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45

243. 소꿉친구 – 행운아

“우리 때문에 너무 늦어진 건 아니지?”

한 도시에 세 대의 마차가 당도했다. 연달아 세워진 마차들 중 레오 덱스터가 홍송(紅松), 담적색 외벽이 수려한 마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초봄, 레브 일행은 이제야 제롬 신성 왕국을 벗어나 있었다.

말을 타고 달렸으면 지금쯤 가이단 후작의 영지에 당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혼부부의 여행길이 그렇게 빠를 수는 없어서 레브는 레오와 레나가 탈 마차를 근사하게 꾸며주고(침대까지 들였다) 여러 마을을 관광하며 느리게 남하했다.

레브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아직 여유가 있어. 레나는 왜 안 내리고?”

“공부 중이야.”

“무슨 공부?”

“요리.”

“…아직 미련을 못 버렸구나.”

레나의 요리 솜씨는 좋았던 적이 없었다. 결혼하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레나의 음식을 여기 있는 모두가 먹어 보았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맛있다고 칭찬한 사람은 레브밖에 없었다. 레나 본인도 “칭찬받을 정도는 아닌걸…” 말꼬리를 흐리며 레브 일행의 요리사인 반느 비자인의 위치를 위협하지 않았다.

그러나 레오가

“왜들 이래? 맛있기만 한데.”

꾸역꾸역 먹어준 게 자극이 되었을까, 레나는 아예 요리책을 사다가 읽고 있었다.

“다 왔으니까 레나더러 내리라고 해. 여기서 나흘가량 머무를 거야.”

“나흘?”

레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렇게까지 남쪽으로 내려와 보긴 처음인 그는 생소한(그러나 익숙한) 오른 왕국의 건물들을 휙 둘러보곤 물었다.

“여긴 ‘브리지트’잖아. 에브니 드라진 후작이 다스리는. 뭐하러 여기에 나흘씩이나 있어?”

“그 후작을 설득해야 하거든.”

“뭐? 드라진 후작은 참전하기로 했다면서. 네가 저번에…”

“거짓말이었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거니까 거짓말은 아니지. 기다려 봐.”

레브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레오는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헛웃음을 쳤다.

“너도 많이 변했구나.”

과연 칭찬일까, 레브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며 돌아섰다.

[ 19/23 ]. 다사다난한 회차를 18번이나 겪었다. 더 이상 외진 산골 마을의 평범한 청년이라 할 수 없게 된 그는 영주성으로 다가가 “이리 오너라.” 귀하신 분이 당도하였음을 알렸다.

레오가 “우쭈쭈, 우리 애기 책 읽다가 졸았어요?” 그새 잠이 든 레나 아이나르를 놀리는 사이 레브는 오른 왕국의 북부 변경백, 에브니 드라진 후작과 면담(面談, 서로 만나서 이야기함)하였다. 후작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레브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입니다.”

이번 회차에서 그를 만나기는 처음이 아니다. 작년 네비스에서 잠깐 만났었고, 당시의 후작은 레브를 업신여겼다.

그 잘난 소드마스터가 되었다고 왕위에 오르려 하는 건방진 평민.

드라진 후작은 레브의 인사조차 받지 않았다. 평민에게 단단히 현혹된 친우, 가이단 후작에게 충고했다.

“난 이런 명분 없는 반란에 동참할 생각이 없네.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시게.”

그러나 레브가 제롬 신성 왕국의 왕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게 영향을 미쳤음일까. 에브니 드라진 후작은 전과 달리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게 귀족도 평민을 존중하던 아카이아 제국 시절의 예법임을 알아챈 레브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드님을 뵙고 돌아가게 될 줄 알았는데, 가주님이 계셔서 놀랐습니다.”

수도에 있어야 할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 나의 반란 제의를 받아들여 군대를 점검하러 예까지 왔느냐? ─ 묻자 후작이 선 채로 답했다.

“변경백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러 잠시 들렀소이다. 비록 제롬 신성 왕국이 평화로운 왕국인 것은 맞지만, 혹 불온한 움직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래. 네가 보기보다 잘난 놈인지는 알겠다. 그래서, 신성 왕국이 널 도와준다더냐? ─ 에브니 드라진 후작이 되물었다.

만약 그랬으면 이야기가 쉽게 끝났을 것이지만, 제롬 신성 왕국의 왕, 크링톤 드 프레데릭은 군사적인 보답을 하길 거부했다. 레브는 힐끗 푹신한 소파를 바라보며 짝다리를 짚었다.

자리에 앉고 싶다는 무언의 항의다. 후작은 떨떠름하게 자신이 실례하였음을 손짓으로 표했고, 레브는 흔쾌히 자리에 앉았다. 후작이 방금 되물었던 건 없던 것이 되었다.

어찌 보면 치졸한 신경전이다.

그러나 귀족들은 이렇게 의사를 주고받았다. 구차하게

– “신성 왕국이 군사적으로는 도움을 주기 어렵답니다. 하지만 전 크링톤 드 프레데릭과 친하죠. 도움을 아예 안 주는 것은 아니고, 암묵적인 동맹으로 보심이 옳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떠벌릴 필요 없이 불필요한 이야기를 생략할 수 있었다. 생략했다는 것 자체도 어떤 정보가 되므로 후작도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진 않았다.

하지만 내겐 다른 패를 던져야 할 책임이 있지.

소파에 편하게 주저앉은 레브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실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교회의 통신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지요. 하지만 왜요?”

“레안 드 예리엘 왕자에게 연락을 넣으려 합니다.”

에브니 드라진 후작의 눈썹이 움찔, 치켜 떠졌다.

키는 작으나 남성적인 눈썹과 계란형의 부드러운 턱선으로 책략가적인 인상을 풍기는 사십 대의 귀족이 물었다.

“예리엘 왕가의 새 후계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슬슬 때가 되어가니 연락을 해두고 싶습니다. 그래야 시간을 맞추지요.”

최근 온 대륙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건 세 가지가 있다.

아스틴 왕국과 벨리타 왕국간의 전쟁이 개중 하나였는데, 휴전할 것 같은 분위기가 흐르면서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다.

첫째는 제롬 신성 왕국에서 등장한 네 번째 소드마스터다.

이름이 레브라는 것을 제외하곤 알려진 게 없는 그 미지의 강자는 크링톤 드 프레데릭 왕과 함께 나타났다. 프레데릭 왕가가 십자교회의 간섭을 뿌리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프레데릭 왕가가 숨겨온 힘이 아닐까, 추측이 분분한 가운데 클레오 드 프레데릭 왕자는 사이먼 백작가를 압박하는 중이었고, 세간의 관심은 그 대단한 사이먼 백작가가 왕가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지에 쏠려 있었다. 만약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드마스터가 어떻게 쓰일 것인지를 궁금해하며.

두 번째는 아이셀 왕국에 대한 아스터 왕국의 선전포고다.

작년 가을, 아스터 왕국에서 열린 ‘레티이 대회’에서 아스터 왕국의 왕, 페트라 드 클라우스가 전쟁을 선포했다.

겨우내 군대가 소집되었고, 기사단이 이동했다. 아이셀 왕국도 이에 대응해 군사를 일으켰는데, 페트라 드 클라우스가 무리한 전쟁을 일으켰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아스터 왕국에는 마탑이 없다.

그만큼 마법사가 부족해서 마법 전력에서 월등한 우위에 있는 마법 왕국, 아이셀 왕국이 아스터 왕국군을 쉽게 격퇴할 것이라는 평가였다.

해서 세간의 관심은 전쟁 자체보다는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이사도라 왕가의 왕자들, 비비안 드 이사도라와 오스카 드 이사도라 중에서 누가 그 전쟁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냐로 기울어졌다.

총사령관으로 지목받은 첫째 왕자, 비비안 드 이사도라? 아니면 마법사의 재능을 타고나 코르넬 마탑의 지지를 받는 오스카 드 이사도라?

향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전쟁을 선포한 아스터 왕국은 왕자, 파블로 드 클라우스를 아이셀 왕국의 금지옥엽, 엘리카 드 이사도라 공주와 혼인시키려 했다는 게 드러나면서 역시 무식한 야만인 왕국이라며 조롱받고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왕자와 공주, 레안 드 예리엘과 레리아나 드 예리엘이다.

십여 년 전에 죽었다고 알려졌던 왕자와 공주가 살아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빅 뉴스, 시선을 사로잡는 토픽이지만, 그들은 간신히 살아남은 것에 그치지 않았다.

대단한 기지를 발휘해 에릭 드 예리엘 왕자의 정통성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였고, 혈통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에릭 왕자가 흉측한 괴물이었다는 소문까지 퍼뜨려 정당성을 확보했다.

놀라운 일이다.

거기에 후계자 수여식을 치르며 레리아나 공주의 미모가 만천하에 공개됐다. 공주를 직견한 이들은

“숨을 쉴 수 없었다.”

“레리아나 공주님은 아쉽게도 두 경우에만 아름다우시다. 눈을 감으셨을 때와 눈을 뜨셨을 때다.”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길 주저하지 않았다. 아무리 과장해도 부족하다 강조하였고, 벨리타 왕국의 꽃, 클로에 드 타탈리아 공주의 인기가 한풀 꺾였다.

레리아나 공주가 어디로 시집갈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호사가들은 과연 누가 그 대륙 최고의 미녀를 취할 것인지 토론하기에 열을 올렸다.

최근 공개 연애를 시작한 클레오 드 프레데릭과 파블로 드 클라우스를 제외하고, 아이셀 왕국의 비비안 드 이사도라와 오스카 드 이사도라, 오른 왕국의 애톤&앨제어 드 로그넘, 벨리타 왕국의 클리안 드 타탈리아가 그 행운아로 이름을 올렸다. 길버트 포르테나 토턴 타티안과 같은 유서 깊은 가문의 후계자도 레리아나의 신랑감으로 거론되었다.

물론, 에브니 드라진 후작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 녀석이 화제가 만발한 콘라드 왕국의 후계자와도 끈이 닿아있는 것일까 궁금해하며 입을 열었다.

“레안 드 예리엘이라… 알겠습니다. 무슨 사유로 연락을 청한다고 넣어드릴까요?”

“‘소꿉친구’가 왕자의 연락을 기다린다고 해주세요.”

“소꿉친구요?”

이것은 허세일까, 진심일까, 암호일까.

드라진 후작은 곧 알게 되겠지, 생각하며 집사를 교회로 보냈다. 벼락출세한 평민놈이 저에게 프레데릭 왕가는 물론, 예리엘 왕가와도 인연이 있노라 주장한 것이니 좀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사실은 도와줄 생각이다.

이 레브라는 소드마스터 때문은 아니고 하르베이 가이단, 그의 하나뿐인 친우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이미 발을 너무 깊이 들였다. 빠져나오긴 어려울 것 같은데, 이대로 나 몰라라 할 순 없으니 그 친구가 군사를 일으키거든 자신도 일으킬 생각으로 예까지 와서 병사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솔직히 가망은 없었다.

이 소드마스터 놈이 있어도 기사 전력에서 턱없이 밀렸고, 이놈이 야만인 해방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마탑과 손을 잡기도 어려워졌다. 그나마 유리한 건 잘 훈련된 병사와 훌륭한 장군들이 있다는 건데…

‘저쪽이 병법을 모르면 가망은 있지. 수도의 썩어빠진 귀족들에게 훌륭한 장군이 남아 있을 턱이 있나.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괜찮은 장군이 왕자들 편에 있다면 끝장이다.’

가문의 명운을 확률에 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근심하던 차에 문제의 당사자, 레브가 나타난 것이다. 제가 왕위에 오를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고깝지만 이야기를 마친 후작은 레브에게 좋은 방을 내어주었다.

고작 번쩍번쩍 빛나며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작대기를 얻은 행운아가 청하는 다양한 요구(일행 중에 최근에 결혼한 부부가 있으니 여기 관광지를 좀 소개해 달라, 가이드도 붙여줬으면 한다.)를 맞춰주며 그의 제자라는 야만인들에겐 풍족한 연회를 베풀었다.

저것들이 나가서 싸워야 할 것들이니까. 그리고 어쨌거나 제롬 신성 왕국이 레브의 편이라는 건 국경을 지키는 병사들을 죄다 동원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므로 그 공로를 마냥 무시할 순 없었다.

저 평민에게 왕위를 줄지 어쩔지는 거사가 성공한 후에 생각하자. ─ 라고 드라진 후작이 생각하는데, 다음 날 아침, 집사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고 달려왔다.

“후작님! 다, 당장 교회에 가셔야 할 듯합니다. 그 손님하고요.”

후작이 미간을 찡그렸다.

“뭔가? 예리엘 왕가에서 답신이 왔는가? 연락받은 게 있으면 그냥 말하게.”

“그, 그게 아니오라…”

집사가 서둘러 말했다.

“콘라드 왕국의 추기경이 몸소 통신을 걸어왔습니다. 레안 드 예리엘 왕자님께서 지금 곁에서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왕자가 직접?

드라진 후작이 제 머리를 당혹스럽게 긁었다. 진짜 소꿉친구인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