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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53

251. 소꿉친구 – 굳은살

아브람 드 로그넘 재위 43년.

네비스의 시민들은 역사적인 순간을 목도하고 있었다.

왕궁 앞 광장에 거대한 너비의 처형대가 마련되었다. 폭도가 올라와 난동 부리는 걸 막고, 광장에 모인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도록 높이도 상당했다.

가로세로 너비만 40미터, 높이가 1.5미터에 달하는 그 나무로 만들어진 처형대는 처형대라기보단 거대한 단상이었다.

네비스의 시민들은 보고도 믿지 못했다. 오른 왕국의 왕, 아브람 드 로그넘은 물론 하늘 같은 왕족들의 목에 칼이 채워졌다. 왕족 수십 명의 목에서 목으로 줄이 연결된 게 노예 경매장의 풍경을 연상케 했고, 시민들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처형식. 드라진 후작의 대변인이 처형대에 올라 로그넘 왕가의 죄를 낱낱이 까발렸다.

그는 로그넘 왕가가 오른 왕국을 대표하는 가문으로서 권력을 누리면서도 마땅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깎아내렸고, 죄 없는 토착민을 괴롭혔으며, 귀족과 백성들에게 높은 세금을 물려 호의호식했노라 덮어씌웠다. 반론의 기회는 없었다.

대외적으로 개혁을 주동한 것으로 알려진 드라진 후작의 대변인이 선포했다.

“해서 우리들, 에브니 드라진 후작 겸 북부 변경백, 소아렐 데메트리 오거튼 백작 겸 마도 집행관, 보칼리 수석 재판관, 로트실트 시종장관, 구아닌 재무장관… (중략) …네비스 수성 사령관인 사피아 백작과 토착민의 대표이자 장군인 레브 비자인 전시 총사령관의 이름으로 아브람 드 로그넘 왕과 애톤 드 로그넘 왕자를 비롯한 로그넘 왕가의 왕족들을 처형한다.”

멍하게 바라보는 시민들 위로 핏방울이 날아들었다. 백발 머리. 나이 든 왕의 목이 떨어졌다.

작년에 아키네를 치른 애톤 드 로그넘 왕자의 목도 마찬가지였는데, 다소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다. 왕의 목을 솜씨 좋게 잘라낸 사형집행인이 휴식을 위해 다른 사형집행인과 교대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꺄악!”

시민들이 비명을 질렀다. 사형집행인이 휘두른 도끼가 빗나가 두건이 쓰여진 왕자의 어깨를 갈랐다.

왕족의, 그것도 왕자의 목을 치는 건 엄청난 일이다.

네비스의 시민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 서투른 사형집행인은 벌벌 떨리는 도끼를 다시 들어 올렸다. 무려 다섯 차례의 도끼질 끝에 왕자의 몸과 머리가 분리됐다. 뒤에 선 몇몇 왕족들은 똥오줌을 지렸다. 어린이도 있었다.

로그넘이라는 성을 단 왕족은 꽤 많다. 이미 시집갔거나 분가한 왕족도 많아서 어디까지 죽여야 할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었다.

개혁파의 실질적인 수장으로 떠오른 레브는 관대하게도

“왕궁에 거주 중인 왕족과 분가한 남성 왕족 중, 왕과 8촌 이내인 자만 죽이겠습니다. 국내의 가문으로 시집간 여인은 용서하되, 해당 귀족 가에서 보증을 서야 합니다. 국외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12세 미만의 어린이는 아브람 드 로그넘과 6촌 이내인 경우만 처형하지요. 개중에 4세 미만의 유아는… 다행히 한 명밖에 없군요. 그 아이는 어느 가문에서 입양해가는 게 좋겠습니다. 아, 왕궁에 거주 중이더라도 65세 이상의 고연령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살려두세요. 작은 저택을 시외에 마련하고 호위 겸 감시병을 붙여두면 되겠습니다.”

상당수의 왕족을 살려주었다.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라면 아예 씨몰살하는 게 좋겠으나 그렇게까지 가혹할 필요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촌수가 먼 사람까지 죽여버리면 그와 연관된 귀족 가문들이 언짢아하고, 노인과 어린이의 경우는 민심을 생각해서 살려둘 필요가 있었다. 왕과 촌수가 너무 가까운 어린이는 살려둘 수 없지만.

이렇게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 왕성 앞 처형대를 이루는 나무가 붉게 물들었다.

애톤과 앨제어 드 로그넘 왕자를 따르던 귀족들도 형장의 이슬을 피하지 못했다.

게오기스 제르민 백작을 포함한, 왕자의 편에 섰던 귀족들 다수가 처형당했다. 네비스에서 반란을 일으켜 항복한 귀족들 일부도 처형당했는데, 개중에는 반란을 주도한 타라딘 아뮤스 백작도 포함됐다.

토착민 출신 노예를 너무 심하게 억압한 귀족들이었다. 모두 다 처형할 수는 없어서 면밀한 조사를 거쳐 일부를 본보기로 삼았다.

여기서도 레브는 관용을 베풀었다.

해당 귀족가의 수장과 후계자만 처형하고, 식솔들은 살려주었다. 옛날 같으면 그들은 노예로 팔려 갔을 것이지만, 앞으로 오른 왕국에 노예란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의 재산을 몰수해 네비스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약 일주일간의 숙청이 완료되고, 그동안 출근하지 못했던 왕국 행정 관료들이 일선에 복귀했다. 개혁파 귀족들에게 각종 직책이 나누어지면서 오른 왕국은 신 왕조를 세울 준비에 들어갔다.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지난 거지남매 회차의 경험을 살려 레브는 일을 적절히 분배했다. 구아닌 남작과 보칼리 자작, 사피아 백작, 로트실트 남작 등에게 자잘한 일을 맡기고, 레브 본인은 무엇보다 중요한 군권을 움켜쥐었다. 로그넘 왕가의 재산을 장악하기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왕족이자, 정통성이 확고했던 레안 드 예리엘과 달리 레브는 굉장한 저항에 직면했는데, 그의 신분이 평민이기 때문이었다.

개혁파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고, 다수의 귀족들은 레브가 왕위에 오를 거란 이야기를 처음엔 아주 짓궂은 농담으로 듣다가 종국엔

“드라진 후작님이 왕위에 오르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놀라워하며 동시에 불쾌해했다.

당장 할 일이 태산인데, 국정을 운영해야 할 귀족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지자 드라진 후작이 레브에게 권했다. 그는 레브를 왕위에 어울리는 재목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결국 레브 님의 신분이 발목을 잡는군요.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먼저 귀족이 되시면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왕이 없는데, 누가 저를 귀족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한 가지 더 방법이 있지요.” 드라진 후작이 말을 이었다.

“하리에 가이단 영애와 결혼하시면 됩니다. 가이단 후작의 저택에 머물고 계시니 이미 만나보셨겠군요. 재작년인가… 그 애가 좀 안 좋은 일을 당해서 정신이 온전치 못합니다만, 어릴 때부터 참 참했고, 예쁜 아이입니다. 레브 님께서 아껴주시면 정신이 곧 돌아올 거라 생각합니다.”

드라진 후작은 순수하게 레브가 자신의 죽은 친우의 가문을 챙겨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꺼낸 이야기일 터였다. 가이단 후작이 죽고 없는 지금, 후작가는 시에라 가이단 후작 부인이 대리로 맡고 있었다.

허나 이게 영원할 순 없다.

시에라 가이단 후작 부인은 결혼하면서 성이 바뀌었다 뿐이지 다른 가문의 영애였다. 그렇다고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는 하리에가 가문을 물려받을 수도 없었다. 후계자였던 하브니 가이단은 옛날에 죽었다.

그러니까 왕위에 오를 레브가 하리에와 결혼하고, 하리에가 아들을 둘만 낳아준다면…

한 명은 왕위를 물려받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이단 후작이 될 것이다. 왕족이므로 어쩌면 가이단 공작가로 승격될지도 모르겠다.

모두에게 좋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레브는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숨이 가빠져 왔다.

그녀가 그렇게 된 건 내 탓이다.

가이단 후작도 사실 내 꾐에 빠져 나를 돕다가 죽었다.

레브는 부메랑처럼 돌아온 업보에 말문을 잃었다. 그 와중에 드라진 후작의 제안에도 일리가 있는 게…

[ 업적 : 하리에 가이단의 마음을 녹인 남자 – 하리에 가이단에게 미약한 호감을 얻음. ]

– “레브 님께서 아껴주시면 정신도 곧 돌아올 거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가이단 후작을 설득한다고 그녀를 한 번 만난 것만으로도 새하얀 백치였던 하리에가 거동할 수 있었다.

‘신이시여. 제발…’

레브는 대답을 보류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후작 부인께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레브 님을 꽤 좋아하시더군요.” 설득하는 드라진 후작에게 생각해보겠노라 답했다.

가이단 후작의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휘황찬란한 마차를 탄 레브는 괴로워했다. 금붙이 장식이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 성공해서 좋아? 행복해?

– 출세했네, 레브 비자인. 예쁘고 멍청한 아내가 왕위를 가져다줄 거야. 그렇고말고.

레브가 마차를 세웠다. 토악질하고 돌아온 저택은 그의 바람과 달리 왁자지껄했다.

“이여, 반느 비자인 기사님이 아니십니까. 저는 루벤 경이라 합니…”

“하지 마. 나 요즘 심각해.”

“왜?”

“아빠가 안 보여. 마을 사람들 말로는 출발했다는데…”

“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 합류하지 못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야? 곧 오시겠지.”

“…그렇겠지? 앗! 대장님, 다녀오셨어요?”

반느와 루벤 비자인이었다. 기사 작위를 받은 레브의 제자들이 그를 향해 힘차게 경례를 올렸다.

그들의 실력이 기사 작위를 받을 정도는 못 된다. 한참 모자라다.

하지만 레브는 부족한 기사를 확충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제3 기사단의 기사로 만들어주었고, 제자들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 세계에서 이건 흠이 아니다.

이 적당히 부패한 시대에서의 청렴결백은 청렴이 아니라 융통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주위 사람을 챙길 줄 아는 것도 능력이고, 그래야 하는 시대다. 레브는 고개를 끄덕, 경례를 받았으나 저택에 들어서자 더 괴로워졌다.

“이것 한 번 먹어봐. 시에라 아주머니가 가르쳐줘서 만들어 본 건데… 어때?”

레나 아이나르가 레오 덱스터에게 뭉개진 쿠키를 먹이고 있었다. 바깥의 제자들보다 두어 배는 강한 레나가 요리나 하는 모습을 지금의 정신 상태론 지켜볼 수가 없었다.

저까짓 것들도 기사가 됐는데…

“야! 어딜 가? 너도 와서 먹어봐.”

엉망진창이다.

쿠키도, 지금의 상황도.

레브는 억지로 웃으며(레오 덱스터가 뒤에서 노려보고 있다) 쓴맛과 탄 맛이 공존하는 쿠키를 입에 욱여넣었다. 레나는 그가 왕위에 오를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다~ 우리 남편 덕분이지. 그치?”

레브를 대하는 태도를 고치지 않았다. 레브는 후작 부인을 만나러 갔다.

대체 레나한테 요리를 어떻게 가르친 거예요? ─ 설탕이 들어갔어야 할 쿠키에 소금을 넣은 걸 탓하러 간 건 아니었다. 하리에를 돌보는 부인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말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드라진 후작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후작님께서 괜한 말씀을 하셨군요. 제 딸과 결혼하는 것 말씀이시죠? 이야기하다 어쩌다 나온 말이니 괘념치 마셔요. 그리고 사실…”

후작 부인이 말꼬리를 흐렸다.

사실 그녀는 이 청년을 사윗감으로 본 적이 없었다. 곧 왕이 될 대단한 청년이고, 자신과 자신의 딸을 깨워준 고마운 사람이지만, 그녀는 레브를 아들처럼 대하고 있었다.

[ 업적 : 시에라 가이단의 마음을 녹인 남자 – 시에라 가이단에게 미약한 호감을 얻음. ]

아들이 살아 있었으면 딱 이만한 나이다. 외모도 체형도 비슷했는데, 아마 아버지를 닮아 키는 더 컸겠지만, 레브의 적당한 키가 어릴 적의 아들을 연상시켰다.

그때, 레브가 말했다.

“대신이라 하긴 뭐하지만… 후작 부인, 제가 따님의 동생이 되어도 괜찮겠습니까?”

입양. 레브가 고작 생각해낼 수 있던 것이었다. 비자인 왕조가 아니라 가이단 왕조가 되겠지만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리에 가이단.

그녀의 곁에 동생으로 있겠다. 저 문틈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저 여자의 비극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며 살겠다.

그것만이 레아와 레아를 향한 마음을 지키고, 왕이 되어 소꿉친구 시나리오를 마치면서, 자신이 저지른 업보에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보였다.

시에라 가이단 후작 부인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저… 그런데 제겐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긴 합니다.” 말하는 아들을 폭 끌어안았다.

훈훈한 결말일까?

레브 가이단은 그 이후로 어머니의 저택과 왕궁을 오가며 즉위할 준비를 했다. 끝이 머지않았다. 가끔은 오거튼 백작과의 약속대로, 오러블레이드 연구의 실험체가 되어주러 백작의 저택에도 들락였다.

실험 자체는 별것이 아니었다. 오러블레이드를 일으키고, 끄기를 반복해주면 됐다.

오거튼 백작은 광기에 사로잡혔다.

이 연구가 마도의 새 지평을 열 것이라며 자신의 여섯 살 된 아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렀다.

그런데 가을이 막 찾아온, 평소와 다를 게 하나도 없던 어느 평범한 아침에…

“짜잔~! 달걀 푸딩이야!”

“오오! 우리 레나가 드디어 후식까지 만드네. 맛있겠다. 야. 너도 밥 다 먹었으면 받… 어? 왜 그래?”

“좀 흐물흐물하지? 아직 날이 덜 추워서 모양까지 살리진 못했어. 그래도 맛은 괜찮을 거야.”

식탁과 형편없는 푸딩을 가리며 문자가 떠올랐다. 레브는 숨 쉬는 걸 잊고 레나 아이나르를 절망적으로 올려다봤다.

[ 축하합니다! ]

[ 레나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

[ 진엔딩 1/2 : 레나에게 축복을 받으세요! ]

레나가 가져온 달걀 푸딩은 푸딩이 아니라 물이나 다름없었다.

달콤한 설탕과 몸에 좋은 우유를 만나 단단하게 응고됐어야 할 푸딩에 짜디짠 소금이 들어갔다. 서서히, 불을 약하게 들여 익히지도 않아서 완전히 망가진 그것을 레나 아이나르가 천연덕스럽게 들고 있었다.

굳은살이 빠진 손으로.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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