 있다면 상성 차이고 뭐고 금신천뢰문의 뇌도공법에 절대로 지지 않는다! 50만 년의 역사를 지닌 본문에는 없는 공법이 없다는 걸 알아두어라!”

금신천뢰문이냐, 흑색귀골곡이냐.

나는 두 문파 중 어느 문파를 고를지를 고민했다.

솔직히 어떤 공법이 있는지는 별로 큰 관심은 없었다.

어차피 지금 내 수준에서는 경지 회복만 하면 사축기 수사와도 일전을 벌일 수 있기에 공법 욕심은 없다.

나는 그보다는 앞으로 있을 두 문파의 사건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금신천뢰문은 천뢰번에 이끌려 천뢰번의 주인이 강림하고, 흑색귀골곡은 강민희가 귀도성모가 되어 거의 망한다.’

금신천뢰문과 흑색귀골곡에 있을 두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금신천뢰문에는 전명훈, 흑색귀골곡에는 강민희….’

전명훈은 솔직히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악감정은 다 풍화되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마음도 딱히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강민희를 떠올렸다.

“으음….”

강민희를 떠올리자 드는 첫 번째 생각은.

‘껄끄럽다’였다.

말 그대로, 강민희에게 있던 감정은 ‘껄끄러움’이었다.

전명훈과 단둘이 있으면 전명훈은 나를 괴롭히려 들 터였다.

하지만 그건 참을 수 있다. 귀여운 수준일 테니까.

하지만 강민희와 흑색귀골곡에서 둘이 있게 된다면….

“…으으음….”

‘미칠 듯이’ 껄끄러울 것만 같았다.

‘나야 시간이 지났으니 상관없지만… 강민희는 어색해서 어지간하면 나와 안 만날 거 같은데.’

나는 2천5백 년도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강민희는 고작 1년 반 전의 일일 테니까.

그런데 문제는 강민희가 왜 귀도성모로 각성하는지를 알아내려면 강민희와 접촉해야 한다.

‘제길….’

나는 강민희와 내 관계를 생각하자 조금 머리가 아파 오는 게 느껴졌다.

강민희는 무조건 나와 대화를 안 할 것이다.

그나마 등선향에서는 회사 사람들과 함께 있느라 나한테 말하는 척이라도 했겠지만, 단둘이 있게 되면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할 게 뻔했다.

‘곤란하군….’

결정했다.

나는 금벽호를 바라보며 인사를 올렸다.

“예로부터 금신천뢰문의 위명은 많이 들어 왔습니다.”

“흐하하! 좋은 선택이다!”

금벽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허곽은 그 창백한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뒤로 물러났다.

“제길… 제길….”

그때, 허곽에게 서휼이 다가가 그의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허곽은 서휼의 말을 전해 듣더니 침음성을 흘렸다.

“흐으으음….”

그는 뭔가를 굉장히 고심하는 듯하더니, 이를 악물고 저물도에서 뭔가를 꺼냈다.

“…?”

그것은 두개골이었다.

그것도 깨알 같은 공법 구결들이 기록된 두개골.

마치 요수공법처럼 신체 일부에 공법을 기록한 공법서 같았다.

치지직!

허곽이 두개골을 움켜잡자 두개골 위쪽으로 기이한 원혼들이 흘러 들어가더니 두개골에 음각된 문자들을 가렸다.

그는 내게 두개골을 내밀며 말했다.

“받거라, 육극음뢰신이 수록된 공법서다.”

“…!?”

“금신천뢰문에 가게 된 건 안타깝게 생각하고, 뼈아프게 생각하지만… 오히려 차후에 네가 금신천뢰문을 나와 흑색귀골곡으로 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는 이 공법서에 들어간 혼백에게 진심을 토로하거라. 그리하면 공법서에 봉인한 혼백이 네게 육극음뢰신의 구결을 알려줄 터이니, 육극음뢰신을 익혀 흑색귀골곡에 찾아오면 된다.”

“이, 이런 걸….”

허곽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육극음뢰신을 대성할 수밖에 없는 자질을 지닌 인재가 있는데, 공법을 서고에 처박아 두고 썩힐 수만은 없지 않으냐. 너는 반드시 육극음뢰신을 익혀야만 하는 인재이니, 받아두어라.”

나는 허곽의 관대함에 그에게도 예를 취해 인사를 올렸다.

금벽호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허락하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내가 금신천뢰문을 선택한 이후.

규련과 서휼은 다시 진룡맹 영역으로 떠났고, 다시금 괴군이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괴군이 난동을 피우는 틈을 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김연에게 기괴고를 다시 심어두었다.

또다시 괴군은 목인을 납치해 갔고, 괴군에게 수배령이 떨어졌다.

괴군이 난동을 피우고 간 후, 나는 금벽호를 따라 인족 영역으로 다시 한번 가게 되었다.

* * *

시운도에서 명적에 이름을 올린 후.

나는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이번 생에 금신천뢰문을 택한 것은 꼭 강민희가 껄끄러워서는 아니었다.

금신천뢰문을 택한 첫 번째 이유는 마공에 대한 반감.

‘우선 흑색귀골곡은 마공을 익히는 마도종파지.’

원래도 마공은 별로 익히고 싶지 않았으나, 원립을 상대한 이후로는 마공에 대한 반감이 극에 치달았다.

원유 같은 경우야 원립을 죽이고 얻은 전리품이라는 느낌이 강했기에 사용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원유도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에 안 들어서 주기적으로 저주공법의 연습 상대로 쓰고 있었다.

어쨌든 마공에 대한 반감이 큰 것 외에도.

두 번째 이유는 우선 금신천뢰문의 경우는 해결책이 보이긴 하지만 흑색귀골곡은 정보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강민희가 왜 귀도성모가 되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아직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해결책이 명확한 금신천뢰문 쪽이 내게는 더 나았다.

세 번째 이유로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지난 생… 아니, 지지난 생인가? 여하튼 15회차 당시 나는 금신천뢰문을 멸문시켰다.’

나로서는 불가항력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긴 했었다.

하지만 어쨌든 나 때문에 수천만 명의 인족이 죽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15회차 당시에는 갑자기 몸이 시한부가 되고, 서휼을 끝내는 것에만 집중했던 탓에 제대로 죄책감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은 나의 크나큰 업보였다.

나는 지나간 회차의 사람들에게 가진 죄책감에, 이번에도 흑색귀골곡을 택해서 모르쇠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네 번째 이유는 뇌전화의 저주였다.

‘금신천뢰문은 어쨌든 뇌도공법을 익히는 뇌선 양수진의 후예들이니, 뇌전화의 저주에 대한 사료나 해결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꼭 금신천뢰문이 아니더라도, 이들이 자리 잡을 뇌령도는 뇌도종문으로 유명한 천공도였으니, 뇌령도 곳곳을 조사해 보면 한 곳쯤은 이 저주에 대한 실마리를 풀 곳이 나올 터였다.

다섯 번째 이유는 답천 너머에 대한 실마리였다.

번개와 삶의 공통점은 단순히 찰나뿐이 아닐 터였고.

금신천뢰문에서 뇌도공법을 익히며 천겁에 대해, 천뢰에 대해 고찰하면 너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번 생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인가.’

나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뇌전화의 저주를 풀 방법을 찾는 것.

둘째….

‘천뢰번을, 금신천뢰문의 안쪽에 들어가서 안에서 훔쳐낸다.’

그리고 다시 수계로 갈 것이다.

‘서휼의 아가리에 꽂아 넣는다는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는다.’

다시 상계에서 하계로 갈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으니, 금신천뢰문에서 천뢰번을 훔쳐 내 수계로 간다.

그리고 천뢰번을 수계에 봉인할 것이다.

뇌전화 해제와, 천뢰번 절도가 이번 생의 가장 큰 목표가 될 터였다.

‘물론 16회차 때 잃어버렸던 기억도 찾아보도록 하자.’

다만, 잃어버린 16회차를 찾는다는 걸 이번 생의 목적으로 세우지 않은 이유는….

16회차의 기억은 어째선지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인식이 무의식 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이 주입한 것이 아닌, 내 스스로의 본능이, 인식이 그렇게 인지하고 있었다.

마치 역사의 일부분이 그대로 잘려 나간 듯한 이 공허감은, 어쩌면 내가 진선에 도달하기 전에는 다시 찾을 엄두도 못 내리란 육감이 들었다.

‘16회차의 기억은… 일단은 천천히 찾아보도록 하지.’

16회차의 만상인연도 역시, 희뿌연 안개로 가려진 것처럼 내 눈에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일단 두 개의 목표를 머릿속으로 정립한 후.

금벽호와 함께 뇌령도에 도착했다.

뇌령도에 도착한 금벽호의 주변으로, 금신천뢰문의 천인기 원로들이 나타났다.

파직, 파지직!

금벽호가 손을 휘두르자, 그의 손에는 익숙한 깃발이 들렸다.

천뢰번!

나는 천뢰번을 애써 못 본 척하며 원로들과 안면을 텄다.

“허허, 홍복이오!”

“본문에 이 정도의 자질을 지닌 제자가 둘이나 생기다니. 시조 금신자께서 보우하심이십니다.”

원로들은 뇌전화의 저주를 ‘뇌성체’라고 부르며 껄껄 웃었다.

금벽호는 나와 담소를 나누는 원로들에게 말했다.

“그럼 본 태상문주는, 본문의 배신자와 비열한 뇌운각 녀석들을 정벌하러 다녀오지. 원로들 역시 두어 명만 남고 전부 따라오시오. 남은 두어 명은 금신천뢰문을 꺼내서 제자들에게 따라올 준비를 하라 이르고… 새 제자들이 뇌도공법을 익힐 준비를 하게 해 주시구려.”

“알겠습니다.”

천인기 원로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두 명의 원로가 자리에 남았고, 나머지 원로들은 전부 금벽호를 따라 뇌령도의 한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럼 우선 뇌도공법을 익힐 준비부터 해야 할 터인데….”

원로가 헐헐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를 은근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뇌도공법이라….’

뇌도공법 자체를 익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간접적으로 접해 본 적은 많아도 직접적인 숙련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과연 어떻게 익히길래 준비까지 해야 한다는 거지?’

창천개벽문의 경우처럼 묶어 놓고 전기로 지지는 것일까?

아니면 괴군처럼 뇌기를 받아들이기 쉽게 개조라도 하는 것일까?

어떤 가혹한 수련이라도 받아들일 준비는 되었다.

내가 결의를 굳히고 있을 때였다.

“천뢰는 음양의 순환으로 태어나는 것이 모든 뇌도공법의 핵심이라네. 그렇기에 뇌도공법을 익히는 이들은 모두 음양, 즉 태극의 순환을 주로 해야 하지.”

“예,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연위에게 성별이 바뀌는 공법인 태극진뢰신에 대해 들으며 받은 정보였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 금신천뢰문은 수련을 할 때 음양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 쌍수도려(雙修道侶)를 맺는다네.”

“…?”

“지금부터 자네에게 어울릴 만한 쌍수 상대를 찾아 주도록 하지.“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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