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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53

252화.

난 택규와 함께 실론호텔 지하에 있는 일식집으로 향했다. 먼저 와있던 한찬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우리가 만난 건 엑스캅 입찰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다.

그 사이 서로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카로스는 세계적인 기업이 된 반면, 은성차는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마 지금도 주주들에게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을 것이다.

한국재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 중 하나는 바로 경영권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여느 재벌들과 마찬가지로 한찬영 일가의 지분은 5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려다 보니, 순환출자를 비롯해 온갖 꼼수가 동원되기 마련.

정상적인 경우에는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거나 경영권 승계 등으로 인해 지분관계가 변하거나 하면 취약점이 그대로 노출된다.

테이블 위에 민어회가 올라왔다.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건가요?”

내 물음에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강진후 대표님께 도움을 청하고 싶습니다.”

역시 그냥 회 먹자고 만나자고 하지는 않았겠지. 그런데 택규는 벌써부터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는 중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인가요?”

“OTK배터리를 공급받고 싶습니다.”

“아직 차량용 대형배터리는 나오지 않았는데요.”

“배터리팩 개발은 거의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조만간 서성SB 수원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잘 아시네요.”

이미 생산라인 일부를 변경해놓았다.

택규는 회를 낼름낼름 집어먹으며 물었다.

“수소차는 어쩌구요?”

한찬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은성차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수소차 계획은 올스톱되었다.

수소차는 충전시간과 주행거리 측면에서 전기차에 비해 분명한 강점이 있다. 그래서 언젠가는 수소차의 시대가 열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시기가 맞지 않으면 소용없다. 은성차가 몰락한 뒤 수소차 시대가 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제는 OTK배터리로 인해 그럴 가능성도 없어졌고, 수소차 진영에 서있던 완성차업체들은 진작 발을 뺐다.

난 대답을 하는 대신 다른 얘기를 꺼냈다.

“요즘 여기저기서 얼라이언스 만드는 게 유행이던데. 러브콜이 꽤 있지 않았어요?”

판매량이 폭락했다지만, 은성차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완성차업체. 아마 여기저기서 손짓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굳이 날 찾아왔을까?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손을 잡아야 한다면, 1위 업체와 잡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마 내가 거절한다면, 어느 쪽이든 손을 잡을 것이다.

“일단 파업부터 해결하지 않나요?”

한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결론을 낼 예정입니다.”

회사가 위기임에도 노조는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중이다. 그리고 회사가 위기에서 벗어나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겠지.

“올해야 어떻게든 넘어가도 내년에는 똑같은 일이 반복될 텐데요.”

다른 제조업에 비하면 은성차 생산직의 임금은 유독 높다. 이는 GM, BMW, 토요타 등의 경쟁사들에 비해서도 마찬가지다.

대체 어쩌다가 은성차는 이런 고비용 구조를 갖게 됐을까?

일단은 그래도 이익이 났기 때문이다. 회사도 바보는 아니다. 정규직 임금이 올라갈수록 최대한 정규직을 덜 뽑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또한 국내에는 더 이상 공장을 짓지 않고, 계속해서 해외공장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어차피 노조야 정규직 임금만 올리면 됐지, 조합원도 아닌 비정규직을 챙겨줄 이유는 없으니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주주들의 반발이다. 파업으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는 것을 가만히 참고 있을 주주가 어디 있겠는가?

한찬영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좋은 방법이 있겠습니까?”

“글쎄요. 당장은 피해가 크더라도 이번 기회에 해결할 필요는 있겠죠.”

* * *

한찬영과의 만남을 끝낸 다음 우리는 바로 골든게이트로 찾아갔다.

현주 누나는 커피를 마시며 일하는 중이었다. 택규는 놀라며 물었다.

“어! 누나 커피 마셔도 돼?”

“디카페인이야.”

“디카페인은 괜찮나?”

“하루 한두 잔 정도는.”

현주 누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확실히 배가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디 다녀온 거야?”

“한찬영 만나고 왔어요.”

내 말에 누나는 깜짝 놀랐다.

“은성차 회장을? 무슨 일로?”

“그쪽에서 보자고 해서요.”

난 아까 나눈 얘기를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조건을 좀 조율해봐야 할 것 같은데, 누나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현주 누나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은성차는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 하더니, 무슨 바람이 분 거야?

그야 예지를 봤기 때문이지만…….

“뭐,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잖아요. 임진용 회장도 같은 생각이고.”

나중에 우리가 갖게 될 것 같기도 하고.

택규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저희 쪽에서 서상원 팀장이랑 팀원들 붙여드릴게요. 다른 인원 맞춰서 꾸리고 누나는 지시만 내려주세요.”

“우리가 누나 아니면, 누구를 믿겠어?”

현주 누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기 생각해서 쉬라고 할 땐 언제고, 또 일을 만들어 왔네.”

* * *

대부분의 CEO들은 노사문제에 관련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꺼린다. 협상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차 협상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한찬영 회장은 직접 언론 앞에 나서서 회사의 입장을 발표했다.

“현재 은성차는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고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경영악화로 인해 더 이상의 임금인상은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조합원 자녀 우선 채용을 명문화하는 것은 공정한 취업기회를 박탈하고 고용구조 악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측은 노조와의 합리적인 수준에서의 협상을 희망합니다.”

발언이 나가자 은성차노조는 격렬하게 반발했고, 협상은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결렬됐다.

노조는 즉시 파업 찬반투표를 벌였고, 92센트라는 압도적인 표차이로 가결됐다.

노조위원장 주성무는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노조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한 한찬영 회장이 직접 와서 사과하지 않는 한 결단코 파업철회는 없을 것이다!”

전면파업이 시작됐고, 국내 공장의 모든 컨베이어벨트가 멈춰 섰다.

정치권에서는 한 목소리로 협상재개를 촉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물러서지 않았고, 노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체인력 투입을 우려한 노조는 공장점거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사측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대체인력을 투입하지도 않았고, 공장폐쇄 등의 극단적인 조치를 단행하지도 않았다.

그 상태로 일주일이 흘렀다.

공장이 하루만 멈춰도 회사는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다. 이미 손실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완성차 공장이 멈춰서면, 그 회사에 납품하는 모든 협력업체 공장들이 멈춘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공장이 있는 지역 상권은 사실상 은성차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음식점을 포함한 상가들 역시 전부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영업장의 전시차마저 팔리자, 더 이상은 판매할 차량도 없었다. 외국공장은 멀쩡히 돌아가는 중이라 재고가 충분했지만,노사협약에 따라 이 물량들은 국내로 들여올 수 없다.

출고가 지연되자 계약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언제 받을 수 있다는 기약조차 없었다. 기다림에 지친 소비자들은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회사 차를 알아보거나, 중고차단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중고차시장은 때 아닌 호황을 맞이했다. 중고차 딜러들은 재빨리 인기차종의 가격을 올렸다.

은성차의 위기는 경쟁사들에게 한국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국에 공장이 있는 GM과 르노는 공장을 최대한 가동하며 물량을 쏟아냈고, 수입차 딜러사들은 본사와 연락해 수입물량을 늘리기 위해 애썼다.

주성무 노조위원장은 당황했다.

지금쯤이면 백기를 흔들지는 않더라도 대화하자는 얘기가 흘러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사측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는 동요하는 조합원들을 달랬다.

“조금만 기다리면 결국 사측이 손을 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우리가 반드시 이깁니다!”

* * *

국가별로 이익을 따로 발표하지는 않지만, 은성차가 해외에 비해 국내에서의 이익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내수차별로 인해 차량가격이 비싼 이유도 있지만, 영업망과 물류가 잘 갖춰져 있고, 인지도와 선호도가 높아 마케팅비를 덜 써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업이 장기화되며 국내 판매가 사실상 중단되자, 가뜩이나 바닥을 기던 주가는 또다시 폭락했다.

주주들은 들고 일어났다.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들 모두 경영진을 질타했다.

만약 한민구가 있었다면 상황이 좀 나았을 것이다. 그는 한국경제를 견인하고, 은성차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장본인. 그러나 한찬영은 아직 별다른 역할을 한 게 없다.

새로운 CEO의 경영능력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던 차에 전면파업이라는 문제가 터진 것이다.

한찬영은 주요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직접 설득하러 다녔다.

그리고 나는 언론에 OTK배터리 양산계획과 함께 앞으로의 투자계획을 밝혔다.

“카로스는 서성그룹을 포함한 여러 업체들과 협력해 아시아 지역에 배터리와 전기차 생산단지를 만들려고 합니다. 현재 후보지로 몇몇 나라들을 검토 중입니다.”

그러자 기자들은 재빨리 질문을 던졌다.

“유력 후보지가 어디입니까?”

“그중 한국도 포함되어 있습니까?”

“한국에 투자의향은 없으십니까?”

난 딱 잘라 말했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고비용 구조에 잦은 파업으로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지금 은성차 상황을 보고도 한국에 투자하지는 않겠죠.”

* * *

-뭐야? 강진후 또다시 대놓고 노조 깐 거야?

-ㅅㅂ 강진후 뭐하자는 거냐?

-대체 노조가 무슨 잘못이라는 거냐?

-강진후도 재벌들하고 어울리더니 똑같아졌네.

-뭔 소리야? 우송기업 노조 도와서 거기 사장 깜빵 보낸 게 강진후인데.

-그런데 은성차노조한테는 왜 이래?

-우송기업 노조랑 은성차노조가 같음? 평민과 귀족만큼이나 차이가 큰데.

-강진후는 사측 편을 들며, 노조파괴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은성차노조는 모든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그냥 은성차노조의 이익을 위해서 아니야? 왜 지들 투쟁에 다른 노동자를 끌어들여?

-니들 파업 때문에 협력업체 노동자들 죽어나는 건 생각 안 하냐?

-공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들은 지금 밥 굶게 생겼다!

-그 연봉 받고 일하면 됐지, 자식까지 입사시켜 달라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야?

-아버지가 오랫동안 일한 회사에 자녀가 입사하면, 더욱 애사심을 가지고 일하지 않겠습니까? 무조건 채용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격이 되면 우선 채용해달라는 겁니다. 이는 회사에도 이익이 되는 일입니다.

-이게 말이냐, 개소리냐?

-개소리 한 번 쌈빡하게 하네.

-그래서 노조는 애사심이 넘쳐서 파업하냐? 아예 대를 이어서 파업하겠다고 선언해라.

-15년 넘게 회사를 위해 희생한 건 생각도 안 함?

-누가 들으면 은성차에서 끌고 와서 월급 한 푼 안 주고 강제노동 시킨 줄 알겠다. 원해서 회사에 들어갔고, 월급 받으며 일했는데 뭔 희생이야?

-한민구도 지 자식에게 회장직 물려줬는데, 왜 노조만 가지고 욕 하냐! 우리가 뭔 잘못이냐?

-그래서 재벌들 욕 처먹잖아. 니들도 똑같은 짓 하니까 욕먹는 거고.

-ㅋㅋㅋ은성차노조 논리대로라면 지금 대통령은 박시형 아들이 하고 있어야겠네.

-국회의원들도 자기 자녀들 비례대표로 선출하고.

-그래그래. 국회의원들도 지들 딴에는 국가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할 텐데, 그 정도는 해줘라.

인터넷을 들여다보던, 택규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도 인터넷에는 니 욕이 넘쳐나네.”

“…….”

내가 이래서 댓글을 안 본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욕먹는 사람이 있나 싶다. 왠지 욕먹는 짓을 사서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발언에 은성차노조뿐만 아니라, 금속노조까지 들고 일어났다.(은성차노조는 독립노조가 아닌 금속노조 산하에 있다)

금속노조는 노조파괴 행위를 중단하라는 성명을 내며, 상경집회를 예고했다. 그래도 부모님연합처럼 경우가 없지는 않아서 정식으로 시위허가를 받았다.

십년 넘게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피지컬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경찰과 충돌한 영상을 보면, 20대 팔팔한 전의경들도 픽픽 나가떨어진다.

다행히 과거와 달리 요즘은 그런 식의 물리적 충돌은 거의 없다.

“회사 앞에서 시위해도 되는 거야?”

“대한민국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있는 나라잖아.”

내가 또 이런 걸 존중하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회사 앞에서 시위한다고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난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일부터 시위 끝날 때까지 다들 회사에 나오지 말고 재택근무하세요.”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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