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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4

232. 소꿉친구 – 기묘한 동행

머쓱한 공기가 흐른다.

마차 오른편에 앉은 레브는 팔짱을 낀 채 침묵했고, 왼편에 앉은 미하에르 추기경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농경과 목축에 관한 책들이었다.

마차가 덜컹, 흔들리며 정차했다. 식사 시간이다. 레브와 추기경은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미하에르 추기경이 기지개를 켰다. 먹은 나이에 비해 어찌나 건강한지 그는 허리 한 번을 두드리지 않고 자신과 함께 사로잡힌 성전사들을 찾았다.

세 명의 성전사들은 마차 뒤켠에 걸터앉아 있었다.

발을 마차 밖으로 대롱대롱 내민 채 실려 온 것이었는데, 붙잡힌 것치곤 상태가 양호했다. 팔다리가 구속되지 않았고, 치료도 받았다. 식사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다들 식사하세요~”란 말에 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들은 포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기와 갑옷은 빼앗겼지만.

“고맙소.”

추기경이 배급받은 음식을 두고 성전사들과 식전 기도를 올렸다. 레브는 옹기종기 모인 그들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단단히 꼬였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와 그의 제자들 머리 위로 새하얀 신성의 표식이 떠올라 있었다.

어제, 레브는 에우타의 할머니를 죽이려 한 성전사들과 나이 든 사제의 신병을 구속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제까짓 것들이 고집을 피워 봤자 팔 한쪽 분질러 주면 표식을 지워주리라 생각했고, 그렇게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알게 된 사제의 정체가 어마어마했다.

미하에르 추기경이다.

무려 사십 년 전에도 추기경이었던 인물로, 그는 심지어 왕족이었다. {귀족 사회} 정보가 노인의 화려한 과거를 일러주었다.

그가 세속에 있었을 적의 이름은 크메안 드 타탈리아, 과거 벨리타 왕국의 제1 왕자였다. 아스타로트 대공이 뒤집어쓴 껍데기, 카로만 드 타탈리아 왕의 큰아버지인 셈인데 그는 1 왕자였음에도 후계자로 선택받지 못했다. 정통성을 중요시하는 벨리타 왕국에선 꽤 드문 일이다.

그 충격 때문일까, 크메안 드 타탈리아는 오른 왕국에서 온 공주와의 결혼을 앞두고 돌연 왕실을 떠나 십자교회에 투신했다. 그리고는 고작 2년 만에 수습생 딱지를 떨어내곤 당대 최고의 신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이런 거물의 팔을 부러뜨릴 수는 없다. 레브는 “이런, 실례했습니다.” 혀를 차며 심심한 사과를 건넸다.

그 결과가 이 꼴이다.

이 고집불통의 골칫덩어리를 놓아줄 수도, 겁박할 수도 없어서 레브는 신사적인 협정을 제안했다.

당신네를 당장 죽여버리지 않는 대가로 탈출하거나 우리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말아라. 그리하면 우리도 당신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며, 적당히 상황을 봐서 놓아주겠다 ─ 명예를 걸고 맹세했다. 레브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하에르 추기경은 승낙했다.

하지만 조건이 달렸다.

추기경은 성전사들의 검과 갑옷을 맡기고 자력으로 탈출을 시도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레브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알아서 움직이겠노라 선언했다.

합리적인 제안이어서 레브는 거부하지 못했는데, 이게 추기경이 느긋할 수 있는 이유였다.

이 수상쩍은 죄인들의 머리에 신성의 표식이 찍혔다. 이 신성 왕국 내에서 신성의 표식이 찍혔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못함을 의미했다.

성전사가 공인한 범죄자들.

미하에르 추기경은 레브 일행이 어느 도시든 마을이든, 들리는 즉시 협정이 깨질 것을 알았다. 산길을 통해 달아나 봤자 머지않아 십자교회가 자신을 찾기 시작할 터라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레브와 미하에르 추기경 일행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됐다.

레브는 교회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우에나 부족 마을을 얼른 떠났고, 에우타의 할머니는 손주들을 데리고 죽은 며느리의 고향(하타타 부족)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차라리 잘 됐구려.”

에우타 할머니의 말이었다.

에우타가 사냥하는 법도 배웠겠다, 사냥을 업으로 삼은 하타타 부족에 가서 사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레브는 작은 수레를 몰아 떠나는 조손 가정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지금.

마찬가지로 배급을 받아 식사하는 레브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이 심했는데, 이대로는 루테티아에 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때는 가을, 레오 덱스터와 레나 아이나르가 루테티아에 거의 도착했을 것이다. 한데 그들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고, 표식을 단 채로 루테티아에 입성했다간 사형이다.

“이 몸이 소드마스터이니라!” ─ 허세를 떨어볼 수는 있겠지만, 그럼 내 제자들은? 그리고 과연 저 추기경 놈이 가만히 있을까? 심히 우려스러웠다.

그냥 죽여버릴까?

명예고 나발이고… 내가 그런 걸 언제 신경 썼다고.

레브는 추기경을 몰래 죽여버리고 루테티아 밖에서 레오가 나올 걸 기다리다가 데려갈 것을 잠시 궁리했으나, 이내 가로막혔다.

그때는 레나 아이나르가 갓 임신한 상태일 것이다. 늦든 빠르든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레오 덱스터는 에이브릴 성으로 돌아가 버릴 것이고, 레브는 그 친구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레오가 민서에게 비협조적인 걸 떠나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편지를 보내는 것도 생각해봤다. 성 밖에서 돈으로 사람을 부리는 정도야 가능하다.

하지만 ‘지난 회차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을’ 레오 덱스터가 고작 편지를 보고 깨어날지가 의문이었다. 만약 반응하지 않으면 그의 도움을 받는 건 물 건너가는 거다.

외통수에 몰렸다.

레브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은 채 식사를 마쳤다. 십중팔구 이것도 민서가 말하는 {이벤트}일 것인데…

해도 해도 너무하다.

대가를 바라고 한 건 아니지만, 나름 좋은 일을 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추기경을 만나 발목이 붙들렸다.

민서였다면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질린다 질려.” 투덜거렸을지도 모르지만, 식사를 마친 레브는 두어 번의 심호흡으로 미련을 떨쳐낼 수 있었다.

에우타의 할머니도 그에게 참 고마운 분이었으므로 추기경을 만나 반복해서 사형을 당하고 있었을 그분을 도와준 게 억울한 일이 아니었다. 되려 레브는

‘에넨은 마수가 없어져서 이제 살았는데, 할머니는 앞으로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지?’

이게 더 걱정이었다.

…어떻게 하긴. 클리어하면 되지.

레브가 각오를 굳혔다.

소꿉친구 회차가 이번이 마지막이 되면 된다. 지난 거지남매 회차가 클리어되면서 다음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앞으로 소꿉친구 시나리오를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이번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레브가 자리에서 일어나 미하에르 추기경 곁으로 갔다. 자신이 이 작자를 무슨 이유로 만나게 된 건지 알아낼 요량으로 말을 걸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어디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요?”

“네, 맛있게 먹었습니다. 불편한 것도 없고요. 이 모든 게 주신께서 저희를 아끼시는 덕분입니다.”

…반느가 요리를 잘해서가 아니라?

레브는 이 추기경이 참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피차 사정이 있어 모양새가 이렇게 됐지만 서로 얼굴을 붉힐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추기경께서는 순례를 나오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기사이십니까? 아니면 귀족입니까? 저희 왕국 사람 같지는 않군요.”

“네, 타국에서 왔습니다. 제자들을 데리고 고즈넉하니 여행을 다니는 중입니다. 기사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그러시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죄를 지으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사람을 죽였습니다. 아, 반느. 고마워. 추기경님도 받으시지요.”

반느 비자인이 후식을 내왔다.

레브는 그녀가 건네준 작은 나무 종자를 추기경에게도 건네주었다. 다소 조악하게 만들어진 그것은…

달걀 푸딩! 이었다.

어디서 배웠는지 꽤 근사한 후식이다. 레브는 한 입을 턱, 베어 물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질문했다. 실패하면 고쳐먹을 방도가 없는 음식이었지만, 푸딩은 다행히 달달하니 맛이 있었다.

“한데 추기경께서 그 외진 토착민 부락에는 무슨 일이셨습니까? 추기경님이 오실 만한 곳이 아니었는걸요. 역병이 돈 것도 아니고.”

“순례길에 오른 사제가 가야 할 곳과 가지 않아야 할 곳의 구별이 있겠습니까? 신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찾아가는 것이지요.”

“…그렇습니까?”

그게 아닐 텐데.

레브는 이자가 어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순례길에 올랐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사이먼 백작을 만나 대화를 나눴고, 레브는 레오 덱스터의 몸으로 이를 일부 엿들었었다.

‘특수한 작물’이라고 했던가.

그게 찾아지는 대로 무슨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눈 움베르토 사이먼 백작은 다소 피곤한 표정이었다.

추기경이 뭘 요구한 게 틀림없다. 레브는 슬며시 돌려 물었다.

“순례를 오래 도실 계획이셨나 봅니다. 책을 좀 챙겨오셨더군요. 농경이나 목축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추기경이 푸딩을 다른 성전사에게 건네주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후식을 생략한 그는 오로지 깨끗한 맹물만으로 입가심했다.

“네. 실은 어느 낙후된 땅이 있습니다. 보메르 화산 동남쪽에 있는 땅인데, 여름이면 화산이 뿜는 구름에 햇볕이 가려져 작물이 자라지 못합니다. 한창 햇볕을 받아야 할 시기인데 말이죠.”

“…들넋바람 때문이겠군요. 아하! 그래서 버섯을 키우는 우에나 부족에 들리신 거고요.”

추기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륙에는 사계절에 따라 다른 바람이 분다. 봄에는 바람이 대륙을 둘러싸듯 시계방향으로 불었고, 여름에는 바람이 바다에서 불어왔다. 가을에는 봄과는 반대로 반시계방향으로 바람이 불었고, 겨울에는 바다로 불어 나갔다.

개중 여름과 겨울에 부는 바람이 독특하다.

여름에는 대륙을 둘러싼 모든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 들어왔는데, 그 바람은 대륙 중앙의 오르빌에서 만나 강한 상승기류를 일으키며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반대로 겨울에는 대륙의 모든 해안선으로 바람이 불어 나갔는데, 그때는 강한 하강기류가 오르빌을 내리눌렀다.

그 때문에 여름에 부는 바람에는 ‘들넋바람’, 겨울에 부는 바람에는 ‘날넋바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신께서 여름에 숨을 들이켜고, 겨울에 숨을 내쉰다는 의미다.

어쨌든, 보매르 화산 동남쪽이라… 레브의 머리가 복잡하게 굴렀다.

거긴 ‘아그낙 남작가’가 있던 곳으로 예전 약혼관계 회차 때 그곳을 지나갔었다. 레나와 파혼하려 애쓰던 때여서 둘러보진 못했었다.

그래도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었으니, 아그낙 남작가는 사이먼 백작가의 공격을 받아 몰락했다.

어쩌다 그 강대한 사이먼 백작가와 가난한 아그낙 남작가 사이에서 영지전이 발발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멸족해 사라진 남작가의 영지를 사이먼 백작가가 대리 통치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잠깐,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데?’

변경백 직책을 가지지 않은 이상, 한 가문이 두 개의 영지를 보유하는 건 불법이다. 영지전이 끝나고 잠시 대리 통치하는 정도야 자연스러운 과정이겠으나, 두 개의 영지를 하나로 합치건, 신성 왕국을 지배하는 프레데릭 왕가에 바치건, 양자택일해야만 했다.

한데 아그낙 남작가가 몰락한 건 삼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사이먼 백작가가 아그낙 남작가의 영지를 통치했다는 뜻인데, 정상적인 왕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상적인 왕국이라면 말이다.

‘십자교회… 이 추기경이 무슨 짓을 했구나.’

프레데릭 왕가는 십자교회의 입김에 휩싸인 허수아비다. 레브는 이 추기경과 움베르토 사이먼 백작이 어떤 밀약을 맺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게 불법적인 일일 것이라는 것까지도…

레브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달걀 푸딩이 다 떨어져서는 아니고, 예전 약혼관계 회차 때 사이먼 백작가와 아그낙 남작가의 영지를 꼼꼼하게 둘러보지 않았던 게 아쉬워서였다. 물론 그때는 정신적으로 그럴 여력이 없었다.

‘사이먼 백작을 만나봐야겠다.’

레브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추기경과의 대담을 적당히 마무리한 그는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정했다.

그러나 북쪽에 있을 사이먼 백작의 영지로 곧장 향하지는 않았다.

빈손으로 갈 순 없지 않은가.

아홉 명의 청년들이 말을 몰아 호위하고, 마차 뒷켠에 탑승한 성전사들의 다리를 덜렁거리며 마차가 이틀을 달렸다. 그렇게 당도한 드넓은 평원에서 레브가 마차를 몰던 하투에게 손짓해 모두를 멈춰 세웠다.

“저걸 잡아간다.”

저 멀리 레브가 손가락질한 곳에 한 마리의 마수가 서 있었다.

평화롭게 풀을 뜯는 검은 말(馬).

‘도흑포마’였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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