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2

21. 거지남매 – 패밀리

두 사람이 무기를 겨누자 마구간에 정적이 흘렀다.

레오는 신중하게 상대를 살폈다. 체급 차이가 큰 데다가, 상대는 방패가 있는데 그에겐 방어구가 아예 없었다.

양손검은 강하게 공격할 수 있는 만큼 방어에 불리한 무기였다. 검술도 조금 배웠고 전쟁터에서도 굴러봤지만 ‘앗!’하는 사이에 칼을 맞을 수 있는 게 양손검이다.

그래서 레오는 선공을 취했다.

방패를 피해 검을 맞대는 척하면서 상대의 검을 유인하고 재빨리 회전해 그의 허벅지를 베었다.

하지만 방패에 막혔다.

레오는 방패 쪽으로 돌며 스텝을 밟아 상대의 검에서 멀어졌다.

이렇게 움직였을 때 실력이 좋은 놈이라면 방패를 그대로 앞으로 밀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하겠지만, 다올이란 놈은 굳이 멀리 있는 검을 내리쳐왔다.

레오는 스텝의 방향을 급격하게 바꾸면서 그의 검을 피했다.

그리고 검을 쭉 뻗었다.

“…졌습니다.”

다올의 목에 검이 닿았다.

일 대 일이라면 무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압도적인 우위에 섰다.

이 레오의 몸은 너무 약해서 서너 명이 방패를 들고 밀어붙이면 꼼짝도 못 하고 지겠지만, 상대가 한 명이고, 이렇게 공격하겠답시고 허점을 보이거든 {검술}이 발휘될 여지가 많았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빠른 결말에 주위를 둘러싸고 구경하던 깡패들은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들의 뒤에서 조용한 박수가 울렸다.

“이야. 아예 상대가 안 되는데? 다올, 고생했어. 자네는 이리로 오게.”

대장이란 놈이 깡패들을 해산시키고 레오를 다시 방으로 데려왔다.

그는 그제야 자신을 소개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독특하게도 그의 손바닥에는 개가 교수형을 당하는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몇 가지 인적사항을 물어봤지만, 레오는 적당히 답하며 레나와 관련한 내용을 모두 숨겼다.

“자네는 한동안 성 밖에서 일하게 될 거야. 칼 잘 쓰는 사람은 성안에서 할 일이 별로 없거든.”

거짓말이다. 성안이야말로 소수의 실력자가 우대받는 곳인데, 단지 레오를 믿지 못해서 외부로 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레오는 개의치 않고 그가 붙여준 깡패를 따라 나왔다. 그 깡패는 싸움을 구경했는지 은근히 친한 척을 했다.

“잘 왔어. 우리 코롤라 패밀리가 최고지. 약도 싸게 살 수 있고 잘하면 노예도 좀 건드려 볼 수도 있고.”

레오는 깡패의 말을 경청했다. 코롤라 패밀리는 마약과 노예를 주된 사업으로 지정한 모양이다.

깡패는 레오를 성 밖의 작은 숙소로 안내했다.

숙소 입구 발판에는 팔아넘길 사람을 구한다는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숙소 카운터에 있던 주인장이 깡패에게 건네받은 편지를 읽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새 식구로군. 반가워.”

그는 편지를 찢어버리곤 레오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의 손바닥에도 아까 만난 놈과 똑같은 문신이 있었다.

손바닥에 그린 문신은 몇 년에 걸쳐 점점 지워졌다.

그러니 이 문신은 코롤라 패밀리에서 현역으로 일하는 중이라는 표식에 불과하고, 진짜 문신은 따로 있을 터였다. 아니면 대장급 되는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새겨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레오는 그 흉측한 손을 맞잡았다.

* * *

레나는 일찍 일어났다.

종일 방 안에 있으려니 심심해서 아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답답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나른한 것을 즐겼고, 특히 잠자는 것을 좋아해서 하루의 절반을 잠으로 보내도 불만이랄 것이 없었다.

“끄으응~”

기지개하면서 몸이 많이 건강해진 걸 느꼈다. 그동안 잘 먹어서 살도 조금 쪘다.

밖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레나는 밖으로 나갔다.

카시아 언니는 항상 새벽에 몸을 씻었다. 레나가 일찍 일어나기로 마음먹은 까닭에는 이 시간을 맞추기 위함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난 다 썼으니까 가져가.”

레나는 물통을 받아서 방으로 옮기고 오빠가 말한 데로 문을 닫고 몸을 씻었다.

오빠는 요즘 보기 힘들었다. 성 밖에서 일을 구했는데, 거리가 멀어서 숙식해야 한단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봤지만, 오빠는 한참이나 뜸을 들이다가 숙소를 지키는 일을 한다고 했다.

이 도시는 밤에 도착하는 손님들이 있어서 야간에도 손님을 받아야 한단다.

다 거짓말인 거 알고 있다.

카시아 언니랑 같이 살게 된 첫날에 오빠는 온통 피에 젖어서 돌아왔다. 상의에 흙을 잔뜩 묻혀서 숨겼지만, 몸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레나는 덜컥 겁이 나서 오빠가 잠든 사이 다친 곳이 없는지 그의 몸을 살폈고, 웬 칼을 두 자루나 숨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오빠는 일자리를 구했다면서 나갔다. 칼을 들고.

카시아 언니에게 물어봤다.

“무슨 일이긴. 깡패겠지.”

“그게 뭔가요?”

“뭐 하나라도 더 가지겠다고 칼 들고 싸우는 남자들이 있어.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은 것 같던데? 내가 알기론…”

“힘든가요?”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니.”

선생님에게 깡패가 뭐냐고 물어봤다.

“아주 안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란다. 너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안 좋은 일이야. 나라의 법을 어기고 배를 불리는 작자들이란다.”

“깡패들은 다 나쁜 사람인가요?”

“음… 거의 다 나쁜 사람이지. 일단 나쁜 일을 하니까. 물론 사람을 단편적으로 평가하는 건 좋지 않단다. 그런 일을 하게 된 개인적인 사정은 있겠지.”

“……”

레나는 오빠가 돈을 벌어오려고 그런 일을 한다는 게 가슴 아팠다.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무기가 필요할 정도로 위험한 일인가 보다.

‘나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니까.

그러면서도 레나는 자신을 공부시키려고 오빠가 힘들게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서글펐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서… 이렇게 생긴 게 뭐가 어쨌길래 오빠도 그렇고 선생님도 조심해야 한다고 하지? 왜 잡아간다는 거야?’

레나는 심란한 심정을 안고 방에서 조용히 책을 읽었다. 밖에서 카시아의 코골이가 낮게 들려왔다.

* * *

레오는 깡패들 숙소에 방을 배정받았다. 비상시를 위해 가능하면 한 곳에 있어야 한단다.

근무시간도 정해졌다. 현대의 시간으로 따지면 오후 5시부터 새벽 5시까지였다.

그 외의 시간은 자유롭게 보낼 수 있어서 그는 점심에 일찍 일어나 꼬박꼬박 레나를 보러 신발가게를 찾았다.

동생은 고작 몇 주일 만에 글자를 깨쳐서 선생님의 칭찬이 마르지 않았고, 그동안 부쩍 건강해졌다.

앙상했던 뺨에 살이 붙어서 한 번씩 꼬집어줬다.

레오는 현재 상황이 만족스러웠다.

매일매일 12시간씩 근무를 서야 했지만, 동생이 무사히 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다.

다행히 일은 무료할 뿐 힘들지는 않았다.

레오의 일은 오르빌 서쪽 외곽에 있는 몇몇 창고를 돌아가면서 지키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뭘 지키는지 알려주진 않았지만, 다른 깡패들과 잡담을 하다 보니 몇 곳은 노예를 가둬놓은 곳이고 어떤 곳은 마약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됐다.

특별히 큰 싸움은 없었다. 사이가 좋지 않다는 베르자 패밀리와 서너 번의 신경전이 있었는데, 서로 얼굴을 붉히며 각자의 무기를 구경시켜주는 정도였다.

베르자 패밀리는 불법 무기 공급을 주로 했다.

그런데 놈들이 노예 사업에도 손을 뻗치면서 우리 코롤라 패밀리와 마찰을 빚고 있었다.

당연히 코롤라 패밀리는 으르렁거리며 이를 드러냈고, 베르자 패밀리는 물러서는 척하면서도 노예를 몰래 공급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정황을 잘 조작해 명백한 증거를 남기지 않아서 큰 싸움이 붙지 않았을 뿐, 두 패밀리의 관계는 극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속감이 없는 레오는 다른 깡패들과 친하게 어울리며 정보를 귀동냥했다.

덕분에 라우노 패밀리라는, 오르빌의 상권을 장악하고 보호세를 걷는 패밀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오가는 대화 대부분은 깡패들의 저열한 농담과 푸념, 자기 자랑, 근거 없는 뜬소문이었다.

그렇게 깡패들과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가던 어느 날, 레오는 눈이 번쩍 뜨이는 정보를 얻었다.

“아스틴 왕국의 왕자가 온다고요?”

“그렇다니까. 북쪽 연락책을 하는 친구한테 들었어.”

많이 친해진 깡패가 술을 들이켜며 말했다.

“어쩐지 경비병들이 매일같이 북문 대로를 정비한다더니… 난리도 아니래. 북문에 순찰병이 무지 많아져서 작업장 몇 개는 뒤로 물렸다데. 그쪽 친구들 뺑이 좀 치겠어. 하하하.”

아놀프 드 클라우스는 지난 시나리오 막바지에 병영에서 만났던 왕자로, 업적을 통해 약간의 호감을 얻었다.

‘{검술}같은 엔딩 보상 능력이랑 [업적]은 계속 이어지니까, 지금 아놀프 왕자를 만나면 대화는 가능하려나?’

이건 큰 {이벤트}다.

한 왕국의 적통이 다른 왕국을 찾아오는 경우는 손에 꼽을 만큼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걸 이용할 방법이 있을지 궁리했지만, 현재로선 뭐가 어떻게 진행될지 아는 게 없었다.

“그런데 왜 오는 거래요?”

“모르지. 우리 공주님이랑 결혼한다는 소문이 있기는 한데… 젠장, 왕족들은 좋겠어. 클로에 공주님 무지 예쁘다던데. 크으, 나도 그런 여자랑 결혼했으면 좋겠네. 내가 만약 공주랑 결혼하면 말이지…”

깡패는 슬슬 음담패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묶어놓고, 때리고, 가슴을 주물러 준 다음에 제 불방망이로… 어쩌고저쩌고. 자기네 나라 공주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다.

레오는 대충 맞장구를 쳐주면서 머리를 굴렸다.

‘그러고 보니 전쟁 이벤트는 약혼관계 시나리오에서만 등장하는 건가? 약혼관계 시나리오는 겨울에 시작하고 다른 시나리오들은 여름에 시작하던데… 각자 시작하는 시기가 다른가?’

의문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어쩌면 이 거지남매 시나리오는 전쟁이 터지기 수년 전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전쟁이 이미 끝났을 수도 있었다.

각 시나리오가 시작될 때의 오른, 벨리타, 아스틴 왕국의 연력은 알지만, 각 왕국은 ‘카로만 드 타탈리아 16년’ 같은 식으로 고유의 연력을 사용해서, 그것들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는 몰랐다.

다행히 레오는 레나를 가르치는 선생님께 물어서 쉽게 알아냈다.

‘모든 시나리오가 같은 해에 시작되는데, 소꿉친구와 거지남매 시나리오는 여름이고 약혼관계만 겨울에 시작된다.’

즉, 전쟁이 터진다면 내년 봄이었고, 지금은 여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과연 전쟁이 터질까?’

약혼관계 시나리오에서는 두 번이나 같은 시기에 전쟁이 발발했지만, 거지남매 시나리오에서도 터질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그리고 각 시나리오는 독립적인 게 맞나?’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레나 키우기]라는 동일한 게임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각 시나리오의 세계관과 시기가 일치했다.

‘만약 지금 에이브릴 성에도 레나와 레오가 있고, 데모스 마을에도 레나와 레오가 있다면?’

그는 각 시나리오가 서로 연관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각자 처한 환경이 너무 다르고 거리도 멀어서, 완전히 개별의 스토리라고 생각해왔다.

마치 프린O스 메이커에서 한 번 엔딩을 보면, 다시 게임을 시작할 때 이전 게임과 관계없이 새롭게 시작하는 것처럼…

그런데 아놀프 드 클라우스라는 인물이 다른 시나리오에서 또 등장하는 걸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쩌면 모든 시나리오가 동시에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

‘데모스 마을의 레오는 온전한 레오의 정신으로 살고 있고, 에이브릴 성의 레오 덱스터도 마찬가지인 건가? 나는 민서랑 섞여 있는 거고?’

레오는 복잡한 머리를 털어냈다.

아직은 알아낼 수 없는 일이다. 데모스 마을과 에이브릴 성은 너무 멀리 있어서 다른 레나와 레오가 거기에도 있는지 확인하기 힘들었다.

이 세계의 통신 기능이 형편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제들은 축성 받은 물품을 이용해 서로 통신을 했는데, 데모스 마을에도, 에이브릴 성에도 교회가 있으니 그걸 이용하면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귀족들만 돈을 내고 쓸 수 있는 교회의 기능이었고, 각 시나리오는 거리가 멀고 각자 살아가기 바빠서 누가 누굴 도와준다거나 할 수도 없으니 굳이 알아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당장 지금의 레오도 동생 한 명 키우는 것만으로 벅찼다.

‘일단 내년 봄에 전쟁이 터지는지 확인하고 생각하자. 만약 터지지 않는다면 시나리오들은 분리된 게 확실하니까…’

레오는 떠오르는 의문들을 미뤄두었다. 그러는 사이 아스틴 왕국의 왕자가 오르빌에 도착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