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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4

24화 사냥하는 거미(7)

미합중국 마탑지부 최상층.

그곳에는 마탑주… 능히 S급 마법사로 칭송받는 대마법사 레이날드 쉘먼이 자리하는 곳이다.

세간에서 대마법사라 불리는 그는 미합중국 대통령조차도 쉬이 대할 수 없는 거물. 그런 그가 자신의 방 안에서 부복하며 용서를 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위대한 존재시여! 명하신 것을 이루지 못했나이다!”

그가 엎드려 빌고 있는 대상은 검은 덩어리가 뭉쳐진 것 같은 보옥이었다.

지혜의 보옥. 미국의 적색 게이트에서 획득한 고유등급의 보물. 그것은 자신을 향해 엎드린 필멸자를 보며 음산한 목소리를 흘렸다.

「어리석고 멍청한 것. 간단한 일조차 해내지 못하는구나. 너에게 삼라의 진리와 지혜를 가르쳤거늘, 날 실망시키는군.」

“죄, 죄송합니다!”

레이날드는 피가 흐를 때까지 머리를 박으며 용서를 빌었다.

그것은 결코 세간의 대마법사라 불리는 자의 품위가 아니었으나 지혜의 보옥이 하사하는 지식에 중독된 레이날드는 보옥을 신처럼 모셨다.

“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레온이라는 생존자는 저희도 예상치 못한 변수였습니다!”`

「하찮은 핑계거리로 내 귀를 더럽히는구나. 그깟 레온이라는 생존…… 씨발 뭐라고?」

“예?”

갑작스레 상스러워진 보옥의 목소리에 레이날드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바, 방금 누구라 했느냐?」

“레온… 이라고 하였습니다.”

「도, 동명이인이겠지? 뉴스… 뉴스 켜봐.」

점점 가벼워지는 보옥의 목소리. 어쩐지 겁에 질린 것처럼 파르르 떨리는 건 착각일까?

레이날드가 뉴스를 틀어 청주 게이트 공략 뉴스를 보이자 그곳에는 금발의 청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짐은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이다.]

「끄허허헑!」

비명에 가까운 단말마. 보옥이 다급히 외쳤다.

「저 새끼가 왜 여기 있어! 왜! 어째서?!」

“주, 주인님?”

언제나 근엄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대마법사를 현혹하던 위대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보옥은 겁에 질려 있었다.

「나, 난 포기. 안 해. 안 한다고.」

다음 순간, 보옥의 검은 기운이 흩어지며 새하얗게 물들었다. 마치 보옥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주인님? 주인님?!”

레이날드는 반응이 없는 보옥을 연신 불렀지만, 보옥이 다시금 목소리를 내는 일은 없었다.

* * * *

“지혜의 보옥은 파괴하셨습니까.”

헌터협회 협회장 오강혁은 레온이 지혜의 보옥을 부쉈다는 이야기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불만인가?”

“……아니요. 던전 클로징 조건은 지혜의 보옥을 파괴하거나 획득하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폐하께서 야크트 스피너를 쓰러뜨렸다면 보옥의 취급 또한 폐하의 권한이지요.”

레온은 그럼에도 협회장의 표정에 숨겨진 아쉬움을 눈치챘다. 그래, 무지한 이들은 눈앞의 이득에 급급하니 어쩔 수 없다.

“아쉬워하지 마라. 그것은 독이다.”

“독… 말입니까?”

“악마의 물건이니 말이다.”

“악마 말입니까?!”

악마가 거론되자 오강혁 협회장은 화들짝 놀랐다.

악마.

데몬 게이트로부터 등장하는 불멸의 존재들. 그간 인류에게 악몽 같은 피해를 입힌 배경에는 언제나 악마가 있었다.

“그 보옥은 지혜와 탐구의 악성이 인간을 유혹하기 위해 만든 물건이다. 처음에는 바라는 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며 차츰차츰 대가를 요구하지.”

제국의 마법사들이 이 보옥의 꼬드김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탐구심으로 이용하던 보옥이 끝내 영생, 불멸, 악마화에 이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국의 황제가 그 꼬드김에 넘어가 수백만 시민들을 제물로 바쳤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됐다 했느냐? 서둘러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럴 수가…….”

게이트의 드롭 아이템이 그런 파멸적인 목적을 숨기고 있었다니… 협회장은 레온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그것이 사실일 경우 끔찍한 일이 벌어지리라 확신했다.

“이 사실을 미국 정부에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는 것이 좋을 것이야. 하지만… 이미 악마의 꼬임에 넘어갔을 수도 있겠군.”

레온은 이 시대 인간들의 의지를 과대평가하지 않았다.

탐욕에 쉽게 지고, 유혹에 쉬이 넘어가는 나약한 우민들이다. 신성을 모르는 그들의 몽매함은 제 세계의 신민들에 비할 바가 못 되리라.

이들은 병들었고, 가난하고, 나약하며, 욕심이 많다.

그렇기에 더더욱 진실한 신앙과 계몽이 필요한 것이다.

신의 사랑이야말로 응당 모두에게 베풀어지는 은혜임을 가르쳐야 한다.

“협회장. 그자가 안치된 곳으로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협회 지하에 모셔놨습니다.”

레온은 협회장의 안내에 따라 한 창고로 향했다.

평소에는 게이트의 부산물들을 쌓아두는 창고. 그곳에는 청주 게이트의 보스였던 야크트 스피너의 잔해가 있다.

“오, 오셨나이까! 폐하! 협회장님!”

기다리고 있던 하리를 시작으로 협회의 직원들이 고개를 숙인다. 그들은 레온을 상대로 깍듯이 예의를 지키라 지시가 내려졌다.

“할 일들을 하라.”

그들의 인사를 받아들인 레온은 야크트 스피너의 잔해 앞에 섰다.

야크트 스피너의 잔해는 척 봐도 처참한 몰골이다.

레온의 성창에 관통되고 으스러지며 부서진 육체는 헌터들을 압도하던 위용을 잃었다.

이젠 그 전성기 위용의 절반도 되지 않은 앙상한 크기. 아니, 말 그대로 잔해에 불과하다.

“어찌… 하시렵니까?”

“명예로운 기사이니 땅에 묻고 신들의 만찬장으로 가길 기도해야겠지.”

쓸만한 땅은 데메라 여신께서 축복하신 나주 평야쯤에 구하면 될 것이다. 레온은 그전에 야크트 스피너를 어루만졌다.

“충의의 기사여, 안식을 가져라.”

그가 야크트 스피너를 축복하고 축성을 한 순간, 야크트 스피너가 움직였다.

“엇?!”

하리의 목소리가 카랑하게 울리자 협회장과 직원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어어?!”

“야크트 스피너가?”

“우, 움직인다!”

청주 게이트의 악몽. 공략대를 세 차례나 격퇴한 보스 몬스터가 미약하지만 삐거덕거리며 움직이자 직원들이 경악했다.

그와중에 고요를 지키고 있는 건 레온 뿐이다.

“허둥대지 마라!”

레온의 노호와 같은 한 마디.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 앞에 누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 야크트 스피너를 쓰러뜨린 레온이 그 앞에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레온의 존재에 안심하고 침을 꿀꺽 삼키며 야크트 스피너를 응시했다.

“귀공…….”

레온 또한 이 상황에 의아함이 든 건 매한가지다.

-끼잉… 끼릭!

야크트 스피너는 제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처럼 낑낑거리더니 이내 성한 로봇팔을 이용해 제 몸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볼트를 풀고, 장갑을 풀어 스스로를 분해… 재조립한다.

그 과정 속에서 레온은 야크트 스피너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성력… 이군.”

그가 야크트 스피너의 마지막을 축복하며 축성으로 사용한 성수. 그것이 야크트 스피너에게 모종의 작용을 한 것이다.

야크트 스피너의 동력원은 반파되어 제대로 작용할 수 없지만, 성력의 축복을 받으면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끝내 자신의 몸을 모두 분해하고 재조립한 야크트 스피너.

본래의 2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은 야크트 스피너가 레온을 응시했다.

레온은 기꺼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그렇군. 그대라면… 능히 여신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레온은 성배를 소환해 그 안에 성수를 생성했다. 그리하여 성배 안에 든 성수를 제 성검에 부었다.

낡고 추레했던 검이 빛을 모은다. 마치 이 세상의 빛들이 그 검을 장식하는 극광이 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의무인 것처럼.

레온의 낡은 철검이 신성의 광채를 눈부시게 겹쳐간다.

“와아…….”

“저게 무슨…….”

그 존재부터가 축복인 성스러운 광채에 모두가 경탄한다.

그는 여신으로부터 하사받은 이 영광의 성검으로 공간을 베었다.

성배와 성수와 성검의 기운이 한데 응축된 검이 공간을 가르는 순간, 휘황찬란한 빛이 공간을 이계화한다.

그곳에서… 사람의, 아니 여신의 새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순백의 머리카락에서 찬연한 기운을 흘리는 그 여신은 서서히 눈을 떠 존귀한 황금을 드러낸다.

“아아…….”

레온이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인간들이 직감했다. 저 찬연한 빛의 여인이 결코 인간이 아님을.

이 세상 그 누구도 비견할 수 없는 신성한 무언가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 신성함에 모두가 무릎을 꿇는다. 꿇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레온부터가 한쪽 무릎을 꿇는데, 비천한 평민들이 어찌 두 다리를 필 수 있겠는가.

“아리아나시여.”

「라이온하트… 나의 첫 번째 기사.」

그녀야말로 빛과 정의의 신성. 라이온하트 왕국이 경배하는 주신이자 반신과 성자들이 경애하는 존재.

레온은 많은 말이 하고 싶었지만, 사태의 경중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야크트 스피너를 소개하듯 일렀다.

“여기 이 야크트 스피너 경은 모든 기사들의 귀감이 되는 명예로운 기사인바. 아리아나께서 살피시기에 부족함 없을 기사입니다.”

여신은 레온이 소개한 이형의 기사를 보았다. 황금의 눈이 기계의 붉은 눈을 꿰뚫고 가늠한다.

「이자는 나의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았다. 명예를 증명하고 내게 영광을 바치지 않았어.」

“여신의 첫 번째 기사인 제가 보증합니다. 저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능히 사자심왕의 영광을 노려볼 만한 위대한 기사입니다.”

「나의 기사가 그리 말할 정도라… 더 살펴볼 것도 없겠지.」

여신은 레온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다.

자신의 기사로서 영광을 바치고 명예를 드높였으며 끝내 불가능한 전장에서 승리를 바쳤다.

만신전의 신들이 그를 귀애하거늘, 그의 말에서 어찌 흠결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허나, 한 가지는 확실히 해야겠지.」

여신은 야크트 스피너를 내려다보았다. 이 무기질적인 기계장치조차 여신 앞에서는 겸손해야 했다.

「그대, 이계의 강철기사여. 그대는 나의 기사 사자심왕의 군문에 들어 빛을 찬양하고 정의를 노래하겠느냐.」

-끼룩?

야크트 스피너는 여신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 동체를 기웃거렸다. 나름의 의사표시다.

「명예와 지식은 넘치나 그 지혜는 아직 아이와 다를 바 없구나. 간단히 이해하거라. 나의 기사를 도와 악성을 멸하거라. 그리하면 너 또한 나의 기사다.」

악성.

야크트 스피너의 카메라 아이가 레온을 쭉 응시한다.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종합하며 레온의 제안과 그가 보여준 힘을 기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자신의 재활동을 직시했다.

야크트 스피너는 곧장 결론을 내렸다.

-끼긱! 끽! 끼긱!

기계어로 무언가를 읊었으나 이내 언어가 통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다시금 이 세계에서 통용될 언어를 찾는다.

주변 위성통신국의 라디오 타워를 해킹하는 건 그에겐 간단한 일이다.

-확인. 계획. 악마. 어택. 굿 플랜.

단문으로 끊어친 대답이었으나 레온과 아리아나는 그것을 무례하다고도, 다시 말하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 명예로운 성배기사가 자신의 군문에 함께한다는 것이 진심으로 기뻐했다.

「좋다. 야크트 스피너 경. 그대가 나의 첫 번째 기사에게 충성하고 그 힘을 보태는 이상, 그대의 영광에는 내가 함께할 것이다.」

Grail Knight Jagd Spinne 10,253.

여기 새로운 성배기사가 빛과 정의의 서임을 받았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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