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마피아가 되었다 25화
터벅터벅 아래로 내려가자 주변의 시선이 하나둘 내게로 집중되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중 내게 위협이 되는 것은 눈앞의 바로 저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대한민국 영웅 협회 인천 지부장, 강승태.
“으핫하하하! 오랜만에 보는구나, 유진아.”
단상 위로 올라섬과 동시에 강승태가 내 등을 두드리며 반갑다는 듯 크게 웃는다.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과거 안면이 있는 모양. 우선 그의 말에 맞춰 대답한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주변에서는 강승태와 과거에 친분이 있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낄 수 있으나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주변에 보인 내 재력만 해도 강승태와 안면이 있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자, 이걸로 각 반의 대표들은 전부 모양이구나.”
A, B, C, D, E, F, G, H, I, Z.
총 10개의 반 대표들이 모두 강승태의 앞에 서게 되었다. 정의훈이 선 자리를 보아하니 D반의 대표인 모양.
우리의 얼굴을 쓰윽 훑어본 강승태는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내가 너희와 할 게임은 바로 팔씨름이다.”
“……팔씨름입니까?”
여기까지 불러 놓고 기껏 한다는 것이 팔씨름이라는 말에 의문을 품는 다른 학생. 이에 강승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상 뒤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육중해 보이는 철제 책상을 들고 이곳을 향해 걸어오는 네 명의 학생들.
“그래, 팔씨름. 심플하고 좋지 않나?”
책상이 단상에 놓임과 동시에 쿠웅─ 하고 뭉툭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책상 앞에 앉아 팔씨름을 준비하는 강승태.
“너희들도 알다시피, 내 능력은 상대의 신체 능력과 동등해지는, 이른바 ‘정정당당’이라 불리는 능력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너희와 팔씨름을 할 때는 이 능력을 사용할 예정이지.”
강태승의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같은 신체 능력을 가지고 팔씨름이라니, 그렇게 된다면 정말 승리를 장담할 수 없지 않게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 팔씨름 도중, 너희가 어떤 능력이나 기술을 사용해도 나는 방어만 할 것을 약속하마. 어때, 이 정도면 해 볼 만하지 않겠느냐? 핫하하하! 자, 그럼 규칙도 설명했겠다, 가장 먼저 나와 붙어 볼 애송이는 어디 없나?”
이에 가장 먼저 손을 든 것은 C반의 반장으로, 다른 아이들보다도 키와 덩치가 돋보이는 녀석이었다.
“힘 좀 쓰게 생겼군! 자, 건너편에 앉아서 내 팔을 잡아라.”
그의 말대로 건너편에 앉아 손을 붙잡는 C반.
“정말, 어떤 능력이든 동원해도 되겠습니까?”
“할 수 있다면 말이지.”
강승태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녀석의 몸에서 새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아아……!”
서서히 부풀기 시작하는 녀석의 근육에 강승태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잠깐 짓지만.
“말하지 않았느냐. 신체 능력은 동등해진다고. 그리고, 팔씨름은 힘만으로 하는 게 아니란다.”
강승태가 손목을 꺾으며 ‘흡!’ 하는 기합을 냄과 동시에 녀석의 팔이 순식간에 탁자에 닿으며 경기가 끝나고 말았다.
“나쁘지 않구나. 다만 자존심을 버리고 힘 승부가 아닌 방해를 했다면 더욱 좋았을 게다.”
목을 양옆으로 꺾으며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는 강승태.
친절한 그의 피드백에 감명을 받은 것인지 다른 녀석들도 하나둘 강승태에게 도전하지만, 그래봤자 어떠한 방법을 써도 처참하게 당할 뿐이었다.
“에잉, 쯧쯧쯧……. 젊은것들의 대표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별것도 없구만?”
남은 것은 나와 정의훈 둘뿐.
다음으로는 내가 나서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정의훈이 먼저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다음은 제가 하겠습니다.”
“오, 그래. 의훈이구나. 너 정도라면 이 늙은이를 재미있게 해 줄 수 있겠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곧바로 자리에 앉으며 강승태의 손을 붙잡는 정의훈. 동시에 녀석이 책상을 무릎으로 박차며 옆으로 기울이려 했지만.
“크흡!”
책상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책상을 움직여 내 팔등이 책상에 닿게 하려 한 게냐?! 앗하하하하! 확실히! 재미있기는 하구나!”
“……아직 끝이 아닙니다.”
책상을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판단한 것인지 곧바로 강승태를 공격하기 시작한 정의훈.
하지만 강승태는 여유롭다는 듯 하품을 내뱉으며 거친 숨을 내뱉는 정의훈을 바라볼 뿐이었다.
“더 할 거냐?”
“……저의 패배입니다.”
결국 쥐고 있던 강승태의 손을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녀석.
고개를 푸욱 숙여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볼 만한 표정을 하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러면 다음은 유진이구나. 네 아비에게 듣기로는 많이 달라졌다 하던데,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여 주련?”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강승태의 맞은편에 앉은 나는 곧바로 소매를 걷고 그의 팔을 붙잡았다.
과연 내가 어떤 방법을 시도할지 기대된다는 듯 싱글벙글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강승태.
하지만 나는 그의 장난에 어울려 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팔에 힘을 주어 몸의 무게와 팔의 근력을 이용해 강승태의 팔을 밀어붙인다.
이곳에 나온 녀석들은 모르는,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강승태에 대한 정보.
<인물 도감>
[이름 : 강승태]
[소속 : 대한민국 영웅 협회 인천 지부장]
[설명 : 인천에 위치한 영웅 협회의 지부장. 어릴 때부터 인천에서 자란 그에게는 수많은 인연들이 있다고 한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정정당당’, ‘근성’ 그리고 ‘힘’.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그는 청렴결백함의 아이콘으로도 유명하다.]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이것이다. ‘근성’과 ‘정정당당’.
지금껏 강승태는 다른 녀석들이 본인의 능력을 사용할 때나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절대 져 주지 않았다.
하지만 오로지 순수한 ‘근력’만으로의 승부라면? 그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순수한 근력만으로 상대해 준다.
“크핫하하하!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내 예상이 맞다는 듯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강승태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오직 자신의 근력만으로 내 힘을 버티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래, 이렇게 능력의 사용도 없이 네 힘만으로 하면 이길 거 같더냐?”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물론 내 순수한 근력만으로는, 신체적인 능력만으로 톱의 자리에 있는 강승태를 이기는 게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하하! 그래, 어울려 주도록 하마!”
“지금 이 자리에는 영웅 협회 인천 지부장으로 오신 것이지요?”
“그렇다만.”
“그렇다면 강승태가 아닌, 영웅 협회의 인천 지부장으로서 업무 도중 아버지를 마주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일단은 잡아야겠지.”
“답변 감사합니다.”
동시에 강승태의 팔이 조금이나마 기울어졌다.
“허, 뭔 짓을 한 게냐. 능력을 사용하는 감각은 없었는데?”
“봐 드리고 있던 걸 수도 있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승태의 대답 직후, 내 시야 한쪽에는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떠올라 있었다.
[특성 : 【집행자】가 발동합니다.]
【집행자】
[1. 집행자 – 조직의 적을 상대하는 이들입니다. 조직의 적으로 인식된 상대와 전투 시 신체 능력이 1.5배 상승합니다.]
오직 칼리오네의 적을 상대할 시에만 발동이 가능한 나의 특성 【집행자】.
이로 인해 강승태 역시 신체 능력이 상승하겠지만, 나는 그가 갑자기 상승한 신체 능력을 받아들이기 전에 있는 힘껏 그의 팔을 찍어 내리기 위해 힘을 모아 줬다.
하지만 노련하게도 무게 중심을 낮게 잡아 나의 공격을 흘려 내는 강승태.
“끄응……. 생각보다 더 진지하게 임해야겠구만.”
……괴물 같은 영감.
찰나의 순간 만에 자신의 힘을 가늠하는 데 성공한 것인지 익숙하다는 듯 내 손목을 밀어내려는 강승태.
역시 이것으로는 그에게서 합격점을 받아 내기엔 아직 부족했다.
“따로 방해하거나 다른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게냐?”
“지부장님께서 평범하게 다른 아이들과 팔씨름을 하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음?”
“지부장님께서 말씀하신 ‘정정당당’. 사실은 상대와 신체 능력을 같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력과 상대의 마력을 동기화시키는 게 아닙니까?”
내 이야기에 강승태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네 아비에게 들은 이야기더냐?”
게임을 통해 알고 있던 정보였지만 이것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최대한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지부장님의 마력이 제 몸으로 흘러들어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 몸의 마력들을 순환시켜 길에 익숙해지도록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도요.”
“……네 말이 사실이라면 놀라울 정도로군. 내가 마력에 간섭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웬만한 수준의 마법사들이 아니면 힘든데 말이다.”
“재능이지 않겠습니까? 피는 못 속이니 말입니다.”
내 이야기에 강승태가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하! 그렇게 말하니 내가 할 말이 없구나. 그렇다면 이 기연을 가장 효율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도 알겠느냐?”
“온 힘을 쥐어짜 내 지부장님께 저항하는 것 아닙니까?”
“……알고 있다면 됐다. 어디, 젖 먹던 힘을 다해서 저항해 보거라! 하하!”
“그리하겠습니다.”
강태승에게 그렇게 대답한 나는 곧바로 이 순간만을 위해 마지막까지 나서지 않았던 이유를 보였다.
지금까지 반대표로 나왔던 인물들이 모두 패배하게 됨으로써, 남아 있는 강승태의 대적자는 나 하나만이 되고 말았다.
그 말인즉슨 내가 학생 측의 마지막 대표나 다름없게 되었다는 뜻.
여기서부터 다른 학생들은 반을 떠나서 알게 모르게 나를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내가 지금은 누구보다도 강승태를 가장 많이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
이것은 곧 내가 마지막 희망이자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증거가 되며…….
이는 곧 존경심으로 바뀌게 된다.
[특성 : 【암흑가의 후계자】가 발동합니다.]
【암흑가의 후계자】
[2. 베이비 보스 – 당신에게 두려움이나 존경심을 갖는 생명체와 비례하여 전체적인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그렇게 【집행자】와 【암흑가의 후계자】가 동시에 발동한다면 나의 근력은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다.
“흐읍……!”
온몸의 무게와 힘을 실어 조금씩 강승태의 팔을 밀어붙인다. 서서히 밀리기 시작하는 강승태의 팔. 그런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강승태는 당황한 듯 눈을 커다랗게 치켜뜨고.
“으라잇차!”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내 팔을…… 순식간에 넘겨 버리고 말았다.
……졌나.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결국 목적은 이루었으니까.
“후. 위험할 뻔했구만. 정말로 위험했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선 강승태가 툭툭 내 어깨를 두드린다.
그러고는 이내, 몸을 부르르 떠는 강승태.
“크핫! 크핫하하하하하하! 정말이지 네 아비 말대로 많이 변했구나.”
“……과찬이십니다.”
책상에 거의 박히듯 한 덕분에 얼얼해진 팔목을 흔들며 싱긋 웃자 강승태가 활짝 웃는다.
“이게 얼마 만에 식겁하는 건지 나도 깜짝 놀랐어. 그래, 네 몸에 무슨 변화가 생긴 건지는 알겠느냐?”
당연히, 모를 수가 없었다.
이렇게 눈앞에 새로운 창이 떠올라 있으니까.
[폭발적인 마나가 당신의 몸을 훑습니다.]
[당신의 마력 운용이 수월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마력 운용이 좀 더 원활해진 것 같군요.”
“알았다면 됐다! 음, 다른 녀석들은 보아하니 미묘한 성과 정도밖에 못 낸 모양이구나. 이걸로 대표 격인 녀석들의 몸은 한 번씩 손봐주었으니 충분하겠지.”
이것이 바로 강승태가 ‘지부장’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해 준 또 다른 능력.
[마나 샤워]
자신의 폭발적인 마력과 미친 수준의 마력 컨트롤로 오직 그만이 가능한 기술이었다.
아무래도 성능이 그만큼 사기적이다 보니 자주 사용하지는 못하는 모양.
지부에서도 재능이 출중한 영웅들을 상대로만 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기연을 얻었다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자, 이거로 친구 놈들의 부탁은 모두 들어주었고. 아쉽게도 너희 중 나를 이긴 녀석은 없으니 강연을 진행해야겠구나. 하하하하!”
결국 강연을 진행한다는 말에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학생들. 그 모습에 강승태는 검지를 입술에 붙인다.
“모두 조용.”
지금까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장난이었다는 듯, 무척이나 차가운 어조로 이야기하는 강승태의 모습에 순식간에 침묵에 잠기는 컨벤션 홀.
“강연에 앞서 간단한 이벤트도 끝났으니 슬슬 강연을 시작하도록 하지. 앞에 나왔던 아이들은 모두 자리로 돌아가도 좋다.”
마치 친근한 삼촌에서 차가운 상사의 이미지로 변한 강승태는 곧장 보드 마카를 손에 들고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너희들도 방금 보아서 알 거다. 나와 다른 녀석들의 차이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지.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나를 쓰러뜨리려고 했고…… 유진이는 내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방금까지의 짧은 팔씨름을 영웅과 빌런의 싸움에 대입시켜 이야기를 시작하는 강승태.
“하지만 앞으로 너희가 만날 빌런들은 나처럼 봐주거나 하지는 않다. 귀엽다고 웃기보단 옆에 있는 민간인을 학살하며 웃는 녀석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녀석들을 상대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순식간에 컨벤션 홀의 분위기가 뒤바뀐다.
방금까지의 뜨거운 열기가 거짓말이었다는 듯,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학생들은 잔뜩 긴장한 눈으로 강승태를 바라본다.
“그럼, 시작해 볼까.”
그가 말한 내용은 그리 어려운 것들이 아니었다.
알고 있다면 모두가 알고 있는 정보들과 마음가짐. 하지만 말하는 사람이 다른 영웅도 아닌 ‘강승태’이기 때문일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는 모두 진심으로 보였고, 진실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알림 : 머리가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지능이 오른 것은 부가적인 소득이었고.
그렇게, 아카데미의 3일 차 수업을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도련님. 사냥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마침내 밤이 찾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