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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49

247. 소꿉친구 – 나무 지팡이

원하지 않은 전투가 시작됐다. 앨제어 드 로그넘 공작은 이를 세게 악물었다.

평생 들어본 적도 없던 욕을 무더기로 먹어서는 아니다. 정복해야 할 콘라드 왕국이 저 강 너머에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꿈이 십 년은 미뤄졌구나.

어쩌면 십 년이 아니라 훨씬 더 뒤로 밀려났는지도 모른다. 콘라드 왕국은 침략당한 기억을 잊지 않을 테니까.

“공작님. 여긴 위험합니다.”

고개를 들어 거센 빗방울을 맞던 왕자가 눈을 떴다.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는 가이단 후작의 병사들. 앨제어는 사령탑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아직, 아직이다.” 중얼거렸다.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 최소한의 피해로 저것들을 찍어 누를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왕자가 평소와는 다른 태도로 명했다.

“포진(布陣)을 짜겠다. 제르민 백작. 그대는 전방의 지휘를 맡아 본대가 포진을 정비할 시간을 벌어라. 기사들이 선두에 나가 있으니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 한마디 하려던 게오기스 제르민 백작의 투정이 쏙 들어갔다.

그는 주색잡기나 일삼던 왕자의 서늘함에 놀라 순순히 명을 따랐고, 앨제어 공작은 미간을 찌푸리며 빗줄기에 가려진 전장을 살펴보았다.

오른편, 동쪽에는 이로타시 강이 흐르고, 왼편에는 숲이 있다. 대지는 강변으로 경사가 살짝 기울어져 있었는데, 어제부터 쏟아진 비로 인해 질척한 진창이었다.

포진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가이단 후작의 처형을 공개하느라 각 부대와 소대별로 나뉘어 있는 정도다.

병력은 총합 5만.

개중 7천이 해적이고, 1만은 그를 따르는 귀족이 데려온 혼성군, 6천 명은 자신의 공작령에서 징발한 농노들이었다. 나머지는 해안의 자유 무역 도시들에게 왕자의 이름으로 갖은 혜택을 약속하며 빌린 1만5천의 경무장 보병과 애톤 형님이 지원해 준 로그넘 왕가의 중무장 보병 1만2천 명이었다.

그리고 두 개의 왕국 기사단과 볼리뉴 마탑 소속의 마법사 세 명…

앨제어가 마법사들에게 물었다.

“저기에 대규모 마법을 쓰면 어떻게 되지?”

“다 죽습니다.”

“적군을 모두 죽일 수 있다는 말이냐? 2만8천 명을?”

셋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마법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조금은 으스대며 말했다.

“아니요. 아군까지 포함해서요. 환경이 수계(水系) 마법을 사용하기 너무 좋아서 범위를 계측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계통의 마법을 쓴다면?”

“위력이 많이 떨어지겠죠. 하지만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게… 저쪽에도 마법사가 있습니다. 너도나도 마법을 사용하면 허공의 마나 로드가 엉키면서 폭발합니다. 권장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전쟁에서 대규모의 마법이 잘 이용되지 않는 이유다.

한때는 이를 무시하고 마법을 사용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너희 병사도 죽고 우리 병사도 죽이자는 식이라, 현대에 들어서는 수십 명 규모에나 영향을 미치는 마법이 사용되었다. 소규모 마법은 마나 로드의 설치와 소모가 빨라서 상대측 마법사가 훼방을 놓기 어려웠다.

이것만으로도 전황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마법은 살상력도 살상력이지만, 병사들에게 주는 공포가 대단했다.

“좋아. 자네들은 전방으로 나가라. 우리 측에 피해가 오지 않도록 적의 뒤편을 노리되, 달아나는 적을 공격해선 안 된다. 가능한 한 적이 달아나게 유도해라.”

마법사들은 고개를 조아리곤 전선을 향했다. 앨제어 왕자는 천인장들에게

“해적들을 제르민 백작에게 데려가라. 싸움이 시작되면 그 녀석들이 가장 먼저 사기가 떨어져 도망치려 할 거다. 최전선에 세우고, 달아나려 하는 놈은 죽여라.”

7천의 해적들을 맡겼다.

그들은 좋은 소모품이 되어줄 것이었다. 최전방 1열에는 해적을, 해적들을 사지로 밀어 넣을 2열엔 귀족의 혼성군을, 3열에는 본대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줄 로그넘 왕가의 중무장 보병을 세운 앨제어는 ‘정면은 됐다.’ 생각하며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왼편의 숲이다.

그 이름 없는 숲은 야트막한 언덕을 뒤덮고 있었다. 3천의 농노 출신 징발병이 이미 깃발을 들고 그곳에 가 있었는데, 이 회전(回傳)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려면… 앨제어는 저곳을 장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생각한 건 망치와 모루 전술(hammer and anvil tactic)이었다. 모루가 되는 본대가 단단하게 버티는 동안 망치가 되는 좌익이 적의 우익을 깨뜨려 적을 강으로 몰아넣을 것이었다.

앨제어 왕자는 남은 3천의 농노 징발병과 1만5천의 경무장 보병을 이끌고 숲으로 향했다.

한편 레브도 앨제어 왕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레브는 고함을 지르며 돌격하는 가이단 후작의 병사들을 통제하려 애쓰는 동시에 전황을 살폈다. 그의 머리가 복잡하게 굴렀다.

[ 레오 당신은 콘라드 왕국의 왕이자, 위대한 장군으로 평생토록 조국을 수호했습니다. 그 업적으로 {전술} 능력을 드립니다. ]

무작정 달려들어서는 이길 수 없다. 머릿수가 적을수록 적을 감싸서 전투의 효율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수만 명 단위의 전투는 패싸움과는 전혀 달랐다. 발 디딜 틈 없이 밀집한 공간에서 앞으로 나가려 한들, 아군과 어깨를 부닥칠 뿐이었다.

최전방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뒤에서는 아군이 밀고, 앞에서는 적이 칼을 휘두른다. 피하고 자시고 할 공간도 없어서 막고, 베고, 적과 턱을 부닥치며 온 힘을 다해 눈앞의 상대를 밀어붙여야 했다.

그럼 그 뒤는? 창병이 아니고서야 하릴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5만 대 2만8천. 수가 적은 쪽이 더 서둘러서 전선을 넓혀야 하는 이유다. 그것도 포위를 해서 상대의 노는 병력이 훨씬 많게 만들어야만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려면 저 숲을 우리가 장악해야 해. 본대는 필연적으로 밀리게 될 테니, 밀리는 그때 경사진 언덕에서 강으로 적을 밀어붙인다면!’

승산이 있다.

레브의 {전술} 능력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그는 제1, 제2 야만인 천인대의 천인장을 불러 명령했다.

“너희는 뗏목을 타고 강 하류로 내려가라. 전장에서 완전히 이탈해 적과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간 뒤에, 병사들을 추슬러 적의 뒤를 쳐라.”

강 아래쪽에 있는 앨제어 왕자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빠듯하지만 레브는 이게 전투의 마지막을 장식할 거라 믿으며 두 개의 천인대를 떠나보냈다. 공교롭게도 반느와 루벤 비자인이 각각 부관으로 속한 천인대들이었다.

그런 직후, 레브가 말했다.

“오거튼 백작님. 본대의 지휘를 부탁합니다. 저는 우익을 이끌고 저 숲과 언덕을 장악하겠습니다. 그때까지만 버텨주십시오.”

“병사를 얼마나 데려가십니까?”

“토착민 전사들만 데려가겠습니다. 가이단 후작과 백작님의 병사로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기사도 모두 두고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승전을 기원하겠습니다.”

소아렐 데메트리 오거튼 백작은 저에게 고작 만 오천 명의 병사와 쉰에 못 미치는 기사, 과도한 짐이 주어졌음에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는 레브가 열 개의 천인대를 데리고 숲에 숨어있는 적들과 교전을 벌일 무렵에 자신의 귀중한 소지품을 들고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선 벌써 피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해적들과 가이단 후작의 정예병이 부닥쳤다.

후작의 죽음에 분노한 병사들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 반면 해적들은 앞으로 가도 죽고, 돌아서면 귀족의 병사들에게 살해당하는 상황이라 우왕좌왕, 마지못해 싸우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이 우르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중간중간에 섞여 있는 200여 명의 기사 덕분이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최전선에서도 기사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냈다.

찌르기에 특화된 무기, 검(劍)과 이를 평생토록 수련해온 기사들.

그들이 협소한 공간에서 검을 내지를 때마다 가이단 후작의 병사 수십 명이 진창으로 꼬꾸라졌다. 해적들은 이에 용기를 얻어 아직 낯설은 자신의 무기를 움켜쥐었는데…

“비켜라!!”

그 비좁은 곳에 한 사내가 뛰어들어 검을 보란 듯이 횡으로 휘둘렀다. 가속이 붙기도 전에 막혔어야 할 그 검은 부드럽게, 붉은 실선을 그었다. 어느 나이 어린 해적이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소, 소드마스터다!”

이글거리는 오러블레이드.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거구의 검사였다. 휑하니 비어버린 중앙에서 레오 덱스터가 검을 치켜들며 외쳤다.

“호흡을 아끼지 마라! 계속 밀어붙여! 기사들은 나를 따르라!”

기사들로 인해 주춤했던 가이단 후작의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초인의 존재가 그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소드마스터가 대륙 최강의 인간으로 불리는 이유다.

평상시에는 그들도 일개 기사와 큰 차이가 없었다. 검술 실력이 훨씬 뛰어나다는 걸 감안해도 일대일로는 절대 패하지 않는 기사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장에서는 달랐다.

중무장한 병사들이 밀집한 공간. 바늘 하나 욱여넣기도 힘든 그곳에서 모든 무기와 방어구를 무시하는 오러블레이드란 독보적인 것이었다.

해서 머나먼 고대부터 소드마스터는 전장의 지배자로 불렸으며, 누구도 이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 쾅!

번개가 내리꽂혔다. 벼락을 맞은 레오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끄악!” 비명을 질렀다.

소드마스터가 최강이었던 건 ‘고대의’ 전장에서나 그랬다. 마법사가 등장한 이후로 전장을 지배하는 자는 마법사였고, 소드마스터의 역할은 일반적인 기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위치까지 떨어졌다.

물론 그랬던 마법사들마저도 분대 단위 편성과 마법사들 간의 견제가 일반화되면서 전장의 지배자라는 명칭을 장군(將軍)에게 빼앗겼지만.

소아렐 데메트리 오거튼 백작이 턱을 쓰다듬었다. 비틀비틀 일어나는 소드마스터를 보면서

“어이구, 저런. 좀 아팠겠는데.”

중얼거렸다.

그래도 과연 소드마스터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통구이가 되었을 터였다. 몸에 마나가 축적되어 마법이 잘 통하지 않는 기사였어도 저렇게 정통으로 맞으면 못해도 며칠을 정양해야 했을 것인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검을 다시 치켜들었다.

[ 퀘스트 : 마법살해자 10/10 – {마법저항} 능력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소드마스터는 마법 내성이 더 강한 걸까? 이것도 차후에 실험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오거튼 백작은…

‘나무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아주 오래된, 고색이 창연한 떡갈나무 지팡이. 소드마스터에게 벼락이 한 방 더 떨어지거나 말거나 그걸 잠시 들여다보면 백작이 중얼거렸다.

“스승님께는 죄송하지만 제가 여행을 다녀오면서 작은 소득이 있었거든요. 선배님과 제 동기한테도 참 미안한 일이지만… 저희 마탑의 연구를 위해서라도 여기선 우리가 이겨야 하겠습니다.”

세 명의 소드마스터를 찾아다닌 5년간의 여행. 정작 실험은 바쁘다는 이유로 죄다 거절당했지만, 소득이 아예 없진 않았다. 백작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빛인지 파동인지 알 수 없는 새하얀 것이 폭우가 내리는 전장을 덮쳤다. 병사들은 “뭐지?”하고 말았으나 마법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나가 굳었다. 얼음처럼.

세상 그 무엇보다도 자유롭고, 마법사들조차도 “이쪽으로 흐르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어르고 달래어야 하는 마나가 마치 누군가의 명을 받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소아렐 데메트리 오거튼 백작은 부끄럽다는 듯이 그 고대의 유물을 치웠다. 그는 이제 마법사가 아닌 백작, 군을 통솔하는 장군이 되어 병사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이로타시 강변에서의 회전(回傳)은 이제야 막이 올랐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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