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36

레온의 후계

평양 특별 자치시에 대한 논의가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사이, 레온은 다소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평양 개발과 일꾼으로 일할 북한과 남한인들. 그들이 자치시의 주민이 되면서 동시에 남한 국적을 유지하게 하는 방안.

도시는 어떻게 개발할 것이며 기존 평양의 재산권에 대한 처분 문제 등.

도시를 새로 개발하고 자치시를 선포하는 것은 많은 작업이 필요한 일이다. 이 도시의 지도자가 될 이들에게도 남겨줄 것들이 필요했다.

정말 너무도 많은 일들이 필요하고, 해야 할 일들은 많았지만──

“흠.”

레온은 의외로 할 일이 없었다.

도시개발계획? 야피가 해준다.

주변 치안정리? 기사단이 해준다.

정치적인 문제야 안 대통령이 국회와 조율해 해나가고 있고, 레온은 가끔 얼굴마담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정도다.

혼돈의 악마군주와 그 세력이 일소된 뒤로는 소소한 게이트 공략만이 있을 뿐. 그 공략대조차 레온이 직접 나설 만한 일은 아니었다.

요컨대 레온이 직접 나설 만한 일이 없다.

최근 흑룡의 교유에 열중하는 이유도 레온이 기본적으로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레온아, 할 일이 없느냐?]

“요즘은 그닥 할 일이 없군요.”

여신의 옥음에 레온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실제로도 그랬으니.

“하지만 이 또한 태평성대라는 증명 아니겠습니까. 왕이 무료하다는 것은 암군이거나 나라가 평안하다는 것이니 말입니다.”

[내 기사가 암군이 될 여지는 없으니.]

“바로 그렇습니다.”

레온은 스스로가 뛰어난 현군이라고까진 생각하지 않는다.

라이온하트의 사자심왕으로 권좌를 누릴 때도 그는 나랏일에 그리 유능한 편은 아니었다.

역사 속 현군들이 백성을 위해 기발하고 시대에 남을 위업을 세운 일은 없었으니까.

그는 그저 자신이 잘하는 일을 열심히 해내었을 뿐이다.

오크 죽이기. 악마 사냥. 흑마법사 고문.

레온이 왕국 내외에서 한 일들은 대부분 적들을 무력으로 벌하는 일들이다.

지금도 레온이 하고 있는 일들은 다른 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흑룡을 짓누르고 그가 용으로서 만신전에 도움이 되기 위한 일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레온 정도가 아니라면 흑룡은 무력으로 제 선생들을 내쫓을 테니.

[심심하다면 베아트리체의 공방에나 가보는 것이 어떠하냐?]

“비체에게 말입니까?”

아리아나의 제안에 레온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래, 여인 홀로 일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야. 무거운 것을 옮긴다든가······.]

“여신이시여, 비체는 꿈과 죽음의 신관장입니다. 무거운 물건 따위를 움직이는 것쯤이야 맨손으로도──”

[허허, 내 기사가 언제부터 네 여신의 말에 이리 토를 달았을꼬.]

레온은 여신께서 하는 말에 더 토 달지 않았다. 말없이 류경호텔 스위트룸을 나와 복도를 걷는다.

스위트룸을 나오자 곧장 황량해지는 내부. 50년 동안 건설 중이었던 류경호텔 내부는 적나라한 예산부족을 드러냈다.

“곧 탄생할 숲의 현자들에게 맡기려 했습니다만, 그래도 최소한의 내장공사는 해둬야겠습니다.”

[세계수의 뿌리가 내려와 있으니 가구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맞습니다. 트리맨들이나 엘프들은 나무를 깎아 만든 가구를 혐오하니 말입니다.”

그런 것 때문에 땔깜을 사용하고 숲을 개발하는 드워프들과 인간족과는 견원지간이었다. 종의 차이에서 오는 충돌은 어디에서든 있었으니 이를 조율하는 게 사자심왕의 역할이기도 했고.

[야피에게 맡겨보는 건 어떠하냐?]

“스피너 경 말입니까?”

레온은 야피의 작업방식에 대해 떠올렸지만, 엘프나 트리맨들과 충돌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고도로 발전된 문명사회의 결정체가 야피 아니던가? 자연보호니 조화니 하는 것에 조금도 관심이 없을 터.

[그 아해의 막나가는 방식이야 네가 말 한 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지. 친환경에 신경 쓰라고 하면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이다.]

“그것도 그렇긴 합니다.”

야피는 만신전의 재정을 홀로 관리하고 있다. 국고를 불리는 것이야 나랏일의 기본이지만, 야피는 그 역할을 어느 정도 제한당하고 있었다.

당장 야피가 가상화폐 생산에 주력하면 세계경제 쯤이야 단숨에 집어삼킬 수 있겠지.

하지만 올바른 방식을 추구하라는 레온의 모호한 요구 탓에 인간의 기준으로 보아도 건전한 재산증식을 하고 있지 않은가.

강인공지능의 압도적 연산능력 덕에 실패를 거의 안 해서 그렇지.

“후후······.”

[왜 그리 웃느냐?]

“그저, 스피너 경이 사자심왕이 되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보았습니다.]

[[······!]]

레온이 가볍게 던진 화두에 화들짝 놀란 건 아리아나 뿐이 아니었다.

페토스나 포마는 물론이고 데메라나 야피의 수호신인 헤토까지 기겁하고 만류했다.

[레온, 나의 등대여. 농으로라도 그런 말을 하지 말거라!]

“마냥 농은 아닌데 말입니다.”

레온의 대답에 헤토가 끼어들었다.

[큰일날 소리! 내 대장장이지만, 야피 그놈은 왕이 되면 제 백성들은 사이보그로 개조할 놈이다! 효율적이니 뭐니 하면서 임플란트 개조를 헌법으로 강제할 테지!]

“사이보그 개조가 그렇게까지 디스토피아적인 무언가는 아닙니다만?”

[그놈은 매트릭스를 만들 놈이다!]

“······.”

레온은 야피가 사자심왕이 되는 미래를 생각했다가 그라면 정말 그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피, 그 아가가 심성이 나쁜 아이는 아니지만······.]

“데메라께서도 탐탁치 않으십니까?”

자애로운 어머니까지도 그런 반응이자 레온도 의외인 듯 되물었다.

[농지에 아파트 개발을 하고 식량은 인조식품으로 때울 것 같구나······.]

“아······.”

야피의 문명세계에서는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다.

축산, 농수산물을 죄 공장개발로 때워버리고 시민들은 인공육 따위로 배를 채우던······.

“그렇다면 불카누스 경은──”

[[그놈은 더 안 된다!!]]

이전보다 더한 반발이 들려왔다.

[본녀는 심심하면 신성강림을 해대는 사자심왕 같은 건 반대이니!]

“플르시여, 불카누스 경이 그렇게 경우 없는 기사는 아닙니다.”

[레온아, 페토스가 전세계 사관학교에 복음회를 여는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

레온은 불카누스의 수호신인 페토스가 언제나 부족한 신앙으로 쪼들리는 것을 익히 들었다.

하여 마계에서 얻은 말탁인가 하는 신을 섬기는 신관에게서 얻은 지팡이로 성력을 지속적으로 보내주지 않는가.

신들은 불카누스가 만신의 대리인이 되면 온 신들이 성력부족으로 시달릴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불카누스는 레온처럼 때에 맞는 절약정신 같은 게 없으니.

“흠······.”

레온은 계단을 내려가며 차세대 사자심왕이 될 후보들을 찾았다.

야피나 불카누스나 사자심왕이 되기에 충분한 용력과 자질을 가지고 있다 생각했지만, 신들이 보기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비체나 카리나. 구대성이 남는군.’

하지만 구대성은 경험부족이다. 성배의 수호자는 대체로 성배기사들이 후임을 잇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구대성은 너무 어리고 경험이 적었다.

다른 성배기사들이 반발할 것이고 당장 불카누스부터 불복하겠지.

카리나는 일단 용의 심장이 문제다. 사자심장을 이식하기 위해선 일단 용의 심장을 차기 드라고니아 대공에게 물려줘야 한다.

레온처럼 두 심장 모두를 잠시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레온이라 가능했던 일.

용의 심장을 물려줄 후계를 낳는다면 모를까······.

‘젠장, 그건 못 봐줄 거 같군.’

딸아이와 혼인할 사내자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레온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런 꼬라지는 보기가 싫었다.

‘그렇다면······.’

“어머, 폐하. 어쩐 일이세요? 오늘은 흑룡의 교육일이 아닌데요?”

레온은 베아트리체의 공방으로 마련된 호실 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아, 비체. 어디 마실 나가시오?”

“네, 실험을 위해서요.”

레온은 베아트리체가 들고 있는 큼직한 보따리를 보았다. 그녀의 가녀린 손으로 들기에는 다소 언밸런스했으나 신관장인 그녀에게 힘이 모자랄 일은 없겠지.

무엇보다 뛰어난 마술사인 그녀가 무거운 짐 정도로 힘들어할 일은 없다.

“이리 주시오. 짐이 들어드리리다.”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레이디의 짐을 들어주는 것은 신사의 도리요.”

“그러시다면야······.”

레온은 베아트리체의 짐을 들어보곤 그것에서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용의 기운이군.”

“네, 흑룡에게서 수험료로 받은 것을 가공해봤답니다.”

레온과 베아트리체는 함께 흑룡을 가르치고 있었다.

레온은 육탄전을, 베아트리체는 마력 운용법을.

황금과 계약의 신 드라고니아는 용을 인간이 가르친다는 상황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이 시대에 제 자손을 가르칠 만한 이가 극소수라는 것을 인정했다.

베아트리체는 겸사겸사 흑룡에게서 수험료를 받았는데, 그것이 용의 사소한 부산물들이다.

“이를 들고 어디로 가실 생각이시오?”

“전에 제가 부탁드렸던 게이트가 있지요? 남포 근처에요.”

“흠, 제법 멀군. 스탈리온.”

레온은 빛의 신수를 불러들였다. 하얀 천마는 오직 사자심왕만을 제 등에 태우는 고고한 맹수지만, 베아트리체까진 의외로 순순히 등을 내어준다.

“짐의 손을 잡으시오.”

레온은 스탈리온의 안장에 올라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꺼이.”

* * * *

한반도 중부 상공. 서해안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북한 제2의 도시인 남포시에 도착한다.

인구가 백만 명에 육박하는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지만, 평양이 악마들의 수중에 떨어져 멸망했듯 남포시도 별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이 없어 황량해진 이 도시를 차지한 건 목포에서부터 쭉 올라와 해안가를 점령한 끼끼룩족이다.

남포시는 엄밀히 따지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평양 특별자치시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지금 북한은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

도미네이터급 잠수항모와 함께 북상하며 북한 해군을 섬멸하고 빈 도시를 점령한 끼끼룩족들은 자연스레 이곳을 자신의 도시처럼 차지했다.

그들도 엄밀히 따지면 남한 주민이니 남한 입장에서도 쫓아내기 애매한 상황.

그런 와중에 남포시 해안에 게이트가 출몰했고, 베아트리체는 게이트를 클리어 하려던 끼끼룩족 공략대에게 일시중지를 전달했다.

“실험을 위해서라곤 들었소만, 정확히 어떤 계획이오?”

남포시 해안가에 출몰한 게이트. 그 모래밭 위에서 베아트리체의 작업을 돕던 레온이 물었다.

“드래곤 피어에 대해 익히 알고 계시지요?”

“용이 자연스레 뿜어내는 기운이지.”

“네, 전에 게이트를 통해 드라고니아 제국으로 향할 적에 느꼈었지요. 강력한 신앙심의 가호를 받는다면 모를까 어지간한 헌터들도 꼼짝을 못하더군요.”

그것은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피어내는 강자의 기운이다. 존재의 격이 높은 존재일수록 하등한 존재를 짓누르는 힘이 존재한다.

그것은 단지 강함만으로 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비슷한 강자인 S급 헌터나 성배기사단원들이 같은 상위존재를 목도해도 달리 반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용의 비늘이나 부산물들은 용에게서 떨어져도 여전히 그 기운이 남더군요. 그것도 상당히 강력한 기운이요.”

“그렇소?”

말뚝을 박던 레온은 문득 주변에 끼끼룩족이 보이지 않음을 떠올렸다.

막 착지했을 때만 해도 레온에게 인사를 하러 오던 그들이었지만, 무언가 꺼림칙한 듯 서둘러 자리를 피한 것이다.

“용린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피한 것인가.”

“예, 신들의 가호를 받고 있는 그들도 용의 기운은 피하고 싶은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몬스터들은 어떨까요?

그런 질문에 레온은 눈이 번뜩였다.

“몬스터들이 용의 기운을 피할 것이다?”

“바로 그렇답니다. 그래서 게이트의 공략을 중단해달라 한 것이에요.”

베아트리체는 일부러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고 그곳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이 용의 기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던 것이다.

“재밌는 방법이로군. 짐의 치세에서는 생각지 못한 발상일세.”

그것도 당연했다. 레온의 치세에서 용은 쓰러뜨려야 할 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만신전에 드라고니아가 입신하고 공존을 택한 이상, 앞으로 탄생할 용족들 또한 라이온하트와 공존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용의 비늘 같은 것이야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터.

베아트리체는 그러한 미래를 예감하고 용의 힘을 활용할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그럼 던전 브레이크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테니 이곳에서 시간을 좀 보내볼까요?”

“모처럼 바다에 왔으니 놀이라도 하시겠소?”

“그건··· 삼가고 싶군요. 맨살을 드러내는 건 역시··· 부끄럽습니다.”

수영복을 그리 질색하던 베아트리체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짐이 말한 건 뱃놀이오만?”

“아······.”

레온의 능글맞은 대답에 베아트리체의 볼에 붉은 꽃이 피었다. 하지만 이내 부드럽게 화제를 돌리는 베아트리체.

“그나저나 플르께서 폐하를 말려달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무슨 이야기 중이셨나요?”

“아~ 별것 아니오. 짐의 뒤를 이을 사자심왕을 토로해본 것이니. 비체 그대도 강력한 후보라오.”

“······!”

레온이 가볍게 꺼낸 말이었지만, 베아트리체는 화들짝 놀라 덥석 레온의 손을 붙잡았다.

“안 돼요.”

“······비체?”

베아트리체는 슬픈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본다.

꼭. 꼬옥.

가녀린 손이 혹여나 도망칠 것처럼 힘을 주고 있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