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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4

24화 한밤중의 손님 (2)

24화 한밤중의 손님 (2)

옆을 보니 단검을 쥔 세실이 사내를 노려보고 있었다. 긴장한 얼굴. 세실도 사내가 평범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봤다.

테오, 족제비, 덩치도 각자의 무기를 손에 들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잠을 깨워서 미안하구나 꼬마들아. 하지만 나도 제법 지쳐 있던 참이라, 이렇게 잘 만든 모닥불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지. 하하하!”

사내에게서는 조금의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듯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묻지 않았군. 이 고독한 한 마리 늑대에게 모닥불의 온기를 나누어줄 수 있겠나? 꼬마 여행자들.”

“거절한다면?”

내 말에 사내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와하하하! 설마 거절당할 줄은 몰랐는데!”

웃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는 사내에게 다시 한번 통찰을 시전했다.

[대상이 통찰에 저항했습니다.]

다시금 떠오르는 저항 메시지.

그런데 에티엔에게 시전했을 때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눈치채지 못하고 있어.’

에티엔은 통찰에 저항한 것을 넘어, 숲의 어둠에 숨어있던 내 위치를 특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저 사내는 내가 통찰을 발현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때보다 나의 레벨이 올랐기 때문일까.

‘아니야.’

차이는 미미하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에티엔에게 다시 통찰을 발현한다 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자는.

‘소드 엑스퍼트?’

나는 소드 엑스퍼트를 상대로 통찰을 발현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내 통찰이 먹힌 대상은 40레벨 대, 즉 오러를 발현하지 못하는 기사까지였다. 물론 검은색 사각형으로 얼룩진 불완전한 스테이터스였지만.

“그렇다면 뇌물을 바치는 수밖에 없겠군.”

난데없는 말을 내뱉은 사내가 등짐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짐승의 고기였다.

“어때. 먹음직스럽지 않아?”

사내는 각종 요리 도구를 차례로 꺼냈다. 후추를 비롯한 양념통들도 보였다. 우리를 향해 히죽 웃어 보인 사내가 익숙한 동작으로 모닥불에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사내가 굽는 고기에서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세실과 족제비는 벌써 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런데 너희는 무슨 사정이 있길래 이런 늪지를 지나고 있는 거냐? 설마 소풍이라도 나온 것은 아닐 테고.”

민감한 물음이었기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 그렇지. 너희들, 소문은 들은 거냐?”

사내의 입가가 지금까지와 다른 종류의 미소를 머금었다.

“비츠크 산맥의 마석 광산에서 노예들이 탈출했다고 하더구나.”

카앙! 사내의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바람처럼 뻗친 세실의 단검 공격을 사내가 막았다. 조금 전까지 고기에 칼집을 새겨 넣던 식칼로.

“이크! 성급한 꼬마로구만.”

사내가 껄껄 웃으며 세실을 밀어냈다. 그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세실이 철퍼덕! 바닥에 넘어졌다.

“어이쿠, 미안하구나 꼬마야. 네가 너무 갑자기 들이대는 바람에.”

식칼을 내려놓은 사내가 안심하라는 듯 두 손을 펼쳐 보였다.

“그렇게 경계할 것 없다. 나는 너희를 잡으러 온 사람이 아니니까.”

이것으로 확실히 알았다. 저 사내는 우리가 탈출 노예라는 것을 간파했다.

세실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실은 경계하는 고양이 같은 자세로 아주 천천히 자리로 되돌아왔다.

“아무튼 너희도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브리앙스 백작이 탈출 노예들에게 두둑한 현상금을 걸었거든.”

브리앙스 백작은 쾨르다시에 남작령을 포함한 오를리안 왕국의 북동쪽, 다시 말해 우리가 이동 중인 광활한 땅을 다스리는 대영주다.

그런데 사내는 왜 저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는 걸까.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사내의 인상착의를 살피며 내가 아는 대륙의 소드마스터들과 겹쳐봤다.

일치하는 인물은 없었다.

‘역시 소드 엑스퍼트인가.’

소드 엑스퍼트는 소드마스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에 일일이 대조해 볼 수 없다.

게다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대륙의 모든 소드 엑스퍼트를 알지는 못한다.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사내를 주시했다. 그는 세실보다 강자였다. 물론 세실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한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성급히 모험할 필요는 없어.’

사내가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 우리가 먼저 공격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주머니 속의 먼지는 사내의 등장 이후로도 평온하기만 했다. 나는 눈앞의 사내는 믿지 않았지만 먼지의 감정은 믿었다.

“오. 드디어 다 구워졌군! 하하하!”

사내가 먹음직스럽게 익은 고기를 여러 조각으로 나눴다.

“자. 먹어봐라. 아주 맛있을 테니까.”

사내가 고깃덩이를 우리에게 건넸다.

그러나 생각 없이 먹을 내가 아니었다.

사내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큰 고깃덩이를 먼저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그러고는 등짐에서 술병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럼에도 나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세실과 족제비가 많이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응? 배가 고프지 않은 거냐?”

“고기에 독이나 마취제가 묻었을지도 모르니까.”

내 대답에 사내가 눈을 둥글게 떴다.

“방금 나도 고기를 먹었는데?”

“당신은 술도 마셨지.”

“엥?”

“고기에 독이 묻어있고, 그 술병 안에 해독제가 들어있을 수도 있겠지.”

멍하니 내 얼굴을 보던 사내가 배를 잡고 웃었다. 와하하하! 이거 정말 지독한 꼬마로구나!

“정 의심스럽다면 너희도 술을 마시면 되겠구나.”

“그럴 생각이야.”

나는 사내에게서 술병을 빼앗았다.

독한 향에 얼굴을 찌푸리자 그게 또 웃겼는지 사내가 바닥을 치며 웃었다.

나는 고기를 조금 손으로 뜯어 주머니 안에 넣었다. 킁킁 냄새를 맡는 촉촉한 코가 느껴졌고, 먼지가 긍정의 표시로 꼬리를 흔들었다.

‘먼지야. 먹어도 되겠지?’

그제야 나는 고기를 먹었다.

과연 사내가 자랑할 만한 맛이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그 어떤 고기보다도 맛이 좋았다.

“어떠냐. 끝내주지?”

은근히 묻는 사내의 말을 무시하며 술을 입에 머금었다.

고기를 향한 의심은 먼지를 통해 완전히 지웠다. 그저 오랜만에 술이 마시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냄새만 맡아봐도 매우 독한 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게다가 지금의 나는 14살의 어린 소년이었기에 혀만 적시는 수준으로 만족했다.

세실은 여전히 사내를 경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게 어떤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하려는 듯했다. 입 안에 고이는 침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먹어도 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실이 덥석 고기를 물었다. 눈으로는 사내를 경계하고, 입으로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 기묘한 표정으로.

테오, 족제비, 덩치도 허겁지겁 고기를 먹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사내가 말했다.

“이런이런,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쿠’다. 너희들의 이름은 뭐냐.”

나는 ‘쿠’라는 이름의 소드 엑스퍼트가 있었는지 생각해 봤지만 떠오르는 인물은 없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일 테지.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활약하는 인물이 아니거나, 혹은 사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어찌 됐든 내 이름을 말할 생각은 없었다.

먼지를 통해 일단의 의심은 지웠고, 또 미니맵에 떠오른 사내의 표식이 중립적 대상이라는 것도 확인했지만 그냥 꺼려졌다.

“말하기 싫은 모양이구나. 하하하! 그럼 그냥 금발 꼬마와 예쁜 꼬마라고 불러야겠다! 저쪽 꼬마들은, 그래. 대장 꼬마, 덩치 꼬마, 족제비 꼬마라고 부르면 되겠군! 와하하하하!”

덩치와 족제비가 켁켁 기침했다. 고기를 씹던 테오도 놀란 눈을 부릅떴고, 그것을 본 사내가 다시 큰 소리로 웃었다. 저렇게 쉴 새 없이 웃는 것도 참 대단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냐.”

대답은 기대하지도 않았는지 사내가 말을 이었다.

“혹시 알겠냐? 우리가 가는 방향이 같을지 말이다.”

“그게 뭐가 중요하지?”

“상당히 중요하지! 암! 중요하고말고! 긴 여행에서 말동무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아직 모르는 모양이구나!”

전혀 모르겠다.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나는 동료가 있는데?”

“크으······. 그래서 부럽다는 게 아니냐! 그러니까 방향이 같다면 나도 좀 끼워주면 좋겠다는 거지.”

“거절하겠어.”

그러고는 덧붙였다.

“어디로 갈지도 아직 정하지 않았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왠지 머릿속에서 세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거짓말. 거짓말.

그러면서 나는 인정했다. 저 사내는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변할는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은 한결같지 않다.

배신한다.

“크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묻고 싶은 게 있어.”

사내가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인지 내 물음에 관심이 동한 모양인데, 나는 저러다가 사내의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닥불에 탈 것 같아 신경 쓰였다.

“그래. 말해봐라 금발 꼬마.”

“최근 우리 또래의 소년들을 만난 적이 있어?”

카인 일행에 관한 물음이었다.

굳이 광산 노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상대가 그 사실에 대해 간파하고 있다고 해도.

사내가 턱을 긁으며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흐음. 글쎄에에? 말을 해줄까 말까아아?”

게슴츠레 눈을 뜨며 콧구멍을 벌름대는 꼴이 정말 재수 없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거만하게 턱을 들어 올리니 동굴 같은 콧구멍이 더 적나라하게 보였다.

“아는 게 있다면 말해줘.”

“흐음? 근데 말이다 금발 꼬마.”

콧평수를 넓히며 웃는 얼굴에 손도끼를 던지고 싶어졌다.

“어른에게 부탁할 때의 적절한 말투가 있지 않을까아아?”

“······.”

“으으으응? 금발 꼬마.”

“알려. 주세요.”

입을 연 것은 세실이었다.

세실이 가장 궁금할 테니까.

카인이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디로 갔는지.

“이쪽의 예쁜 꼬마는 예의가 바르구나. 하하하!”

큰 소리로 웃던 사내가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아, 근데 본 적 없다. 너희 또래의 아이들은.”

나는 세실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것을 봤다.

사내가 황급히 두 손을 펼치며 덧붙였다.

“하지만 너희에게 도움될 정보는 있다!”

“그게 뭐지?”

“쾨르다시에 가문 말이다. 하루아침에 멸망했다고 하더구나.”

상상도 못 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에티엔을 비롯한 기마병들이 죽었어도 본진에는 상당수의 병력이 남았을 텐데.

“소드마스터 에티엔이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마석 광산으로 파견됐던 그의 아우도 마찬가지였지. 그 일로 크게 분노한 쾨르다시에 남작은 성의 모든 병력을 광산으로 출진시켰다. 차기 가주를 살해한 자를 잡기 위해.”

사내는 갖은 표정 연기와 손짓과 발짓까지 동원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쉴 새 없이 침을 튀기지만 않았다면 제법 몰입감 넘치게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 병력이 그만 전멸해 버린 거다. 범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 밝혀진 거라고는 상대가 마법사가 아니라는 것 정도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심산이었는지 사내가 두 팔을 쫙 벌리며 외쳤다.

“그런데 쾨르다시에 가문의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주인 쾨르다시에 남작이 자신의 방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된 거야!”

사내는 그 광경을 직접 보기라도 한 사람처럼, 누가 봐도 허황된 과장을 섞어가며 떠들었다. 놀라운 점은 세실이 사내의 입담에 완전히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는 거다.

나는 들은 정보를 머릿속에서 조합했다. 사내의 말을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지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추격대를 만나지 않은 이유도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쾨르다시에의 전 병력이 전멸하고, 쾨르다시에 남작마저 살해되었다니.

“······그래서 말이다! 내가 일만 대군의 앞에 나서서 검을 들고 외쳤지! 멈춰라 이놈들아! 이곳을 지나가려면 나부터 쓰러뜨리고······!”

어느새 사내의 이야기는 자신의 무용담으로 바뀌어 있었다. 말하는 꼴을 보니 용병 생활을 꽤 오래 한 듯 보였다. 세실은 두 눈을 반짝이며 사내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사내의 말이 사실이라면 쾨르다시에 가문의 추격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브리앙스 백작이 현상금을 걸기는 했지만, 그리고 백작의 자체 병력이 우리를 추격할 테지만 당사자인 쾨르다시에 가문만큼 집요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쯤 브리앙스 백작은 쾨르다시에 가문의 멸망이 불러올 변수를 계산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겠지.’

브리앙스 백작은 소드마스터를 잃었다.

다시 말해 오를리앙 왕국을 크게 다섯 세력으로 나누던 축 하나가 무너졌다는 거다.

5인의 소드마스터가 유지하던 왕국의 균형은 깨졌다. 이제 브리앙스 백작에게는 소드마스터가 없고, 오를리안의 다른 대영주들의 입장에서 브리앙스 백작령은 군침 도는 땅이 되었다.

‘머지않아 영지전이 벌어질 거야.’

소설에서 오를리안 왕국의 영지전이 벌어지는 것은 약 1년 후.

하지만 에티엔의 죽음으로 앞당겨질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은 수많은 금화와 병력이 움직인다는 의미.

‘이것은 기회다.’

나에게는 이 세계에 관한 많은 정보가 있다.

향후 닥쳐올 격동의 시기를 이용하면 당장의 생존을 넘어, 카인에게 대적할 나만의 세력을 구체화하는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한동안 이야기를 이어가던 사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뜻하게 잘 놀다 간다 꼬마들아. 하하하하!”

그러고는 늪지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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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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