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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8

236. 소꿉친구 – 운명

“전 사이먼 백작가의 기사가 되고자 했습니다. 토착민 출신의 떠돌이 검객인 양 찾아가서 시험을 봤지요. 다행히 시험은…”

– 달그락.

“후식이에요.”

좀 전의 여자가 후식을 내오면서 브라이언이 입을 다물었다. 레브는 층층이 포개져 김을 뿜는 핫케이크를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후식을 시켰었나? 주문한 기억이 없는데.”

“코스 메뉴에 포함된 거예요.”

핫케이크가 코스 메뉴에 포함된다고? 어울리지 않는 구성이다.

하지만 위장에 아직 들어갈 공간이 남아있어서 레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빵가루에 우유를 부어 섞은 뒤, 가볍게 지져낸 그것은 시럽이 없음에도 고소하니 맛이 있었다.

하지만 레브가 납작한 핫케이크를 돌돌 말아 우물거리는 그때, 주방에서 요리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돈은 받았어?”

“아이참. 당연히 받았죠. 제가 말했죠? 남는 빵가루로 케이크를 만들면 좋다니깐요.”

“애 엄마냐? 그리고 세상 어느 식당에서 풀코스 요리 다음에 핫케이크를 후식으로 내줘? 배가 너무 불러도 기분이 나빠지니까 앞으론 네 멋대로 후식을 만들어가지 마.”

…체할 것 같다.

그렇지만 들어버린 이상 남길 수 없는 음식이어서 레브는 핫케이크를 꾸역꾸역 위장에 밀어 넣었고, 브라이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시험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아그낙 남작가와의 영지전 도중에 기사 몇 명이 죽어서 결원을 채우려 하고 있더군요. 그렇게 기사 서임을 받아 백작에게 접근할 생각이었습니다.”

“끅… 그런데 잘 안 풀렸군요.”

레브가 남은 식전주로 입안 가득한 핫케이크를 넘기곤 말했다. 브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륀바움 사이먼 백작을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거기에 절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도교회에서 만났던 친구였죠.”

+ + +

“어?! 자네 브라이언이 아닌가? 하하! 맞구만, 맞아. 오랜만일세 친구. 자네도 결국 떨어졌나 보이.”

“어엇… 오, 오랜만일세.”

“음? 둘이 아는 사이인가?”

그륀바움 사이먼 백작의 물음에 젊은 기사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네. 수도교회에서 같이 성전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전 1차에서 떨어지고 이 친구는 남았었는데… 축하드립니다. 실력 있는 기사를 얻으셨군요.”

“…”

사이먼 백작이 브라이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브라이언은 내심 침착하려 하였으나 대귀족의 예리한 눈길을 피할 순 없었다.

“토착민이라더니. 잔꾀를 부렸군.”

며칠 뒤, 브라이언은 만신창이가 되어 무릎이 꿇려 있었다. 일이 틀어졌음을 깨닫고 달아나다가 붙잡혀 끌려온 것이었다.

그륀바움 사이먼 백작이 교회의 통신으로 받아온 서면을 찢어버리며 말했다.

“아그낙 남작을 안 닮은 걸 봐선 ‘그 녀석’은 아닌 듯한데… 정체가 뭐냐? 아그낙 남작의 추천으로 수도교회에 들어갔던 녀석이 여긴 무슨 일이지?”

“…”

“뭐,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아그낙 영주민들을 문초하면 알 수 있겠지. 움베르토, 네가 다녀와라.”

“…네, 아버지.”

턱이 네모난 청년이 마지못하게 답했다. 그는 브라이언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등을 돌렸고, 그륀바움 사이먼 백작은 혀를 찼다.

브라이언은 자신이 이제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사에 착오가 있었던 건지 그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았다.

브라이언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움베르토 사이먼이 진실을 은폐했기 때문이었다. 젊을 적의 움베르토는 백작가에 구금된 아그네스 누이를 종종 찾아가 말동무해줄 정도로 상냥한 청년이었다.

지금이야 제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싸늘한 귀족이 되어 버렸지만…

어쨌든 브라이언의 정확한 신원이 밝혀지지 않자 그륀바움 사이먼 백작은 그를 죽이지 않고 놓아주었다.

사실 그냥 죽여버리려 했다. 그러나 움베르토가 그를 꼭 죽일 필요가 있겠냐며 아버지를 막아섰다.

그륀바움 백작은 브라이언이 두 번 다시 검을 들지 못하게 양손의 검지와 엄지 인대를 끊어버리곤 마음 약한 아들에게 충고했다.

“좋아. 네 말대로 살려주었다. 하지만 잘 보고 배워라. 네 값싼 동정심이 어떻게 돌아오는지.”

검을 들지 못하는 기사가 보복해봤자지. 사이먼 백작은 브라이언이 좋은 교재가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귀족인 그는 기사가 검을 들지 못하게 된다는 게 얼마나 절망적인 일인지 가늠하지 못했고, 브라이언은 잠적해버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해가 묵었음에도 지워지지 않은 복수심이 칼날이 되어 돌아오려 하고 있었다.

+ + +

이야기를 마친 브라이언이 소드마스터에게 간청했다.

“사이먼 백작가는 십자교회와 손잡고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습니다. 아그낙 영지의 행정을 맡은 관료들이 십자교회에서 온 심문관들로 대거 교체됐습니다. 겉보기만 사이먼 백작가가 통치하는 땅이지 지금은… 이건 불법입니다. 더군다나 아그낙 영지의 진짜 소유주는 아그네스 아가타 남작 부인인데… 도와주십시오. 이대로는 아그낙 남작령이 영영 사라지게 생겼습니다.”

레브는 초조해하는 브라이언을 앞에 두곤 말없이 생각을 정리했다. 톡, 톡, 톡 식탁을 두드리는 검지는 레브의 것이었다.

들어보니 온 대륙에 뿌리박아 성세를 누리지만, 실지로 부치는 땅이 없는 십자교회가 저들만의 영토를 확보하려는 것 같았다.

한데 이건 당연히 불법이다.

불법인 정도를 넘어서 제롬 신성 왕국을 지배하는 프리데릭 왕가의 근간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레브는 이게 누구의 소행인지 알 것 같았다.

‘…미하에르 추기경은 왕족이지. 최우선 계승권자였음에도 선택받지 못한.’

그 억울하게 밀려난 왕족이 십자교회의 신권(神權)을 앞세워 프리데릭 왕가의 왕권(王權)에 도전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내겐 정말 잘된 일이다! ─ 레브는 순간 기뻐하였으나, 이내 온몸이 조여드는 느낌을 받았다. 소름인지 세계(世界)인지 알 수 없는 것이 그를 옭아매었다.

양손을 모아쥔 채 소드마스터의 결정을 기다리는 브라이언, 그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는지를 불현듯 깨달으면서 싸늘한 굴레의 실타래를 느낀 것이었다.

주신이 에넨을 죽였다.

그 철없는 아이를 유인해 오안타후에게 갈기갈기 찢기게 하였고, 우리에게 그걸 보여주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는 에넨을 살리기 위해 이곳에 들를 수밖에 없었는데, 주신, 네놈은 이 브라이언 경으로 하여금 십자교회의 잘못된 행각을 내게 고발하게 하였구나. 고작 그것을 위해 이 남자의 삶을 무참히 짓밟았구나.

레브는 자신 또한 주신의 장난감, 꼭두각시에 불과함을 느꼈다. 지금껏 겪어온 모든 일이 주신의 계획이었고, 민서와 우리의 발버둥조차도 주신이 이끌어온 것이었다.

마치 강물이 움푹 팬 대지를 따라 흐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레브가 식당을 뛰쳐나갔다.

“어, 어?” 놀라서 손가락질하는 브라이언의 덜렁거리는 검지를 피해서“도와주겠네! 내, 내일 보세.” 외쳤고, 자신에게 호감을 드러내던 식당 종업원, 그 여자에겐 음식값으로 주머니에서 집힌 동전을 아무렇게나 던져주었다. 저 여자가 내게 다가오는 것까지도 주신의 계략일까 의심스러워 구역질이 치솟았다.

떨어지는 저녁노을을 향해 달렸다.

길가의 행인들을 마구잡이로 밀치며 드넓은 평원으로 나온 레브는 억지로 먹은 팬케이크를 쏟았다.

“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엎드려 토악질하던 레브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꼴이 우스워 웃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즈라 성인도 이렇게 절망했을까.

절대적인 신이 이 세계의 모든 걸 관장한다면, 발생하는 모든 사건이 주신의 계획이라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인간에겐 무엇이 남는가.

내가 레아를 위하는 마음까지도…

[ 업적 : 레나와의 첫 만남 – 레나는 레오에게 높은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

만들어진 걸까.

레브가 주저앉았다.

얼굴을 움켜쥐고 울상짓는 그를 드넓은 평야가, 어찌할 수 없는 바람이, 푸르른 잡목과 벌레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또, 오늘은 청련달. 북쪽에서 터오는 푸른 달이 서쪽으로 저무는 붉은 태양과 색깔을 겨루고 있었다.

손을 치워 복잡한 색으로 물든 창공을 마주한 레브는 심호흡했다. 그러기를 한참, 운명에 맞서기보다는 받아들이기를 택했다.

신에게 대적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저 거대한 하늘조차도 신이 띄운 달과 태양에 그 색을 달리하지 않느냐.

그래. 차라리 감사해하자. 다른 사람이 아닌 레아를 사랑하게 해줬음을 감사하고, 지나간 회차들에 어떤 의미가 있었기를 바라자.

레브는 레안 드 예리엘 왕자가 깨달았던 것을 깨닫고 말았다.

민서에겐 게임이지만, 우리에겐 삶이다. 민서에게는 {이벤트}이지만, 우리에겐 운명임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레브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느덧 파랗게 물든 초원 아래서 숨을 고르다 휘파람을 길게 뽑았다. 날카롭게 뻗어간 휘파람은 다그닥 다그닥, 경쾌한 말발굽 소리가 되어 돌아왔다.

[ 업적 : 탈것 – 레오가 탈것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

초원을 가로지르며 한 마리의 말이 달려왔다.

도흑포마는 아니었다. 그 마수보다 훨씬 작은 평범한 크기의 말이었고, 갈색이었다.

명마까지는 아니더라도 발이 빠른 준마였는데, 레브는 빙긋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레브가 녀석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반테. 오랜만이다.”

– 푸르륵.

그 바라는 게 많던 갈색 마(馬) 반테가 눈알을 굴렸다. 눈치가 빠른 녀석은 레브의 심기가 심란함을 알았는지 그의 뺨을 낼름 핥아주었다.

등에 제법 좋은 안장이 걸려 있어서 반테를 쓰다듬던 레브가 훌쩍 올라탔다. 기분 좋게 뒤뚱이는 걸음을 느끼며 기분이 한결 나아진 레브는 말머리를 돌렸다.

푸르른 청련달이 그와 반테의 앞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 * *

“대장님! 큰일 났어요. 마구간에 있던 도흑포마가 사라졌…”

“신경 쓸 것 없다. 모두 채비를 갖춰라. 지금 이곳을 떠난다.”

레브는 백작의 저택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제자들에게 출발을 명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이상 이곳에 더는 용무가 없었고, 사이먼 백작과 미하에르 추기경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제롬 신성 왕국을 서서히 집어삼키려는 십자교회. 이 은밀한 계략을 타국인이 직접적으로 막아설 필요는 없다.

레브와 제자들의 머리에는 신성의 표식이 떠올라 있었지만, 레브는 루테티아를 목적지로 잡았다.

“버, 벌써 가십니까?”

오밤중에 뛰쳐나온 총관에게 그렇게 됐노라 말하곤 사이먼 백작의 저택을 빠져나왔다. 조금 전의 그 숙소를 찾아가 심란하게 서성이던 브라이언을 불렀다.

“난 이 나라의 왕을 찾아갈 거다. 내가 힘을 실어줄 터이니, 너는 증인이 되어 십자교회의 불온한 행동을 고발해라.”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브라이언은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하였고, 함께 떠났다. 그동안 레브가 타고 온 말이 브라이언의 것이 되었다.

루테티아로 출발한 그들은 가는 길에 아그낙 남작령 근방의 작은 마을에 들렀다. 그곳에 브라이언의 집이 있어서였다.

아무래도 온전하지 못한 손으로 생계를 유지하긴 빠듯했는지 그 집은 볼품이 없었다. 그럼에도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고, 좋은 혼처를 찾아 두 딸을 시집보냈다. 브라이언은 가장의 역할을 마친 뒤에야 사이먼 백작가를 찾아온 것이었다.

레브는 “남편이 복수를 이룰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간청하는 부인에게 꼭 그리하겠다 약속하곤 사이먼 백작에게서 받은 금덩이를 잘게 쪼개어 건네주었다.

처음엔 사양했으나, 그 금덩이가 사이먼 백작에게서 뜯어낸 것임을 알게 된 부인은 사양하지 않았다. 딸들의 혼수(婚需, 혼인에 드는 물품)를 넉넉히 챙겨주지 못했는데, 이것들을 나눠주겠다고 말했다.

초라하지만 따뜻한 아침 식사를 얻어먹은 열두 명의 사내와 여인이 동쪽을 향해 달렸다.

그들이 루테티아에 도착했을 때는 낙엽이 반쯤 떨어진 가을이었고, 레브는 레오 덱스터와 레나 아이나르가 아주 가까이 있음을 알았다.

두 사람은 저 도시 안에 있다.

하지만 레브는 루테티아에 들어서지 않았다. 주말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제자들과 브라이언을 데리고 루테티아 남쪽에 있는 작은 산으로 들어갔다.

이 나라의 왕자, 클레오 드 프레데릭이 주말마다 저 산으로 사냥을 나온다. 레브는 그를 통해 왕의 알현을 청할 생각이었는데…

머리에 신성의 표식이 찍힌 자들이 다가오자 클레오 드 프레데릭을 호위하던 성전사와 근위기사가 검을 뽑았다. 대치하는 순간, 브라이언이 튀어 나가며 외치는 것이었다.

“로, 로이드 님!”

“…누구신지?”

“접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브라이언입니다. 아그낙 남작가의 기사 수습생으로 있다가 성전사가 되겠다고 수도교회로 떠났던…”

큰 흉터가 오른뺨과 입술을 가로지른 근위기사가 검을 내렸다.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의 이름은 로이드.

‘아그낙’이라는 성(姓)을 버리고 프레데릭 왕가를 섬기는 근위기사가 되어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아그낙 남작가의 마지막 후계자였다.

“쉿!”

로이드는 입을 가리며 브라이언의 경거망동을 탓했다. 그러나 왕자, 클레오 드 프레데릭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로이드 경? 이게 무슨 일입니까.”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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