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42

241화.

난 청문회에 출석하기 전, 임진용 회장을 만났다.

“청문회는 어땠어요?”

아침 일찍부터 늦은 시간까지 증인석에 앉아있다 온 그는 잔뜩 지친 표정이었다.

“하루 종일 돌아가며 혼났더니, 정신이 없네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한 게 있으면 당연히 혼나야죠.”

임진용 회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일에 대해서는 할 말 없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게 해야겠죠. 그래도 그동안의 일들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특히 직전에 발표한 재단설립에 관해서는 의원들도 한 목소리로 칭찬을 하더군요.”

청문회 자리에서는 아무래도 국민여론이 안 좋은 기업인들이 집중적으로 두드려맞기 마련.

다행히 과거에 비해 서성그룹의 이미지는 많이 개선되었다.

공장을 증설하고, 고용을 늘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꿨다.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최근 여론도 임진용 회장을 그렇게 나쁘게 보지는 않는 편이다.

다른 선진국들과는 달리, 한국에서 재벌이나 기업인들은 별로 존경받지 못한다.

당연하지만, 이게 국민들 인식이 잘못 돼서 그런 건 아니고, 기업인들이 그동안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횡령, 배임, 탈세, 폭행 등으로 휠체어 타고 검찰을 들락날락 거리는데, 존경할 마음이 들겠는가?

“그나저나 잘못한 것도 없는 저는 왜 부른 걸까요?”

청문회는 지난 정권의 비리와 불법을 밝히고 관련자들을 처벌하기 위함이지, 마음에 안 드는 기업인을 불러다가 야단치는 자리가 아닐 텐데.

“자유한국당이야 당연히 이를 갈고 있을 테고, 여당에서는 국민을 위해 이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겁니다. 아시겠지만, 후배님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인이니까요.”

임진용 회장은 물을 마시며 말했다.

“정치권력은 항상 시장권력을 두려워합니다. 때로는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고 싶어 하죠.”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번에 10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처럼 정치권력은 항상 바뀌기 마련이다.(물론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지만) 반면 순위의 변동은 있을지언정 과거의 재벌은 지금도 재벌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자수성가로 재벌과는 별 관련이 없지 않나?

“부라는 것은 모이면 그 자체로 힘을 갖게 됩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를 가진 후배님을 신경 쓸 수밖에 없겠죠. 그만큼 받아내고 싶은 것도 많을 테구요. OTK컴퍼니에 대해 걸고넘어질 건 크게 세 가지입니다. 법인이 조세피난처에 있다는 것,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과 투자로 이익을 챙겼다는 것, 그리고 한국에 대한 투자가 별로 없다는 것.”

“그게 문제가 되나요?”

임진용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겠죠. 아마 청문회 위원들은 강하게 나올 겁니다. 그냥 고개를 숙이고, 원하는 답변을 들려주세요. 말 잘 듣는 모습만 보여주면 화기애해하게 넘어갈 테니까요.”

한국의 국회의원은 총 300명.

이들 중 국민들이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기껏해야 서른 명 안팎일 것이다.

청문회에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거나 좋은 활약을 펼치면,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한마디로 인지도 올리기 매우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괜히 청문회 스타라는 말이 생겨난 게 아니다.

뭐, 엄한 짓거리하다가 오히려 비호감으로 찍히는 경우도 있지만.

임진용 회장은 나에게 두툼한 자료를 건네주었다.

대충 보니 청문회에 질의하는 국회의원들의 약력과 성향 등이 꼼꼼하게 적혀있고, 예상되는 질문과 모범답변도 담겨 있었다.

“무슨 시험 족보 보는 것 같네요.”

“불법으로 수집한 정보는 아닙니다. 청문회에 가기 전에 보시면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어쩐지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도 이래저래 잘 빠져나간다 했더니, 이런 게 있었던 모양이다.

“공부까지 해야 되는 거예요?”

“다른 회장들은 미리 예행연습까지 하고 갑니다. 비서나 전무가 국회의원 역할을 맡아서 질문하는 식으로요.”

“…….”

하긴, 취업스터디 할 때도 예상 질문을 뽑고 모의면접을 하는 판에, 청문회 자리 가는데 이 정도 준비는 필수겠지.

면접 잘못 보면 취직 못하는 걸로 끝이지만, 청문회 자리에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영혼까지 털리는 수가 있으니.

* * *

다음 날.

난 아침 일찍 일어나 깔끔하게 양복을 갖춰 입었다.

“제가 매줄게요.”

침대에서 내려온 엘리는 내 넥타이를 매주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난 고개를 내밀어 키스했다.

“오늘따라 더 멋지네요.”

“고마워요.”

엘리는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히잉, 안 가면 안 돼요?”

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금방 갔다 올 테니, 저녁 때 봐요.”

1층으로 내려가니, 택규가 앉아있었다.

“웬일로 일찍 일어났네.”

“밤 샜어.”

일어난 게 아니라 안 잤구나.

택규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청문회 잘 다녀오게, 친우여. 생방송 보며 응원할게. 팝콘도 준비해 놨어.”

“…….”

* * *

인생을 어떻게 살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게 되는 걸까?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단체로 견학 왔던 것을 빼면 국회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난 증인석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카메라였다.

청문회 장면은 국회방송을 통해 생중계 된다. 아마 지금쯤 내 얼굴 역시 방송에 나가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와 엘리는 걱정하며 보고 있을 테고, 택규는 팝콘을 먹으며 즐겁게 보고 있겠지.

청문회 증인석에는 나 말고도 다른 회장들도 여럿 불려나와 있었다. 얼마 전 얼굴을 본 화안그룹 안현성 회장, 예전에 인사를 나눴던 리테그룹 진동민 회장, 그리고 은성차그룹 한찬영 회장도 있다.

“…….”

그런데 난 어째서 이 사이에 껴있는 거야? 대체 왜?

막상 증인 심문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그냥 바른 자세로 앉아서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무슨 군대 가혹행위도 아니고…….

역시나 회장들의 입에서는 모범적인 답변이 흘러나왔다.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지시하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돌아가서 확인해보고 잘못된 부분은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잘못을 깨달았고,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업의 책임을 다 하겠습니다.”

“한국에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성심성의껏 노력하겠습니다.”

거의 점심시간이 될 때쯤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먼저 질문자로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자유한국당 이정혜 의원이다.

3선 의원이자 당대표였던 그녀는 저번 대선에서 새정치당 허창민에 밀려서 낙선했고,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이정혜 의원은 나를 향해 물었다.

“OTK컴퍼니 법인 소재지가 어딥니까?”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차분하게 대답했다.

“델라아일랜드입니다.”

“그곳에 가본 적은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그럼 가본 적도 없는 카리브해 외딴 섬에 법인을 만들었다는 거군요. 이유가 뭔가요?”

난 이해가 안 되서 물었다.

“그게 이번 청문회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내 말에 이정혜 의원은 질타하듯 말했다.

“증인은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난 시키는 대로 묻는 말에만 대답하기로 했다.

“제가 설립자가 아니라 모르겠습니다.”

델라아일랜드에 OTK컴퍼니를 설립한 건 내가 아닌 오택규다.

그러자 그녀는 호통을 쳤다.

“증인이 최대주주이자 대표 아닙니까?”

“투자성공의 대가로 지분을 받아 그렇게 된 거지, 설립에는 조금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서류작업은 현주 누나가 다 해줬지.

“누가 설립했든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만든 거잖아요. 이는 정상적인 조세체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행위에요!”

틀린 말은 아니다.

엔플이나 구블이나 같은 글로벌기업들도 최대한 법인세가 낮은 지역(또는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만들고, 수익을 그쪽으로 모는 방식으로 세금을 피한다.

그 액수가 워낙 크다보니, 유럽에서도 과세를 강화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그러나 OTK컴퍼니는 경우가 좀 다르다. 구블과 엔플은 직접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지만, OTK컴퍼니는 기업과 금융에 투자를 할뿐이다. 따라서 비교를 하려면 다른 투자회사와 비교를 해야 한다. 그리고 투자회사가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것은 흔한 일이다.

“OTK컴퍼니가 투자해서 설립한 K컴퍼니와 K컴퍼니가 투자한 여러 기업들은 한국에 법인세를 납부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한국에 배당세와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구요.”

“그럼 뭐합니까? 정작 OTK컴퍼니 자체는 조세피난처에 있잖아요.”

“불법적인 방법으로 법인을 세운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법인이 조세피난처에 있었는데, 그게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정혜 의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럼 그게 잘하는 짓입니까? 당장 한국으로 법인을 옮기세요!”

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어째서 한국으로 법인을 옮겨야 하는 겁니까?”

그러자 이정혜 의원은 기다려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강진후 대표는 애국심도 없습니까?”

“…….”

여기서 애국심이 왜 나와?

난 차분하게 말했다.

“애국심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생기는 것이지, 이런 자리에서 억지로 강요한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정혜 의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르치듯 말했다.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한국을 위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께서는 항상 애국과 애족을 강조하셨습니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대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난 잠시 고민했다.

다른 회장들처럼 좋게 대답하고 넘어갈까, 아니면 성격대로 할까?

적당히 고개 숙이고 오라는 임진용 회장의 충고가 떠올랐다.

서성그룹 회장도 고개 숙이는 마당에 나라고 못 그럴 건 없지만, 나는 한국 재벌들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경영권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횡령이나 배임, 탈세 등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물론 정치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건 없겠지만…… 뭐, 문제 생기면 짐 싸서 미국으로 가면 되겠지.

결심한 나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그러는 이정혜 의원님께서는 애국심이 넘치셔서 자위대 창설기념회에 참석하셨습니까?”

“뭐, 뭐라구요?”

못 알아들은 것 같아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초선의원 때 일본대사관에서 열린 자위대 창설기념회에 참석한 일이 있지 않으십니까? 문제가 되자 처음에는 몰라서 참석했다고 변명했다가, 나중에는 아예 참석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며 허위사실유포로 고소한다고 하셨죠.”

물론 당시 취재자료는 영상으로 남아있다.

난 계속해서 말했다.

“의원님 말씀대로 도산 안창호 선생님께서는 애국과 애족의 마음으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의원님은 당시 한국을 침략했던 일본군의 명맥을 잇는 자위대의 창설을 축하하러 가신 겁니까? 설마 그게 애국입니까?”

이정혜의 의원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지, 지금 국회를 모욕하는 겁니까?”

“오해입니다.”

“뭐가 오해라는 겁니까?”

“만약 제 발언이 모욕으로 들렸다면, 그건 국회가 아니라 의원님을 모욕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정혜 의원은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모욕하는 건 국민을 모욕하는 거예요!”

난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바로 그 국민입니다.”

“뭐뭐…… 이게 무슨…… 어디 감히 국회에서 그런 식으로 말해요? 당장 대표직에서 사퇴하세욧!”

걸핏하면 사퇴하라고 소리치는 것은 그녀의 특기 중 하나다. 오죽하면 보다 못한 다른 의원이 닥치라고 했겠는가?

아마 대통령이 됐으면 볼만했겠지.

“제가 대표직에서 사퇴할지 말지는 의원님이 아닌 OTK컴퍼니 주주들이 투표로 정할 문제입니다.”

매우 놀랍게도 그 표의 80퍼센트를 내가 가지고 있지만.

그러고는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의원님께서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국민들이 투표로 정했던 것처럼요.”

물론 국민들은 그녀를 택하지 않았다. 그래서 청와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기 있는 거겠지.

더 이상 참기 힘들었는지 이정혜 의원은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어디서 나한테 겐세이야!?”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