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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0

228. 소꿉친구 – 뒷짐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후작님, 이분은 누구십니까?”

레브는 그를 모르는 척했다. 가이단 후작이 착잡한 표정으로 답했다.

“소아렐 데메트리 오거튼 백작님이십니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지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이단 후작은 응접실이 아닌 자신의 집무실로 두 사람을 이끌었다. 대귀족의 집무실치고 다소 황량한 방에서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결정하셨습니까?”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레브였다.

그는 오거튼 백작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이 먼저 후작에게 물었는데, 사실 후작이 반란을 일으키기로 마음먹었음을 알고 있었다.

이틀 전에 아키네가 열렸다.

모르긴 몰라도 쌍둥이 왕자들은 그에게 최후통첩을 날렸을 것이고, 가이단 후작에겐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오거튼 백작을 데려온 것이겠지.

하르베이 변경백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그러나 문제가 있음을 밝혔다.

“드라진 후작이 동참하지 않겠답니다. 명분 없는 반역자들 목록에 제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다더군요. 본인은 중립을 지키겠답니다.”

“명분이라… 핍박받는 토착민들을 해방하는 것이 그분껜 명분이 되지 못하는가 봅니다. 곤란하군요. 설득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까?”

“네. 아쉽게도…”

어쩜 이렇게 예상한 대로 가는 법이 없을까. 설득이 쉬울 거로 생각한 에브니 드라진 후작은 거절하고, 설득이 어려울 거로 생각한 백작은 제 발로 와 있으니.

못내 초조해진 레브는 오거튼 백작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드라진 후작님을 설득하는 건 따로 궁리해보죠. 오거튼 백작님이라 하셨지요? ‘데메트리’라는 성이 들어간 것으로 보아 볼리뉴 마탑 소속의 마법사신 것 같은데… 마법사가 제게 무슨 볼일이십니까?”

오거튼 백작이 앉은 자리에서 예의를 차렸다. 용건을 다시 밝히게 하였음에도 그는 어떤 열망을 내비치며 말했다.

“제게 오러블레이드를 보여주십시오. 공사다망하실 소드마스터께 어려운 부탁이겠습니다만, 제가 그걸 연구할 수 있도록 두 달… 아니, 한 달만 시간을 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반란을 일으키려 하신다 들었습니다. 그래만 주신다면 저도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마법사의 호기심은 참으로 끝없고, 종잡을 수 없군요. 마법사가 오러블레이드를 무엇 하러 연구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레브가 관심을 보이는 듯하자 소아렐은 말로만 표현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튕겨 작은 구체들을 떠올렸고, 그것들은 비(非)마법사의 이해를 도울 예시가 되었다.

“마나 감응력이 뛰어나지 않은 분들께는 보이지 않으시겠지만, 마나는 자유롭습니다. 마법사는 단지 이 자유로운 것들에게 길(道)을 제시할 뿐이라 마법사가 마나를 사역한다느니 통제한다느니 하는 표현은 사실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백작이 손을 허공에서 움켜쥐었다. 그러자 구체들이 한 곳에 뭉쳐 고정되었다.

“생명체의 몸에 흡수된 마나는 잘 떠나지 않습니다. 마나라는 원소가 뿜어내는 파장 때문에 마나들은 서로서로 어느 정도 간격을 둡니다만, 생명체 내부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겹쳐있지요. 이 현상이 바로 저희 볼리뉴 마탑의 가장 큰 관심사인 ‘마나 중첩 현상’입니다. 저희는 수 세기에 걸친 인체실… 크흠, 실험으로 이를 연구해왔고, 근세기에 들어 ‘마나 중첩 이론’을 확립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었죠.”

보라색으로 보일만치 진한 분홍빛 눈동자가 레브와 가이단 후작을 훑었다. 오거튼 백작은 자제심을 조금 잃은 것 같았다.

“뭘까요?” ─ 누가 되물어주길 바라는 것만 같아서 레브가 물었고, 백작은 무척 기뻐했다.

“오러블레이드입니까?”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오러(Aura)지요. 오러가 꼭 블레이드(칼날)에만 맺히진 않으니까요. 예를 들어 도끼 머리라던가… 아르펜 알바세테 남작님이 해주신 말씀입니다만 아무튼, 마나가 생명체가 아닌 물건에 묶이는 현상은 마나 중첩 이론으로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해서 저는 이를 알아내고자 소드마스터를 찾아다녔습니다.”

이 자가 5년 동안이나 오른 왕국을 떠나 있었던 게 이 때문이었구나. 생각하며 레브가 조언했다.

“검에 오러가 맺힐 수 있는 까닭은 별것이 아닙니다. 검사가 검을 자신의 신체 일부로 여기면서 발생하는 현상에 불과합니다.”

“자코브 모드레드 백작님께서도 그리 말씀… 아니, 그리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게 더 신기하더군요. 어떤 수식이나 마나 로드도 없이 인식만으로 마나를 움직일 수 있다니… 소드마스터는 마나 감응력이 높은 사람만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일까요? 왜냐면 그건 ‘주술사’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여튼 그것도 연구해보고 싶고 또, 오러블레이드가 어떻게 강한 절삭력을 가지는지도 궁금합니다. 볼리뉴 마탑에서는 생명체의 심장을 본떠 ‘맥동하는 구슬’이라는 마법을 개발했습니다. 파괴적이지만, 뭘 자르진 못하죠.”

흥분한 백작은 그의 지적인 외견과 달리 말을 빠르게 뱉었다. 레브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들어보니 다른 소드마스터들을 만나셨군요. 그분들은 연구를 도와주지 않으시던가요?”

“네. 다들 이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바쁘신 분들이니 당연한 일이긴 합니다만…”

“그럼 저도 거절해야겠군요.”

“…”

“농담입니다. 반란에 동참해주신다면,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저도 연구에 협조하겠습니다. 다만 당장은 어렵습니다. 지금은 너무 바쁘군요.”

“얼마나 기다리면 되겠습니까?”

“일 년이면 됩니다. 볼리뉴 마탑이 저희를 도와준다면 내년 이맘때쯤에는 모든 게 끝나 있을 겁니다.”

시간을 재어본 레브는 은근슬쩍 소아렐 백작이 할 일을 정해주었다. 지난번처럼 그가 다른 마법사들이 반란군의 편에 서도록 권유해주기를 바란 것이었는데, 백작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게… 흐음…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기왕 반란에 동참하기로 한 것, 당연히 저희 마탑과 마탑 동기들에게 연락을 하긴 하겠습니다만…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왜 그렇죠?”

“이 땅의 모든 토착민을 대표한다는 당신께 말씀드리기 껄끄럽군요. 흠… 왜 제롬 신성 왕국에 마탑이 없는 줄 아십니까? 아스터 왕국은 빼고요. 거긴 본래 아스란 왕국이었고, 분리된 아스틴 왕국에는 마탑이 있으니까요.”

잠시 턱을 쓸며 주저하던 오거튼 백작이 말을 돌렸다. 답하지 않아도 되는 질문이었기에 레브는 기다렸고, 백작이 스스로 답했다.

“노예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거튼 백작이 지적한 대로 신성 왕국과 아스터 왕국을 제외한 다른 다섯 왕국에는 마탑이 있었다.

동부, 아이셀 왕국의 ‘코르넬 마탑’이, 북부, 두 왕국으로 쪼개지기 이전의 아스란 왕국, 그곳에 있는 결계 마법이 발달한 ‘레그드 마탑’이, 중앙, 벨리타 왕국에 있는 속성 부여 이론이 발달한 ‘카미츠 마탑’이, 동남, 콘라드 왕국에 위치한 아직도 주술적인 향기가 남은 ‘이베르 마탑’이, 남서쪽에 있는 오른 왕국의 마나 중첩 이론이 발달한 ‘볼리뉴 마탑’이 바로 그것이다.

아스터 왕국에 마탑이 없는 까닭이야 아스란 왕국이 둘로 분열되면서 하나 있던 마탑이 아스틴 왕국의 땅에 남았기 때문이지만, 유독 제롬 신성 왕국에만 마탑이 없는 이유는 십자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제롬 신성 왕국이 노예제를 철폐했기 때문이었다.

마탑이 유지되기 위해선 노예제가 필요했다. 마법사들이 노예를 대상으로 실험하기 때문이기도 하였으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마법을 부리기 위한 필수적인 재능, 마나 감응력은 유전되지 않는다.

그 극도로 희귀한 재능은 무작위로 발현하였으므로 마탑의 주 업무 중 하나는 그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찾아 데려오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의 인간 절대다수는 귀족에게 묶인 소작농이다.

아이 또한 그러해서 마탑은 해당 지역의 귀족에게 적당한 돈을 내고 아이를 데려가곤 했는데, 다른 왕국들과 달리 제롬 신성 왕국은 이를 묵인하지 않았다.

십자교회가 그걸 인간을 사고파는 인신매매로 규정하면서 신성 왕국에 마탑이 들어서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마탑이 노예제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레브가 오른 왕국에서 잠재적 노예나 다름없는 야만인들을 해방하겠다고 일어난 이상, 마탑과 그의 관계는 장차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골치 아파졌네.’

오거튼 백작의 변명을 들으며, 레브는 자신이 구상해둔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함을 느꼈다.

최악의 경우 오거튼 백작만 반란군의 편에 설지도 모른다. 다른 마법사들은 죄다 로그넘 왕가의 편에 서고.

그렇지 않아도 기사 전력에서 한참 뒤지는데, 마법사마저 없으면 우리에겐 승산이 없었다.

레브는 문득 “마법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를 데려가는 건 괜찮다.” 제안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가 여태껏 보여온 행보와는 엇갈리는 면이 있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타협할 수는 없지.

레브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지로 의자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다가 이윽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가이단 후작님.”

“말씀하시죠.”

“앨제어 드 로그넘 왕자에게 딸을 시집보내지 못하겠다고 하십시오. 대신, 다른 말을 흘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떤 것이지요?”

“…그 전에, 후작님께서는 팔라스 테르탄을 습격한 기사가 누군지 아십니까?”

“네, 바르트 경이라는 자였던가… 과거에 레안 드 예리엘 왕자를 섬기던 근위기사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가 왜 팔라스 테르탄을 습격했을지, 이유를 생각해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제가 섬기던 주군을 몰아내는 데 일조한 공작에게 복수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글쎄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수가 목적이라면, 제 주군을 쫓아낸 당사자인 에릭 드 예리엘 왕자를 노리는 게 이치에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공작의 손자를 노린다는 건, 어떤 의도가 있어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발. 아무것도 몰라야 하는데.

다행히 가이단 후작은 바르트 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았다. 레브는 안도의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추측인데, 레안 드 예리엘 왕자가 살아있는 것은 아닐까요? 머지않아 콘라드 왕국에서 난리가 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온데, 앨제어 드 로그넘 왕자에게 콘라드 왕국을 치는 한이 있어도 바르트 경이라는 작자를 잡아 죽이고 싶다는 말을 흘려보십시오. 아마 재미있는 반응이 나올 겁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하하.”

레브는 태연하게 웃었다.

마치 예언자, 혹은 대단한 통찰력을 지닌 사람마냥 누구도 알 수 없는 사실을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쌍둥이 왕자들이 따님과 결혼하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네들에게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요. 그건 가이단 변경백님의 힘이 꼭 필요하기 때문일 건데… 그럼 뻔하죠.”

하나도 안 뻔하다.

후작은 아리송한 얼굴로 답변을 기다렸고, 레브는 확언했다.

“왕자들은 콘라드 왕국을 병합하고 싶은 겁니다.”

“비약이 심하시군요.”

“비약인지 아닌지는 왕자를 떠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가서 따님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하십시오. 드라진 후작이 동참하지 않은 이상, 저흰 시간이 더 필요하니까요. 그때 한번 말이나 해보시라는 겁니다.”

“만약 아니라면요?”

“그럼 제가 왕궁으로 달려가서 왕자들의 목을 잘라드리겠습니다. 저는 살아 나오지 못하겠지만, 후작님이 따님을 시집보낼 일도 없겠죠. 가볍게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절 믿고, 가보십시오.”

그 이후로 자잘한 실랑이가 있었다. 그러나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레브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최소한의 피해로 전쟁을 마무리하고 싶다.

지난 시나리오 보상인 {전술} 능력 때문일까? 그는 지난번처럼 전쟁을 무식하게 벌이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세련되게 쌍둥이 왕자들을 골탕 먹이고 싶고, 그러면서도 내겐 아무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세사르에게 검대를 넘겨줘야겠다.’

레브는 뒷짐을 지고 걸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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