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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4

빌어먹을 아이돌 24화

Album 3. 세달백일

무대가 끝나고 꽤 만족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최고의 무대라서가 아니라, 처음 설정했던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번 2차 미션을 통해 얻으려는 바는 명확했다.

무대 자체는 훌륭하지만, 나에게 포커스가 쏠리지 않는 것.

한시온의 개인 기량은 충분하지만 팀전에서는 돋보이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딱 이 정도가 적절하다.

랩 벌스에서 약간의 임팩트를 주긴 했지만, 그것마저 없었다면 아마 혹평을 받았을 거다.

나에 대한 기대치는 높은데 원곡 랩이 좀 심심했거든.

그래도 사전 미션이나 1차 미션 때처럼 거창한 짓을 한 건 아니었다.

그라임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냥 표현 방법을 바꿔서 듣는 재미를 첨가한 정도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시작되었다.

전체 무대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방향성이 좋았습니다. 하루 만에 만들 수 있는 이상적인 무대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개인의 개성을 보여 주면서도 최소한의 통일성을 추구한 게 참 영리했다고 생각됩니다.”

이어서 참가자들의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온새미로, 최재성은 칭찬을 받는 느낌, 김성우와 심주완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느낌.

내 생각도 비슷하다.

최재성은 꽤 잘했다.

70의 실력을 가지고 70의 무대를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은 100을 가지고 있는데도 70을 보여 줄까 말까다.

하지만 최재성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고를 해냈다.

한데, 그런 모습을 보면 볼수록 지난 생에서 최재성의 무대를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도무지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시온 씨의 랩은…….”

이어진 내 랩에 대한 평가는 정확히 반반으로 나뉘었다.

최대호와 블루는 엄청난 극찬을 했다.

굉장한 표현력을 보여 줬고,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듣는 재미를 극대화했다고.

그에 반해 유선화와 이창준은 아쉬움을 표했다.

“랩 자체만 놓고 보면 훌륭했습니다만, 보이 스카우트라는 곡의 컨셉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였습니다. 왜 그라임 스타일을 선택한 거죠?”

“제가 할 줄 아는 랩의 방식이 이것뿐이었습니다. 취사선택을 한 건 아닙니다.”

‘NOP 버전보다 그라임 스타일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따위의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렇게 <이긴 팀>의 무대에 매겨진 점수는 94점.

앞선 무대가 72점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차이가 꽤 컸다.

두 번의 무대가 끝나자, 참가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맴도는 게 느껴졌다.

사전 미션으로 시작된 모든 미션과 심사가 끝이 났다.

이 말은, 최종 멤버 다섯이 선정될 시간이 다가왔다는 뜻이었다.

심사위원석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블루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곤 이런저런 이야기로 방송용 서두를 만들어 내더니 결론을 꺼내들었다.

“현재까지 네 개의 낙점을 받아 합격한 참가자는…….”

스크린에 이름이 떠오른다.

“네 명입니다.”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한시온, 이이온, 온새미로, 최재성.>

이이온과 온새미로는 당연한 결과고, 나는 말할 것도 없다.

의외인 건 최재성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최재성보다 구태환이 더 매력적인 보컬이라고 생각한다.

한 곡을 온전히 소화해야 한다면 최재성이 낫겠지만, 팀 활동을 할 때는 파트를 분배하니까.

거기에 말도 잘 듣고.

그렇다고 납득 못할 결과는 아니었다.

최재성도 이번 무대에서 잘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최재성을 슬쩍 쳐다봤는데, 어느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니, 이거 하나 붙었다고 눈물까지 흘려?

그때 최재성이 날 보며 환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

진짜 담임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무튼 이렇게 되면 남은 자리는 하나뿐이다.

“그리고 세 개의 낙점을 받은 참가자는 3명입니다.”

구태환, 김해운, 남성일.

“3낙점자들끼리의 경쟁 이후, 마지막 멤버가 선택될 예정입니다.”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한 이들이 고개를 푹 떨구고, 카메라가 그들을 줌 인 하는 게 보인다.

누군가의 절망은 때론 달콤한 방송용 소스가 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난 저런 장면을 보며 안타까워하기엔 너무 고여 버린 인간이기도 하다.

음…….

안타까운 척은 해야지.

“고생했어. 분명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

괜스레 김성우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심사위원들의 의중을 파악했다.

현재까지 뽑은 4명의 합격자들은 전부 보컬이다.

내가 랩을 선보이긴 했지만, 랩 포지션으로 둘 리가 없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잘하는 래퍼보다 잘하는 보컬을 더 높이 쳐주는 풍토가 있으니까.

한데 3낙점자 중 김해운, 남성일은 래퍼고, 구태환도 2차 무대에서 랩을 선보였다.

심사위원들이 마지막 멤버로 래퍼를 원한다는 느낌이 있다.

김해운이랑 남성일은 무슨 랩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수준인데.

뽑히면 어쩌지?

그때 블루가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를 던졌다.

“하지만 3낙점자들의 무대는 심사위원들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네 명의 합격자들이 평가합니다.”

“네? 저희가요?”

“앞으로 함께할 마지막 팀원을 뽑아야 하니까요.”

블루의 말에 부담감을 느낀 합격자들의 얼굴이 하얘졌지만…….

오히려 좋아.

*  *  *

드디어 1박 3일 동안 진행됐던 커밍업 넥스트의 모든 촬영이 종료됐다.

출연진들이 가장 먼저 귀가하고, 이어서 촬영 팀이 철수를 시작했지만, 난 아니다.

<가로등 아래서>의 음원 발매와 관련된 계약 때문에 사인할 게 좀 있어서.

“여기 핸드폰이요.”

“감사합니다.”

“잠깐 저기 의자에 앉아 있으면 피디님이 오실 거예요.”

“화장실 다녀와도 되죠?”

“그럼요.”

촬영 중 맡겨 놓았던 핸드폰을 돌려받으니 부재중 전화가 상당히 많이 찍혀 있다.

뭐, 대부분이 큰고모부니까 이건 무시하고.

나머지는 LB 스튜디오의 이현석 대표, BVB 엔터의 서승현 팀장, 그리고 현수 삼촌이다.

그 외에도 고등학교 친구로 보이는 이들에게 자잘한 연락이 와 있었지만 솔직히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난다.

난 무한 회귀가 시작되기 전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많이 잊어버렸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로 향하는데, 철수하는 촬영 팀 사이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구태환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저, 그,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본인이 열심히 한 거죠.”

“아닙니다. 한시온 씨 아니었으면 못 붙었을 거예요.”

그랬다.

커밍업 넥스트 B팀의 마지막 한 자리는 구태환이 꿰차게 되었다.

솔직히 구태환은 나한테 고마워하긴 해야 한다.

1차 미션 때야 가볍게 도와주는 정도였지만, 추가 미션 때는 아예 붙도록 만들어 줬으니까.

물론 남들 눈에는 내가 구태환을 붙이려고 작정했다는 티가 안 날 거다.

은밀하게 사람들을 선동하는 건 익숙한 일이니까.

“앞으로 잘해 봐요. 한동안 같은 팀일 텐데.”

“노력하겠습니다.”

음, 역시 중독성이 있어.

“혹시 식사 안하셨으면 같이 밥이라도……?”

“어차피 앞으로 지겹게 볼 텐데 다음에 먹어요. 피디님이랑 이야기할 게 있어서 남았거든요.”

“아, 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씀하시죠.”

각 잡고 팍 서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 나이를 알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된다.

최재성도 그러더니…….

나이 티가 나는 건가.

하긴, 오래 살긴 했지.

“내 어딜 믿고 그렇게 노력했어요? 같은 참가자인데.”

내가 전생에 무엇을 이룩했고, 어떤 레코드를 달성했는지는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엔 난 그저 수많은 아이돌 지망생 중 한 명일뿐이다.

재능은 있어 보이겠지만, 구태환처럼 자신이 그동안 해 오던 방식을 버리고 온전히 조언을 따르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뭔 생각이었는지 궁금하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그러셨거든요. 살다 보면 한 번쯤 천재랑 만나게 되는데, 자존심 부리지 말고 고분고분 도움을 청하라고.”

“천재라고 무조건 도와준다는 보장이 있나?”

“진짜 천재면 도와준다던데요.”

“흠…….”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 거 같기도 하고?

내가 지금껏 만나 본 천재들은 성격이 모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의 것을 나눠 주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어차피 알려 줘도 못 따라할 거라는 자신감이나, 난 이미 넘치게 가지고 있다는 자긍심 때문에.

“아버지도 음악하세요?”

“버섯 농장 하십니다.”

음, 버섯에도 천재가 있을 수 있겠지.

“두 분 여기서 뭐 하세요?”

그때 강석우 피디가 복도 코너를 돌아 나타나며 말을 걸었다.

“화장실 가다가 만나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볼 사이니까 친해지면 좋죠. 한시온 씨, 계약 이야기는 들었죠?”

“네.”

“지금 가서 끝내죠. 피곤할 텐데 빨리 귀가해야죠.”

구태환과 다음에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는 강석우 피디의 뒤를 따랐다.

아, 근데 나 화장실 안 다녀왔네.

“한시온 씨.”

“네.”

“마지막에 구태환 씨를 붙이고 싶었던 것 같은데, 맞아요?”

“그런 건 아니지만, 남은 셋 중 가장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흠. 한시온 씨도 알고 있죠? 커밍업 넥스트가 뭔지.”

“알죠.”

강석우 피디를 오래 본 건 아니지만, 얼추 캐릭터 파악은 됐다.

이 양반은 지적 사고 수준이 비슷하면 존중해 주는 사람이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은근히 주어나 서술어를 빼는 습관이 있고.

“테이크씬을 띄워 주려고 만든 프로그램.”

“근데 왜 출연했어요?”

“선택하고 싶어서요.”

“선택?”

“데뷔시켜 달라고 무작정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날 데뷔시켜 준다는 손을 고를 수 있는 상황을요.”

“하하, 재밌네요. 데뷔는 꼭 하고 싶은가 봐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석우가 피식 웃더니 내 등을 툭 건드렸다.

“그래요. 우리 첫 단추도 잘 꿰어 봅시다.”

그렇게 난 강석우 피디와 <가로등 아래서>의 음원과 관련된 계약서를 작성했다.

방송국 놈들답게 유통 채널이나 수익 분배 조건이 아주 불리했지만, 걸고넘어지진 않았다.

입에 담을 일은 없겠지만, 우리 둘은 암묵적인 계약을 맺었다.

“한시온 씨. 아까 부탁 하나만 들어 달라고 했잖아요?”

“네. 그랬죠.”

“방금 본인이 한 게 진짜 부탁 하나 같아요?”

“세 개쯤은 되지 않을까요?”

“……재미있네요. 앞으로 잘해 봅시다.”

강석우 피디는 내 의도를 프로그램에 반영해 주고, 난 강석우 피디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달려간다.

이 묵시적 계약은 내가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밀려나거나, 강석우 피디가 내 이미지를 공격하지 않는 한 유지된다.

그러니 음원 계약 정도는 부드럽게 넘어가 주는 게 맞다.

“음원 녹음 일정은 시온 씨 컨디션에 맞출게요. 언제가 좋아요?”

“오늘만 아니면 괜찮습니다. 당장 내일도 가능하고.”

“역시 젊음이 좋긴 좋네.”

녹음 일정은 3일 뒤로 잡혔다.

“참, 플라워스 블룸 작곡가가 누군지 알아요?”

“봤는데 모르는 이름이더라고요.”

“그럼 본인이 무대 위에서 했던 말에 대해서는 얼마나 믿고 있어요?”

원곡이 남자 버전이었다는 것?

“100%라고 생각합니다.”

“흠.”

강석우 피디가 묘한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진짜면 재밌겠네.”


           


Damn Idol

Damn Idol

빌어먹을 아이돌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a harrowing car accident that defies the odds of survival, Han Si-On finds himself once again at the crossroads of fate, quite literally. Miraculously walking away with his life, he faces the daunting task of navigating a life he’s all too familiar with—due to a cryptic deal that traps him in a cycle of regressions. [Mission failed.] [You will regress.] His mission? A seemingly impossible feat of selling 200 million albums, a goal dictated by the devil himself. With each regression, Han Si-On returns to the age of 19, burdened with the knowledge and memories of countless lives lived, all aimed at achieving a singular, elusive go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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