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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0

전후처리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폐허가 된 평양을 배경으로 안동길 대통령이 단상에 섰다.

“80년 전, 민족의 비극이 시작된 이래──”

안동길 대통령은 준비된 연설을 읊으면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남북통일 초대 대통령 안동길!

이 얼마나 듣기 좋은 울림인가?

안 대통령은 민족의 숙원이었던 남북통일을 이룩한 대통령이 되었다.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 평양시민 300만 명을 비롯해 수십 만의 북한군이 괴물로 변해 소멸했지만.

“우리들은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나긴 분단의 역사 끝에 겨우 통일을 이룩한 우리는 화합의 길을──”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북한 주민들의 동화 문제와 지역 안정화. 무엇보다 전멸한 위성부터 복구해야 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민족이고, 우리 곁에는 영원한 친구가 함께하니까요”

뭐, 만신전이 어떻게든 다 해주겠지.

“이번 전쟁의 주역! 앞으로도 우리 통일한국과 함께 나아갈 영원한 동반자를 소개합니다!”

안 대통령은 만신전이 있어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 * * *

“연설 수고하셨네, 안 대통령.”

“하하, 연단에 나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통일한국을 선포하는 연설식은 안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하에 점령된 평양에서 이뤄졌다.

아무리 무주공산인 채로 점령한 평양이라지만, 악마 잔당이 남아있을지 모르는 평양에서 통일한국 선포식은 위험천만한 일.

대통령 경호실은 자체적인 경호인력뿐 아니라 만신전에게도 함께하길 요청하며 이번 선포식의 주역으로 대우했다.

사자심왕과 기사들이 있는데, 그 누가 대통령을 해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안 대통령. 앞으로는 어찌할 생각이오?”

레온의 물음에 안 대통령은 옅은 한숨을 쉬며 당면한 문제들을 떠올렸다.

아직 남은 북한군 잔당 소탕 및 흡수가 필요했고, 각 지역에 국군을 파견해 실질적인 영토 점령이 필요하다.

북한 김씨 백두혈통들과 고위층들이 싹 뒈져준 덕에 뒷처리가 편하긴 했지만, 아직 공화국의 멸망을 받아들이지 못한 세력이 여럿 있다.

정확히는 악마가 북한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군벌들 말이다.

‘악마 놈들한테 항전했다는 저항군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마냥 우리 편은 아니니까.’

지금도 아직 함경도에는 빨치산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그들은 한동안 국군의 골칫거리로 작용할 것이다.

“일단 북한 잔존 인민들의 유화작업이 이뤄줘야겠지요. 오늘 통일 선포식을 무리하게 앞당긴 건 그들에게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과연, 더이상의 저항은 의미 없으니 어서 합류해서 광명 찾으라는 거군.”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렇지요. 어쨌든 그들도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 될 테니까요.”

안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것을 레온에게 슬며시 제안했다.

“폐하와 만신전이 우리 민족의 숙원사업에 크나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레온은 안 대통령의 의도를 알았다. 통일이 되면 가장 큰 문제가 북한 주민들의 흡수와 새로운 영토의 안정화다.

“당면한 문제는 식량과 치안이겠군.”

“예, 물론 저희 정부가 총력을 다하겠습니다만······.”

“걱정말게, 안 대통령. 내 심력을 다해 도울 것이야.”

“폐하···!”

안 대통령은 감격한 듯 환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도 알고 있다.

왕과 왕의 이야기에서는 결코 무상으로 주고받는 일이 없음을.

이쪽에서 무언가를 받아냈다면 무언가를 내주는 것도 정치역학의 기본이다. 라이온하트식 궁중정치는 좀 더 품위를 지킬 뿐, 근본을 따지면 현대 정치와 크게 다를 것 없다.

“이번 점령지에서의 만신전 포교활동을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후후, 정부는 종교 중립성을 지켜야했던 게 아니었소?”

“데메라 여신님의 교리나 아리아나 여신님의 교리부터 앞세우면 적당히 뭉갤 수 있습니다. 치안교육과 식량 자구책은 중요하니까요.”

남한은 부유한 국가이지만, 그렇다고 2천만이 넘는 가난한 북한 주민들을 무상으로 먹여살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데메라 여신의 교리를 적용해 각 지역에 자체적으로 식량을 생산하고 끔찍한 영양실조와 고질병들이 치유되어간다면 의료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의 강령만 잘 가르친다면 향후 있을 남북 주민들간의 충돌을 크게 줄일 수 있겠지.

북한 주민들이 태생부터 악한 존재라고 말할 생각은 없지만, 후진국일수록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 일반적인 도덕성이 결여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당장 북한 주민 대다수가 ‘빙두’라는 북한산 마약에 찌들어 살고 있지 않은가? 이것부터 해결해야 앞으로 교류가 원만해질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네. 이건 안 대통령에도 다소 과감한 결단이 필요할 것이야.”

“그게··· 뭡니까?”

“평양을 짐에게 내어주게.”

평양을 내어준다. 그 말에는 안 대통령도 할 말을 잃었다.

비록 300만 평양시민과 지도층이 몰살당한 텅텅 빈 도시라 할지라도 북한에서 평양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지난 80년간 북한은 빈곤한 경제력 속에서 평양과 그 인근 도시만을 개발해왔고, 모든 시설과 인프라가 평양에 몰려 있었다.

안 대통령이 굳이 평양까지 와서 통일한국 선포식을 한 건 이곳이 그런 상징적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 설마······.”

이곳에 자신의 왕국이라도 세울 셈인 건가? 안 대통령의 시선에 레온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짐은 대한민국의 적법한 영토를 인정하네. 주권을 가진 국가의 영토를 강탈할 생각 따윈 없어.”

레온이 이곳 평양을 내어달라 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세계수가 이곳에 심어졌네. 숲과 나무의 여신께서 저 안에 기거하시는 한, 짐은 이곳을 가꾸어 그분이 할 일을 보좌해야 해.”

“아, 세계수······.”

안 대통령은 방금 전까지 통일 선포식의 배경이 되었던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류경호텔을 대신해 우뚝 자라난 세계수는 그 길이가 무려 우주에 맞닿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자라나고 있어 인류가 궤도 엘리베이터를 개발하면 저런 사이즈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과거, 달의 여신께 대죄를 지어 봉사를 할 때, 세계수를 오르내리며 달까지 신전의 주춧돌을 옮겼었지. 이르민께서 짐을 위해 친히 달까지 가지를 펼쳐주셨네.”

“다, 달까지도 닿는 겁니까?”

“그렇지. 지금은 힘들겠지만, 그를 위해 주변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어.”

어마어마한 이야기였다.

레온의 말대로라면 한국에, 이 한반도 땅에 궤도 엘리베이터의 가능성을 가진 거대 구조물이 생겨난단 것 아닌가?

-꿀꺽!

비전문가인 안 대통령이 순간 든 생각에도 엄청난 이야기였다.

“그, 폐하··· 특별자치시라는 게, 저희가 원한다고 막 허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옵고······.”

이런 엄청난 시설은 정부의 관리하에 두어야만 한다. 만신전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그것이 꼭 자치도시를 허락하는 방안이 아니어도──

“이르민께서 정부의 관리를 받으시겠는가?”

“으음···!”

의도를 단숨에 꿰뚫은 레온의 말에 말문이 막히는 안 대통령.

“바티칸시국과 같은 예를 두어도 괜찮네. 그보다 규모가 좀 크긴 하지만, 자치도시를 다스릴 여신과 숲의 현자들은 그대들을 존중하겠지.”

“예? 폐하께서 국가수장이 되는 게 아니십니까?”

레온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짐은 라이온하트의 사자심왕이다. 세계수와 그 현자들은 짐의 가장 강력한 동맹이었으나 결코 수직관계가 아니야.”

물론 당장은 이곳을 가꾸고 다스릴 트리맨들과 요정들이 없기에 레온이 대신해야 할 것이다.

“끙··· 일단 저희도 회의와 함께 여론을 설득할 준비를 해보겠습니다. 아마 만신전에 대한 여론이라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환호하겠지. 당장 레온을 국회로! 를 외치는 판국인데, 레온이 직접 다스리진 않을 거라곤 하나 레온과 밀접한 커미션이 있는 내륙국이 생기는 것이다.

이번 전쟁이 단순히 남한의 안보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위기였음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 요구가 과한 것도 아니었고.

“맞다, 폐하. 전후처리 문제에 대해 폐하께 드려야 할 정보가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저항군’ 이야깁니다.”

안 대통령은 천진수와 강진성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그에게 전했다.

“지금 그들을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안 대통령은 은근히 레온이 내릴 처우를 기대하며 그를 안내했다.

* * * *

국군과 합류한 북한 헌터들과 신검길드 그리고 청성길드의 증언으로 전쟁의 내막이 드러났다.

특사기에서 내린 두 길드를 납치하고, 만신전 전세기에 미사일을 날렸으며 다수의 항공군을 남한으로 보내 귀순시켰다.

여러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 행적들은 그들 나름의 필사적인 작전이었다.

“공화국이 멸망한 날, 악마들이 남은 장군들에게 고했지비.”

악마의 휘하로 들어와 불멸의 삶을 누벼라.

그 혼돈 속에서 잔존 북한군들은 저마다 선택을 했다. 대부분이 굴종을 선택했고──

“여러분들은 저항을 선택했군요?”

군 조사관의 물음에 노인은 강인한 시선으로 맞받아쳤다.

“내래 인민을 벗겨먹은 적은 있어도, 악마 놈들에게 동족을 팔아치우는 짓은 할 수 없었지비. 그거이 사람이 할짓이간?

북한 호위총국 부사령관 리철웅 상장.

그는 온갖 더러운 일을 다 하면서 인민의 고혈을 빨아재끼던 김씨 돼지들에게 충성하던 직속 친위대였다.

그런 그조차도 이건 아니라고 봤다.

사람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동족을 악마에게 팔아넘기는 악행은 아무리 신을 믿지 않는 그라 해도 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그는 호위총국, 정찰총국, 5군단과 6군단 등 적지 않은 수의 북한군을 결집해 저항을 선택했지만, 이미 대부분의 인민군이 북한에 굴종하기를 선택한 마당이었다.

당장 그들조차 대적하기 어려운 판국에 악마들까지 상대할 여력이 없었던 그들은 극단적 선택을 내렸다.

“기래서 남조선을 끌어들였소. 우리가 남조선을 공격하면 남조선도 공화국과 전쟁을 할 수밖에 없을 테니.”

전세기가 공격당한 이상 남한은 북한과 전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 덕에 악마들도 자신들의 계획보다 이르게 남한과의 전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어찌 보면 이 전쟁의 1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딱 한 가지.

딱 한 가지가 걸렸다.

국군 조사관은 저항군 수장의 증언을 정리하며 슬쩍 조사실 유리관 너머로 시선을 보냈다.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저곳에서는 이곳이 보일 터. 과연, 그분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그래서 우리는 이제 어찌 되는 것이지?”

리철웅 상장은 통일한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알고 싶었다.

그는 잔존 북한군을 총괄하는 지도자이자 이번 전쟁의 1등 공신이다.

그 점을 어필하면 통일한국에서도 나름의 위치를 선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물론 이전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순 없겠지만 남한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도 이용할 수 있는 일이다.

남은 북한군을 총괄하며 저항활동을 벌인 자신은 북한을 대표하는··· 아니, 유일한 린민영웅이다.

통일한국에서는 북한 인민들에게도 투표권을 줘야하고 당연히 북한의 지역을 대표할 의원, 도지사, 시장 등을 선출할 수밖에 없다.

그 자리에 린민영웅인 자신과 그 수하들을 꽂아 넣는다면··· 과거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한 권력을 누릴 수 있으리라.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선택지를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인간이지만, 조금만 까딱하면 목이 날아가는 북한 정치계에서 호위총국 부사령관까지 올라온 노회한 정치인이다.

그는 이 혼란스러운 전후처리 과정에서도 자신의 세력을 부풀릴 수 있는 수완이 있는 사내였다.

“그건··· 저희가 결정할 사안이 아닌 듯하군요.”

“그거이 무슨 소리······.”

그때였다. 조사실의 문이 열리며 웬 무리들이 들어온다.

푸르스름한 정장을 입은 양키와 그 뒤에서 괴이한 불꽃 숨결을 내쉬는 갑주 덩어리. 이 자리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막 소년 티를 벗어난 소년까지.

레온과 불카누스 그리고 김재혁.

거울 너머로 그들을 지켜보던 만신전 일행들은 노회한 저항군 수장을 내려다봤다.

“당신들이 그 유명한 만신전──”

“어전이다! 당장 무릎 꿇지 못할까!”

“끄어어억?!”

밀폐된 공간에서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조금만 더했더라면 고막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자후에 늙은 장성은 무릎의 힘이 풀려버렸다.

“폐하께서 하명하실 것이다! 예를 다해 성심껏 받으라!”

“그, 그게 무슨······.”

리철웅 상장의 항변 아닌 항변을 무시하며 레온이 그를 내려다봤다.

“왕국법에 의하면 옥체에 손상을 입히려 한 죄. 영혼을 소멸시키는 것이 마땅하나··· 나름의 공적이 있으니 죄를 경감시켜주는 것도 전례가 없진 않겠지.”

“예, 폐하! 그럼 목을 칠깝쇼!?”

영혼 소멸 대신 단순한 죽음이라. 그것은 라이온하트의 대역죄인에게는 굉장히 관대한 처사였다.

하지만 레온은 고개를 저으며 더 관대함을 선사하기로 했다.

“그들은 신앙인이 아니다. 죽으면 그 영혼을 받아들여 줄 신이 아니 계시지. 지구인들의 입장을 배려해줄 필요가 있다.”

“흠, 그도 그러외다!”

“하여 짐은 이 아무개를 비롯해 그 휘하 군인들에게 옥체를 상하게 한 죄업에 연관을 밝혀내고 벌의 경중을 달리할 것이야.”

“한낱 버러지 농노 후보자들에게 그토록 관대한 처사를···! 이 불카누스, 감격스럽소이다!”

아니, 이것들이 대체 뭐라는 거야.

“일단 이 아무개와 책임자인 장성들에게는 자유민 예정 농노 5년형을 내린다. 짐이 직접 관대한 처우를 명했으니 죽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야.”

“기사들에게 명해두겠소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지 못한 리철웅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자 보좌역··· 정확히는 통역역으로 따라온 김재혁이 귓속말로 전했다.

“너 지금 농노 된 거야.”

미사일이 떨군 전세기에는 김재혁도 있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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