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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25

224. 소꿉친구 – 초기자금

“오세요! 오세요!”

상인들의 외침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메아리쳤다.

길가에 깔린 좌판들에는 각종 채소와 과일이 전시되어 있었고, 번잡한 장터는 무척 저렴한 향신료의 쿰쿰한 향으로 가득했다.

오가는 행인들은 상품을 집어 냄새를 맡아보기도, 꾹꾹 눌러보기도 하면서 품질을 점검했다. 상인은 걱정 놓으시라 너스레를 떨었다.

시장의 알록달록한 풍경이다.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 단지 눈요기를 즐기는 사람, 뛰노는 아이들과 적선을 청하는 거지, 그냥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주민들까지.

때때로 소매치기가 소란을 일으키는 이곳은 토리토 마을의 장터였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저마다의 이유로 얽혀 있었고, 개중에는 방황하는 청년이 있었다.

사실 청년이라 하기엔 좀 어리다. 키는 크지만 십 대 중반의 소년이었는데, 그는 터덜터덜 풀이 죽은 어깨로 장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 “제발요. 어떻게 안 될까요?”

– “안 된다니까. 경험도 없는 초짜를 데려갈 일이 아니야. 정 따라가고 싶으면 정당하게 회비를 내. 그럼 상단에 낄 수 있을 테니까.”

소년은 은화 여덟 닢과 동화 다섯 닢이 든 주머니를 움켜쥐었다. 제법이다 싶은 돈이지만, 상행을 따라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기도 했다. 그는 짐짓 화가 나서 발을 굴렀다.

– “일꾼으로 따라갈게요. 그거면 안 되겠어요?”

– “넌 우리 마을 사람이 아니잖아.”

– “하지만 그동안 제가 얼마나…”

사정했지만, 상인은 소년을 앞에 두고 고개를 돌렸다.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난 안 들린다.’ 무시해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상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름 친분이 있다고 생각한 상인부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안면만 있는 상인까지 찾아다녔지만, 누구도 그를 데려가 주지 않았다.

한참 씩씩거리던 소년은 막막함에 걸음을 빨리했다.

레아가 떠났다.

제롬 신성 왕국으로.

신성 왕국은 멀었다. 그가 가진 돈이 어린 소년에겐 큰돈임은 분명하지만, 거기까지 가기엔 어림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건 그가 언젠가 시작할 장사 밑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장사가 다 뭔 소용이냐. 레아도 없는데.

번민하던 그는 레아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고작 여자애 때문에 내가 이래야 한다는 게 기가 막힌다. 갈팡질팡하는 자신이 한심해

‘사제는 개뿔. 여자가 무슨 사제냐. 그냥 이 촌구석을 떠나고 싶어서 한 소리겠지.’

그녀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금 먹먹함에 사로잡혔다.

그는 방황했고, 그의 발길은 어느덧 토리토 마을의 어두컴컴한 곳에 다다라 있었다.

“어서 옵쇼!”

정신이 팔려있던 소년이 흠칫, 고개를 들었다. 한 사내가 골목길에 들어선 그를 반겼다.

“혼자 왔어요? 아, 좀 어리구나. 처음 왔지?”

“네? 네.”

“잘 왔어. 들어와.”

험상궂게 생긴 건달이다.

키는 비슷하지만, 우락부락한 팔뚝이 여물지 않은 소년의 어깨를 휘감았다. 주머니를 툭툭 두드려 돈이 있는 걸 확인하더니 그를 허름한 목조 건물로 이끌었다.

바짝 겁먹은 소년은 눈동자를 굴렸다. 붉은 등불이 매달리고 복도가 기다란 그곳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소년은 이를 어쩌나, 도망칠 방법을 궁리했다. 그러나 건달이 “좋은 시간 되십쇼!” 방문을 열면서 얼어붙었다.

반라의 여인이 코앞에 있었다. 그녀가 “어서 와.” 잡아당겼고, 여인의 손이 거침없이 그의 사타구니에 파고들었다.

“빵빵하네. 뭐해? 안 벗고.”

소년은 홀린 듯이 옷을 벗었다. 부끄러워하기도 잠시 그는 창녀를 와락 끌어안아 허름한 침대로 넘어뜨렸다.

“아이참. 나도 옷은 벗어야…”

“이, 이름이 뭐예요?”

가슴을 움켜쥐고 절박하게 묻는 소년. 창녀는 풋! 웃고는 이름을 밝혔다. 아마 가짜일 것이지만, 소년은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넌 이름이 뭔데?”

어딘가 레아를 닮은 창녀에게 소년이 답했다.

“저, 전… 한스에요.”

* * *

“잘 다녀올게요.”

“그려. 비자인 부족이라고 했지? 꽤 멀다고 들었는데, 가는 길 조심하고 사람을 쉽게 믿으면 못 써.”

“네, 그럴게요. 건강하세요.”

레브가 꾸벅, 마을 어르신들께 고개 숙여 인사했다.

레아가 떠나고, 그는 며칠에 걸쳐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하러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떠나기 전에 마주해야 할 인연이 많았다. 이전 회차들에선 그냥 훌쩍 떠나버리곤 했지만, 과거가 기억나는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또, 과거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신 덕인지 아니면 마을 사람들과 담을 쌓고 살던 아버지가 변했기 때문인지, 또는 둘 다인지 레브는 인사를 드려야 할 사람이 많았다.

작년에 디노 형네 아주머니께 장아찌를 얻어먹었다. 옆집의 휴고 아저씨께서는 매일 아침 갓 짜낸 우유를 나눠주셨고, 외지인이지만 특유의 넉살로 마을에 금방 정착한 루벤 씨는 텃밭에 쓰일 거름을 흔쾌히 나눠주곤 했다.

해서 이분들께는 잘 말린 가죽을 선물하며 인사했다. 촌장님께는 특별히 여우 가죽을 가져다드렸다.

마을 어르신들도 잊어선 안 된다.

레브는 부드러운 빵을 한 아름 가져다드렸고, 노인들은 쯧쯧, 돌아선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레아도 참, 그놈의 사제가 뭐라고. 그냥 저놈이랑 결혼해서 살지…”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레브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마치 그가 영영 떠나려 한다는 걸 안다는 듯이 반응했는데, 이렇게 물어보는 아가씨도 있었다.

“레브. 성년식 치르러 간다면서? 그… 돌아올 거지?”

레브는 “안 돌아올 것 같아.”라고 솔직히 말해 그녀의 부질없는 희망을 꺾어주었다. 그렇게 레브는 자신과 얽혀 있는 인연을 정리해나갔다.

그들의 예감이 맞았다. 그는 이제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날 아침, 레브는 육포가 든 자루를 수레에 실었다. 마을 청년들과 함께 수레를 밀며 큰 마을을 향했고, 노을이 지는 마을 어귀에서 그들과도 작별 인사를 나눴다.

비로소 혼자가 된 그는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정리해야 할 인연이 남아있었다. {추적술}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어가기를 잠시, 레브는 시장통에서 한스를 만났다.

“여어, 레브. 마침 잘 왔다. 잠깐 이리로 와봐.”

어딜 가자는 건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친하지도 않고, 나와 별다른 접점도 없는 한스가 날 왜 부르는 건지 그동안 알지 못했다.

물론 지금은… 안다.

육포를 짊어진 레브는 군말 없이 한스를 뒤따랐다. 창관으로 가는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입을 열었다.

“그만. 난 안 가.”

“어? 아아~ 너도 가 봤구나? 그럼 그렇지.”

한스가 이죽거렸다.

“야, 넌 언제 가봤냐? 난 그저께 처음으로 가봤는데 글쎄 딱 레아만 한 애가 있더라구. 키도 요만한 게, 가슴도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

“그래서, 좋았어?”

“응?”

“행복하냐고.”

레브가 한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스는 그의 잔잔히 가라앉은 눈빛에 얼굴을 붉혔다.

“무, 무슨 참견이야.”

“상인이 되겠다더니, 너 돈 다 써버렸지?”

“…레아도 없는데 돈은 벌어서 뭐 해. 그리고 너야말로 레아랑 그렇게 사이좋은 척하더니. 흥! 너도 봤지? 좋다고 손 흔들면서 떠나드만. 레아는 너나 나 같은 놈한테는 관심도 없었다니까.”

레브가 낮게 심호흡했다. 한스와 그는 많은 점에서 얽혀 있었다.

아주 어릴 적, 두 사람은 레아를 두고 마치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려는 것만 같은 싸움을 벌였다.

레아와 항시 붙어 다니던 레브는 한스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려는 게 싫었다. 한스도 자길 막아서는 레브가 싫었다.

해서 두 꼬맹이는 주먹다짐을 벌였는데, 승자는 레브였다. 쌍코피가 터진 한스는 눈물을 흘리며 달려가 엄마에게 일렀다.

“친하게 지내야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희 둘이 싸우면 어떻게 해.”

레브는 엄마한테도, 한스 아주머니께도 혼이 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한스는 그의 사촌이었다.

데모스 마을의 하나뿐인 빵집. 그 집의 첫째 딸이 한스 아주머니였고, 둘째 딸이 레브의 어머니였다.

성실했던 한스 아주머니는 어릴 적부터 반죽을 배웠고, 발랄했던 어머니는 들을 쏘다니며 빵에 들어갈 약초를 캐왔다. 그러다 웬 야만인 소년을 만나 사랑을 키웠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한스가 매번 그에게 다가온 이유였다.

한스는 레브의 어머니가 안 계시고, 레브네가 마을 사람들과 다소 단절되어 있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제 어머니와는 달리.

난 그걸 모르고… 한스를 두들겨 팼었다. 패기만 했으면 다행이지, 두 번이나 죽였다. 솔직히 한심한 녀석임은 분명하지만 한심함으로 따지면 나도 누구 못지않았다.

레브가 투덜거리는 한스에게 선언했다.

“걔는 두 번 다시 이런 깡촌으로 안 돌아올걸? 그리고 레아가 무슨 공부를 하겠어. 도시에는 근사한 놈팽이들이 많다던데, 홀랑 빠져서 짝짜꿍이나 하겠지. 에잇! 제기…”

“난 레아한테 갈 거야.”

“뭐? 제정신이야? 레아는 사제가 되러 수도교회에…”

“상관없어.”

“……그, 그럼 나도 같이…”

“네가?”

레브가 한스의 말을 무자비하게 잘라버렸다. 한스는 그의 시선을 따라 창관으로 가는 골목길을 돌아보더니, 얼굴을 붉혔다. 양심은 있는지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난 너한테 기회를 주려고 왔어. 너한테 미안했던 것도 있고. 받아.”

– 잘그락.

“이게 뭔…”

은화 여덟 닢과 동화 다섯 닢.

한스가 이틀간 방탕하게 써버린 돈과 같았다. {초기자금}을 던져준 레브는 턱짓하며 말했다.

“상인이 되고 싶다고 했지? 이 촌구석을 벗어나 떵떵거리며 살겠다고. 가져가. 그걸 밑천 삼아 다시 꿈을 키워보던가, 아니면 저기 가서 레아를 닮았다는 창녀나 끌어안고 살든가. 마음대로 해. 네 선택이니까.”

그리고 돌아섰다.

한스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다. 언뜻 울음이 들렸지만, 레브는 돌아보지 않았다.

어찌 됐건 저놈은 우릴 상단주한테 팔아넘겼었으니까. 저거면 그를 죽이고, 두들겨 팬 대가로 충분하다고 레브는 생각했다.

육포를 판 레브는 토리토 마을을 떠났다. 몰살당하지 않은 아버지의 고향, 비자인 부족을 찾아갔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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