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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7

235. 소꿉친구 – 아그낙 남작가

“아, 사람을 잘못 봤군. 미안함세.”

운을 띄워둔 레브는 브라이언을 지나쳐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삐걱대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기다리길 잠시, 털이 삐죽삐죽 돋아난 시궁창 쥐처럼 생긴 숙소 주인장이 다가왔다. 레브는 척 보기에도 지저분한 그에게 술과 간단한 안줏거리를 내오라 일렀다.

“선불입니…”

– 팅!

엄지로 튕긴 은화가 주인장의 손에 떨어졌다. 레브는 마치 은밀하고 불건전한 취미를 가진 소드마스터인 양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브라이언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여자도 데려와.”

“저… 여긴 여자를 취급하지 않는뎁쇼.”

“그럼 네 마누라라도 데려오던가.”

– 팅!

중지로 튕긴 은화가 이번엔 주인장의 가슴팍을 때렸다. 쥐를 닮은 주인장은 고개를 굽신거리며 술과 안주를 내오더니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졌다.

정말 제 마누라를 데려오려는 것일까?

레브는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미적지근한 술을 홀짝이며 브라이언의 동태를 살폈다.

브라이언은 그를 슬쩍슬쩍 훔쳐보고 있었다. 위대한 소드마스터께서 여기엔 무슨 일인지, 어떤 사람인지 눈가늠하는 것이었다.

좀 만만해 보일 필요가 있겠지.

술잔을 거의 비웠을 무렵에 주인장이 화장을 덕지덕지 진하게 바른 여자를 데려왔다. 레브는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물었다.

“주인장한테 마누라를 데려오라고 했는데… 맞아?”

여자는 마음껏 주무르라는 듯이 한쪽 어깨끈을 끌렀다.

“그런 거 좋아해요?”

“아니. 날 따라오는 어떤 녀석은 그런 것 같지만.”

“다행이네요. 전 그런 사람은 질색이에요. 저는 옆집에서 일하는데, 당신은 무슨 일을 해요?”

레브는 그 여자와 시시덕거리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보이는 행동과 달리 말투가 점잖아서 여자는 끌렀던 어깨끈을 묶었다. 브라이언도 그가 완전히 미친놈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술자리가 파하고, 여자가 “혹시… 우리 이야기 좀 더 할래요?” 물어보려던 찰나였다.

“실례하겠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

“여기서 말씀드리기는 조금…”

레브는 말동무를 해준 여자와 숙소 주인장에게 은화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마침 옆집이 식당이기에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좀 전의 여자가 뒤따라왔다.

레브가 왜 따라오냐는 눈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저 여기서 일한다니까요.”

이내 화장을 지우고 돌아와 주문을 받았다. 어쩐지 화장 솜씨가 엉망이다 싶었다.

“그래, 제겐 무슨 볼일입니까?”

레브가 여자가 내온 식전주(食前酒, 식욕을 돋우기 위해 식사 전에 마시는 술)를 홀짝이며 물었다. 브라이언은 조심스럽게 레브와 사이먼 백작의 관계를 물었다.

“절 아십니까?”

원래라면 레브가 들었어야 할 질문이다. 이를 거꾸로 돌려준 레브는 다소간의 여유를 가지고 대화에 임했다. 아쉬운 쪽도, 이상한 사람이 된 쪽도 저쪽이었다.

“낮에 성문 앞에서 보았습니다. 아, 오늘 본 건 어디서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별것도 아니었지만,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요.”

“네. 그러시는 게 신상에 좋을 겁니다.”

약점 같은 것도 하나 잡혀줬다.

레브는 이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대하며 귀를 기울였고, 브라이언이 입을 열었다.

“절 도와주십시오. 사이먼 백작가는 저와 제가 모셨던 ‘아그낙 남작가’의 원수입니다.”

‘아가타’ 남작가가 아니라?

역시 뭐가 꼬여 있었구나, 생각하는 레브에게 브라이언이 자신의 과거를 풀어놓았다.

+ + +

엉성하게 지어진 저택 앞마당에서 두 어린 소년이 목검을 맞대어보고 있었다.

신동들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쥔 검이지만, 품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한 명은 아주 곱상한 외모의, 푸른 눈을 가진 소년이었다. 귀족임이 틀림없어 보이는 그는 화난 것처럼 검을 휘둘렀고, 좌우 눈썹이 짧은 다른 소년은 마지못한 손놀림으로 도련님의 투정을 막아내었다.

– 따악!

고사(枯死)한 작물들.

땅을 갈고 잡초를 뽑는 등, 많은 손길이 들어갔음에도 이렇다 할 수확을 내지 못한 마당 텃밭에 목검이 부닥치는 소리만이 아스라이 울려 퍼졌다. 청안의 소년은 이내 토라지듯 뒤돌아섰다.

“로이드 님… 죄송해요.”

어린 소년, 브라이언이 사과했다.

그러나 결정을 철회한 것이 아니어서 로이드가 볼멘소리를 뱉었다.

“그냥 기사가 되면 안 돼? 그깟 성전사가 뭐라고… 우리 가문이 가난해서 그런 거지?”

“…네. 하지만 오해하지는 마셔요. 전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브라이언은 친구나 다름없는 도련님이 좋았고, 더 나아가 아그낙 가문이 좋았다.

여름마다 불어오는 서북풍, 들넋바람에 쓸려온 보메르 화산의 구름에 가려져 늘 가난할 수밖에 없는 남작가였으나 그의 고향이기도 하고, 아그낙 남작은 몸소 농사를 지을 만치 솔선수범하는 지도자였다.

브라이언은 이 가문에 충성을 바치겠노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가난한 남작가에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다.

명예를 먹고 사는 기사의 봉급이 짜다지만, 아그낙 남작가가 감당할 것은 못 된다. 그러나 성전사가 되어 돌아온다면, 이 교회조차 없는 영지에 교회를 세울 수만 있다면…

브라이언은 도련님과 약속했다. 반드시 성전사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자신이 기사가 되는 것보다도 분명 나은 선택일 것이라고.

브라이언은 그렇게 떠났다.

아그낙 남작은 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며 자신의 여동생, ‘아그네스 아그낙’이 루테티아에 있으니 가서 도움을 받으라 말했다.

비록 쥐꼬리만큼도 가진 게 없는 남작가이지만, 수도에서 사교활동 중인 동생이 최근 굉장히 잘나가고 있어서 분명 도움을 줄 수 있으리란 추측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지켜진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로이드 공자와의 약속도, 브라이언의 맹세도, 아그낙 남작의 권유도.

– “꼭 돌아와야 해!”

배웅을 나와 외쳤던 도련님을 보긴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도련님의 고모인 아그네스 아그낙은 만나 뵙지도 못했다.

브라이언은 성전사가 되는 데에 실패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아그네스 아그낙은 루테티아의 사교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가난하였으나 품성이 고아 뭇 남성들의 동경이 되었고, 안목이 높아 값싼 천으로도 자신을 아름답게 꾸밀 줄 알았다.

아그네스의 위상은 아그낙 남작가라는 뒷배경을 뛰어넘었다. 내로라하는 가문의 후계자들에게 구애를 받으며 아그네스의 장래는 탄탄대로, 장밋빛이 가득하였다.

특히 ‘오스카 백작가’의 후계자가 그녀에게 공개 청혼하면서 그 장미 향기는 절정에 달했다.

세간의 관심은 아그네스가 유리구두를 신을 수 있느냐로 좁혀졌다.

오스카 백작가는 제롬 신성 왕국은 물론, 온 대륙의 가문 중에서도 손꼽히는 대가문인 반면 아그낙 남작가는 매우 초라한 가문이기 때문이었다.

과연 한 명의 영애가 본인이 지닌 품성과 미모만으로 가문의 급을 뛰어넘는 결혼을 성사시킬 수 있을까. 세간의 평은 둘로 갈라졌다.

로맨틱한 이들은

충분히 가능하다. 요즘은 후계자들끼리 연애해서 결혼하는 일도 왕왕 벌어지는 세상이다 – 라며 아그네스 아그낙이 신을 유리구두에 광을 더해주었다.

현실적인 이들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한들 오스카 백작가는 급이 다르다. 더군다나 그녀가 받은 청혼은 젊은 후계자가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가문의 허락 없이 던진 것이므로 불발될 가망이 높다 – 라며 유리구두의 결함을 지적하였다.

그 유리구두를 신기엔 아그네스의 타고난 발이 너무 작기도 했다.

루테티아의 귀족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그때, 꾀를 낸 사람이 있었다.

사이먼 백작가의 가주, ‘그륀바움 사이먼’이었다.

그는 아그낙 남작가에 큰돈을 지불해 아그네스 아그낙을 입양했다.

가문의 급을 맞추어 정략결혼을 시키면 오스카와 사이먼, 위풍당당한 두 백작가는 서로 이어져서 좋고, 다 망해가는 아그낙 남작가는 사업을 벌일 밑천을 얻어서 모두에게 좋은 일일 터였다.

그러나 꿈과 희망이 넘치던 그 계획은 자기도 모르게 입양되어 성(姓)이 바뀐 ‘아그네스 사이먼’이 참담한 심정으로 고백하면서 파국을 맞았다.

그녀는 수도에서 베르게르 아가타라는 한 남작가의 후계자를 만나 남몰래 사랑을 키우고 있었고, 임신한 상태였다.

대노한 사이먼 백작은 당장 아그네스를 사이먼 백작가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때가 바로 브라이언이 긴 여행 끝에 루테티아에 도착한 시기였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으나, 그래서 만나지 못했던 거다. 그녀를 찾아 헤매던 소년은 홀몸으로 수도교회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불리한 출발이었다.

신을 받드는 기사, 성전사가 된다는 건 대단히 명예로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이를 후원해준 사람이나 가문에게도 그랬다.

해서 성전사가 되고자 찾아오는 이들 중에는 서자 출생인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귀족의 후원을 받아 때로는 왕실 기사의 개인 교습까지 받으며 앞서나갔다.

브라이언에겐 그런 양질의 교육 환경이 주어지지 못했다. 변명하자면 그렇다.

타고난 재능과 수도교회에서 제공하는 교육만으로 쟁쟁한 이들과 경쟁해야 했고, 부단히 노력한 끝에 1차 시험은 통과하였으나 마지막 2차 시험에서 떨어졌다.

낙방한 브라이언은 낙담했다. 곧 교육 시설에서 쫓겨날 몸이라 어쭙잖게 배운 술을 마시며 실의에 빠졌는데, 그를 일깨워준 사람이 있었다.

코린 경이었다.

+ + +

“뭐? 코린 경이라고 했나?”

자작자작하게 우려낸 육수를 떠먹던 레브가 저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담담하게 과거사를 풀어놓던 브라이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선생님을 아십니까?”

“…뵌 적이 있네.”

“아하, 비도리닌 성에 가보셨군요. 선생님은 잘 지내고 계시던가요?”

레브는 {추적술}로 얼른 코린 경의 생사를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혔다.

[ 퀘스트 : 도프 비자인의 삶 – 도프 비자인이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

레브가 바르바토스의 사도일 적에 코린 경은 흉악한 아신의 사도 앞으로 몸을 던졌다.

– “신이시여. 저의 죄를 용서하지 마소서. 저는… 후회하지 않나이다!”

알 수 없는 말을 뱉으며 거대해진 흑마, 반테와 충돌했다. 그때 그의 몸이 새하얗게 불타올랐었다.

그렇다면 해답은 하나였다.

‘코린 경도 굴레에서 풀려났구나.’

다사다난한 회차를 거치며 소꿉친구 시나리오는 정말 많이 변했다.

아버지가 굴레에서 풀려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계신 것이 되었고, 바르바토스가 사라지면서 몰살당해 없었어야 할 비자인 부족이 성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레브 또한 다른 레오들과 달리 제 과거를 기억하게 되면서 마을의 분위기가 이전과 얼마나 다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굴레가 풀려난 어린 시절’만을 기억하기에 그 이전에는 어머니가 어쩌다 돌아가셨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처럼 종종 원인을 알 수 없는 변화가 있었고, 그것들 중 하나가 바로…

{사제} 이벤트.

레아를 수도교회로 데려가는 사제를 호위해 온 성전사는 코린 경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달라진 것이 워낙 많아서 눈치채고도 그러려니 넘어가고 말았는데(레아가 떠나는 때라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 사라진 코린 경이 여기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레브는 말을 끊어서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아까 식사를 마쳤기에 불편한 손으로 빵조각을 뜯어먹던 브라이언이 자신의 과거사를 다시금 밝혀 나갔다.

+ + +

“너무 낙담하지 말게. 성전사가 되지 못한 게 그렇게 자책할 일은 아니야.”

“…성전사를 그만두신 선생님께선 그러시겠지요.”

브라이언이 딸꾹질하며 토로했다. 별로 마셔본 적도 없는 술을 몰래 들여와 먹다가 수습생들을 가르치던 선생님, 코린 경에게 들킨 것이었다.

브라이언은 이젠 될 대로 되라, 어차피 다음 주면 쫓겨날 처지라 자조적인 배짱을 부렸다. 무례하게도 선생님의 조언을 선생님의 사정에 빗대어 무시해버렸다.

사실 코린 경은 성전사가 아니었다. 성전사였었으나 다른 신을 섬기는 야만인을 축출하겠다는 교회의 방침에 “난 그렇게는 못 하겠다!” 자진해서 성전사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성전사는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즉각 그만두고 떠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사제와 마찬가지로 신력을 나눠 받은 성전사는 그만둘 때, 지닌 신력을 다른 성직자에게 양도해야만 했다. 젊었을 적에 수도교회에서 교육받았던 것까지 갚아야 했으므로 코린 경은 교육 시설의 선생님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그것도 이번 기수가 마지막이다. 이제 선생직을 내려놓고 떠날 예정이었던 코린 경은 선생님의 딱딱한 권위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말하진 않겠네. 명예로운 일이지.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코린 경이 만취한 청년의 곁에 걸터앉았다. 브라이언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고는 그가 상심한 원인을 꼬집었다.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 아닌가. 자넨 왜 성전사가 되려고 했지? 그냥 성전사가 되고 싶어서?”

“…아니요.”

“다행이군. 그런 놈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야. 그럼 자네는 이제 무엇을 해야겠는가? 자네가 하려는 일이 성전사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인가?”

“…네. 제 고향에 교회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아그낙 남작가라고, 보메르 화산 근방에 영지가 있는데…”

젊은 브라이언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친구나 다름없는 도련님과 약속했다는 것과 아그낙 남작가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교회를 짓는 건 포기해야겠군. 현실은 인정해야지. 하지만,”

코린 경이 단정 지었다.

“교회를 짓는 것도, 성전사가 되려던 것도 모두 수단에 불과하단 걸 깨닫게. 아그낙 남작가와 도련님께 도움이 되고 싶은 게 목적이잖는가.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

“가서 세수하고 오게. 여기 있을 필요가 없으니, 당장 짐을 꾸려. 나도 이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잘 됐어. 같이 가세.”

살다 보면 바라던 무언가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주저앉을 이유는 되지 못했고, 때로는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깨달음을 얻은 브라이언은 달려가 찬물로 세수했다. 곧장 짐을 꾸려서 코린 경과 함께 아그낙 남작가를 향하였는데…

신이시여.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아그낙 남작가는 멸문당해 있었다. 사이먼 백작가의 공격을 받아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고, 아그낙 영지는 백작의 통치하에 있었다.

브라이언은 불탄 저택을 황망하게 둘러보았다. 도련님과 검술을 겨루던 마당에는 을씨년스러운 바람만이 감돌아 브라이언의 가슴에 절망을 심어주었다.

살다 보면 인간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굳센 마음과 단단한 의지로도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이 있어서 코린 경조차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영주민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알게 되었다. 아그네스 영애를 입양한 사이먼 백작이 그녀의 임신 소식을 듣곤 불같이 분노했다는 걸.

혹시 아직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어 아그네스에게 약을 먹이고, 강제로 낙태시켰지만, 오스카 백작가는 후계자의 청혼이 가문의 허락을 받지 않은 돌발행동이었다며 선을 그어버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사이먼 백작. 그는 딸을 잘못 키운 책임을 지라며 아그낙 남작가를 압박했다.

그러나 가진 게 없는 아그낙 남작가에서 상황을 무마할 수 있을 턱이 없었고, 백작은 끝내 남작가를 지도에서 지워버렸다.

브라이언은 원망했다.

사이먼 백작도 원망스럽지만, 이 모든 사달을 일으킨 아그네스 영애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허나 얼마 안 돼서 알게 된 아그네스 영애의 처지도 비참했다.

친가가 망해 없어지고, 아이도 잃고, 사이먼 백작가에 구금돼 가슴앓이하던 아그네스는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네년이 살아 있어야 저 영지를 우리가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 멍청하고 쓸모없는 년 같으니.”

그륀바움 사이먼 백작은 그녀에게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입양됐지만, 그녀는 아그낙 남작가의 마지막 남은 핏줄이기 때문이었다.

아그네스는 비참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메말라가던 그녀를 구원한 사람이 있었으니,

‘베르게르 아가타 남작’이었다.

부모님을 설득해 서둘러 가문을 물려받은 아가타 남작은 사랑하는 여인을 저버리지 않았다.

아가타 남작가가 보유한 토지 대부분을 팔아 사이먼 백작가에 지참금을 지불하였고, 아그낙 남작가의 영지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아그네스와 혼인했다.

‘아그네스 아가타’는 강제로 먹었던 약이 문제였는지 더는 임신하지 못했지만, 베르게르 남작의 마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두 사람은 아가타 남작가에 남은 유일한 재산, 비도리닌 성에 들어가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어쩔 건가? 나는 아가타 남작을 찾아갈까 하네. 들어보니 좋은 사람인 듯하니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해.”

코린 경이 물었다. 브라이언도 그러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입에선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선생님께서 그쪽으로 가시겠다면 저는 됐습니다. 전…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사이먼 백작을 용서하지 못하겠다.

코린 경과 헤어진 브라이언은 홀로 사이먼 백작가를 향했다. 비록 작위도 없는 일개 검사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더욱 가능성이 있었다. 마음을 숨기고 접근한다면 백작조차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리라.

…라고 생각했었다.

+ + +

브라이언이 제 망가진 손을 만지작거렸다.

복수를 자신의 손으로 완성하지 못하고 그때의 자신만큼이나 젊은 소드마스터에게 복수를 간청하는 꼴이라니. 저 나이에 내가 저만큼 강했더라면… 아니, 저것의 반이라도 됐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한숨 지으며 브라이언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인대가 끊어진 그의 검지와 엄지가 힘없이 대롱거렸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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