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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7

떠날 예정

“안 돼요.”

“······비체?”

베아트리체의 슬픈 시선에 레온은 잠시 멈칫거렸다.

“폐하. 만신의 대리인이시며 용감한 기사왕이시자 나의 기사들을 축복하시고 타락의 굴레에서 저를 구원하신 분.”

그녀가 쥔 레온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가녀린 손에 어찌 이토록 강한 힘이 나올까 싶을 정도였다.

“저희들을 저버리고 어디로 가시려고 그러시는 건가요? 부디··· 부디 저를 두고 어디론가 떠나시려 하지 마세요.”

“······.”

레온은 베아트리체가 무엇을 그리 걱정하고 슬퍼했는지 깨달았다.

사자심왕의 후계를 논한다는 것. 그것은 레온이 신들의 대리인 자리를 내놓고 그들과 함께할 만찬장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숱한 성배 수호자들과 기사들이 전장에서 스러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후계자를 낙점하고 승천했으니까.

“삼백 년일세, 비체.”

레온은 마냥 공수표를 남발할 수 없었다. 레온은 충분히 오랜 삶을 살았고,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진즉 윤회를 거듭하거나 만찬장으로 향했을 노인이다.

“본디 인간의 수명은 길지 않아 언젠가 떠날 운명인 것을 신들의 사랑으로 불로의 삶을 살았네.”

설령 그 삶이 끝없는 투쟁과 싸움의 반복이었을지언정 레온은 다른 이들보다 부유했고, 존경받았으며, 명예로운 자리에 있었다.

그는 삶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300년이면 충분히 살았다 여기기에, 위대한 선조와 기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신들의 만찬장으로 향할 날을 기대했다.

“그럼 갈 때, 저도 데려가 주세요! 저도 여신의 신관장이니 자격은 충분할 것입니다!”

“비체··· 그대는 아직 어려. 숱한 세월을 그저 반복해오며 살지 않았는가. 그대는 천천히 있다 오시게.”

“폐하께서 계시지 않는 삶은 상상해본 적도 없어요. 그러니 부디······.”

레온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이별은 언젠가 찾아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언제나 다른 이들을 떠나보냈기에. 언제나 가족과 친구, 동료들을 떠나보낸 이별의 피해자였다.

그리하여 자신이 그 가해자가 될 것이라는 걸 실감하니 감히 무슨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오랫동안, 그는 침묵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 * * *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베아트리체가 설치한 용린의 결계석은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며 쏟아져나온 몬스터들을 틀어막았다.

그들은 감히 결계석의 범위 바깥으로 나오기 두려워 했으며 좁은 반경 안에서 미어터질 때가 되어서야 겨우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결국 몬스터들은 레온과 베아트리체의 손에 일소되었고 용의 기운이 서린 부산물에 대한 실험은 1차 성공인 셈이다.

“그럼 먼저 들어가보시오. 짐은 이 주변을 살필 생각이니.”

“예······.”

류경호텔 앞에 착륙한 레온은 실험의 성공에도 힘없이 등을 보이는 베아트리체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레온, 나의 기사야.]

여신의 옥음. 레온은 평소와 달리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나의 여신이시여.”

[네 여신은 언제나 나의 기사가 안쓰럽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여신의 옥음에 레온은 난처했다. 여신을 슬프게 했다는 것조차 신도인 제 잘못이기에.

[네가 울프릭 드라고니아의 품을 떠나 방랑의 길을 걷던 걸 기억한다. 네 여신은 줄곧 너의 여정을 지켜보았지.]

그것이 열일곱 즈음이었을 것이다.

성배기사 고르딕 경에게 직접 훈련받은 청년기의 레온은 곧장 수행의 여정을 떠났다.

여정에 오른지 수년 여만에 배알한 여신의 존안은 어찌나 아름답고 신성하였는지.

레온은 자신이 멍하니 여신을 올려다본 불경을 기억한다.

[너는 나의 퀘스트를 받아 그것을 훌륭히 수행했고, 가장 어린 성배기사가 되었지.]

“분에 맞지 않은 영광이었나이다.”

[허나, 그것은 어쩌면 나의 실수였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레온아. 아르헨의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사자심장을 짊어진 나의 첫 번째 기사야. 너는 너무나 오래도록 싸움만을 반복하는 삶을 살아왔다.]

레온의 인생은 끝없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열일곱에 수행길에 올라 성배기사가 되고, 사자심왕이 되어 짐승들과, 야만족과 악마들과 싸웠다.

제국의 폭주와 배신을 맞아 오랜 동맹에게 칼을 겨눠야 했고, 같은 인간도 수없이 피를 묻혀야만 했다.

끝내 가족도, 친구도, 신하와 백성들도 떠나보내 홀로 남았어도 그는 전쟁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의 300년 인생은 밀도 높은 전쟁의 역사로만 가득 차 있다.

[레온아. 네 여신은, 우리 만신은 네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도다. 사라져갈 낙원의 모든 영혼들이 너의 굳건함에 존속할 수 있었지.]

여신은 희미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 레온의 뺨을 어루만졌다. 오래도록 지켜본 제 아이는 너무도 빨리 행복을 잊었고, 빈자리를 강철과 피의 기억으로만 채웠다.

[만신은 네 행복을 기원한다. 우리의 만찬장 상석에 너의 자리는 언제나 마련되었으나 그 날이 오는 것은 멀고도 먼 이야기였으면 하구나.]

레온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냐고 한다면, 레온은 분명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일생일대의 사랑을 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존경할 수 있는 친구들과 동료들을 사귀었다.

많은 이들이 우러러볼 권좌에 앉았고, 영광을 드높였고 명예로운 삶을 살았으니까.

“제가 불경하던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불경이라기보단 무지했던 때로구나.]

레온이 처음부터 맹신을 가졌던 건 아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요절해 알지 못하는 세계에 환생한 새 영혼이었고, 로망과 판타지를 품으며 기사도를 추구하던 젊은이였다.

거기에 신앙은 없었고, 단지 판타지에 심취한 젊은이가 있었을 뿐이다.

실재하는 신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생각을 달리 고쳤을 뿐.

“이 세계의 성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참된 믿음이로다.”

[틀린 말은 아니구나.]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는 참된 신앙인은 아니었던 셈이지 않습니까.”

[그 누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

여신의 관대함에 레온은 감사히 웃어넘겼다.

“저는 신들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타산적인 사람입니다. 신들의 실재함을 알았을 때, 낙원의 존재에 그토록 심장을 쿵쾅거리던 여느 신도와 다를 것 없지요.”

낙원, 여느 성서에도 묘사되듯 천당과 같은 존재.

영원한 행복과 풍족함이 가득한 세상. 레온도 그 세상을 꿈꾸었다.

“여느 신도와 기사들이 그러하듯, 제게도 만찬장에 대한 숙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신들과 마주하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만······.”

성배기사들은 그 자체로 늙지 않는 불로의 성자다.

젊음과 강함을 그가 죽을 때까지 독점할 수 있는 축복받은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배기사들은 자신들의 후임이 결정되면 별다른 망설임 없이 승천한다.

“우리들은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과는 다른 시간을 살지요. 영원한 젊음은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 사이에 섞이기엔 이질적이기까지 합니다.”

레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다못해 일생의 반려가 자신과 같은 성인이었다면··· 제 친구들은 어떤가.

철의 성배기사가 되었던 안토크를 제외하면 군라르도 어느덧 노쇠한 나무가 되어 세상을 느릿하게 바라보았고, 길두스는 손자 자랑을 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많은 걸 물려준 아버지는 제 손녀와 다를 바 없이 젊은 아들에게 천천히 오라는 말을 하며 떠났고, 갓난아기일적 제 연애 문제는 없겠다 싶었던 미모의 어머니는 어느덧 주름진 피부의 노부인이 되어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자식이 부모를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되면 어찌할까?

“카리나는 참으로 효녀이지요. 제 아비보다 먼저 죽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레온은 카리나가 자신보다 먼저 죽을까 두려웠다. 제 손으로 아이의 무덤을 파고 흙을 덮게 될까 몸서리쳤다.

그 아이가 어둠과 복수의 성배기사가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땐, 크나큰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행인 일이다.

적어도 레온이 그녀의 무덤을 팔 일은 사라지지 않았는가.

“사람은 갈 때가 되면 가야 하는 법입니다. 저는 너무 오래 살았지요.”

[······.]

레온은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악마 군주는 격퇴했다. 아직 놈들의 세력이 남아있는 만큼, 언젠가 마계로 향해 놈들을 격멸할 생각이지만, 그마저도 끝나고 나면 어찌할까.

의무를 다해낸 레온은 그저 끝이 다가올 다음 날을 기다릴 뿐이다.

“으음? 폐하. 어째 청승맞은 얼굴을 하고 계시오.”

그러다 문득 만난 붉은 갑주의 기사. 그는 만신창이가 된 하리와 수호, 재혁을 데리고 막 돌아온 모양이다.

“훈련은 잘 되고 있나?”

“흐흠, 뭐, 그럭적럭이외다.”

불카누스의 훈련방식을 아는 레온은 세 사람을 조금 동정했다. 하지만 그의 훈련법은 정석적으로 통한다.

실제로 발탄 불타는 검 기사단은 불카누스의 훈련을 통과한 자들만 입단할 수 있었으니까.

“폐하, 술이나 한잔 마시지 않겠소?”

갑작스럽지만,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제안. 레온은 별 말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 * * *

성배기사쯤 되면 무엇이든 고급품이 사용하는 법이다.

그 자신의 품위를 위해서라도 이는 당연한 유지비용이다.

성배기사들은 모두 유망한 기사이고 대부분이 귀족 가문의 자제. 아니더라도 서임을 받고 한 가문의 가주가 되는 이다.

그런 면에서 불카누스는 고풍스러운 라이온하트 상층부에선 이질적인 존재였다.

“이만하면 오늘 밤까진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실 수 있겠지!”

큼직한 술통을 텅! 내놓는 불카누스. 스테인리스로 제작된 맥주통은 빈말로라도 민간에서 유통되는 게 아니다.

“그걸 통째로 뜯어왔나?”

어디서 품 안에 맥주통을 바리바리 싸오나 했더니 출처가 의외였다.

“이 도시의 당 간부인가 뭔가 하는 놈들 집에 괜찮은 물건들이 많소이다. 흐흐, 금덩이나 보석도 바리바리 쌓아뒀더군. 폐하도 틈나면 약탈해오는 것이 어떻소?”

“경은 예전 버릇을 통 고치질 못하는군. 성배기사쯤 되어 약탈이라니.”

레온은 불카누스가 내온 안주를 뜯으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이럴 때 아랫것들이 배를 불리는 법일세. 나잇살 먹었으면 그치들에게 양보도 해야지.”

전쟁 약탈은 병사와 기사들의 귀한 재산증식 기회다. 비록 전쟁과 불꽃의 신 페토스에게 일정부분 바쳐야 하지만 대신 십구조를 적용시키지 않았다.

이럴 때, 병사와 기사들이 아내나 연인에게 선물할 금가락지 하나라도 건사하는 법이다.

“폐하께서 하사하신 장원도 이젠 없지 않소. 별장도 좀 세우고 영주 노릇할 땅을 구하려면 열심히 벌어야지요.”

“아직도 영지를 원하나?”

“그럼! 내 한 몸 뉘일 집과 넓디넓은 영토의 소산을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더이다. 나는 좀 더 큰 영지를 가지고 싶소이다.”

레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불카누스의 야망을 부정하지 않았다.

“경은 참 독특한 야만인이야.”

“GARARARA─ 땅은 곧 힘이고 권력이요. 딴 놈들은 그걸 몰라.”

꿍! 하고 맥주통 뚜껑을 따버리는 불카누스가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대접에 맥주를 콸콸 쏟았다.

“······.”

맥주통을 그리 따는 게 아니었을 텐데··· 레온은 따져 묻기를 포기했다.

“그나저나 폐하. 이 평양이라는 도시 말이오. 폐하가 직접 통치할 생각은 없다 들었소.”

“그래, 곧 태어날 트리맨들과 엘프들에게 맡길 생각이다. 이곳은 세계수에 깃드신 여신 이르민의 성지가 될 테니 말이야.”

라이온하트 왕국은 팽창정책을 저어했다. 그 왕국의 영토가 작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영지를 확장할 힘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러했던 이유는 라이온하트 왕국은 기본적으로 인간만의 왕국이었고, 생활습성이 다른 요정, 난쟁이, 나무인간 등 다양한 종족들과 어울러 사는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나는 반대요.”

“흐음?”

“물론 엘프와 트리맨들은 조화와 균형을 아는 이들이지. 그들은 현명하고 신앙을 저버리지 않을 고매한 정신을 가진 이들이지만, 지금 막 태어나는 어린 것들이 그게 가능하겠소?”

“흐음······.”

세계의 멸망이 거의 확실시 되었을 때, 라이온하트는 후일 낙원에서 인자를 회수해 다시금 종을 부활시키는 방주계획을 세웠다.

용의 인자에 생명의 성자가 생명력을 주입해 탄생시킨 흑룡이 그 예.

낙원을 심장에 온존시킨 레온의 생존이 전제조건이지만, 그 인자에 의한 종의 부활에도 문제는 있었다.

새롭게 태어난 이들이 지식만을 계승 받은 갓난아기들이라는 것이다.

“이 지구라는 세계는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오. 비록 그들이 폐하의 가호 아래 성장할 수 있더라도 완숙해질 때까진 시간이 걸리겠지.”

그것이 백년일지 이백 년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엘프와 트리맨들 모두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장생종들이니까.

“그렇다면 어쩌잔 것인가? 시간에 성장을 맡기는 것은 그들 종족의 자연스러운 일이야.”

“임시지만, 영주를 세웁시다.”

“영주를?”

“그렇소. 폐하는 앞으로도 확장정책을 펼칠 것 아니오? 당장 이 대한민국은 적법한 주인이 있으니 내버려 두더라도 저 북쪽의 중원은 다르지.”

북쪽이라 하면 구 중국대륙을 말했다. 불카누스의 말에 레온은 잔을 홀짝이며 정론을 말한다.

“그곳 또한 주인이 있는 땅이다. 중화를 잇는다 자처하는 수십의 국가들이 있지 않더냐.”

“GRARARA──!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그곳은 지금 끝없는 혼돈과 내전을 반복하는 주인 없는 땅이외다. 내심 명분만 있으면 밀어버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소?”

불카누스는 구대성이 헤이룽 인민국에서의 활약을 보고받았다. 그는 그 예시를 들었다.

“제 백성들 보호하는 것도 못하는 얼간이들이외다.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나라를 장악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 터!”

“예전 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경의 주장처럼 말인가?”

“그렇소! 난 그때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폐하의 실책이라 생각하외다.”

“······.”

레온은 불카누스의 무엄한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실제로 세계의 멸망을 촉진시킨 혼돈의 군주 말루스 소환은 제국의 폭주로 말미암은 결과였으니.

“뭐, 그렇다 치자. 결국 경은 이 평양이라는 도시의 영주가 되고 싶은 것 아닌가?”

“GRARA──! 부정은 하지 않겠소이다.”

“허나, 경이나 짐이나 머잖아 만찬장으로 떠날 사람들이다. 영지를 다스려봤자 몇 십년이나 다스린다고 땅을 탐하는가?”

“······.”

순간, 불카누스의 목소리가 뚝 멈췄다. 방금까지 번뜩이든 시선은 온데간데없이 미묘한 표정으로 레온을 응시했다.

“나는 천년만년 부귀영화 누릴 것이외만?”

“???”

[안돼!]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페토스가 경악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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