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23

222. 소꿉친구 – 연결

나의 오랜 친구여.

나는 너를 찾아 온 대륙을 돌아다녔다. 젊을 적 불현듯 여행을 떠난 너는 내가 사제가 되어 고향에 왔음에도 돌아와 있지 않더구나.

콘라드 왕국의 국립묘지. 장년의 여사제가 꽃을 내려놓았다.

레브.

묘비에는 그녀의 친구의 이름과 업적이 적혀 있었다. 그가 콘라드 왕국의 왕, 레안 드 예리엘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기록돼 있었고, 레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만나리라 생각지 못했다.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잘 살아 있으리라 믿었고, 우리의 인연을 믿기에, 신께서 나를 네게 인도해 주시리라 믿었다. 그러나 친구야, 너는 여기에 묻혀 있었구나. 전쟁으로 황폐해진 왕국 귀퉁이에 이렇게 이름을 새겨 놓았구나.

이 또한 신께서 인도하심이겠지.

내게 그만 방랑하라고, 정착해 이 황폐한 왕국을 보살피라고… 너를 이곳에 묻어 두셨나 보다.

레아가 황동 술잔을 들었다.

기어이 만나지 못한 친구의 묘에 부질없는 축복을 내리는 순간, 그녀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리둥절하다.

벌떡 일어나 땀을 훔치길 잠시, 이 모든 게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좁다란 고향 집. 곁에 부모님이 잠들어 계셨다.

도롱도롱.

밥벌이하느라 피로한 부모님의 코골이가 단칸방에 메아리쳤다. 그런 부모님이 어쩐지 그리워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아는 조용히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부모님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나왔을 때는 동트지 않은 새벽이었다.

“후우!”

레아가 어두운 새벽 공기를 들이마셨다. 사무치게 생생한 꿈에 머리를 긁적긁적, 혼란스러워하다가 걸음을 돌렸다.

너무 일찍 일어났다. 텃밭에 가서 잡초라도 뽑아두고 오면 어머니가 아침을 차려 두셨겠지.

레아는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마을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집은 가난해 손바닥만 한 텃밭조차도 밖에 있었다.

사제가 되고 싶은 레아에게는 실망스러운 환경이다. 수도교회는 까마득히 멀었고, 험난한 세상, 십 대 중반의 소녀는 마을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레슬리 수도사의 도움을 받아 아무리 공부한다 한들 그녀가 사제가 될 가능성은 이 텃밭만큼이나 작았다.

이런 상황에 처한 소녀는 어쩌면 이 어두운 텃밭에 눈물을 떨궜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레아는

“에잇!”

잡초를 억세게 쥐어 뽑았다. 밝아오는 동녘 아래에서 ‘킁’ 코를 들이키며 생각했다.

‘열심히 하지도 않고 변명은… 어리광부리지 마.’

내가 좋아서 시작한 공부다.

사제가 될 수 있건 없건, 좋아서 시작한 일에 후회란 있을 수 없었다.

레아는 잡초를 죄다 뽑아버렸고, 눈부시게 터오는 동녘과 함께 돌아섰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공부가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 * *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버지는 사냥을 나가시고 없었다. 레브는 끄으응- 게으르게 나와 말했다.

“엄마~ 밥 주세요.”

“어머, 웬일로 늦잠이니? 잠깐만. 엄마 곧 나갈 건데 잘 됐다. 같이 먹고 나가자.”

레브는 어머니와 함께 식사했다.

매번 그랬듯 그는 음식이 쓰다며 투정을 부렸다. 어머니는 “약초가 들어간 거라 몸에 좋아!” 응수하셨는데, 어머니가 살아계시고 과거가 기억나는 지금의 일상이었다.

나누는 대화도 대수롭지 않았다.

마당 텃밭에 벌레가 우글거리는데 레아랑 밖으로 싸돌지만 말고 아들이 벌레를 잡아줬으면 좋겠다거나, 집에 (밀가루 대용으로 쓰이는) 벨플루아 가루가 떨어져서 빌려와야겠다는, 사소한 이야기들이었다.

“아들은 오늘 뭐 할 거니?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벌레를…”

“산에 갈 거예요. 어제 산열매를 많이 못 따서 레아랑 다시 다녀오기로 했거든요.”

“응? 레아는 빵집에 갔는데? 아침에 약초 가지러 다녀갔어.”

“엥? 왜요? 날씨가… 맑은데.”

어머니는 어깨를 으쓱하셨다.

밖에서 일하길 좋아하는 레아는 흐린 날이 아니면 빵집엘 가지 않았다. 별일이다, 생각하며 레브는 식사를 마치곤 어머니를 따라 빵집으로 갔다. 한스네 어머니가 하는, 데모스 마을에 있는 유일한 빵집이었다.

“동생, 왔어?”

“네 언니. 아직 빵 안 구웠죠?”

“저도 왔어요.”

“어서 오렴. 레아 보러 왔구나?”

한스 어머니가 레브와 그의 어머니를 반갑게 맞았다. 레아는 부엌에서 반죽을 하고 있었다.

“레아, 나 왔어. 산열매 따러 가기로 해놓곤 왜 이리로 왔어?”

“에고, 힘들다. 오늘은 여기서만 일하고 교회에 가려고. 산에 다녀오면 너무 늦어.”

“왜? 오늘은 평일이잖아.”

“그냥. 공부하러.”

단답한 레아가 반죽으로 관심을 돌렸다. 쫀득해진 반죽에 잘게 자른 약초를 우수수 뿌리곤 다시 팍팍 주물렀다. 그녀는 초록색이 된 반죽에 탁! 밀가루를 뿌려 얌전하게 만든 뒤에야 저린 팔을 쉬었다.

“이거 가져다드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아무 일도 없는데? 왜, 내가 평일에 교회에 가는 게 그렇게 신기해? 내가 요즘 좀 게으르긴 했지만~”

레브는 마음을 다잡은 듯한 레아를 착잡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할 방도는 없었기에 그런 그녀의 잡담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레아가 반죽하는 동안 레브는 잡다한 일을 맡았다. 어머니와 한스 아주머니는 신메뉴를 개발해 보겠다며 열심이었다.

이윽고 점심시간, 레아는 품삯으로 빵을 받았다.

“이렇게 많이 안 주셔도 되는데…”

“괜찮아. 새로 개발한 거니까 맛이 있는지 한번 먹어보고 평가해줘.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내일도 올게요.”

레브는 레아를 따라 나왔다.

일당을 넉넉히 받아 신이 난 레아는 “이제 교회에 가야겠다.” 재잘재잘 떠들었고, 레브는 “칫!” 조용히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스가 빵집 귀퉁이에 서 있었다. 그는 레브의 눈길이 닿기 전에 돌아섰는데, 레브는 그의 뒷모습을 먹먹하게 바라보았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다. 한스는 사실…

“레브!”

“어? 왜?”

레아가 레브의 상념을 깨뜨렸다. 그녀는 한 아름 안고 있던 빵들을 떠넘기며 말했다.

“할 일 없으면 이것 좀 우리 집에 가져다줘. 난 책 읽으러 갈 거야.”

난 공부하러 갈 테니, 너는 이제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레브는 삐죽, 입을 사발만큼 내밀곤 후다닥 레아의 집에 빵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교회로 갔다.

레아는 교회에 비치된 신물(神物) 근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레슬리 수도사가 그녀를 가르치고 있었고, 레브는 꿰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멀뚱, 레아가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길 잠시 레슬리 수도사가 감탄했다.

“훌륭하구나. 제6 성인, ‘윌라드 보프만의 신학 탐구’는 그만 읽어도 되겠어. 이걸 떼려면 두어 달은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애썼다. 잠시만 기다리렴.”

레슬리 수도사가 자신의 방에서 두꺼운 책을 한 권 뽑아왔다.

티고로프의 ‘인식존재론’. 레아의 수준이 일반적인 단계를 넘어섰음을 알아채곤 자신이 수도교회에서 공부했던 서적을 가져온 것이었다.

“네가 여태까지 공부한 건 개론(槪論, 내용을 대강 추려서 서술한 것)에 불과하단다. 기본이 되는 것들이지만, 깊지 않지.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신을 단순히 믿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피조물이 그분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될 거야. 다양한 접근법이 있는데, 이걸 넘어서야 비로소 신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피조물의 굴레’와 ‘피조물의 책임’을 맛볼 수 있단다. 그럼 서문부터 읽어보자꾸나.”

“인간의 이성은 어떤 종류의 인식에서 특별한 사명을 지닌다. 이성은 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거부할 수도 없고, 자각(自覺)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들로 괴롭힘당하고 있다…”1)

레아가 낭랑한 목소리로 서문을 읽었다. 레슬리 수도사는 한 문장 또는 문단을 끊으며 설명하였는데, 레브로서는 저게 뭔 소린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해서 레브는 뻘쭘하게 서성이다 밖으로 나왔다. 레아랑 같이 있고 싶지만, 공부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였다.

레아가 아무래도 꿈을 꾼 모양이었다. 여태껏 보이지 않던 모습을 보이는 걸 봐서는…

후우, 한숨을 내쉰 레브는 집으로 돌아가 가죽 자루를 집었다.

산열매를 따서 레아네 집에 가져다 놓았고, 그 이후로 레브는 매일 빵집에 들렀다. 점심까지만 일하곤 교회에 가는 레아. 이번 회차는 빵집에서 그녀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마음먹었다.

난 레아를 수도교회로 보내야 하니까.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 “너는 내가 사제 되러 갔으면 좋겠어? 안 갔으면 좋겠어?”

서로에게 싱숭생숭할 질문을 받지 않게 되어 차라리 다행이었다. 레아가 수도교회로 떠나는 모습만 보고 나도 떠나야겠다.

‘아 참. 거울을 사용해야 하는데… 음. 지금은 안 하는 게 낫겠네.’

레브는 날짜를 꼽아 계산을 마쳤다. 서둘러야 할 일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빨리하면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던 며칠 뒤, 밤. 집에서 쿨쿨 자고 있던 레브는

“야!”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허락 없이 벌컥! 열린 창문. 달을 등진 채, 레아가 그를 사색이 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저번에 한 얘기 좀 다시 해 봐.”

레아가 잠들어 있던 친구를 냅다 깨워 추궁했다.

소름 끼치는 꿈을 꿨다.

장엄한 교회를 배경으로 앙상하게 마른 레브가 있었고, 수도교회까지 찾아와준 친구가 반가워 손을 들었다. 그 순간, 끔찍한 것이 머릿속에 들어와 속삭였다.

– 두려워하지 말려무나.

그건 뱀처럼 생긴 무언가였다. 끈적한 비늘이 뇌를 옭아맨 것만 같았고, 나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나를 음미하듯 핥는 혓바닥이 소름 끼쳤다. 더 끔찍하게도 그 존재와 내가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신이 저주스럽고, 감당할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혔다.

잠에서 깨어난 건 그때였다.

더러운 주신의 창녀가 내 가슴에 태양처럼 불타는 왕홀(王笏)을 박아 넣은 순간,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무, 무슨 일이니?”

부모님이 놀라서 물으셨고, 나는 “아, 악몽을 꿨어요.”라고 답했다. 물을 마시고 오겠다는 핑계로 밖에 나왔을 때, 며칠 전, 레브가 한 이상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신이 ‘바르바토스’라는 악신의 사도가 되었었다고. 그놈이 내게 넘어갔다고.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사뭇 진지한 어투였으나, 레브가 장난치는 거라고 믿는 게 나을 정도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뭐, 뭐야?”

“얼른 나와.”

레아가 잠결에 정신을 못 차리는 레브를 재촉했다. 창 너머로 찰싹찰싹, 친구를 두들기고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윽고 레브가 옷을 거꾸로 입고 나왔다.

“저번에 한 얘기 있잖아. 진짜야?”

“…내가 진짜라고 했잖아.”

“무슨 꿈 같은 거 꾼 건 아니고?”

[ 업적 : 사진 스무 장 – 레나가 종종 꿈으로 과거를 미약하게 기억해냅니다. ]

레브가 침묵했다.

씁쓸한 표정. 평소와 달리 세월이 묻은 얼굴이었다. 그는 청색의 목걸이를 꺼내며 답했다.

“아니야. 꿈이면… 이것도 없겠지. 저번에 못 보여줬는데, 잠깐만 기다려.”

레브가 거울을 가지고 돌아왔다.

장식 없이 밋밋한 거울로, 두 사람은 벽에 기대고 쪼그려 앉았다.

이윽고 레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리를 비추던 거울이 달처럼 빛나기 시작했고, 거울에 낯선 사내가 비쳤다. 금발 머리, 금빛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었다.

[ 업적 : 귀속 아이템, 2/3 ]

[ 검 – 파괴되지 않음. ]

[ 거울 – 거지남매. ]

[ 목걸이 – 예쁜 목걸이다. ]

“레안, 나야.”

우리랑 비슷한 또래일까? 대단히 호감이 가는 외모였는데, 자다 일어났는지 머리가 부스스했다.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거울을 돌려보다 입을 열었다.

“레리아나는 어떻게 됐… 아, 우리 이름을 알게 됐구나. 그보다 어떻게 됐어? 이건 또 뭐고.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야?”

목소리가 들린다. 레아는 자기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1) 각주: 순수이성비판(이마누엘 칸트, 1781) 머리글에서 발췌 및 수정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