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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52

251화.

SUV 명가로 이름을 날리던 청룡차는 IMF 사태 때 큰 위기를 겪었다. 이후에도 회복하지 못했고, 결국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됐다.

인수할 때만 해도 상하이차는 거액을 투자해 신차를 개발하고 출시해 청룡차를 회생시키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인수를 하고 나자 말이 바뀌었다.

투자는커녕 청룡차가 가진 기술력을 빼가기에 급급했다. 결국 모든 기술을 다 빼돌리고 개발팀 등 중요인력들을 다른 법인으로 옮긴 다음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재매각했다. 그러는 사이 청룡차는 매출과 이익이 곤두박질 쳤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아예 먹튀할 작정으로 인수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중국기업이 은성차를 통째로 인수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중국법인만 인수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국내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까이긴 해도 은성차의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 은성차보다 기술이 우위에 있는 벤츠, BMW,토요타 등은 인수 필요성을 못 느끼겠지만, 중국 완성차업체들 입장에서는 군침을 흘릴 만하겠지.

아직 은성차 상황이 그 정도로까지 심각하진 않고, CEO와 경영진이 그 정도로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테지만,주주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주주들이 돈 안 되는 해외사업장을 정리하기를 바란다면, 무작정 반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여러 안 좋은 사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기업들이 중국에 팔려나갔다. 몇 달 전에는 금오타이어마저도 중국 트리플스타에 넘어갔고.

이번에도 먹튀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인수하겠다고 나선 곳이 중국업체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

난 데릴에게 말했다.

“상황 지켜보고, 정말로 그럴 조짐이 보이면 얘기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상회의가 끝나고 나자 화면이 꺼졌다. 난 들고 있던 자료를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대며 생각했다.

전문가들은 올해를 특이점으로 꼽았다. 올해부터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변화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준비되어 왔다.이제는 그게 표면적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이건 자동차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카로스가 자율주행차를 내놓고, OTK연구소가 OTK배터리를 개발하며, 변화에 불을 붙였다.

엔폰이 출시된 이후 다른 기업들이 구블의 안드로메다 진영으로 몰려갔듯이, 각자 미래차 개발을 하던 기업들이 하나로 뭉쳤다.

미국에서는 니콜라, 아이버, 엔플, 구블, GM, 포드 등이, 일본에서는 토요타, 혼다, SFT뱅크 등이, 유럽에서는 다임러, BMW, 폭스바겐 그룹, PAS그룹 등이 동맹을 맺었다.

설명을 들은 택규가 물었다.

“우리만 왕따 당하는 거야?”

“뭐, 우리도 서성전자, 서성SB와 손을 잡고 있잖아.”

카로스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그럼에도 업체들의 견제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석기시대는 돌이 떨어져서 끝난 게 아니다.

신기술이 등장하면, 기존 기술은 자연스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엔폰이 출시됐을 때만 해도 판매량은 전체 핸드폰 판매량의 몇 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은 피쳐폰을 밀어내고, 시장을 차지했다.

노키아가 피쳐폰을 잘 만들지 못해서망했겠는가? 그 반대다. 어느 기업보다도 잘 만들어서 망했다. 그러니 다른 기업들이 다들 스마트폰 개발에 열을 올릴 때도 최선을 다해 피쳐폰을 만들었지.

청동기와 철기가 등장했음에도, 더욱 크고 멋진 돌도끼를 만들고 있었던 셈이다.

현재 자동차는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에서 적응하는 기업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자연히 소멸한다.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다들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거겠지.

* * *

우리는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중국집?”

“그럽시다.”

이쯤 되면 중국집을 하나 사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았다. 캔맥주를 마시며 한숨 돌리는데, 음식이 도착했다.

“항상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비스로 군만두 넣어드렸습니다.”

“오, 감사합니다.”

택규는 테이블에 음식을 세팅하고, 래핑을 뜯었다.

“누나는 좀 어때?”

“어제 헨리랑 같이 병원 다녀왔다는데, 아무 문제없대.”

현주 누나는 눈에 띄게 배가 불렀다. 이제는 옷도 하이웨스트 스커트 대신 품이 넓은 원피스를 입는다. 일은 계속하고 있지만, 야근은 하지 않고 정시에 퇴근했다. 엘리의 말에따르면 지사장님의 이른 퇴근에 골든게이트 직원들이행복해한다고한다.

헨리는 퇴근시간만 되면 바로 옆건물로 달려갔다. 요즘 표정이 완전히 싱글벙글이다. 이렇게 좋아 죽는데,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다.

“이사는 언제지?”

“다음 주 토요일. 그날 시간 빼놔. 같이 가서 이삿짐 날라야 돼.”

“……응?”

그냥 이사업체를 하나 사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이삿날 서로 돕는 게 우리네 미덕이겠지?

그나저나 현주 누나와 헨리가 정말로 같이 살게 될 줄이야. 이런 걸 보면 정말로 인연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난 뉴스를 보기 위해 TV를 켰다.

마침 은성차 파업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노조는 현재 부분파업을 벌이는 중이고, 다음 협상 때까지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전면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이한찬영이 회장으로 취임한이후 첫 임단협이다. 그리고 그건 노조위원장 역시 마찬가지. 양쪽 모두 기 싸움에 밀리지 않으려는 모양새다.

이번 임단협의 가장 큰 쟁점은 바로 조합원 자녀 우선 채용 문제다. 언론들 역시 그 부분에 주목했다.

택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고용세습이라는 놀라운 발상을 떠올릴 수 있는 거지? 이게 귀족들이 작위세습하는 거랑 뭐가 달라?”

이래서 귀족노조라 불리나?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프레이밍이지만, 이 문제에 한해서는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노조는 그동안 회사를 위해 희생한 만큼 당연한 보상이라고 주장했다.

얼핏 듣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이 논리에 따라 15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의 자녀들부터 국가가 우선 채용한다고 하면,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는가?

지금 한국의 청년실업은 심각한 상황이고, 대기업의 취업경쟁률이 100 대 1을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연히 일반 지원자는 취업경쟁에서 조합원 자녀를 넘어서기가 힘들다.

결국 이는 다른 구직자의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다.

택규는 계속 투덜거렸다.

“부모가 대기업 직원이면 자녀도 대기업 다니고, 부모가 중소기업 직원이면 자녀도 평생 중소기업 다녀야겠네. 부모도 실력이라는 건가?”

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 나라가 언제 이렇게 됐나?

그런데 이런 일이 은성차에만 있는 건 아니다.

노조의 압력에 못 이겨 비슷한 조항을 두고 있는 대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은성차 노조 역시 그것을 예로 들며 자신들도 똑같이 해달라고 주장하는 거고.

이러니 대기업들은 국내에 공장을 짓기 꺼리고, 양질의 일자리는 점점 사라진다. 청년들의 취업이 힘들어지니, 노조는 더더욱 고용세습에 매달리는 거고.

“지금 은성차 매출 떡락 중인데, 저렇게 파업해도 괜찮은 거야?”

“당연히 안 괜찮겠지.”

“카로스 노조는 저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네.”

과거에는 미국 자동차노조 역시 만만치 않게 강성이었다.

그런데 금융위기로 인해 빅3가 몰락했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미국정부는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기업과 노조 양측의양보를 요구했다.

이때 미국 노동자들은 회사가 무너지면 일자리도 사라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부터 미국의 자동차노동자들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미국 자동차노조는 임단협을 4년에 한 번씩하고 파업을 최대한 자제했다. 투쟁하기 위한 노조가 아니라 상생하기 위한 노조로 거듭난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한국 자동차노조는 더더욱 강성 일변도로 나갔다.

이유는 이렇게 해도 회사가 망하지 않을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정규직의 평균 임금은 거의 1억까지 치고 올랐다. 말이 좋아 1억이지, 여기에 각종 복리후생을 더하면 기업의 부담은 훨씬 더 커진다.

노동자가 월급을 많이 받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반도체 같이 인건비 비중이 낮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라면 모를까, 일반 제조업은 이러한 고비용 구조를 계속 가져가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잘나갈 때는 문제가 덜하지만, 매출이 떨어지면 바로 문제가 발생한다. 인건비란 올리기는 쉬워도 떨어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해보면 웃기는 상황이다.

국내에 연봉 4천만 원에도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기업들은 비싼 인건비를 이유로 해외로 나간다. 또한 인건비를 맞추기 위해 정규직을 뽑는 대신 비정규직만 계속 늘리고 있다.

이러니 국내에는 일자리가 늘지 않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는 양극화된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기업도 노조도 정부도……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밥을 먹다 말고 곰곰이 생각하는데, 택규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봐?”

“설마 도와주려는 건 아니지? 절대 안 돼.”

“…….”

당한 건 우리 집인데, 왜 니가 난리야?

“예지가 협력하라고 한 거 맞아?”

“그런 느낌이야.”

택규는 계속 캐물었다.

“그런 거면 그런 거고 아닌 거면 아닌 거지, 그런 느낌은 뭐야? 정확히 뭐라고 예지가 뜬 건데?”

“그건…….”

내 얘기를 들은 택규는 깜짝 놀랐다.

“뭐? 그게 정말이야?”

“응.”

난 내가 본 예지를 떠올렸다.

<카로스 그룹, 계열사로 은성차 인수>

* * *

자동차만큼 규모의 경제가 크게 작용하는 분야도 드물다. 전문가들은 향후 경쟁에서 살아남은 몇 개 기업으로 자동차시장이 재편될 거라고 예측했다.

꼭 전문가들 말이 아니더라도, 업체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GM은 쉐보레, 캐딜락, GMC, 뷰익, 한국GM을, BMW 그룹은 MINI, 롤스로이스를, 폭스바겐 그룹은 스코다, 아우디, 포르쉐, 벤틀리, 람보르기니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GM이 대후차를 르노가 서성차를 인수했듯이, 카로스가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다른 완성차업체를 인수하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

“그중 하나가 은성차라는 거야?”

“그렇겠지.”

예지가 보여주는 것은 미래다.

결과는 알지만, 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그렇게 되는 걸까?

“그러려면 먼저 은성차가 망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럼 우리보다 중국 쪽에서 먼저 손을 뻗겠지. 망하고 기술력 뺏긴 기업을 계열사로 인수해봐야 뭐하겠어?”

택규는 잠시 생각한 다음 물었다.

“괜히 도와줬다가 미래가 바뀌면 어떡해? 은성차가 안 망하고 재기에 성공하면?”

“그게 문제긴 한데…….”

예지를 볼 때마다 매번 똑같은 고민을 한다.

미래는 정해진 것일까,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본 미래는 앞으로의 내 행동까지 예측한 것일까, 아닐까? 만약 억지로라도 예지를 틀리게 만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깊게 생각해봐야겠지만, 어쨌거나 이제까지 예지가 틀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니 이번에도 믿어도 되지 않을까?

임진용 회장의 말대로 아시아시장에서의 생산기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미래차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고, 일본 역시 토요타와 혼다 등 전통의 강자들이 쉽게 시장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우리에게 이익이 되느냐 마느냐다.

미래가 바뀌지만 않는다면, 가능한 멀쩡한 상태에서 인수할수록 좋겠지.

택규는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흐음, 어차피 우리 게 된다는 건가?”

솔직한 심정으로 은성차와는 별로 엮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예지가 보였는데 그냥 무시할 수도없는 노릇.

그래도 내 쪽에서 손을 내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저쪽에서 먼저 도움을 청해온다면 모를까.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한찬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십니까, 강진후 대표님. 은성차의 한찬영입니다.]

“예. 오랜만이네요.”

[시간 괜찮으시면, 잠시 뵐 수 있겠습니까?]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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