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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46

무르카 발락

오크.

서리여왕을 공략하기 위해 얼음성을 찾은 그들을 맞이한 건 여왕과 그 권속이 아니라 오크였다.

“마, 말도 안 돼. 오크가 저렇게 강하다고?”

나주 기사단에게 있어 오크들이란 레온의 무자비한 혐오와 학살에 쓸려나가는 잡몹들이었다.

물론 오크 자체가 워낙 타고난 강함을 가진 전사 종족이긴 했지만, 항상 비교 대상이 레온 같은 라이온하트의 기사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이건 정말 현실인가?

단 한 명에게 압도됐다.

강대한 성배기사들도, 절대방어의 방패 덕에 붉은 파동에 직격당하지 않은 기사단도.

눈앞에서 벌어진 비현실적인 용력에 압도된다.

파멸적인 붉은 광채 속에서 자신들을 노려보는 시뻘건 시선에 움츠러들었다.

“후, 후퇴···!”

거기서 겨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 건 천소연이었다. 그녀는 부상당한 성배기사들을 부축하면서 부대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

그 모습을 오크는 잠시간 지켜보곤 흥미를 잃은 듯 등을 돌렸다.

* * * *

“쫓지 않으시렵니까?”

늙은 오크의 물음에 오크는 피식 웃었다.

“실험재료가 아쉽나? 크란.”

“조금은요. 대칸이시여.”

크란이라 불린 늙은 대칸에 의해 파괴된 야피의 잔해를 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 있긴 하군요.”

크란은 파괴된 백작급 기체를 손으로 우악스럽게 질질 끌었다.

비록 완파됐다곤 하나 수백 톤에 달하는 중량을 늙은 오크는 쌈짓돈 줍듯이 가볍게 끌었고 그 끝에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왕좌가 있었다.

목이 뽑히고, 전신이 으스러진 여왕의 충성스러운 거리거인들의 잔해와 함께 왕좌에 머물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시체.

어깨 위가 삭제되듯 사라진 서리여왕의 잔해를 향해 크란이 손을 뻗었다.

-푸욱!

서리여왕의 육신을 파고든 크란의 손이 내부를 헤집더니 뽑아낸 건 서슬퍼런 심장이다. 닿는 것만으로 S급 헌터가 얼어붙었다는 서리여왕의 심장이 크란의 손에 들린 그 순간──

-그오오오오오오!!

박살 났을 터인 서리거인이 크란을 향해 달려들었다.

“멈춰라.”

-······?!

크란의 한 마디에 정지된 영상처럼 멈춰서는 서리거인. 서리여왕의 심장을 쥐고 있는 크란은 단숨에 서리거인을 지배했다.

“뭐, 이것보다는 못하긴 합니다.”

에픽 아이템 서리여왕의 심장.

쥐는 것조차 불가해 러시아의 골칫거리로 남아있던 여왕의 심장을 제 것처럼 쥔 크란이 씨익 웃었다.

“네 녀석이 가지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굳이 찾아왔다.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할 거야.”

“물론입니다, 대칸. 위대한 무르카 발락이시여.”

크란의 손짓에 공간에 균열이 간다. 악마들에게 받아낸 게이트 기술이었다.

“리가르도 그놈도 서쪽의··· 뭐였더라. 제법 강한 인간을 사냥하러 갔다던데, 잘 처리했으면 하는군요.”

“식비는 해야지.”

게이트가 열리며 너머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무르카와 크란처럼 검은 피부의 오크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대칸!”

오크 투신 헬칸의 대전사 발바자.

“스승님. 그것이 서리여왕의 심장입니까?”

오크 주술신 고크록의 챔피언 마그하르.

“얌전히 있어라. 대칸의 앞이다······.”

사나운 거대 멧돼지 도트락이 무르카의 기운에 짓눌려 푸드덕거렸다. 오크 사냥신 스쿠닉의 챔피언 스키라는 애써 도트락을 진정시켰고.

검은 오크들.

이백 년 동안 마계를 떠돌며 마기에 노출된 그들은 악마들의 악몽 같은 존재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무르카! 무르카!”

“무르카! 무르카!”

언덕 아래. 끝도 없어 퍼진 녹색 짐승들이 대칸의 이름을 외친다.

[무르카! 어서 그 깡통 놈들의 대빵을 박살내!]

[무식한 깡패놈. 사냥이란 확실할 때 전력을 다해 덮치는 거다.]

[뭐라고?! 고양이 새끼마냥 소곤소곤 움직이는 놈이!]

[그쯤 해둬라, 깡패. 얍삽이. 그보다 별철부터 연구해야겠다.]

오크 삼대신.

투신 헬칸. 사냥신 스쿠닉. 주술신 고크록.

한 명 한 명이 사납고 강력한 오크들의 신. 그리고······.

“판단은 내가 한다.”

그들 모두의 마음에 든 최강의 오크 대전사.

오크 대칸 무르카 발락의 시선과 목소리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 * * *

상하이에서 부활한 대악마 스카쟈카리어는 부활과 동시에 주변을 악마들의 영지로 선포했다.

서리여왕 수준은 아니지만, 강력한 살육과 파괴의 악마들이 데몬 게이트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의 존재로 인해 주변은 마계화되었다.

끔찍한 마소의 오염에 의한 이계화.

한때, 중국 최대의 경제도시였던 이곳이 철저하게 버려진 이유기도 하다.

스카쟈카리어가 부활할 때마다 상하이 일대는 쑥대밭이 됐으니까.

그와 그의 부하들은 중국 대륙의 악몽. 수백 만의 생명을 앗아간 인류 최대의 살해자. 이번에도 그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격퇴당하기를 반복할 생각이었다.

다만.

지구에서 격퇴당해 육체를 다시 생성하는 회복기 동안.

아무도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어, 점마들 지금 지구 들어가는 포탈 탄 거지?

-???

살육과 파괴의 악마들.

누구보다도 사납고 파괴적인 살육만이 낙인 이 흉폭한 악마들은 육체가 소멸하고 회복되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그하하하하핫! 지구는 나의 것이다!]

악마의 세계침공에선 가장 많은 영장류를 살해할수록 지분이 많아진다.

그런 점에서 지구 침공 추첨에서 제 영지 안에 게이트가 생긴 스카쟈카리어는 이를 행운이라 여겼다.

실제로도 부활하면 바로 지구로 가서 또 인간을 왕창 죽이다가 격퇴당해 마계로 사출되고 또 부활하는 걸 반복하면 제 지분은 계속 늘어날 테니까.

-아무도 말 안 해줬어?

-말해줄 틈도 없이 그냥 가버렸네.

-아이고오··· 이렇게 또 대악마가.

스카쟈카리어와 악마들은 몰랐다. 지금 지구가 어떤 상황인지.

지구에서 악마들을 기다리고 있는 게 어떤 놈들인지.

[살육! 파괴! 정복하라! 이 스카쟈카리어의 영지를 넓히는 거──응?]

하늘이 붉다. 벌써 테라포밍이 완료된 건가? 이거 어서 전공을 더 세워야──

-GRARARARARARARARARA────!!

인간의 발성이라곤 믿기지 않는 괴성. 끔찍하리만치 거대한 괴성과 함께 ‘불꽃’의 유성이 떨어진다. 동시에──

-콰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

쏟아지는 미사일들. 대함 미사일··· 아니, 공격용 미사일이라기엔 마치 마치 사람 여럿을 태운 것처럼 둥글고 두껍다.

[······뭐냐, 저건?]

조심성 부족한 악마가 먼저 죽는다.

* * * *

“구, 구웨에에에엑···!”

악마들은 그저 이 자리를 벗어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하늘에서 낙하한 재앙과 바다를 건너 사출된 ‘수송용’ 미사일들에서 쏟아진 성배 기사단은 일방적으로 악마들을 도륙했다.

성배기사 불카누스와 발탄 불타는 검 기사단.

라이온하트 내에서 최강의 기사단으로 손꼽히는 그들은 악마들에게도 악명 높은 존재.

그들 뿐이라면 스카쟈카리어와 살육의 악마들은 진열을 갖추고 대적해볼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향해 미사일째로 들이박은 존재는 또 있었다.

-라, 라이온하트!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이 남자야말로 정진정명 악의 숙적. 숱한 악종들의 공포이자 악마군주들을 살해한 데몬 슬레이어.

악마조차 공포스러운 존재가 나타나자 하급 악마들부터 무너져내렸다.

[이, 이놈들! 싸워라! 싸우란 말이다!]

스카쟈카리어가 불타는 채찍을 휘두르며 독려했지만, 대악마의 채찍질보다 악마 도살자의 서슬퍼런 시선이 더 두려웠다.

진열 붕괴. 대악마 참수. 일방적인 학살.

악마들의 시체가 도시 여기저기서 널브러진 가운데, 불타는 검 기사단이 안 하던 짓을 했다.

“멈춰라, 이놈들!”

“지금 멈춘다면 단칼에 소멸시켜주마!”

말을 타고 악마들을 몰이사냥하는 불타는 검 기사단.

그들은 악마들의 피로 젖은 갑옷을 선보이며 몇몇 악마들을 포로로 잡기 시작했다.

“이놈이! 감히 내 갑옷에 피부가 닿아? 죽어라, 이 악마야!”

“끄아아아악! 이 혐오스러운 외관을 도저히 지켜볼 수 없다! 죽어라, 이 악마야!”

물론 악마 한정 분노조절장애인 불타는 검 기사단의 포로 획득은 지극히 효율이 안 좋았다.

“하아~ 경들도 참···.”

베아트리체는 불타는 검 기사단이 잡아온 다 죽어가는 악마들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최근 마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니 포로를 최대한 획득해달라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여왕전하······.”

“차마 놈들의 사악한 면상을 보고 참을 수가···!”

베아트리체가 악마들을 확보해달라 부탁한 것은 그들을 심문하고 마계의 최신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혼돈의 군주 라크샤르가 패배한 뒤로, 지구에 대한 악마들의 침공은 현전이 줄어들었다.

게이트 자체는 계속 생겨 나가고 있지만,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던 데몬 게이트나 악마들의 술수가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군주까지 패배한 마당에 악마들이 다음에 준비할 수는 필연적으로 총력전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렇게 상하이에 악마들이 출몰한 것은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며칠.

상하이의 악마들을 철저하게 소멸하는 과정에서 베아트리체는 획득한 악마 포로들에게서 얻은 정보가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음에 침음했다.

“잘 안 되시오?”

“네··· 이 악마들은 생각보다 정보가 낡았어요.”

베아트리체는 상하이에 출몰한 악마들에게서 생각한 것 이상으로 최신 정보를 얻지 못했다.

“이놈들··· 상하이에 데몬 게이트가 출몰한 이후로 계속해서 지구로 달려온 모양이에요. 악마들도 영지가 구분되어 있어서 생각보다 소통이 없었던 것 같고요.”

“놈들이 거짓을 말했을 확률은?”

“제 경험상 거짓을 말하는 악마는 의외로 구분이 가더군요. 여자의 직감이랄까요?”

레온은 처참하게 죽어 나간 악마들의 시신을 흘겨보곤 납득했다. 고기도 먹어본 자가 잘 먹는다고, 베아트리체쯤 되면 악마 고문··· 아니, 심문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꽤 낡은 정보에서 낯익은 정보가 나왔어요.”

“낯익은 정보?”

“‘검은 피부의 오크들’. 블랙오크라고 불리는 이들이요.”

“······.”

레온은 그 정보를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레온과 불카누스가 상하이를 정리하는 동안, 시베리에서 있었던 일을 그들도 들어 알았다.

검은 피부의 오크에게 성배기사들이 부상을 입고 후퇴했다지.

다시금 얼음성을 포위하고 진입했을 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들었다.

베아트리체도 그 정보를 포착하곤 악마들에게서 검은 피부의 오크들에 대해서도 확인했고, 꽤 많은 악마들이 그 오크들에 의해 알고 있었다.

“백문이불여일견이지요. 직접 들어보세요.”

베아트리체는 한 악마 포로를 불러냈다. 용케 아직 죽지 않은 악마 포로는 레온과 베아트리체를 앞에 두고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블랙오크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이백여 년 전, 저희는 폐하의 행성에서 양면전쟁을 시, 시작했습니다.”

최우선 멸망목표는 당연히 라이온하트 왕국.

혼돈의 군주 말루스가 패배했다지만, 그 과정에서 라이온하트 왕국은 다수의 성배기사와 기사단을 잃었다.

악마들을 지혜의 군주 카라카엘이 라이온하트를 충분히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을 직감했고 가장 강력한 악마 군단이었던 살육과 파괴의 군주가 동방의 하늘왕국을 침공했다.

“그, 그곳에서 저희들을 마주쳤던 것입니다. 그들과······.”

그들은 거대한 동방 왕국을 초토화시키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마치 세계의 끝에 도달하려는 것처럼.

그런 그들을 비웃으며 살육과 파괴의 군주는 오크 무리와 정면충돌했고──

“도,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소멸··· 당하셨지요. 오크 신들에게 영혼을 흡수당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살육대공 아카샤 또한 놈의 몽둥이질에 육신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아카샤는 자신의 검에 깃들어 겨우 게이트를 열고 도주했는데, 그들이 마계에까지 쳐들어왔던 것이다.

“놈들은 마계에까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악마들을 닥치는 대로 패 죽였고, 특히 그놈은······.”

“그놈?”

“오크 놈들의 대장, 말입니다. 놈의 이름은······.”

악마는 치를 떨며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두려운 듯 보였다. 하지만 눈아의 폭력 또한 두려운 것은 사실.

악마가 어렵사리 이름을 말했다.

“무르카. 오크 대칸 무르카 발락.”

레온의 세계에서 있었던 대전쟁. 그 치열한 사투 속 악마들을 마계에서도 전쟁을 치러야 했다.

“놈들은 가장 먼저 나태의 군주님을 쳤습니다.”

나태와 우둔의 악마 군주. 불카누스와 불타는 검 기사단을 이백 년 동안 혹한의 대륙에 동결시킨 악마대공의 주군이었다.

“전투가 계되고, 전쟁이 계속해서 벌어졌습니다······.”

놈들은 전쟁 그 자체를 체현한 야수들이었다.

“마계 역사에서 처음으로··· 처음으로 침공을 당했습니다. 저희들은··· 속수무책으로 놈들에게 당했습죠.”

이후 무르카는 온 마계를 넘나들며 그들의 자원을 탈취하고 때로는 악마 추종자, 악마화한 이종족, 악마들까지 굴복시켜 규합시키고 세력을 확장했다.

“저, 저희는··· 라이온하트와 오크들 두 대적을 상대해야만 했습니다.”

그중 라이온하트는 멸망 직전··· 아니, 사실상의 멸망까지 몰고 갔다. 오직 레온 한 사람만을 쓰러뜨리지 못했을 뿐.

하지만 무르카 쪽은 일방적으로 패배를 반복했다.

마계 본진, 나태의 군주와 강욕의 군주가 연합했음에도 그 엄청난 세력과 강대한 대악마들, 악마 군주들이 무르카를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마계에 오래 노출되며 그 피부마저 검어져 ‘블랙오크’라고 불리게 되던 때에는 나태 군주와 강욕의 군주가 무르카의 손에 박살 났고, 마계의 악마들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두 악마 군주의 잔존군단이 일방적으로 도륙당하는 사이, 무르카와 블랙오크들이 존재하는 마계의 차원을 박리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이 지구에 찾아온 오크 대칸이었고, 그자가 오크 대칸 무르카 발락이다.

레온은 언젠가 느꼈던 적의 시선을 떠올렸다.

제레아의 성물 호송대가 퀘스트로 주어지던 그 게이트에서, 본래의 역사에서 꿈과 죽음의 성배기사 제레아가 승천했던 그 사건.

배후에는 제국의 타락한 선제후들이 있었으나 이를 실행한 건 짐승신의 야만족들과··· 오크들.

“스피너 경이 경고했던, 위성을 격추시켰던 그놈인가.”

또한, 미합중국에서 메리엘 여신이 레온의 운명을 점치면서 보았던 ‘거대한 존재’.

타인의 운명을 점치면서 마주하게 되는 것조차 불쾌하게 여기며 ‘꺼져라’라고 여신을 쫓아낸 강대한 에고의 짐승.

어쩌면 자신의 진정한 숙적은 악마가 아니라 놈일지도 모른다고, 레온은 생각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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