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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1

대민지원

통일한국 선포식이 있었지만, 아직 북한 전역을 장악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급한 게 점령한 북한지역의 대민지원 임무였는데, 주민들의 협조와 식량, 의료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다행이라면 국군은 그런 대민지원 임무에 이골이 난 베테랑들이었고, 통일에 대비한 대민지원 임무도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터라 별문제 없었다.

문제는 평양 인근의 대민지원 임무를 맡은 만신전 기사단들이었는데······.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른데?”

국군 장교는 그간 전장에서 활약하는 만신전 기사들을 보며 감탄했다.

그들은 무자비했다.

제네바 협약이니 인권 조례니, 전쟁법이니 얽매이지 않으며 적들을 잔혹할 정도로 짓밟았다.

특히 악마 추종자들인 북한군에 한해서는 용서가 없었는데, 그 취급이 실로 악랄하여 국군에서도 말이 나왔을 정도다.

그렇기에 북한 주민들을 다루는 대민지원 임무에서도 그런 무자비한 통치가 적용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기사단이 점령한 점령지의 주민들이 생각보다 고분고분한 게 아닌가? 특히 오리지널 라이온하트 기사단이라는 불타는 검 기사단의 점령지가 유독 평가점수가 높았다.

‘일견 보이는 대로 때려 부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야. 일반 양민 상대로는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호의적이다.’

점령지의 대민지원은 현대 군대의 필수덕목이다.

공공시설 정비나 민생 지원을 통해 주민들의 호감을 얻고 그들이 적대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만으로 크나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세계 중세 기사들이 이해하고 하는 것일까? 아니다.

만신전 나주 기사단 같은 현대 지구인들로 구성된 기사단원들과 달리 수뇌부는 다른 가치 속에서 살아온 이들.

그럼에도 힘없는 일반 양민에 대한 우호도가 굉장히 높았다.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우호성이 강하군. 오크나 고블린 같은 이종족과 투닥거려서 그런 건가?’

그래서 한 장교가 물었다.

“만신전 부대의 대민지원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굉장히 성공적이더군요. 주민들도 잘 따라주고 있고요. 대체 어떤 비결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이 질문에 레온은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당근과 채찍.”

생각한 것 이상으로 평범한 대답이었다.

“왜 그러지?”

“아, 아뇨. 조금 평범한 대답이라··· 뭔가 특별한 방법이 있지 않았나 기대했었습니다.”

“백성을 다룬다는 것은 본디 그런 것이다. 상벌을 확실히 하고 지배자로서 그들을 배불리 하고 안전을 지켜준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그럼 그들 또한 마땅히 왕과 귀족에게 충성하는 법이다.”

통치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 기본을 못 지켜서 문제였지.

“너희 경전에서도 내내 강조하는 것이 아니더냐. 백성을 사랑하고 덕으로서 통치하라. 원래 기본만 해도 백성은 따라주는 법이다.”

“유교 경전도 읽으셨습니까? 학식이 대단하시군요.”

“민주주의보다는 훨씬 낫더구나.”

“크, 크흠···!”

민주국가의 군인이자 시대의 귀인 앞에 선 장교로서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난처한 말이었다.

“그, 그보다 다들 의외로 의료지식에 해박하시군요?”

장교는 얼버무리며 대민지원을 하는 불타는 검 기사들을 보았다.

그들은 타고난 전쟁꾼들이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의료지식이 해박하다는 것이다.

주로 외상에 한해서였지만, 라이온하트 왕국은 축복받은 작물을 상시 섭취해 몸 안에 병이 생길 일이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라이하르 경! 여기 환자분 데려왔어요! 옆동네에서 오셨대요!”

보라, 국군 의무대가 근처에 있는데도 북한 인민들은 불타는 검 기사단 막사를 찾아왔다.

“하리 경, 이쪽에 누이십시오.”

갑옷 차림의 성배 기사단원이 진료를 맡는 광경은 참으로 어색한 광경이었으나 라이하르 경은 능숙하게 환자를 진찰했다.

“노인장은 어디가 아파서 왔는가?”

“누, 눈이 잘 안 보여서······.”

“노환이라기엔 한창 때고··· 먹는 게 안 좋아서 그렇군. 녹내장이라, 파멸학파 마법사 놈들의 저주에 맞은 애송이들이나 이런 병에 걸렸는데··· 이곳은 참 신기한 땅이야.”

라이하르 경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에 불을 일으키더니 대뜸 노인장의 눈에 지져댔다.

“끼아아아아악!”

“어허! 어느 안전이라고 꽥꽥 소리를 질러대! 조용!”

어린애 다루듯이 귓볼을 쭉 당기자 그 아픔에 멈칫거리는 노인. 그녀는 그제야 제 눈에 지져진 불꽃이 전혀 자신을 다치지 않게 했음을 깨달았다.

“이, 이거이 대체······.”

“삿된 기운은 다 쫓아냈으니 이제 눈이 좀 맑아졌을 거요.”

정말이었다. 노인은 방금까지 침침하던 눈이 마치 동해바다처럼 해맑다는 것을 깨닫고 파르르 떨었다.

“누, 눈이······.”

이십 년을 보이지 않던 눈이 나았다는 기적에 놀라는 와중에 라이하르가 노인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밀어냈다.

“가서 나눠주는 스프 좀 먹고, 최 사제의 교육 좀 받다가 가게. 거기 평민 계집! 자리 그만 차지하고 절이나 하고 떠나라!”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인은 반쯤 실성한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데메라 사제들이 모인 천막으로 가 만신전 교리에 대해 교육을 받고 돌아갔다.

무언가 훈훈하달지 성스럽달지 모호한 경계에 있는 광경이 펼쳤지만, 꼭 이렇게 좋은 장면만 보여주는 건 아니었다.

만신전 인민군 포로 수용장.

이곳에는 평양이 만신전에 의해 완전히 점령된 이후 속속 항복한 인민군들이 붙잡혀 있었다.

“이, 이거 놓으라! 놓으라 개간나 새끼들아!”

“양키들의 하수인! 더러운 자본주의자!”

대부분의 인민군은 고분고분 포로 수용소에 들어갔지만, 개중에는 저항하는 이들도 많았다.

“아 쫌! 암전히 좀 있읍시다!”

“다들 진정하고 순번대로 들어가세요!”

만신전 나주 기사단. 김재혁과 한수호는 빨치산 활동을 하며 저항하던 청년 돌격대원들을 묶어 포로 수용소까지 끌고 왔다.

“김재혁 경! 한수호 경!”

입구에서부터 두 사람을 반기는 포로 수용소 관리관 타르한 경.

그는 라크샤르와의 전투에서 입은 부상을 치료할 겸 포로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아, 타르한 경. 몸은 괜찮으세요?”

수호의 예의 바른 태도에 그는 껄껄 웃으며 답했다.

“허허, 몸이 쑤실 정도요. 폐하께서 휴식을 명하지 않으셨다면 진작 말을 타고 전장으로 향했을 것인데.”

“밖에서도 큰 싸움은 안 일어나요. 라이하르 경도 환자들 치료하고 전도한다고 지루한 작업을 반복하고 계시거든요.”

“차라리 쌈박질하고 싶다고 함다.”

“껄껄, 그래도 바깥 공기는 맡으니 부럽구려.”

저항활동이 있다곤 해도 소규모 게릴라 활동에 불과하다.

이미 잔존 인민군 최대파벌인 저항군이 투항한 마당에 이들의 저항은 의미가 없었다.

“그나저나 타르한 경은 어떻슴까? 포로 관리하면서 약식재판도 하신다 들었는데.”

“괜찮은 건가요? 판사나 검사도 없이······.”

“성배 기사단원에겐 재판의 판관을 맡을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다네. 법정에선 본작이 곧 검사이고 판관이지.”

새삼스럽지만, 라이온하트의 기사들은 대체 뭐였던 걸까?

징병 권한이나 전쟁 권한 같은 거야 그렇다 쳐도 법적 권한까지 낭낭하게 가지고 있는 사회의 최상위층.

남용되기 쉬운 막강한 권한이었으나 놀랍게도 이들이 철저하게 FM으로 일을 처리하는 정직한 엘리트라는 것이다.

“뭐, 평소에는 왕국법을 공부하고 등용된 판관이 하지만, 긴급시에는 어쩔 수 없지 않나. 우리 라이온하트는 서로간의 권리를 이해하고 침해하지 않는다네.”

뭐든지 유도리 있게 처리하는데도 나라가 잘만 굴러갔다는 모양이니 이쪽으로서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조금, 아주 조금 문제가 있다면··· 그 법이 좀 많이 가혹하달까?

“그래서 이놈들은 무슨 죄로 끌려왔소?”

“어음··· 그 청년돌격대? 라는 친구들인데, 주민들을 많이 괴롭힌 모양이더라구요. 이놈은 약탈에──”

“약타아아알? 군인이란 놈이? 약타아아아알?”

눈깔이 돌아간 타르한 경의 시선에 재혁은 이걸 말해야 하나 싶었지만, 다 저놈의 업보인 걸 어쩌랴.

“그리고 강제추행 신고가 십수 건··· 뭐, 그쪽 부대에선 일상적인 일이었다고──”

“페토스시여. 지금 한 놈 올라갑니다.”

검을 뽑아버리는 타르한 경. 타오르는 검이 그의 분노를 대변했다.

[이딴 영혼 필요 없어! 내가 쓰레기 소각장인 줄 아느냐?!]

자신에게 바쳐지는 죄인의 영혼을 거부한 페토스는 기사들에게 복음전도회나 잘하라고 당부했고.

“으아아악! 미친 깡통이 인민 잡는다!”

“사, 사람살려!”

“아이고, 타르한 경. 멀쩡한 사람 태워죽이지 말고 노동력으로라도 써먹읍시다. 평양에 사람 부족하다던데, 농노형? 죄질 따라 3년부터 시작?”

“재혁이 너도 많이 물들었구나······.”

이렇듯 사로잡힌 인민군들은 죄질에 따라 석방되고 양민이 되는가 하면 철저한 취조 끝에 농노형을 선고받았다.

“우리 농노 친구들, 염장무 많이 먹는다매. 우리도 비슷해.”

물에 소금하고 설탕 좀 섞은 특식으로 사람을 십년 넘게 부려먹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경제적인가.

일주일 새 획득한 삼천 농노의 주간 식비가 백만원 내외라는 기적의 장부를 받아든 국군 감찰관은 피골이 상접한 수용소 내 농노들을 슬쩍 보고는 펜대를 굴렸다.

주간 식비 : 1,000,000 (원).

-서걱서걱!

주간 식비 : 1,000,000 00(원)

“문제없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타르한 경.”

“소령도 수고가 많으시오.”

전쟁이 끝나고 평양 인근의 군부대 해체도 벌써 일주일.

만신전 포로 수용소의 포로들은 매우 인도적인 처우와 안락한 수용소 생활을 보장 받고 있습니다.

“······,”

“······.”

가라로 처리된 보고서를 읽은 국군 지도부는 슬쩍 서류를 덮었다.

“우리는 모르는 걸로.”

“전투 중에 자료가 소실된 걸로 처리하죠.”

“어유, 북괴군 포탄이 하필 자료 보관실을 타격했네.”

전쟁 중의 몇 안 되는 유익한 일이었다.

* * * *

만신전은 한국 정부와 국민여론의 지지로 평양의 세계수 성역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그 일이 마냥 순조롭게 진행되진 못했다.

“새로운 평양시 입주민 절차에 추가인력 지원이 필요해요!”

“구대성 경이 힘 써주고 있지만, 문제는 식량 배송이 큰일이에요!”

만신전이 그간 세력을 크게 불리긴 했지만, 그 대부분의 군사력에 치중되어 있다.

1만 명에 달하는 맨앳암즈와 성법을 다루는 기사들은 대민지원 임무에서도 대활약 중이었지만, 평양이라는 대도시와 그 인근을 지휘통제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 손을 벌리자니 국군은 국군대로 바빠서 도와주기도 벅찬 상황.

본래라면 만신전은 이런 행정업무의 폭주를 커버할 수 있는 최고의 존재가 있다.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 야크트 스피너.

미래세계의 강인공지능이자 전자행정업무의 절대강자.

평범한 인간은 수백 년 걸릴 업무량도 야피의 손에 쥐어지면 1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검토까지 0.5초. 업무사안에 따라 수천 가지가 넘는 방향성 검토와 시뮬레이션 후 서브 플랜까지 2.5초. 남은 7초는 같은 작업을 두번 더 반복하는 데 사용된다.

그런 압도적인 업무처리능력을 가진 야피가 현재 부재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라크샤르와의 전투에서 야피는 한 번 부서졌던 동체를 움직이는 동력원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애초에 망가진 원자로가 신성이라는 비과학적인 힘에 의해 움직이던 야피였다.

신성이 차단되면서 기능이 정지했을 뿐 아니라 무리한 신성 운용으로 레온의 갑주를 연마했으니 그 대미지가 누적된 것이다.

그렇게 전쟁이 끝난 지도 일주일.

“끼룩······.”

야피는 스르륵 열리는 시야에 고개를 꾸벅이며 일어섰다.

오랫동안 전력이 공급되지 않은 것 같은 부자연스러운 노곤함. 기계인 야피에게는 흔치 않은 굼뜬 움직임이었다.

“주변지형지물 확인. 정보개찬.”

야피는 이곳이 낯선 곳임을 알았다. 평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전 주석의 침실. 평소의 야피라면 스파이 로봇으로 확보한 데이터와 대조에 단박에 알아냈겠지만, 이상하게 정보 검색이 느리다.

무엇보다 사고 자체가 느려진 것 같은 기시감. 야피가 스스로의 낯선 감각에 당황스러워할 때였다.

“엇! 깨어나셨네요!”

붉은댕기머리 소녀, 야피는 그 유기물 개체명이 한하리임을 ‘기억했다’.

“유기물 개체명 한하리.”

“아아~ 여전히 딱딱한 말투. ‘임시 몸’이라곤 해도 모처럼 귀여워졌으니 좀 안 바뀌나요?”

뭐라는 거야, 이 하등한 유기물이.

야피는 평소대로 한하리를 괴롭히는 108가지 방법을 떠올리려 했으니 여전히 검색 프로세서가 작동하지 않음에 고개를 기웃거렸다.

“끼룩?”

그리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다. 평소대로의 음성 프로세서나 음성인식기능이 명백히 이질적이다.

“자자~ 씻겨드리러 온 건데, 모처럼 일어나셨으니까 스스로 씻어볼까요?”

스윽, 야피를 부축하는 하리.

“만지지 마라, 유기···체?”

평소의 눈높이가 아니다. 야피는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정확히는 ‘방법’을 모르는 주행방식 탓에 하리가 이끄는 대로 끌려갔고, 곧 욕실의 거울 앞에 설 수 있었다.

“······.”

별철로 보강된 차갑고 둥그러운 동체.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도 한눈에 파악하는 360도 전방위 고성능 카메라 아이. 시가전에서의 고속기동을 상정한 여덟 개의 다리와 기계팔들.

“끼룩?”

없다. 보이질 않는다.

분명 위치상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을 터인 거울에는 자신의 세련된 미래기술의 결정체가 아닌──

“어때요? 귀엽지 않나요?”

평생 자르지 않은 것처럼 바닥을 훑는 회색 머리카락, 여덟 개 360도 시야각을 제공하던 고성능 카메라 아이는 맑고 투명한 은색으로 변모해 있다.

야피가 항상 유기체의 수준 낮은 방한대책으로 비웃던 비효율적 옷가지들은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흉부를 애써 가리고 있었고, 차갑고 세련된 강철의 피부는 연약하고 부드러운 살결로 대체되어 있다.

이건 검색엔진이 기동하지 않는 야피라도 알 수 있었다.

“조똈다?”

“어허, 나쁜 말!”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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