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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

23화 사냥하는 거미(6)

성공률 4.7%.

야크트 스피너가 레온이라는 특수개체를 쓰러뜨릴 수 있는 확률이었다.

주 기동력인 다리와 와이어 커터마저 잃은 전투기계의 승률은 고작 그 정도. 사실 그마저도 배터리 폭주로 자폭한다는 결과까지 합산한 계산이다.

하지만 이 확률을 93%까지 치솟게 하는 비장의 수가 있었다.

그것은 야크트 스피너가 최후의 최후에. 탄약생산도, 정비도 불가해 져 마지막에 몰렸을 때 사용하기 위해 매립해둔 대량의 폭발물 약 2톤을.

최대한 많은 위협인자들을 끌어모은 뒤, 일제히 폭파. 자신과 함께 매장하는 것이다.

비록 최후의 자폭 대상이 위협인자 한 명뿐이라는 것은 계산 밖이었으나 야크트 스피너는 라스트 오더 수행을 위해 망설임 없이 모든 것을 걸었다.

-콰콰콰콰콰쾅!!

도시 전체에 울리는 폭음. 2톤에 달하는 폭발물이 일제히 터지자 건물 내 모든 산소가 순식간에 연소됐다.

견고한 건물들이 산산조각나며 폭발의 압력은 공기를 난폭하게 밀어내고 막강한 충격파를 발산한다.

폭심지를 중심으로 반경 2km 내 모든 건물들이 사라졌으며, 10km내의 모든 건물들이 으스러지거나 금이 갔다.

그 충격파는 20km 바깥까지 퍼져 부상으로 휴식 중이던 헌터들이 광풍에 날아갔을 정조다.

대기를 짓누르는 화마가 만들어낸 진공 공간을 다시금 공기가 채우면서 폭발연기가 빨려 올라갔다.

치솟아오르는 폭발 연기. 거대한 반구 모양을 그리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먼지구름이 마치 버섯의 모양.

저 폭발 속에선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당연한 추측이었다.

* * * *

개체번호 JS-10,253호기가 제조된 건 1,038년 하고도 스물 하루 전.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들어낸 형제기들과 다르게 강인공지능이 탑재된 야크트 스피너는 문명 최후의 결전을 위해 제조되었다.

지휘기인 10,253을 비롯한 무인 기갑연대 112기의 야크트 스피너에게는 한 가지만을 명령했다.

도시의 중심에 봉인된 것이 결코 봉인에서 풀려나지 않도록 지킬 것. 이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 것.

그러나 그들 태반은 명령을 수행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공장에서 생산되어 운송되던 중 적의 습격을 받아 열차가 파괴되고 반수 이상이 가동단계를 밟지도 못하고 파괴된 것이다.

10,253호기도 최후의 순간 운송담당자의 긴급시동이 없었다면 깨어나지도 못하고 파괴됐을 것이다.

“도시를 지켜! 가! 네 임무를 수행해!”

운송담당자는 다음 순간 잡아먹혔다.

지휘모듈을 승계한 10,253호기는 통합 네트워크 시스템에 접속. 37기의 잔존 병력으로 습격자를 소탕하고 도시로 향했다.

하늘은 회색 먼지로 가득하고, 지축은 폭발로 인해 수시로 흔들려 기동력을 저하시켰다.

절벽을 넘을 즈음에 무너진 토반과 함께 동료기가 매몰되기도 했다.

적성인자는 수시로, 사방에서 습격해왔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적에게 둘러싸여 기계적으로 그들을 도살하던 그때,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긴급회피기동에 들어갔으나 동료 반수가 충격파에 휘말리는 걸 막을 순 없었다.

「JS-10,244 처리 불능. 오염레벨 8. 시민에게 치명적인 오염.」

「JS-10,185 노심 손상. 14번 방사능 물질과다발생 중.」

대다수가 오염되었고 제염처리도 늦었다. 그들은 논리 로직에 따라 도시에 진입할 경우 시민들의 피해를 계산하고 합의했다.

「오염개체는 즉각 활동을 중단하라. 자폭 시퀀스를 명령한다.」

「임시 지휘기 JS-10,253의 오더를 실행. 아군기의 이탈 후 자폭 시퀀스를 개시한다.」

제염이 늦은 동료기체들은 스스로를 땅에 묻고 자폭했다.

그렇게 도착한 도시는 공격받고 있었다.

10,253호가 명령을 내렸다.

「아군에 화력지원 개시. 도시를 방어하라.」

12기의 전투기계들이 전장에 개입하자 적을 격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도시의 영웅이 되었다.

「야크트 스피너! 야크트 스피너!」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한 킬링머신들을 환호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적의 수장을 저격해 쓰러뜨리고 폭발의 여파에서 시민 한 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 무인전차의 이야긴 도시에 희망을 불어 일으키는 미담이었으니.

그들은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시민을 수호하는 강철의 기사가 되었다.

재편성된 야크트 스피너들은 지휘관의 지휘 아래 도시를 지켰다.

그렇게 지키고 지키고 지켜서, 최후의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는 더는 지킬 게 없었다.

3%밖에 가동되지 않는 방어 시스템. 5명도 채 남지 않은 시민들. 그마저도 대부분은 치명상으로 죽어간다.

생존확률 0%. 도시에 남은 마지막 주민은 피를 뒤집어쓴 전투기계만이 남으리라.

“야피. 난 여기까지다. 마지막 명령이야.”

지휘관. 물어뜯긴 팔에서 울컥거리는 피를 대충 무시한 채, 그는 라스트 오더를 남겼다.

그는 도시가 계속해서 습격받는 이유를, 이 도시가 무엇을 봉인하고 세워졌는지를 설명했다.

이 봉인이 결코 풀려서는 안 된다고,

“봉인을 지켜라. 누구도 접근하게 두지마라.”

– 미래의 생존자들은 우리처럼 어리석지 않기를.

그가 쓰러지고, 차례차례 끝이 다가왔다.

무인기계 하나만 남은 황야 한가운데의 도시.

야크트 스피너(Jagd Spinne) – 10,253호기는 충실히 임무를 수행했다.

봉인이 풀리지 않게 한다.

봉인을 지킨다. 도시를 지킨다.

도시에 접근하는 모든 것들을 배제한다.

봉인된 구획을 감추기 위해 그 위에 정비소를 짓고, 유사시 매장시켜버리기 위해 폭약을 설치했다.

데이터 베이스내 지식을 활용하여 도시의 방어시스템을 보수하고 제 몸을 개수했으며 보급이 끊긴 레일건 탄자와 탄약을 보충하기 위해 보조 관절과 시설을 이용해 물자를 제작했다.

도시 근처에 초석 광산이 있었다는 건 행운이었다. 싸구려 흑색화약이라도 제조할 수 있었으니까.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에 대비하고, 또 대비하고, 또 대비하고.

그렇게 천년을 지켜온 것이다.

폭발의 여파 속, 먼지구름이 사라지고 머리카락 한 올 타지 않은 채 폭심지를 걷는 침입자.

성법 <화살막이의 가호>.

원거리 공격에 대한 절대방어는 야크트 스피너 최후의 자폭마저 무력화했다. 심지어 야크트 스피너까지 보호한 것이다.

그는 ‘정비소 아래’에 봉인된 것을 끄집어내기 위해 철검을 휘둘렀다.

“이것이 그대가 지키고자 했던 것인가.”

시멘트를 부어 파묻고, 그 위에 정비소를 지어 은폐하고, 마지막에는 폭발물로 매장시키려 했던 보관함이 드러났다.

현대에 와서는 프로토콜을 풀 암호조차 남지 않은 보관함은 철검에 절삭되었다.

그 안에서 드러난 건 끝없는 암흑이 응축된 것 같은 검은색 구체.

넘실거리는 검은 연기는 흘러넘치는 잔여물만으로 생명을 오염시킨다. 원자로니 방사능이니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도시를 위협에 빠뜨린 원흉이자 인간세계를 오염시킨 물건이다.

지혜의 보옥.

이것이 이 게이트의 클로징 조건이자 야크트 스피너 천년의 임무를 지속시킨 원흉.

-끼릭! 끼리익!

야크트 스피너는 반파된 몸을 질질 끌며 조금씩 레온에게 다가왔다.

잘린 관절부를 억지로 움직이고, 남아있는 보조 로봇팔로 다 끊어진 와이어 커터를 레온의 발목에 휘감았다.

이제 그것을 당길 동력도 남지 않았다. 싸울 여력이 남았다 해도 레벨 5의 위협인자를 쓰러뜨릴 확률은 0.00%.

이를 모르지 않을 터인데, 천년의 기계는 발악하듯 레온을 쓰러뜨리려 한다.

“아직 싸우려 하는가.”

레온은 검은색 구체를 든 채, 야크트 스피너를 마주 봤다.

이제 한 개만 남은 카메라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구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레온은 제 밑에 깔린 로봇팔을 그저 억척스럽게 끄집어내 구체를 돌려받으려 안간힘을 다하는 기계를 보면서 눈을 감았다.

“그대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것을 지켜온 것인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싸워온 것인가.”

그 세월에 공감하듯, 기사는 눈앞의 기계를 말없이 지켜봤다.

온몸이 망가지고 부서져도 스스로 고치고, 떼어내고, 다시 수리하고, 갈아 끼우고… 불굴의 의지로 지켜온 시간은 응당 상찬해 마땅하다.

“그대는 끝까지 제 사명을 사수한 것이로군.”

그는 진심으로 눈앞의 기계와 소통하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이 명예로운 자를 어찌 기사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충도(忠道), 충의(忠意)의 기사로다. 귀공의 봉사에 차원을 넘어 모든 생명 있는 자들이 빚을 졌음이다.”

레온은 성검을 들어올렸다. 이 사악의 구체는 응집된 악성. 오직 신성만이 이 악성을 베어낼 수 있음이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말끔하게 잘라낸 사악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악성을 정화할 성배가 그것을 흡수하며 갈무리했다.

……………

야크트 스피너는 침묵했다. 오랜 시간, 아주 오랜 시간 봉인이 풀리지 않도록 지켜온 것이 파괴되었음을 목도하고 기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레온은 말없이 성배로 성수를 생성하였다.

성수를 부으며 약소하나마 기사로서 서임하고, 한쪽 무릎을 꿇어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는 레온.

“야크트 스피너 경, 귀공의 퀘스트가 완수됐음을 본 기사가 엄숙히 선언하노라.”

봉인을 지킨다.

그 안에 있던 세계를 멸망시킨 원인 중 하나를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그것이 천 년 동안 야크트 스피너를 움직인 원동력이었다.

이제 그것은 사라졌고, 봉인을 지킬 필요도 없어졌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남은 라스트 오더가 천년의 시간을 거쳐 종결된 것이다.

-끼릭! 끼리릭…!

마지막 남은 카메라 아이가 깜빡거렸다. 드디어 끝났다는 듯, 숙명에서 해방되었음을 아는 것처럼.

「야피, 넌 도시의 영웅이다.」

「야피! 도시를 지켜줘서 고마워!」

「야피!」

“귀공이 편안한 안식을 맞이하기를…….”

낡고 낡은 메모리 모듈 안에 남은 목소리들이 끝을 맞이했다.

* * * *

[퀘스트가 클리어됐습니다.]

갑작스레 눈앞에 뜬 메시지에 헌터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클리어 돼? 뭐가? 야크트 스피너를 해치웠다는 건가?

야크트 스피너의 시가전 게릴라에 시달린 헌터들은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 악랄한 킬링 머신이 쓰러졌다고?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한 남자를 떠올렸다.

오연하고 오만한 시선으로 자신들을 내리깔아보던 그 시대착오적인 기사. 그가 아니고서야 누가 그 기계를 돌파하고 퀘스트를 클리어한단 말인가.

“끝까지 대단한 양반이었구만.”

황금철은 솔직하게 그를 인정했다. 비록 미래세계 전차라는 생소한 적이었으나 S급 헌터인 자신도 별다른 손을 쓰지 못한 강적이었다.

그런 괴물을 상대로 단독으로 클리어라. 앞으로의 한국은 필연적으로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리라.

“철수 준비하자! 다들 고생했다!”

지친 부하들을 격려하던 그때였다. 저 멀리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저건?”

거대한 기계장치의 잔해… 수십 톤은 할 야크트 스피너의 잔해를 손수 집어오는 한 남자.

“오오…! 폐하!”

그 사이에 하리로부터 레온을 대하는 적합한 태도를 취득한 길태성이 과장스럽게 그를 향했다.

“그 폭발로 혹시 옥체가 상하지는 않을지 걱정했습니다.”

“아첨이 뜬금없구나, 주문쟁이. 무슨 볼일이냐.”

“하하…….”

길태성은 레온을 힐깃거리며 그가 당연히 쥐고 있을 물건을 살폈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도 그러한 물건을 쥐고 있지 않다. 길태성이 의문을 품었다.

“저… 폐하? 혹시 ‘지혜의 보옥’은 어디에…….”

“파괴했다.

“예?”

그 말에 길태성은 물론 헌터들도 정지한 것처럼 멈춰 섰다.

파괴했다고? 마탑이 수백 억을 들여서라도 구하려고 한 그 물건을? 대체 왜?

“그, 그게 어떤 물건인지 아십니까? 지혜의 보옥은… 그것은! 족히 고유등급의 보물이란 말입니다!”

“이 천한 것이 어디서 언성을 높이느냐!”

호통으로 길태성을 닥치게 했지만, 길태성을 비롯해 수많은 헌터들이 레온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클리어 조건은 지혜의 보옥을 파괴 또는 탈취였다. 길태성이 말한대로 고유등급의 보물이라면 국가가 총력을 다해서라도 획득해야 할 물건인 것이다.

“그것은 삿된 물건이다. 인간을 타락시키는 악성이지. 사람의 손에 쥐어져서 좋을 게 없어.”

“고, 고작 그런 이유로 탐구와 지혜를 포기했단 말입니까?”

“고작?”

레온이 눈을 힐깃거리자 길태성은 눈빛만으로 압도당해 오금이 파르르 떨렸다.

“어리석은 것들. 그 하잘것없는 가치가 끝내 세상을 파멸시키리라는 것도 모르는가.”

경멸어린 시선을 끝으로 레온은 자리를 떠났다. 하리가 다급하게 그를 따라나섰다.

-폐, 폐하? 제가 들까요? 어음… 다 드는 건 좀 힘들 것 같지만…….

-손 대지 마라. 평민이 만질 수 있는 존체가 아니니.

-엑…….

청주 게이트 공략은 그렇게 끝이 났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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