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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4

23. 거지남매 – 레나의 일

“네가 할 수 있는 일?”

카시아는 방에 들어와 작은 의자에 앉았다. 긴 치마 밑으로 꼰 다리가 레나를 향했다.

“왜?”

“저 때문에 오빠가 너무 힘든 것 같아요.”

“그야 그렇겠지. 그런데 오빠가 도와 달래?”

“아니요.”

“그런데 왜?”

“저 때문에 오빠가 고생하는 게 싫어요. 저도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요.”

“네가 일해서 돈을 벌어오면 뭐가 달라져? 넌 네 오빠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지?”

“……”

“그냥 오빠가 시키는 대로 공부나 해. 그게 오빠를 돕는 일이야. 그리고 어떤 일을 배워본 적도 없잖아.”

그녀의 말에 레나는 말문이 막혀 우물쭈물했다.

카시아 언니 말이 맞다. 나는 쓰레기통이나 조금 뒤적거렸을 뿐 할 줄 아는 일이 없었다. 내가 돈을 몇 푼 벌어와 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내가 받고 있는 가정교육은 비쌌다. 내가 버는 돈으론 그 반의반도 감당하지 못할 테고, 오빠는 계속 그 위험한 일을 그만두지 못하겠지.

그리고 나는 오빠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몰랐다.

오빠는 나를 위해 돈을 벌어오고 있을 뿐, 자기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전 집을 사고 싶어요.”

고민 끝에 결국, 레나는 속을 털어놓았다.

“근사한 집에서 오빠랑 같이 사는 게 꿈이에요. 그런데 오빠가 집을 사려면 돈이 엄청 많아야 한다고 했어요. 저도 보탬이 되고 싶어요.”

카시아는 머리를 꼬며 그녀를 지켜보다 꼬집듯 말했다.

“그러니까, 오빠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거지?”

카시아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레나는 그냥 이대로 있는 것이 싫었다. 이건 분명 오빠를 돕고 싶은 마음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집을 사면 분명 오빠도 좋아할…”

“아아, 탓하려는 건 아니었어.”

카시아가 맥없이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꼬았던 다리를 풀며 레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나도 누굴 무작정 나 좋을 대로 도왔던 적이 있거든. 결말은 좋지 않았지만…”

레나는 침묵했고, 카시아는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소개해줄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고마워요.”

카시아는 옷장을 뒤져 후드가 달린 옷을 찾아 레나에게 입혔다.

두껍고 칙칙한 옷. 레나가 입기엔 조금 커서 바닥에 옷자락이 끌렸다.

카시아와 레나는 밖으로 나왔다. 밖은 벌써 날이 저물었고, 가죽 거리는 마감을 서두르는 소상공인들로 부산했다.

거리를 빠져나온 카시아는 대로를 건너 반대편 골목길을 찾았다. 대로를 건널 때 오른쪽으로는 남문이, 왼쪽 멀리로는 왕궁이 보였는데, 모두 밝게 빛나고 있었다.

카시아가 찾은 곳은 여섯 번째 어두운 골목길이었다. 그 골목길 앞에는 깡패 몇 명이 어슬렁거렸다.

골목길로 들어서니 붉은빛의 랜턴이 군데군데 달려있었다. 레나는 붉게 물든 골목길이 무서워서 흠칫하면서도 언니의 뒤를 계속 따랐다. 길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무슨 냄새인지 모르겠다.

각 랜턴 아래에선 사내들이 연초를 태우거나 취객들이 흥겹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다들 카시아를 감상하듯 훑었다.

– 휘익!

지나치는 카시아에게 휘파람을 부는 남자들. 카시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넓지만, 어둠과 붉은 빛깔이 교차하여 좁게 느껴지는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자 긴 그림자가 레나를 덮쳤다.

“얜 누구야?”

커다란 문 앞에서 뒷짐을 지고 있던 사내가 레나와 카시아를 가로막았다. 험상궂은 인상과 달리 그의 옷은 깔끔했다.

“보면 몰라? 내가 데려온 애야. 문이나 열어.”

“저렇게 뒤집어씌워 놨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들어가.”

큰 문이 소리도 없이 매끄럽게 열렸다. 그와 함께 안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카시아는 거침없이 들어갔다. 언니를 따라 문턱을 밟자 습한 공기가 끈적하게 레나를 감싸 안았다. 레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어둡고 붉은 통로에 몸을 던졌다.

그 끝에 있던 넓은 홀은 순진한 방문객을 반겼다.

어떤 곳은 밝고 어떤 곳은 아주 어두웠다. 고기 냄새, 연초 냄새, 진한 술 냄새 그리고 야릇한 내음이 함께 섞였다.

홀에는 많은 테이블이 있었고, 그 뒤로는 문이 하나씩 달려있었다.

홀 중앙으로 돌출된 작은 무대에서는 반쯤 벌거벗은 여인이 악기를 연주했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소년들은 분주히 술을 날랐다.

각 테이블에선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신선해 보이는 과일과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기, 고급스러워 보이는 술병.

하지만 그것들은 자리에 앉은 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옆 사람과 깊은 대화에 심취해있었다.

곁에 앉은 여인들이 비음 섞인 교태를 부릴 때마다 곳곳에서 사내들의 웃음소리가 터졌다.

석상처럼 굳어진 레나, 그 앞을 누군가 지나쳤다.

레나는 깜짝 놀라서 앞을 지나가는 헐벗은 여인을 봤다. 그나마 가린 곳도 불빛이 닿으면 투명하게 비쳤다. 그녀가 한 테이블에 가서 앉자 우악스러운 손길이 달려들었다.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레나를 카시아가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이리로 와.”

그녀는 홀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레나를 계단으로 이끌었다. 계단을 지키는 듯 서 있던 깡패들은 카시아를 알아보고 길을 비켜줬다.

레나는 언니를 따라 몸을 움츠리고 깡패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녀의 뒤로 깡패들의 시선이 꽂혔다.

카시아는 계단을 올라 문을 두드리더니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들어와요. 오, 카시아 씨. 오늘은 일찍 왔…”

“카시아 ‘씨’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그래, 카시아. 습관이 돼서 잘 떨어지지 않아.”

검붉은 카펫이 깔리고 기묘한 조각상들이 장식된 방에서 머리가 희끗한 장년의 남성이 그녀를 반겼다.

그는 벌떡 일어나 앞자리의 의자를 앉으라는 듯 당겨줬다.

레나의 의자도 마련해준 그는 둘이 앉는 걸 확인하고서야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정중한 태도에 두려움이 조금 잦아들었다.

“이분은?”

“내가 데려온 애야. 여기서 일할 수 있겠어?”

카시아가 레나의 후드를 벗기자 그녀의 예쁜 얼굴이 드러났다. 레오가 그토록 숨겨온 얼굴에 낯선 사내의 시선이 닿았다.

장년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는 의자에 몸을 깊이 묻으며 자신의 광대뼈를 검지로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어디서 데려온 아가씨인지는 몰라도… 안 돼.”

“왜?”

“여기서 일하긴 너무 아까워.”

“그러면?”

“주인님을 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는 레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청난 상품이 난데없이 들어왔다. 그의 오랜 경험에도 이만한 상품은 없었다.

“…그런 거 하나 결정하지도 못해? 지배인이 일일이 물어보면서 일하는 자리였어?”

카시아가 도발하며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지배인이 광대뼈를 치는 속도가 느려졌다. 하지만 그는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여과된 노랫가락이 끝날 때까지도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의 고민이 길어지자 카시아가 손을 저었다.

“필요 없으면 됐어. 여기 말고도 갈 곳은 많아.”

“카시아 씨 잠깐만, 나는 이 아가씨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고 싶을 뿐이…”

카시아는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얘는 계약서를 쓰지 않을 거야.”

“…그러면?”

“그냥 적당히 좋은 손님만 골라서 일하게 해줘. 얘는 나처럼 몇 년이나 묶여있을 필요 없어.”

“흐음… 아가씨. 아가씨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그의 진회색 눈이 레나를 향했다.

조용히 대화를 듣던 레나는 그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카시아 언니가 어떤 일을 소개해준 것인지 정확히는 모른다. 단지, 내 몸과 외모를 내어주는 일인 게 분명했다. 바깥에 있던 여인들처럼.

레나는 밑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오빠는 험하게 칼을 휘두르는 일을 하고 있다.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했다.

답하는 레나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저는… 언니가 하라는 대로 할게요.”

“카시아 씨한테 아무것도 못 들었군요?”

“……”

“카시아 씨. 그러면 내가…”

“그 ‘씨’라는 말 좀 빼.”

“그래, 카시아.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지?”

카시아는 고개 숙인 레나를 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하루에 한 명, 사고 친 적 없고 가능하면 예의 바른 손님으로. 번거로운 짓은 시키지 말고. 가격은… 당신이 정해.”

“처음 일하는 아가씨가 하루에 한 명만 받는 건 오히려 더 괴로운 일이지. 세 명으로 해.”

사내가 선을 딱 그었다.

“이만한 애를 안을 남자가 하루에 셋씩이나 있어?”

카시아의 물음에 지배인은 온화하지만 잔혹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카시아. 당신은 아직도 이 바닥을 몰라.”

“…”

그는 미간을 찌푸리는 카시아를 보며 웃었다.

그는 카시아를 옛날부터 봐 왔다. 그녀가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인 날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닳고 닳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에게 카시아는 아직도 어린 소녀로만 보였다.

“이만한 아가씨면 하루에 백 명도 모을 수 있어. 걱정하지는 마. 비싸게 부르는 순서로 하루에 세 명을 넣어줄 테니까. 네 말대로 좋은 손님만 골라서. 평범하게.”

그러고선 조금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주인님께 말씀드리고 계약하면 더 큰 손님도 받을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지.”

지배인은 레나를 돌아보며 상냥하게 웃었다.

카시아가 데려온 아이다.

작정하면 무엇으로든 만들 수 있을 만큼 아름답다.

카시아의 요청을 무시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건 쓰기에 따라 오르빌을 흔들 수도 있었다.

카시아만 아니었다면… 이런 아가씨를 데려온 사람은 여기에 뼈를 묻었을 거다.

하지만 카시아에 대한 작은 연민이 그를 돌려세웠다.

그는 카시아의 바람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녀는 이 아가씨가 자신처럼 되지 않길 바라는 모양이다.

좋다. 적당히 벌고 깨끗하게 떠날 수 있게 도와주겠다.

“오늘부터 바로 일하실 건가요?”

“…네.”

“경험은 있으신가요?”

“네?”

레나가 답하지 못하자 카시아가 나섰다.

“없어. 뭐든 간에.”

“알겠습니다. 카시아 씨, 이 아가씨를 개인 분장실로 데려다줘.”

지배인이 벌떡 일어나 카시아와 레나의 의자를 빼줬다.

카시아는 익숙한 듯 기다렸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알았어. 그럼 손님은?”

“내가 연락해보지. 아마 몇 시간 내로 구할 수 있을 거야. 분장실에서 대기해줘. 아예 오늘 그 방을 비워줄 테니까 계속 사용해. 아 참, 아가씨는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레나예요.”

“반갑습니다. 레나 씨. 저는 브레틴 자우어라고 합니다. 함께 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 저도 감사합니다.”

레나는 지배인이 내민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앞으로 오실 때는 항상 여기를 먼저 들러주세요. 가실 때도 잠깐 들러주시면 고맙겠어요. 그때 정산을 해드릴게요.”

“네.”

그가 우아하게 손등에 입을 맞췄다. 격식 있는 교환이었음에도 레나는 재빨리 손을 빼냈다.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레나는 카시아의 손에 이끌려 온통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 들어갔다.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불빛에 눈이 부셨다. 달콤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레나는 뒤따라온 여인들에게 몸을 맡겼다.

그녀에겐 화려한 드레스가 입혀졌다. 연한 붉은빛이 감도는 흰색의 드레스는 천이 모자란 만큼 많은 보석이 주렁주렁 달려 애처롭게 흔들렸다. 거울 앞에 놓인 레나는 여인들의 손길에 한층 아름답게 변했다.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정말 곱다. 이렇게 고운데…”

레나를 꾸며준 여인들은 감탄이 아닌 탄식을 뱉었다.

카시아는 조용히 분장실을 지키며 들락거리는 레나가 올 때마다 다독여줬다.

레나는 그날 네 명의 손님을 받았다.

* * *

레나는 카시아와 함께 새벽길을 걸어 돌아왔다.

새벽 거리는 밤새 지저분하게 더럽혀졌다.

레나는 생기 없는 표정으로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는데, 그 얼굴은 카시아를 조금 닮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금화가 쥐어져 있었다.

레나가 받은 화대. 그 대부분은 창관이 가져가고 극히 일부만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가죽 거리에선 수공업자들이 가게를 열고 있었고, 두 여자는 각자의 일을 준비하느라 바쁜 거리를 쓸쓸히 지나쳤다.

도착한 신발가게는 늘 그렇듯 조용했다.

둘은 탁자에 나란히 앉았다.

“잠깐 기다려. 곧 물차가 올 거야.”

“네…”

레나는 멍하니 바깥을 바라봤다.

가게 앞은 벽으로 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되려 막혀있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 삐꺽

물차가 지나가자 카시아가 나가서 돈을 주고 물을 받았다.

레나는 카시아에게 물통을 건네받았다.

“먼저 씻어. 나는 오늘 일 안 했으니까.”

“네…”

오빠가 시킨 데로 문을 꼭 닫았다.

카시아가 다시 탁자에 턱을 괴고 앉자 안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레나는 평소보다 오래 씻었다.

카시아처럼.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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