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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47

246화.

얘기를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개관파티 날 둘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다음날 정신이 퍼뜩 든 그는 정식으로 고백했다. 현주 누나는 생각해볼 시간을 가지겠다고했고, 그는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만남을 피하고 선을 그었다고 한다.

헨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전부 제 잘못입니다. 제가 그날 실수를 하는 바람에…….”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현주 누나가 분위기에 휩쓸려 잤고, 지금은 그걸 후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택규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럼 헨리가 맞는 거지?”

“그렇겠지.”

시기와 정황으로 볼 때 거의 확실하다.

“흐음.”

택규는 아까부터 괜히 매서운 표정을 지으며 헨리를 쏘아보았다. 지금도 계속 그러고 있긴 하지만, 표정에는 묘한 안도감이 떠올랐다.

누군지 모를 놈보다는 당연히 헨리가 낫지.

“그런데 누나는 왜 숨긴 거지?”

“괜한 부담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누나 성격상 그러고도 남지. 그래도 당연히 알게 될 텐데.”

“조만간 누나가 직접 말할 생각이었겠지.”

이마 계속 숨길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고개를 숙인 채 혼자 자책하던 헨리는 우리의 대화에 당황하며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입니까? 뭘 숨기고 있다는 겁니까?”

“그게…….”

지금 말해야 하나, 누나가 직접 말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하나?

택규는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우리 누나 임신했어요. 아마 그날 일 때문인 것 같은데.”

“예?”

헨리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눈을 껌뻑거렸다. 그리고 이내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맙소사!”

여자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남자가 충격 받는 건 동서양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뭐, 충격이 크겠지만 일단 진정하고…….”

헨리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그 모습을 본 택규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게 좋아하는 거야, 싫어하는 거야?”

“글쎄.”

잘은 몰라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로 제시키가 제 아이를 가진 겁니까?”

“그, 그럴 거예요.”

“건강은 괜찮습니까?”

“둘 다 괜찮다니까 걱정 마세요.”

헨리는 감격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

이러다가 헨리 애가 아니면 큰일 나겠는데.

헨리는 나를 붙들며 소리쳤다.

“그런데 이 중요한 사실을 왜 지금 말해주는 겁니까?”

“저도 방금 알았으니까요.”

“여기서 이럴 게 아닙니다. 지금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창문을 뚫고 옆 건물로 뛰어들 것 같은 기세다.

난 차분하게 말했다.

“흥분 좀 가라앉히고 진정해요.”

“지금 제가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택규는 당장 뛰쳐나가려는 헨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진정해요, 매형.”

“알겠습니다.”

뭐야? 왜 내 말은 안 듣고 택규 말은 듣는 건데?

어쨌거나 헨리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현주 누나가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고 혼자서 애를 키우겠다고 결심한 것은, 헨리가 책임감에 이끌려 그렇게 행동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하는데, 택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누나를 찾아왔다는 그 남자는 누구야?”

“그러게.”

이번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건가?

마침 엘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

[방금 그 남자 또 회사로 찾아왔어요.]

“뭐하는 사람인데요?”

[DSD법무법인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변호사래요. 이름은 김한상.]

“알았어요.”

현주 누나가 변호사 만날 일이 있나?

전화를 끊은 다음 난 택규에게 물었다

“너 김한상이라고 알아?”

그러자 택규가 놀라 소리쳤다.

“뭐? 김한상?”

“깜짝이야. 아는 사람이야?”

“누나가 대학생 때 만났던 남친 이름인데.”

“그, 그래?”

여기서 옛 남친이 왜 나와?

“그 자식 스토커야. 몇 달 동안 학교고 집이고 계속 쫓아다녀서 누나가 욕을 얼마나 했었는데.”

그 말에 헨리와 나는 깜짝 놀랐다.

“뭐?”

* * *

강남에 있는 대형건물의 경우 보통 1층에 프랜차이즈 카페를 두고 있다.

골든게이트 역시 1층에 카페가 있지만, 직원들 전용이고 건물 전체에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한창 업무가 바쁜 시간인지라 카페 안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현주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우리 사귀었을 때 생각나? 그때 참 좋았는데.”

현주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좋긴 개뿔.’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의 흑역사나 다름없다.

만나게 된 계기는 친한 후배 때문이었다. 사촌오빠가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하도 졸라서 그러니 한 번만 소개팅에 나가달라고 부탁했고,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학교 근처 카페에서 처음 만난 남자는 뭐라 특징을 말하기 힘들 정도로 지극히 평범했다.

나이는 그녀와 동갑이었고, 재수 끝에 서란대학교 법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한국대만큼은 아니지만, 서란대 역시 서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명문대다.

이때까지도 현주는 남자나 연애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이상형에 대한 기준도 딱히 없었다는 것이다.

상대가 사귀자고 하자 별 생각 없이 승낙했다. 평범하고 순수해 보이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공부하느라 하루하루가 바빴지만, 꼬박꼬박 시간을 내서 데이트를 했다. 연애를 하는 이상 상대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의 1년을 그렇게 만났다.

헤어지게 된 이유는 상대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동생이 서란대에 다니는 친구가 그가 신입생 여자애랑 만나는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사실 확인을 위해 물어보자, 그는 헤어지자고 통보했다.

연애는 두 사람의 마음이 맞아야 시작할 수 있지만, 이별은 한 사람만 마음을 먹어도 된다. 현주는 미련 없이 헤어졌다.

하지만…….

이 남자의 진정한 찌질함은 그 뒤에 드러났다. 새로 만나던 여자와 잘 안 됐는지, 헤어진 뒤 3개월 후쯤부터 다시 만나자고 울며불며 매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에 찾아오는 건 물론이고, 나중에는 집 앞까지 찾아왔다. 경찰에 신고해 봤지만,소용이 없었다.오죽하면 유학을 갈까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다행히 그 시점에 그는 미루던 군대를 가야 했고, 자연히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뒤로 다시 볼 일은 없었다. 나중에 지방대 로스쿨에 진학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눈앞에 나타날 줄이야.’

성공은 주변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전 세계 금융인들에게 한국 투자자 한 명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당연히 강진후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류철균이라는 이름이 나올 테고, 세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오현주의 이름이 나올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그녀는 OTK컴퍼니 지분 3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 여자 중에서 가장 부자인 셈이고,그 부는 지금도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골든게이트 한국지사 된 뒤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자, 과거에 알고 지냈던 수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그중에는 헤어진 옛 애인도 있었다.

갑자기 두통이 이는 것 같았다.

‘평소 남자보는 눈이 없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이런 남자를 만났었다니.’

만약 대학생 때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면, 정신 차리라고뺨이나한 대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다.

한 번은 일을 핑계로 회사로 찾아왔고, 그 뒤에는 호텔로 찾아와 마치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위장했다.

다시 얼굴 볼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앉아서 얘기라도 하는 이유는 그가 가져온 물건 때문이다.

“너한테는 소중한 물건 같아서 안 버리고 가지고 있었어.”

테이블 위에는 몽블랑 펜이 놓여 있었다.오래전, 그녀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가 선물해줬던 것이다.

대학생 입장에서는 꽤나 비싼 물건이고, 학교 다니는 내내 잘 썼다.

읽어버린 줄 알고 잊고 있었는데…….

‘헤어질 때 흘렸던 건가?’

다시 만져보니, 그때의 기억들이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얼른 취직해서 돈 벌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이 펜이 아니라, 만드는 회사까지도 통째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또 할 얘기 있어?”

현주가 쳐다보자 그는 괜히 주변을 둘러보는 척하며 시선을 피했다.

“아, 아니, 뭐…….”

“바빠서 이만 일어날게. 저번에도 말했지만, 다시는 찾아오지 마.”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

“자, 잠깐. 우리 다시 만나는 거 어때?”

“…….”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다는 게 이런 건가?

현주는 욕이라도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 침착하게 말했다.

“날 왜 만나고 싶은데?”

“그야 뭐, 너 아직 결혼 안 했고, 사귀는 사람도 없다며? 그럼 다시 만나도 되지 않을까?”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이 남자의 유일한 장점은 바로 이 뻔뻔함이다.

‘대체 어떻게 하면 자기가 바람 피우고 차버린 여자에게 다시 만나자고 말할 수 있는 걸까?’

현주는 딱 잘라 말했다.

“지금은 누구를 만날 생각도 없고, 만난다 하더라도 너랑 만나진 않겠지.”

현주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먼저 갈 테니까 천천히 마시고 일어나.”

그러자 그는 벌떡 일어나 현주의 손목을 세게 붙잡았다.

“야! 오현주!”

현주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손 놔.”

“앉아! 나 지금 얘기하고 있잖아.”

그는 손목을 더욱 세게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넌 대체 뭐가 잘났다고,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

“뭐?”

“내가 모를 것 같아? 너 사귈 때도 한국대 다닌다고 항상 나 무시했잖아! 그래서 내가 다른 여자 만난 거 아니야? 니가 잘났으면 잘났지, 왜 사람을 무시하는 건데?”

“…….”

그러니까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이쯤 되면 자신이 뭔 소리를 하는지 알고는 지껄이는 걸까?

‘이 인간은 정말이지 답이 없구나.’

굳이 화내거나 소리를지를 필요도 없었다. 이미 양복을 입은 직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남자가 나타났다.

* * *

어느새 달려 나간 헨리는 왼손으로 남자의 멱살을 붙잡았다.

어찌나 힘이 센지 한 손으로 잡았음에도 거의 몸 전체가 위로 달려 올라갈정도였다. 실제로 상대는 까치발을 든 것처럼 뒤꿈치가 들려있었다.

방금 전까지 강압적인 모습으로 소리치던 남자는 마치 뒷덜미를 잡힌 강아지처럼 버둥거렸다.

헨리는 그야말로 상대를 죽일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알고 지낸 지 꽤됐지만, 이런 표정은 처음 본다.

남자는 공포에 질린 듯 덜덜 떨었다.

“누, 누구세요? 저, 저한테 왜 이러세요?”

헨리는 주먹을 들어올렸다. 취미가 복싱이라더니 폼이 예사롭지 않다. 한 대 치면 이 몇 개 부러지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악! 때, 때리지 마세요!”

남자는 그렇게 소리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금방이라도 주먹을 내지르려는 순간, 현주 누나가 소리쳤다.

“멈춰요!”

그 한마디에 헨리는 얼어붙은 듯 동작을 멈췄다.

현주 누나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때릴 가치도 없는 인간이에요.”

헨리는 결국 주먹을 내리고 상대의 멱살을 풀어줬다.

다시 뒤꿈치를 땅에 붙인 남자는 놀란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보았다.

“뭐, 뭐야? 둘이 무슨 사인데? 설마 사귀기라도 하는 거야?”

현주 누나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알 거 없으니까, 그냥 꺼져.”

그는 구겨진 옷깃을 매만지며 소리쳤다.

“뭐, 뭐? 지금 말 다 했어?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법치국가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방금 장면 CCTV에 다 찍혔고, 외국인이고 뭐고 신고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나 한다면 하는 남자야!”

상대가 자신을 못 때린다는 것을 알자 갑자기 기고만장해진 모습이다.

이런 놈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택규가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OTK 펀치!”

퍼억!

“으아악!”

화려한 기술명(?)과는 별개로 위력은 형편없었다. 별로 세게 친 것 같지도 않은데,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어디서 감히 우리 누나 몸에 손을 대? 이것도 신고해, 새끼야.”

택규는 정작 때린 자신이 아픈지 손을 탈탈 털었다. 원래 주먹도 써본 놈이 잘 쓰는 법이지.

“괜찮아, 누나?”

그래도 나름 듬직한 모습이다.

현주 누나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다들 어쩐 일로 온 거야?”

헨리는 현주 누나의 앞으로 다가갔다.

“둘이 얘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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