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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51

#251

강환계 (3)

“흠, 그러니까 지도 같은 건 따로 없다는 말씀이시죠?”

“예, 예! 보시다시피 저희 같은 작은 산채에서 그런 건 가질 수도 없고 굳이 필요도 없습지요. 근방 산길이나 마을 위치 같은 걸 대충 표시해 놓은 게 있긴 한데, 그건 지도라기보단 그냥 조악한 낙서 같은 것인지라. 예에···.”

양형산에 터를 잡은 산적 두목, 황림채주 공팔이 연신 굽실거리며 조용히 식은땀을 훔쳤다.

자신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미청년을 앞에 두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상대를 우습게 보는 마음 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아낙네나 지학(志學; 15세)도 되지 않은 아이가 상당한 경지를 이룬 경우도 드물지 않은 무림에서는 산적 또한 극한 직업이었다.

자그마한 산길 하나에 죽치고 앉아 푼돈이나 뜯는 어중이떠중이들과 달리, 그리 크지 않은 산이라지만 산채까지 차릴 정도면 그래도 무공깨나 익혀야만 가능한 일.

하물며 지금은 천하를 통치하던 나라가 무너지고 세도가와 지역 군벌, 각지의 무력 단체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전국 시대가 아니던가?

당연히 공팔도 아슬아슬하게 일류에 턱걸이하는 수준의 무인이었건만···.

‘요괴? ···아니, 신선인가? 젠장, 이게 갑자기 무슨 날벼락이야!’

그런 그조차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불가해한 존재가 바로 눈앞에 있는 저 청년이었다.

처음 부하들이 웬 희멀건 색목인 서생을 데려왔을 땐 이놈들이 몸값을 노리고 어디 귀한 집 자제를 잡아 왔나 싶었다.

그가 입은 옷의 양식은 분명 무복과 비슷하긴 한데, 그 재질과 박음질 상태가 영 범상치 않아 보였으니까.

‘젠장, 눈과 귀를 봤을 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이 망할 놈들! 그런 괴물이었으면 빨리 좀 말해줬어야 할 거 아냐!’

단순히 색목인들 사이에서 나는 기형아인가 싶어 그냥 넘긴 것이 패착이었다.

그래서 부하들의 말을 제대로 듣기도 전에 두목으로서의 위엄을 보이고자 대뜸 강하게 나갔었는데···.

오싹—

그 직후.

권태로움이 가득 담긴 그 별 모양 동공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는 그간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공포를 맛볼 수 있었다.

‘쓰벌, 또 그때 기억이···.’

혼자 생각에 잠긴 해리스 앞에 공손히 시립해 있던 공팔이 살며시 팔뚝의 소름을 쓰다듬었다.

하늘과 땅을 비롯한 천하 만물이 자신을 적대하며 노려보는 듯한 소름 끼치는 기분.

한평생 자연을 벗 삼아 산과 함께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그때만큼은 안방같이 편안했던 숲이 마치 맹수의 위장 속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이 바로 지금이었다.

“흐음··· 호남성, 호남성이란 말이죠. 거기다 전쟁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공팔의 자리였던 짐승 가죽이 깔린 의자에 앉은 해리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것은 그 외양처럼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부드러운 미성이었으나, 공팔에게 있어선 염라대왕의 말씀이나 다름없었으니.

이후 그는 해리스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부하들과 머리를 맞대고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짜 내야 했다.

‘진작 다른 데로 이사 갈 걸!’

그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존재가 적당히 만족하고 떠나갈 때까지.

***

후우웅—

마치 새라도 되는 것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는 한 인영.

적당히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시 길을 나선 해리스였다.

‘확실히 마지막 정보가 알려지고 10년이 넘게 지나서 그런가. 사전에 조사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것 같은데.’

이 땅을 통치하는 제국이 무너지고 각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십 년 이상 이어지며 굳어져 심각한 수준까지 치안이 악화된 상태였다.

각 지역의 성(省)급은 물론 현(縣) 단위까지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질 않았던 것.

‘이곳 호남성도 마찬가지고 말이지.’

그나마 제법 시간이 지난 요즘은 초기처럼 대대적인 전면전이 그리 자주 일어나지는 않았다.

대충 전황이 고착화된 상태에서 자잘한 국지전을 바탕으로 서로의 영역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그중 이곳 호남성에서 가장 큰 세력을 꾸린 것은 군문의 일원인 원강 장군의 군벌과 동정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수적 연합 동정십팔채(洞庭十八寨), 그리고 이 지역 정파들의 대표인 형산파(衡山派)였다.

‘그들을 중심으로 각자의 이권에 따라 여러 군소 세력들이 달라붙었다고 했지. 대체 얼마나 개판이기에 수적들이 그 중 한 자리를 차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야 직접 가서 확인해 보면 될 일이었다.

···그래, 지금 해리스는 동정십팔채의 터전이라는 동정호로 향하는 중이었다.

행선지를 그곳으로 정한 것에 딱히 큰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곳이 가장 가까웠기 때문일 뿐이니까.

‘시간도 없는데 언제까지 외곽에서 깨작거리고 있어? 일단 덩치 큰 놈을 들이박은 다음 필요한 게 있으면 뜯어내면 되지!’

거기다 동정십팔채는 도적들의 소굴이었으니 딱히 양심에 찔릴 것도 없었다.

놈들도 그간 힘을 바탕으로 강제로 재물을 수금해 왔을 테니 역으로 털리더라도 어디 하소연하지도 못할 터.

‘다른 차원의 존재인 정령의 힘을 투사하는 것도 그리 위력 저하가 크지 않아. 역시 500만 포인트짜리 『차원 장벽 완화』 덕분인가.’

거기다 해리스의 컨디션도 백 퍼센트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으나, 이 정도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단 훨씬 나은 수준이었다.

세계수에서 멀어진 탓인지 그간 내면에 가득 차 있던 특유의 나태함이 제법 사그라들기도 했고.

‘오? 또 하나 찾았네.’

그렇게 한동안 하늘을 가로지르던 도중.

해리스는 감각의 끄트머리에서 느껴진 존재감에 그쪽으로 방향을 틀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휘오오—

그의 눈에 들어온 곳은 어느 절벽 틈새의 얕은 자연 동굴이었다.

갈라지고 요철이 생겨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장소.

그곳에 내려선 그는 이내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어떤 식물의 줄기를 잡고서 그대로 쑥 뽑아 들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어떠한 저항도 없이 깔끔하게 뽑혀 나온 사람 모양의 뿌리에는 흙 한 톨 묻어있지 않았다.

“이걸로 세 개째. 앞선 두 개를 합한 것보다 이거 하나가 더 나은데?”

해리스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살펴보았다.

이 풀뿌리는 소위 말하는 영약으로, 이 세계에 흐르는 기운인 ‘기’가 가득 담긴 신비로운 영초였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인형삼(人形蔘)인가? 신기하네. 진짜 뿌리가 사람처럼 생겼잖아?’

기본적으로 가볍고 자유로운 대신 뭔가를 계기로 뭉치면 밀도가 끝도 없이 올라가는 기의 특성 탓인지, 이 강환계엔 자연의 기운이 정도 이상으로 응집된 영물들이 많이 있었다.

다소 무겁고 끈적한 느낌의 마나가 기반 된 아우테리카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것들.

이 인형삼도 식물 주제에 영성을 가지고 있어 스스로의 기운을 감출 수 있는 영초였으나, 말 그대로 일대의 자연을 자기 몸처럼 느끼는 하이 엘프 해리스에게 그것들을 찾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너무 많아서 좀 미묘하다 싶은 것들은 거르고, 그의 기준으로도 괜찮다 싶은 것들만 거두고 있는데도 벌써 셋이나 될 만큼.

‘영산이 아니어서인지 깃든 기운이 그리 대단하다 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저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것들을 거둬들인 게 이 정도였다.

진짜 작정하고 각 지역의 이름난 영산들을 순회하면 대체 얼마나 많은 영약이 손에 들어올지···.

‘음, 꼭 기억해 뒀다가 시간이 날 때마다 실행에 옮겨야겠군.’

그렇게 손에 넣은 것들은 모두 그의 성장에 적잖은 영향을 주게 될 테니까.

이후 다시 바람의 정령 파스칼을 불러 주변에 돌풍을 두른 그는 조금 떨어진 쪽의 산등성이를 슬쩍 일별하곤, 그대로 하늘로 날아올라 북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휘이잉—!

“흐억?! 저, 저건···.”

철푸덕!

그리고 해리스의 시선이 닿았던 바로 그 산등성이에서.

우연히 그의 모습을 본 약초꾼 하나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입을 떡 벌렸다.

대단하다는 무림인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봤지만, 그 과장된 이야기 속에도 저렇게 바람을 부리며 하늘을 자유롭게 노니는 존재에 대한 말은 없었다.

그보다 저건 아무리 봐도 무림인이라기보다는···.

“시, 신선? 아니, 신령님?”

너무 빨리 사라졌기에 확실히 보진 못했으나, 워낙 인상적이었던 만큼 그 존재의 머리가 찬란한 금빛으로 번쩍였다는 것만은 똑똑히 기억했다.

마치 하늘의 태양이 지상에 내려왔던 것처럼.

“···이럴 때가 아니지!”

약초꾼은 급한 마음으로 허겁지겁 신령이 승천한 장소로 이동해 그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아까 그건 분명 신령님께서 뭔가를 점지해 주신 것이 틀림없었으니.

“아!”

그리고 그는 인형삼에 몰린 기운의 영향을 받고 그 주변에 자라난, 해리스가 ‘수준 이하’라고 판단해 남겨두고 간 영초 몇 뿌리를 얻고 그대로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다.

“어흑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천지신명님! 이 정도면 우리 동이 약값을··· 드디어 그 아이를 살릴 수 있··· 크흡!”

힘든 처지에 어떻게든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위험한 산을 오르던 약초꾼.

어쩐 일인지 요 몇 년간 채취되는 약초들의 효능이 급격히 떨어진 탓에 앞날이 막막했던 그는 해리스의 무관심 속에서 간만에 큰 소득을 얻게 되었고.

그걸 바탕으로 비싼 약값은 물론 가족들에게 푸짐한 고깃국까지 먹일 수 있었다.

‘도착이군. 과연, 이곳이 동정호인가? 무슨 호수가 바다 같아.’

그렇게 정작 본인은 모르는 사이, 금빛 후광을 머리에 두르고 하늘을 노니는 신령에 대한 이야기가 알음알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해리스를 강환계로 보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처음엔 그 이질적인 외모를 가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었다.

‘이세계에서 가져온 마도구는 지구에서라면 모를까, 다른 성질의 기운이 가득한 타 차원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그건 돈 많은 이들이 전송에 대비해 긁어모았던 마도구가 정작 이세계에선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는 게 알려지면서 상식이 된 이야기였으며.

해리스도 본인이 직접 사용하는 능력이 아니라면 자신의 모습을 감출 방법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정령 궁수인 해리스에겐 그런 능력이 없지.’

그렇다면 복면이라도 써야 할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 모양의 비범한 동공을 감출 수 없었다.

이래저래 곤란하기 그지없는 상황.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 문득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왜? 굳이 번거롭게 모습을 감출 필요가 있나?’

해리스는 무려 초월에 이른 강자, 강환계 기준으로 따지자면 현경의 고수였다.

대충 사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 무림에서 그만한 경지에 오른 이는 숨어있을 은거기인의 수를 후하게 잡더라도 고작 열 명 남짓.

그런 상황인데··· 왜 남의 눈치를 살피며 꽁꽁 싸매야 하지?

‘그럴 필요 없지! 특이한 외모인데 지들이 뭐 어쩔 거야?’

그렇게 해서 지금처럼 그냥 당당하게 활동하게 된 것이었다.

무협 스타일의 의복은 지구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으니 무복을 준비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였지만.

휘오오—

콰르르릉— 파지직!

“끄아악!”

“사, 살려···!”

하지만 막상 이제 와 보니, 역시 어떻게든 모습을 감출 방법을 찾는 게 낫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개성적인 외모에 정령술이란 특이한 능력까지 겹치다 보니 아무래도···.

“으아아—! 요괴다! 요괴가 쳐들어왔다!”

“마, 막아! 이 얼간이들아! 언제까지 소리만 지를··· 크어억!”

“히익! 저, 저런 걸 어떻게 상대하라고! 가까이 갈 수도 없는데!”

“나, 나무아미타불···. 요, 요괴야! 물렀거라!”

···이 모습을 마주한 이들이 보이는 반응이 생각 이상으로 과격했기 때문이었다.

고오오—

빠지지직—!

해리스를 중심으로 일대를 휘감은 어마어마한 폭풍.

그 인력에 끌려와 하늘을 뒤덮은 짙은 구름.

그리고 거기에 섞여 사방으로 스파크를 튀기는 뇌전까지.

지금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호풍환우(呼風喚雨)를 부리는 대요괴 그 자체였다.

‘아니, 이건 외모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보니 이런 능력을 사용하는 이가 갑자기 쳐들어와 본거지를 때려 부수면, 그 외모가 어떻더라도 저런 반응이 나올 것 같기도 했다.

‘뭐, 이제 와선 어쩔 수 없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해리스가 다시 자신의 목표물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동정십팔채의 일각, 어룡채의 본거지.

그가 보일 강호행의 첫 번째 제물이 될 장소였다.


           


My Alter Ego’s Path to Greatness

My Alter Ego’s Path to Greatness

My Alter Ego is Becoming A Giant, 내 분신이 거물이 되어간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Horror of the Continent: The Immortal King Brings Despair, While the Light Knight Defies the Divine Will. In an era of chaos, numerous heroes emerge, striving to navigate the tumultuous land. However, amidst this turmoil, sudden and enigmatic forces make their appearance on the continent. Little did they know, it was all me. …To be precise, they were my alter egos sent to this other world. #Unintentionally becoming the villain of the world. #Somehow, I become both the demon king and the hero. #One person, multiple ro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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