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42

평양시장 선거(3)

야피의 폭거에 가까운 네거티브 전략과 뇌물 전략은 민주시민인 구대성으로선 충격적이었다.

“봤는가! 저렇게 대놓고 뇌물을 뿌리고 다니는데 내 어찌 분노하지 않겠나!”

“어, 음··· 폐하께는 말씀을──”

“폐하께선 그 또한 제힘이라시면서 개입을 거부하셨네!”

레온은 딱히 공정한 선거 따윈 바라지 않았다.

애초에 공평한 선거를 생각했다면 신분에 차등을 두어 투표권을 부여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네거티브 전략까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뇌물공세라니······.

“끼룩! 뭐임?”

그때였다. 더러운 술수가 자행되고 있는 선거유세 천막에 웬 회색머리 미소녀가 입장한 것은.

“야, 야피 경···!”

“구대성. 불카누스.”

“아니, 바깥에 있는 야피 경은······.”

“홀로그램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구대성은 야피가 숨기고 있는 기술이 상상을 초월하지 않을까 지레짐작했고 그건 사실이었다.

“어째서··· 소녀의 몸으로 선거유세를 하시는 겁니까?”

아름다운 소녀의 외관에 메이크업까지 받았는지, 그 미모가 눈부시기 짝이 없다. 평소 유기체의 몸을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야피가 잘 꺼내지도 않던 유기체 몸으로 활동하다니?

구대성의 순수한 의문에 야피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유기체. 아름다운 것에 약함. 유기체들의 미적 기준에서 못 생긴 것보다 예쁘고 귀여운 외향에 더 많은 호의를 품음.”

“아······.”

너무나 정석적인 대답이라 할 말을 잃었다.

“야크트 스피너 경!”

불카누스는 성큼성큼 야피를 향해 다가섰다. 설마 한 대 치나 싶어 기겁했던 구대성이었지만, 그의 큼직한 손바닥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니오!”

“뭐임?”

“약탈 좀 한 것 가지고 나를 파렴치한 놈으로 묘사하다니!”

“사실이잖음. 그리고 공감하는 댓글이 많음.”

“전쟁에서 진 놈들 재산 약탈해다가 집안에 보태는 거 국론 통일하고 사기 올리려면 다들 하는 거 아니요!”

“······아닌 것 같음.”

불카누스의 파격적인 중세 발언에 야피는 눈을 껌벅이며 부정했다.

“모든 재산은 만신전에 귀속하여 정당한 배분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봄.”

“폐하께서도 허하신 일일세!”

불카누스는 마땅히 할 만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항변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야피는 네거티브를 중단할 생각이 없다.

이쪽의 논리가 묵살당하자 불카누스는 다른 방향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스피너 경. 이 뇌물들은 대체 무엇인가!”

“뇌물 아님.”

‘뻔뻔해!’

구대성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거짓말을 하는 야피. 저 철면피는 유기체의 몸을 얻고서도 변하지 않는 것인가!

“본기는 어디까지나 시민들의 복지 지원차 선행을 베푸는 것. 감사를 받아도 모자랄 일임.”

“이봐, 스피너 경! 당신! 맨앳암즈들한테도 똑같이 준다고 약속할 수 있어!”

“끕 낮은 애들은 복지대상이 아님. 끼룩!”

얄밉다. 얄밉지만 효과적이라는 건 거부할 수 없다!

야피는 선금으로 명품과 상품권을 뿌리며 투표를 약속받고 투표가 끝나면 별철무구 제작권으로 딴맘을 먹을 여지를 없애버렸다.

민주주의 투표의 원칙인 비밀투표와 대가성 제공 금지 따위 없는 원시적인 투표가 일으킨 참극이었다.

“이것은 정도가 아니올시다, 스피너 경! 경은 실패할 것이외다!”

불카누스의 호령에도 야피는 담담하고 냉정하게 대답을 이었다.

“유기체들은 본기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됨. 본기에 의한 유토피아를 맞이하면 그만인 것을.”

-끼룩! 끼끼룩!

-끼룩! 끼룩!

수백의 끼끼룩족들의 보필을 받으며 야피는 자신만만하게 천막을 나섰다.

* * * *

싸움에 룰을 정하는 것은 룰로 정해지지 않은 것을 이용하기 위해서라고들 한다.

마냥 틀린 말은 아니지만, 룰 자체가 없는 싸움이라면 어떨까?

백 년이 넘는 세월 형식과 룰을 쌓아가고, 부정을 최대한 없애가며 시스템을 보조해온 현대의 민주주의와 달리 날 것 그대로 출마자의 역량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라이온하트식 선거는 순식간에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야만적이고 욕심 많은 깡통 깡패들에게 도시를 맡기지 마셈!

-기호번호 1번 불카누스는 페토스한테 막말했대요. 무엄한 놈임.

“명예가 전부다! 인간은 오직 인간의 통치를 받아야 함이야!”

“저 음침한 놈, 자기 욕하는 계정은 바로 운영자 밴 때리고 있소! 저런 독재자한테 굴복하지 마시오!”

-투표하셈!

“투표하시오!”

-바른 정치를 위해!

“올바른 지도자를 위해!”

-끼룩! 끼룩! 끼룩!

“불카누스! 불카누스! 불카누스!”

원색적인 네거티브와 추종자들을 동원한 진흙투성이 선거전이었다.

평양 시내를 양분하며 대치하는 두 후보들이 박빙의 승부를 하며 서로를 끌어내리려 애쓰는 가운데, 이 선거에서 예상외의 주요인물이 된 이들이 둘 있었다.

첫째는 성배기사 구대성.

그 자신도 무려 백 표짜리 의결권자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호감을 보이며 전적으로 따르는 이들이 많다는 것에 있다.

이는 평양 특별시의 자유민들. 세계수로부터 태어난 엘프와 난쟁이 그리고 트리맨들.

구대성이 무한한 생명력을 쥐어 짜내며 그들의 부활에 공헌했음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었기에 이번 선거에서 누굴 찍을지 구대성에게 상담하러 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구대성은 난처해하며 스스로 믿을 만한 후보를 뽑으라 돌려보냈지만, 투표권을 가진 자유민들은 여전히 구대성의 의견에 주의를 기울였고, 이는 야피와 불카누스 모두가 그를 포섭하려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구대성만큼은 아니어도 의외의 키 카드가 된 인물이 있었으니──

“합당하지!”

[······.]

불카누스가 찾은 기호번호 3번 흑룡의 선거유세 천막.

아홉 용들의 선거지원을 받고는 있지만, 별다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불카누스가 찾아왔다.

[합당··· 말이더냐.]

불카누스와 그 뒤를 따르는 라이하르, 갈라탄 등의 불타는 검 기사단원들을 앞에 두고 용들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선거를 포기하고 네놈들 밑으로 들어가란 소리냐!]

[깡통 놈들···! 용의 긍지를 뭘로 보고!]

용들은 분개했으나 이성적으로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 보았다.

형세는 기호 1번과 2번의 일방적인 양파전이다. 그에 반해 흑룡의 지지자들은 용족 뿐이었고.

다른 자유민들이나 기사들은 사납고 타종족을 배척하는 용족들에게 쉽사리 모여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두 후보 중 한 명의 밑으로 들어가 선거의 일등 공신이라도 노려 권력을 분할하는 안을 제안할 수밖에.

그마저도 구대성만큼 결정적인 킹 메이커 역할을 하긴 힘들지만 말이다.

[우리들 표 전부 합쳐 이백 표. 그걸 노리는 거냐.]

“흠! 이백 표면 의미가 있지만, 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지! 지금은 잠들어 있는 장외표라던가.”

불카누스의 말에 흑룡은 그가 생각하는 장외표가 무엇인지 짐작했다.

[카리나. 용신 님의 성배기사는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만?]

“글쎄. 막상 그때 가면 또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겠나.”

단신으로 백표. 이렇게 되면 흑룡과 합당하면서 생기는 표가 최대 삼백표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레온이나 베아트리체야 왕족의 자존심 때문이라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겠지만, 카리나는 앞선 두 사람보다는 생각이 열린 타입이니까.

“합당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시 의원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너희 용족들을 우선 등용하겠다.”

[······.]

불카누스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적어도 지금 그들의 열세를 생각하면 합당은 필수불가결이었다.

-끼룩! 합당 제안하겠음.

야피 또한 같은 제안을 했고, 흑룡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어쩔 수 없구나. 내 첫 번째 자손아. 이번은 패배의 쓴맛을 곱씹더라도 이 경험을 타산지석 삼는 게 좋을 것 같다.]

드라고니아조차도 흑룡에게 합당을 권유했다.

하지만.

하지만···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걸까?

“고민이 많은 모양이군.”

그런 흑룡의 심정변화를 알아차렸는지 카리나가 피식 웃고 있었다. 그녀는 흑룡의 선거 유세단에 가끔 얼굴을 기웃거리며 일의 추이를 구경하곤 했다.

그것이 불카누스로부터 이번 선거에 카리나가 개입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혹을 심게 했지만.

[뭐냐.]

“아니, 이대로 둘 중 한 명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라서 말이지.”

[나를 모욕하는 거냐!]

“작금의 상황에선 그게 현실적이지 않나.”

-크르···!

흑룡은 사나운 숨소리로 카리나를 위협했지만, 고작 어린 용의 이 갉는 소리에 물러날 여걸이 아니었다.

“뭐, 이래봬도 용신의 성배기사 되는 몸이다. 나름의 조언을 해줄 수 있어.”

[네가 감히?]

“하아~”

카리나는 이 태생부터 오만한 종족들을 다루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긴, 이쯤 되는 비대한 자아를 지녔으니 신들과도 싸울 생각을 한 거겠지.

“본작은 한 제국을 다스린 황제였지. 하지만 좋은 정치인은 되지 못했다.”

카리나 드라고니아 황제. 그녀는 그저 압도적인 힘으로 군림하는 존재였을 뿐이다.

관료와 귀족들은 두려움 속에서 그녀에게 복종했고, 그녀는 그저 턱짓으로 명령하면 되었다.

“본작이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정치인은 따로 있어. 네가 원한다면 그분의 조언을 듣게 해주지.”

[설마······.]

카리나가 소개한 정치인은 말할 필요도 없었.

“그래, 가르침을 원하느냐?”

레온. 그는 반년 동안 가르친 제자 아닌 제자를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흑룡은 불카누스와 야피의 선거전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서로를 물고 뜯고 내리깎는 이 선거판에서 자신의 역할이라곤 한쪽의 우세를 점하게 해주는 합당카드 외엔 없다는 것에.

[저들의 지지세력은 공고하고, 인정하기 싫지만··· 나보다 정치적이다. 솔직히 내가 한쪽의 권유를 받아들인다 해도··· 뒤집지 못할 정도의 표도 아니고.]

“······.”

레온은 솔직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고하는 흑룡을 보며 많은 성장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자존심만을 내세우며 오만했던 용은 어디에 가고 지금은 패배감에 젖은 실패한 정치 초보가 있을 뿐이다.

“이거 참 예기치 못한 유흥을 즐기게 해주는구나.”

[나는··· 진지하다.]

“드라고니아의 첫 번째 자손이여. 너는 어째서 정치를, 시장직을 차지하겠다고 생각했느냐?”

[용의 영광과 시조 드라고니아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다.]

“단순히 명예를 위해 직함이 필요했다는 뜻이로군.”

[잘못됐다는 건가?]

“그래, 잘못되었다.”

[무엇이?]

“그대가 정치의 본질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레온은 이 어린 용이 그 고고한 프라이드와 달리 미숙한 정신을 가진 존재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용은 용.

평범한 인간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그 지성은 작은 가르침만으로 열을 알 수 있는 우수한 학생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이냐?”

[투표를 통해 선출직을 뽑는 것 아닌가?]

“그래, 이 행성에서 가장 성공적인 정치제도지.”

드라고니아는 레온의 솔직한 감상이 의외라고 생각했다.

눈앞의 사자심왕이야말로 용조차 뛰어넘은 고고한 프라이드의 소유자. 스스로가 신이 선택하고 신을 대리하는 존재라 자처하는 초인이 아닌가.

왕권신수설의 살아있는 표본인 그가 민주주의란 제도에 의외로 호의적인 시선을 보낸다는 건 흑룡으로서도 의외일 수밖에.

“범인들이 범인들끼리 표를 모아 자신들의 대표를 뽑는다. 그 대표도 결국은 범용한 자이나 사람이란 능력이 다 비슷비슷해서 누굴 데려다 놔도 비슷한 결과를 내놓는 법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장점일 수는 있다. 어지간해선 크게 실패하지 않는다는 거니까.

“그저 범용한 자들 중에서 나름 뛰어난 자를 대표로 내세우는 거라면 다행인 것을.”

[다른 문제가 있는가?]

“안 그래도 범용한 것들이 입으로만 떠든다는 게 문제다. 당론에 의해, 파벌에 의해, 지지자들의 표를 의식해 줏대 없이 정책을 바꾸고 내뱉은 말을 뒤집지.”

부정부패는 말할 것도 없다. 라이온하트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이곳에선 태연하게 벌어진다.

“불카누스 경도, 야피 경도, 하물며 그대 어린 용조차도 범용한 자들과는 다르지. 타고나기를 초인으로 태어난 존재이며 속세를 초월한 자들이다.”

그렇기에 제약 따윈 필요 없다. 줏대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불카누스 경도, 야피 경도 짐이 민주주의의 껍데기를 던져놨다고 착각하고 있는 게지. 결국 정치란 제 줏대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레온은 용케도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러 온 기특한 후보에게 덕담 한마디를 건넸다.

“그대가 하고 싶은 정치가 무엇인지 전하거라. 여론전도, 뇌물도 초월할 수 있는 그대의 줏대를 시민들에게 고하거라.”

그것이 철인들의 정치다.

흑룡은 레온을 조언을 곱씹으며 선거 캠프로 돌아갔다.

그렇게 선거가 다가오고 평양시장 후보들의 삼자토론이 대대적으로 발표되며 천여 명이 채 되지 않는 평양시민들 앞에서 세 후보가 모였다.

-누가 이길까? 역시 물량공세를 하는 야피 경인가?

-불카누스 경도 만만치 않지. 불타는 검 기사단과 자신만으로 600표라고.

-카리나 각하나 베아트리체 전하는 참가 안 하시나?

-흑룡은 어느 후보와 합당을 할까?

시민들은 그간 있었던 유세기간 동안 자연스레 차기 시장으로 불카누스나 야피를 낙점했다.

3번 후보인 흑룡은 용들의 표를 합산해 한쪽 후보의 우세를 점하게 해줄 뿐, 누구도 흑룡이 이 이 불리한 전세를 뒤집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 기호 3번 흑룡 님! 평양시장 출마 후보로서 자신의 포부를 알려주세요!”

진행자가 바턴을 넘기자 흑룡은 잠시간 고민하며 좌중을 살폈다.

그리고.

선언한다.

서로를 깎아내며 어떻게든 표를 결집하기 위해 발악하던 두 후보와 달리.

자신의 진솔한 정치포부를.

그것은──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