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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24

223. 소꿉친구 – 거짓말

“이유는 모르겠는데, 연결이 가능하더라. 잘 풀렸어. 동생은 공주가 됐고, 너는 왕자가 됐어. 클리어도 됐고.”

“클리어가 됐어?”

거울 속 사내가 자리를 옮겼다. 레아는 헤- 입을 벌리고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는 마치 바닥을 기는 것처럼 움직였다. 이윽고 그가 일어나면서 어깨너머로 지저분한 넝마가 덮인 판때기들이 보였는데, 얼핏 보기에도 형편없는 보금자리였다.

마치 거지의 집과 같이… 레아는 거울 속의 남자가 레브가 말했던 그 왕자임을 알아차렸다. 엄청나게 잘생긴 대신 손재주가 형편없다던.

“응. 그보다 먼저 인사해. 여기 레아도 있어.”

“…이런, 너는 민서가 아니구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레안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민서?

레아는 그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일단 인사를 받았다. 짧은 통성명이 오가고 레브가 다시 입을 열었다.

“카트리나 누나랑 크세니아 누나는 만났지?”

“어제 다 만났지. 왜?”

“카트리나 누나는 그대로야?”

“…그렇게 말하면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아 참… 미안해. 카트리나 누나가 굴레에서 풀려났어. 혹시 예전이랑 달라진 게 있나 싶어서.”

“날 스승으로 섬기겠다고 하더라. 달라진 게 이거야?”

“…아니. 그건 지난 회차에서도 그랬어. 음… 그러면 한동안은 카트리나 누나를 가르쳐 줘. 기사단은 안 그만둘 건데, 그냥 그러려니 해.”

“뭐? 기사단을 안 그만둔다고? 어제 그만두겠다고 약속했는데?”

“거짓말이야. 그냥 모르는 척해 줘. 어쨌든 굴레는 풀렸으니까. 생각해보니까 카시아 누나도 한 바퀴가 돌아야 바뀌었던 것 같네. 그리고 크세니아 누나는…”

레브가 침묵했다. 어색해질 정도로 뜸을 들이자 레안이 되물었다.

“크세니아가 왜?”

“…너랑 결혼했어.”

– “제게 더 해주실 말은 없나요? 전 거짓말을 정말 싫어해요. 레오, 아니, 왕자님께서는 그럼 제게 왜 고백하신 거죠? 혹시… 아니에요. 제게 왜 고백하셨는지 말해주세요. 제가 왕자님께 ‘필요’했나요?”

레브는 목구멍에 걸린 크세니아의 정체를 삼켰다. 이건 알려주지 않는 게 나아 보인다.

레안은 싱겁다는 듯이 웃었다.

“그거 다행이네. 그런데 왜 뜸을 들여? 크세니아가 뭐 잘못했어?”

“……아이를 못 낳더라.”

“…그게 무슨 상관이야. 레브, 너 똑바로 말해. 지금 나한테 뭐 숨기고 있지?”

“아니야. 그냥 그랬다는 거야. 그리고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은 자기 출생에 자격지심이 있더라…”

너도 나한테 거짓말을 했었지.

레브는 끝까지 입을 다물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거지남매 회차에서 크세니아의 역할만 쏙 빼서 이야기했고, 강림한 오리아스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음을 알렸다. 네가 동생과 함께 아키네를 치르며 엔딩을 맞았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엔딩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건 밝히지 않았다.

꼭 알려줄 필요가 없으니까. 네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러는 사이 꿈인지 생시인지 레아가 자기 볼때기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너는 반란을 일으키러 갈 거지?”

“그래야지. 깜박 말을 못 했는데, 디버프가 새로 찍혔어. 내가 콘라드 왕국에 들어서면 오리아스가 반응할 거야. 미안하지만 그래서 난 못 가.”

[ 디버프 : 오리아스의 발자국 – 도발, 달아날 수 없습니다. 11년 11개월 11일 11시 11분 11초. 고정됨 ]

이 디버프는 민서에게 찍힌 것이었다.

지난번에는 거지남매 시나리오의 ‘플레이어’인 레안에게 표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금의 플레이어인 레브의 손바닥에 더욱 선명해진 소 발굽이 찍혀 있었다.

그 말인즉슨 이번에는 레브가 레안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뜻이고, 레안 혼자서 {혈통}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브가 있는 것과 없는 것, 그 차이는 컸다.

그러나, 거지남매 시나리오는 클리어됐다. 지난 회차의 엔딩이 변경되어도 받은 보상이 바뀌진 않으므로 레브가 결론을 내렸다.

“미안해. 그러니까 너 이번에는 동생이랑 크세니아랑 같이 오르빌에서 조용히 살아.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냥 동생만 행복하게 잘 돌봐줘. 어련히 잘하겠지만… 아 참, 레리아나가 산티안 라우노를 좋아하더라. 너도 알고 있…”

“야.”

레안이 레브의 말을 잘랐다.

“…왜?”

“클리어됐다는 지난 엔딩 결과가 별로 안 좋았구나?”

“…미안해.”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우리 사이에. 결과가 안 좋았던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왈칵, 레브가 울음을 터뜨렸다.

거울 속의 저 레안은 거지남매 시나리오가 시작된 바로 다음 날의 레안이다. 기억을 공유하기에 저 친구가 나를 얼마나 원망하는지, 어떻게 그 마음을 억눌렀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저 친구의 동생을 죽였다.

레리아나가 끔찍한 꼴을 당할까 두려워 그랬던 것이지만, 지키지 못했다는 데에는, 내 손으로 죽였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었다. 마지막, 뺨에 닿았던 동생의 맨 가슴이… 지독한 죄악감이 되어 남았다.

그럼에도 저 친구는 그 사실을 숨기며 웃는 낯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레브는 울먹이며

“미안해. 미안. 정말 미안해.”

중얼거렸고, 레안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 후우우…

코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만 울어.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아니까. 그만 울라니까? 레아도 있는데 계속 그럴 거야?”

“아, 아, 아니. 크흠!”

“그래. 지나간 일이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니까 정신 차리자. 일단… 난 혈통을 되찾으러 가야 해. 왜 그래야 하는지는 너도 알 거야.”

나를 돕기 위해서. 레브는 그가 무슨 목적으로 혈통을 되찾겠다는 건지 알고 있었다.

레안이 콘라드 왕국을 장악해두지 않으면 오른 왕국이 콘라드 왕국과 손잡을지도 몰랐다.

지난 소꿉친구 회차에서 일으켰던 반란이 그렇게 실패했고, 어쩌면 콘라드 왕국을 장악한 레안이 오른 왕국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레브, 그런데 문제가 있어. 바르트 경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지금 출발해도 시간이 촉박해. 나 혼자 말을 타고 달리면 되긴 하겠다만… 동생이랑 크세니아더러 알아서 따라오라고 할 수는 없잖아.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한테 호위기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면 될까?”

아니. 그랬다간 그 기사가 크세니아를 알아볼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너와 크세니아의 관계가 엇갈릴지도 모른다.

눈물을 훔치곤, 레브가 말했다.

“아니. 바르트 경은 잊어버려. 하리에 가이단도 내버려 두고.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무슨 일이 있긴 있었구나.’

레안은 어떤 미심쩍음을 느꼈으나 토 달지 않고 경청했다.

“베르크 추기경이 널 도와줄 거야. 너한테는 오리아스의 표식이 없으니까 조금 여유를 가지고 진행해도 될 것 같아. 그… 암베그리스가 필요해. 아주 많이.”

“암베그리스? 발레이나의 타액?”

“응. 암베그리스가 칠해진 목재는 오리아스의 피에 안 녹더라. 아르네 후작을 찾아가. 누군지는 알지?”

레안 드 예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동이 터오고 있었다.

“알지. 콘라드 왕국의 북부 변경백이잖아. 대단한 함대를 가진.”

“그래. 그 함대가 평시엔 고래를 잡으니까 후작은 아마 암베그리스를 많이 비축해 뒀을 거야. 그걸 빌려달라고 해. 기사랑 병사들한테 바르라고 하면 오리아스를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할 거야.”

후작을 설득하는 건 동생이 알아서 하겠지. 레브는 몇 가지 자잘한 경고를 남기며 조언을 마무리했다.

레안이 “베르크 추기경은 날 왜 도와주는 건데?” 핵심을 찔렀으나, 레브는 알려주지 않았다. 크세니아와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레안은 답답해했다.

그러나 레브는 문득 이 게임이 불친절한 까닭도 이와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레브와 레안은 “고생해. 다 잘 될 거야.” 서로를 격려한 뒤 연결을 끊었다. 거울은 레안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빠직- 깨져버렸다.

가축들이 배고프다며 울기 시작한 데모스 마을. 레브의 집 창가 아래에는 뺨이 빨갛게 달아오른 레아와 눈이 붉은 레브만이 남아 있었다.

“이젠… 믿겠어?”

레아는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 일어나 어디론가 걸어가 버렸다.

비틀비틀, 넘어질 것만 같아서 레브가 따라잡았다.

“레아, 괜찮아?”

“아니. 이것 놔 줘. 나… 생각 좀 할래.”

레아는 레브의 손을 뿌리치고 사라졌다. 아침을 맞아 하나둘씩 나온 마을 사람들의 인사조차 받지 않고,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레브는 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레아는 빵집에 오지 않았다. 레브를 찾아오지도 않았지만, 그는 레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그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레아는 교회엘 갔다.

공부를 하는지 상담을 받는지 레슬리 수도사의 방을 자주 들락거렸다. 매일매일 부모님을 도와 밥벌이하던 걸 멈추고 교회의 신물 앞에서 종일 기도를 올렸는데, 그러던 레아가 레브를 찾아온 건 거의 이 주일 만이었다.

“레아!”

레브는 아버지의 독촉을 못 이겨 사냥을 나와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장에 도착한 그녀는 레브가 건네는 물주머니를 받아들고 대뜸, 이렇게 물었다.

“난 뭐야?”

“…뭐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내가 공주가 돼야 한다면서. 내가 뭐라고, 공주가 돼야 한다는 거야?”

“…나도 몰라.”

“그럼 넌 날… 사랑해?”

레아가 그를 미동도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준비된 질문이 친구의 가슴을 찔렀고, 레브는 처음으로 쑥스럼 없이 답했다.

“사랑해.”

“두 번이나 결혼했는데도? 나 때문에 그렇게 고생했는데도?”

“상관없어. 백 번이든 천 번이든 다시 해도 좋아.”

레아는 그제야 물을 마셨다.

“그럼… 이제 난 어떻게 하면 돼? 시키는 대로 할게. 나도 너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내가 뭘 하고 싶어 하는 줄 알고 그렇게 말해?”

“뭐든 상관없으니까.”

“그럼 나랑 결혼해.”

정적이 흘렀다. 소년 소녀는 서로를 한참을 노려보았다.

“…거짓말하지 마.”

우리가 어릴 적부터 잡고 다니던 손을 놓았던 게 언제였던가. 레아는 사제가 되고 싶어 했고, 사제가 결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근소한 차이일지언정 그녀의 우선순위는 내가 아니다. 가슴 아프지만, 이를 알고 있었다.

레아와 결혼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죽을상을 지으며 구질구질하게 붙잡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가 교회에서 쫓겨났기 때문이었다.

그게… 다였다.

“다다음 주에 사제님이 오실 거야. 떠나. 수도교회에 가서 꿈에 그리던 사제가 돼.”

“…너는 어쩌게.”

“난…”

왕이 되겠어.

왕이 되어 너와 결혼하겠어.

사제가 결혼해선 안 된다고?

그럼 제롬 신성 왕국을 부숴버리겠어. 세상의 모든 교회를 불태우는 한이 있어도 너와 결혼하겠어.

하지만 레브는 상냥하게 말했다. 마음속의 무자비한 폭정을 억누르며.

“난… 걱정하지 마. 네가 행복하면 나는 충분해. 반드시 찾아갈게. 꼭 연락할 거야.”

레아가 그를 폭 끌어안았다.

잉잉. 울상을 지었는데, 소녀는 친구의 앞섶만 쥐고 어찌할 줄을 몰랐다. 레나 아이나르처럼 연인을 탁! 밀치는 과감함이 그녀에겐 없었다.

레브는 그런 레아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반듯한 이마를 후우- 불어 머리칼이 날리게 만들고, 자신의 이마를 대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울지 마. 네가 울면, 내가 아파. 네가 웃으면, 나는 행복할 거야. 그러니 웃으며 떠나줘. 나는 틀림없이 행복해할 테니까.”

그렇게 레아는 떠났다.

다다음주. 온 마을 사람의 축복 속에서, 약속대로 웃으며.

레브도 그녀를 미소로 보내주었다.

“레브! 나 꼭 사제가 될게! 사제가 돼서 성녀님께 물어볼 거야! 네게 어째서 그런…”

멀어져가는 마차. 레아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들리지 않았지만, 레브는 “그래! 고마워!” 화답했다.

마차를 따라 한참을 달려간 그가 터벅터벅 마을로 돌아왔을 때, 한스가 탁- 돌멩이를 걷어차고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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