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33

231. 소꿉친구 – 머리띠

[ 업적 : 마수 사냥 – ‘2’, 몸에 미약하게 마나가 깃듭니다. ]

루벤이 동료들을 이끌고 돌아왔을 때, 그들의 스승 레브는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홉 명의 청년들은 꿀꺽, 침을 삼켰다.

태풍이 몰아친 것처럼 나무들이 부러지고, 뽑혀 있었다. 땅을 긁으며 발버둥 친 흔적이 처절하다.

그러나 그 처절한 발버둥은 도움이 되지 못한 듯했다. 흔적의 당사자인 오안타후는 무릎이 잘린 채로 엎어져 있었고, 깨진 두개골에서는 뇌수가 피에 섞여 흘러내렸다. 최후에 달아나려 했던 것인지 양손의 손톱이 죄다 부러져 있었다.

“적당히 토막 쳐서 옮겨라.”

레브가 이마를 훔치며 말했다. 제자들은 군말 없이 작업에 착수했다.

버릴 곳은 버리고 가장 먹기 좋은 부위만 골라냈음에도 그들은 수레가 필요했다. 다행히 에우타와 에넨을 데려갔던 반느가 마을 사람들을 데려오면서 작업이 수월해졌다.

우에나 부족 사람들은 무척 고마워했다. 기사님들이 아니었으면 에넨은 물론 마을까지 위험했을 거라며 마수를 사냥한 위대한 용사들에게 술과 잔치를 베풀었다.

레브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니요. 사실 우리가 잡은 게 아니라 대장님이 혼자…” 흥겹게 떠드는 루벤을 보며 술을 홀짝였다.

여기서 할 일은 다 했구나. 슬슬 루테티아로 떠나야겠다, 생각하는데 에우타의 할머니가 다가왔다. 할머니는 늘 그랬듯이 요상한 무녀의 복장을 하고 계셨다.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려는 걸까?

레브는 적당히 겸양할 요량이었으나, 할머니가 가타부타 말없이 손을 잡아끌었다. 입이 열린 건 본인의 집으로 가면서였다.

“내 손녀는 죽을 운명이었어.”

느릿한 걸음걸이. 노인에게 붙들린 팔이 알 수 없이 단단하다.

“세레스 님께서 말씀하셨네. 에넨은 무녀가 되지 못할 거라고… 들어오게. 세레스 님께서 부르시네.”

남매의 집은 포근한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보기 드물게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집에는 에우타와 에넨이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고, 작은 거실 천장엔 푸른 휘장이 잔뜩 매달려 시야를 어지럽혔다.

할머니가 강이 그려진 그림에 넓은 소매를 펄럭이며 절을 올렸다. 제사상에 불을 밝히곤 서랍에서 ‘머리띠’를 꺼내 들었다.

죽은 며느리의 머리띠였던가.

예전에 레브에게 건네준 적이 있는 에우타 어머니의 유품이었는데,

– 화르륵.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아니, 물길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푸른색으로 찰랑이며 사그라들었으니까.

그 순간 세상이 정지했다.

멀리서 들려오던 루벤의 흥겨운 노랫가락이 잦아들며 밤바람에 일렁이던 푸른 휘장들이 석고처럼 굳었다. 움직이는 건…

할머니뿐이었다.

단단하게 굳은 레브는 막 들이켠 숨을 어찌하지 못한 채로 할머니의 물끄럼한 시선을 받았다. 세월의 움푹움푹한 주름에 뒤덮인 할머니는 메아리치는 울림으로 말했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름이 ‘또’ 바뀌셨군요.

위험한 것 같지는 않다.

슬그머니 쥐어둔 검에 오러블레이드를 일으켜 속박을 떨쳐내려던 레브는 경청하기를 택했다. 눈이 푸른색으로 물결치는 할머니가 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제가 말씀드렸지요. 이렇게 될 거라고. 하지만 덕분에 다시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충고해주신 대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마터면 명맥이 끊어질 뻔했는데, 저를 섬길 아이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신께서는 참으로 얄궂으시군요. 과거에 당신이 지은 죄가 막중하다 한들 이리도 매몰차시니…

그때, 할머니의 몸이 옥죄여졌다.

거대한 손에 움켜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꺽꺽거리던 그녀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 추, 충고해 드릴 게 있습니다. 당신은 머지않아 기로에 설 것입니다. 그때 절대로 ‘당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연락하지 마십시오.

레브는 굳었던 세계가 깨지려 하는 걸 느꼈다. 로드란 강의 지배자, 세레스(Seares)가 할머니의 몸에서 뽑혀 나가며 읊조렸다.

= 아즈라 님. 부디 평안하시길…

“만나 뵈었는가?”

푸르게 물결치던 할머니의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도로롱- 남매의 코골이가 들렸고, 차가운 가을 밤바람에 다시금 휘장이 흔들렸다.

레브는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의문에 휩싸였다. 찌륵찌륵, 가을벌레 울음소리는 답을 주지 못했다.

* * *

레브는 이곳에 더는 용무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한동안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생각에 잠겨 허송세월하였고, 그의 검대는 그런 대장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대장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반느 비자인의 질문이었다. 그제야 레브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것도 아니다. 슬슬… 가자.”

곧 레오 덱스터와 레나 아이나르가 루테티아에 도착할 것이다. 그들이 에이브릴 성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것도 레나 아이나르가 임신하기 전에 루테티아에 가서 레오 덱스터를 만나야 했다.

거기까지 가는 시간을 제하더라도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일찍 가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한 레브는 제자들에게 짐을 꾸리라 일렀다.

한동안 생활한 통나무집을 비웠다.

그간 여물을 배불리 먹어 게을러진 말들을 일으켜 세운 뒤, 우에나 부족 사람들에게 이제 떠나겠노라 작별 인사를 하러 갔다.

“여기도 참 좋은데, 떠나려니 아쉽네. 다시 올 일이 있으려나?”

“나중에 또 오자. 우리 결혼한 다음에 신혼여행 겸해서… 싫어?”

“그것도 좋지.”

웬일로 반느 비자인이 루벤의 말에 수긍했다. 루벤은 히쭉히쭉 징그럽게 웃었고, 검대의 다른 인원들은 그러려니 하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한데 마을에는 손님이 와 있었다.백마 다섯 필과 십자교회의 문양이 새겨진 새하얀 마차가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레브는 ‘이건 또 뭐야?’ 궁금해하며 안으로 들어섰고, 눈에 불이 붙었다.

“자, 잘못 아신 거예요. 우리 할머니는 교회에 다녀요.”

“하, 할머니! 이것 놔!”

웬 성전사의 손에 남매의 할머니가 잡혀 있었다.

남매가 막아섰지만, 성전사의 걸음엔 거침이 없었다. 할머니는 머리끄덩이를 붙잡힌 채 속절없이 끌려갔다.

“이게 무슨 짓이냐!”

레브가 당장 달려들었다. 성전사의 앞을 막아서며 검을 뽑았으나, 성전사는 반응하지 않았다. 책임을 미루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남루한 옷차림의 사제가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맺혔음에도 머리칼이 새카만, 독특한 분위기의 노인이었다. 레브는 이 자를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이 부락 사람은 아닌 듯한데… 누구십니까? 누구시기에 교회의 일을 방해하시는지요.”

노인이 너그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나 말투에는 물러나라는 단호함과 어떤 위엄이 담겨 있었다.

“내가 누군진 네가 알 바 아니다. 네놈들이야말로 왜 죄 없는 토착민을 괴롭히는 것이냐?”

“오해하셨군요.”

나이 든 사제가 손가락질했다.

“죄가 있어서 벌하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자는 악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신이 아닌 다른 신을 믿는 이는 죽음으로 다스린다. ─ 삼십여 년 전에 십자교회가 세운 방침이었다.

우에나 부족 사람들은 나이 든 사제의 시선을 피했다. 그의 말마따나 에우타의 할머니는 십자교회의 신이 아닌 다른 신을 믿었다. 이를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믿는 신이 어떤 신인지는 그들도 잘 모른다. 우에나 부족은 정말 오랜 옛날에 개종하였고, 남매의 할머니는 이곳으로 시집온, 다른 부족의 사람이었다.

그래도 한 가족이 되었기에, 우에나 부족 사람들은 그녀가 다른 신을 믿는다는 걸 신고하지 않았다. 딱히 숨겨준 것도 아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그게 들통이 난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십자교회의 정점에 선…

나이 든 사제가 고개를 까닥였다. 성전사가 검을 들어 할머니의 목을 쳐버리려는 그때, 레브가 고함을 질렀다.

“그분을 죽이면 너희도 다 죽을 줄만 알아라.”

“…교회의 일을 방해하시겠다는 겁니까? 교회의 사업을 방해하는 자, 크란차르 드 프레데릭 1세의 칙령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어디 한번 처벌해 봐라.”

“…자바드 경.”

거구의 성전사가 나섰다. 막직한 철퇴를 든 그는 “신이시어! 악한 자들을 기억하소서!” 피아를 식별하는 신성 주문을 외쳤다.

깡패들을 죽였기 때문일까, 레브와 검대의 청년들 머리 위로 신성의 표식이 떠올랐다.

루테티아에 가야 하는데.

일이 심각해졌다. 그러나 레브는 물러서지 않았다.

“쳐라!”

성전사는 강하다.

온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재능을 가진 기사 지망생들이 몰려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개중 소수가 성전사 수습생으로 발탁되었다. 수년간의 혹독한 교육을 통해 성전사가 된 그들은 어지간한 왕국 기사와 비교해도 꿀릴 것이 없는데, 주신의 신력까지 나눠 받았다.

신을 모시는 성직자로 분류되어 비교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 뿐이지, 그들까지 포함해 대륙 최강의 기사를 논한다면 십중팔구 성전사가 꼽힐 것이었다.

레브의 제자들이 검을 다잡으며 자신들보다 강할 수밖에 없는 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 까앙!

레브가 성전사가 내리친 철퇴를 후려쳤다. 그 철 덩어리를 단번에 날려버리고는 높이 뛰어올라 녀석의 안면에 뒤돌려차기를 날렸다.

대륙 최강의 ‘기사’를 논할 때, 소드마스터는 포함되지 않는다. 최강의 인간을 논한다면 몰라도.

거구의 성전사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발길질을 피하며 날아간 철퇴를 아래에서 위로, 다시 올려 치려 했지만 레브는 놈의 어깨를 딛고 공중제비를 돌았다.

오안타후에게 그랬던 것처럼 녀석의 머리를 동강 내주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검날을 눕혀 검면으로 녀석의 머리를 때렸다. 성전사는 휘청,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어디 보자…’

사뿐히 착지한 레브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은 성전사는 두 명.

혼자서 처리해도 좋을 것이지만, 제자들에게 맡겨보았다. 열 명이서 성전사 두 명을 상대할 수 있나 보려고.

검대는 다섯 명씩, 두 패로 갈려 있었다. 반느 비자인이 이끄는 팀과 ‘하투’가 이끄는 팀이다.

“와하하! 여기도 봐라!”

반느 팀에 속한 루벤이 호기롭게 외쳤다.

다섯 명이서 한 명을 공격하는 것치고 너무 호기로워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착각할 것만 같다. 하지만 그의 조악한 검술 솜씨와는 별개로 내려찍는 힘이 예사롭지 않아서 성전사가 신성의 주문을 읊었다.

성전사가 든 방패가 빛난다. 꽈앙! 마치 도끼질하듯, 루벤의 검이 강맹하게 내리꽂혔음에도 성전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공방을 잠시 지켜보던 레브는 혀를 찼다.

‘이 정돈가. 그래도 저 정도면 어지간한 기사 세 명은 붙들 수 있겠네. 두 명이면 잡을 수도 있겠고.’

제자들의 실력을 평가한 레브가 싸움에 가세했다. 방패가 빛나건 말건, 거룩한 무언가가 성전사의 등에 내려앉건 말건, 순수하게 검술로 찍어누르곤 늙다리 사제 앞에 섰다.

“나도 십자교회와 척을 질 생각은 없다. 이 표식을 지워주고 조용히 물러가라.”

그런데… 이 사람을 내가 어디서 봤더라?

새카맣게 검은 머리를 한 늙은이. 분명히 어디서 보긴 봤다. 곰곰이 과거를 떠올리던 레브는 이윽고 이 자를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해냈다.

– “그럼 백작님께서 잘해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저도 제 나름대로 찾아보지요.”

–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 ‘특수한 작물’이 찾아지는 대로, 공사를 시작하지요.”

11번째 회차. 그가 레오 덱스터일 적, 움베르토 사이먼 백작의 저택에 머물 때였다. 이곳 신성 왕국에 온 것이 이번으로 네 번째밖에 안 돼서 떠올리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때, 나이 든 사제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로 레브의 기억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렇게는 안 되겠소이다. 당신은 죄지은 자, 그런 자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습니다.”

목을 꼿꼿하게 치켜든 남루한 차림의 노인.

미하에르 추기경이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