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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54

252. 소꿉친구 – 꿈

레브가 “허억!” 들숨을 몰아쉬었다. 손에 든 푸딩을 내려놓고, 흐릿해져 가는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다 눈물을 떨궜다.

[ 축하합니다! ]

[ 레나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

[ 진엔딩 1/2 : 레나에게 축복을 받으세요! ]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다. 레아를 공주로 만드는 게 이 게임의 목표가 아니었다.

[ 레나 키우기 ]

신은, 주신께서는 우리 레오들더러 레나들의 꿈을 이뤄주라 명하고 계셨다. 그랬던 것이 틀림없는 게

지금은 가을, 수도교회 교육시설의 수습생이 졸업할 무렵이었다. 레아가… 레아가 사제가 된 거다.

레슬리 수도사는 그녀가 사제가 되려면 못해도 3년은 걸리리라 예측했다. 그마저도 레아의 탄탄한 기본기를 낙관하며 짧게 잡은 것이었는데, ‘사진 스무 장’ 업적이 영향을 미쳤을까, 레아는 3년이 아닌 불과 2년 만에 꿈을 이루어 헛발질하는 우리에게 진엔딩을 선사했다.

레아는 사제가 되고 싶어 했다.

우리가 그녀를 공주로 만들겠노라 아무리 애써도 레아는 제 꿈을 향해 돌진해갔다. 게임 클리어에서 멀어져가기만 하던 레나들. 민서는 그런 레나들을 답답해했고, 나는 사제가 되려는 레아를 원망했었는데…

레브가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차마 눈앞의, 갑옷이 아닌 앞치마를 입고 푸딩 따위나 만드는 레나 아이나르를 바라볼 수 없었다. 굳은살이 빠져 말랑해진 손으로 요리나 하는 이 레나는…

실패작이다. 저 달걀 푸딩처럼.

그녀는 기사가 되고 싶어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한 레나였으나 그 마음만큼은 한결같았다. 레오 덱스터가 소드마스터가 돼버리기 전까진. 사제가 된 레아가 내게 축복을 내려주는 게 진엔딩을 장식할 마지막인 것처럼 이 레나에게도

– “난 너랑 같이 기사가 돼서 결혼하는 게 꿈이야. 그래서 일부러 좀 미루려고 했어. 미안해. 애 엄마가 되면 기사 되기 힘들지 않겠어?”

레오와 나란히 기사가 되어, 결혼하고픈 꿈이 있었다. 아주 옛날,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우리에게 부끄러이 고백했었다.

그럼 동생은… 우리의, 동생은.

오빠와 함께 길바닥을 전전하던 레리아나는 집을 갖고 싶어 했다. 두 번째 회차, 금화가 가득 든 상자를 내밀며

– “내가 번 돈이야. 이거면 엄청 좋은 집을 살 수 있대!”

…말했었다. 철없이 밝은 얼굴로.

엄청나게 먼 길을 돌아왔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왕위를 눈앞에 두고서야 알게 되었다. 레아의 기가 막히게 빠른 눈치가 그녀를 엉뚱한 길로 이끌려는 우리를 막지 않았더라면 더더욱 먼 길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신, 세레스가 그녀에게 연락하지 말라 경고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레브, 왜 그래?”

울상이 된 레브가 고개를 들어 레오 덱스터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날 정도로 맛이 없어?” 맹하게 물어보는 레나 아이나르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로 진엔딩이 떴음을 고백했다. 그 조건이 레나의 꿈을 이뤄주는 거였다는 것까지도.

레오는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남은 푸딩을 풀 죽은 표정으로 챙겨가는 레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울분에 찬 비명을 질렀다.

“아악!!! 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내려친 탁자가 부서졌다.

레나가 애써 만든 요리들이 그 반동으로 튀어 올랐다가 쨍그랑! 죄다 떨어지고, 레오가 몸을 비틀었다.

“너, 너, 너…!!”

레오 덱스터는 말을 잊지 못하고 꺽꺽거렸다. 당장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레브를 노려보다가 “무, 무슨 일이야?” 여전히 앞치마 차림으로 달려온 레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비켜!”

우르르 몰려온 제자들. 레오는 그들을 험하게 밀치며 레나를 데리고 사라졌다.

“왜 저러시는 겁니까?”

“가끔 좀 이상한 부부라니까. 북부 사람들은 다 저런가? 우린 저렇게 되지 말자, 반느.”

레브는 어떤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레오와 레나를 멍하니 바라볼 뿐.

* * *

그 이후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레브 가이단은 왕위를 포기했다. 드라진 후작에게 알아서 하라 이르고 무작정 반테를 타고 달리던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겨울, 수도교회에 당도해 있었다.

눈이 하얗게 흩날리는 교회 앞에 레아가 있었다. 눈부시게 웃는 그녀는 새하얀 사제복 차림이었다.

어쩜 이리도 잘 어울릴까.

이목구비가 뚜렷한 십 대 후반의 사제님. 충분한 사랑을 받아 윗입술이 볼록, 곱게 튀어나왔고 눈썹은 자상하게 휘었다. 보드랍게 솟은 콧대는 지적이었으나 끝은 인자한 내리막을 탔다. 레브는 이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레브! 내가 연락하려고 했는데, 성녀님께서 글쎄… 어쩌고저쩌고.”

재잘재잘하는 말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꿈을 이룬 내 친구, 레아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레브는 기어이 핀잔을 얻어먹었다. 매 회차 시작마다 들었던 말이다.

“레브! 내 말 듣고 있어?”

“……이젠 들려. 축하해.”

“이제서야?”

레아가 픽, 웃었다.

그녀는 레브의 손을 스스럼없이 잡아끌었다. 친구에게 당장이라도 축복을 내려주고 싶었으나, 애써 참으며 수도교회의 적막한 정원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곳에서 당돌하게 물었다.

“너, 나랑 결혼해줄 거지?”

“…넌 사제님이잖아. 나 때문이라면 무리할 필요 없어, 레아. 나는 네가 꿈을 이룬 것만으로도 기뻐.”

레아가 레브의 움찔거리는 귀를 콱! 잡아끌며 말했다.

“귀나 가만히 세우고 거짓말하지 그래?”

금욕적인 사제님의 입술이 가깝다. 심장이 쿵쾅, 레브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레아가 선언했다.

“네 마음이 어떻든 우린 결혼하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정했어. 너랑 결혼하려고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모르지?”

텁!

레아의 입술이 입에 닿았다.

그런데 제가 먼저 입을 맞춘 것 치곤 눈을 너무 세게 감아서 오만상이 따로 없었다. 누가 보면 억지로 하는 줄 알겠다.

“파하하하하하!”

입도 꼭 다물고 무작정 들이박은 게 우스워 레브는 몇 달만인지 모를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녀를 폭 끌어안았고, 레아가 민망해하며 몸을 떼어냈을 때, 오랜 소꿉친구는 연인이 되어 있었다.

사제는 결혼하지 못한다.

하지만 레아의 말도 안 되는 선언에는 근거가 있었으니, 그녀는 레브와 결혼하고파 사제가 결혼할 수 있을 논거를 찾아다녔다. 레아가 고작 2년 만에 사제가 될 수 있었던 건 올해, 그녀가 발표한 논문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선택자 설(說)’.

신께서는 피조물을 선택하신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피조물이 선택받았고, 특정한 임무를 지닌 채 살아간다. 그것이 ‘굴레’다.

여기까지만 보면 콘스티노 라오노의 ‘피조물의 굴레’ 제5장을 달리 해석한 것에 불과하지만, 레아는 여기서 신학의 두 큰 뿌리(피조물의 굴레와 피조물의 책임)의 접합을 시도했다.

피조물이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할지 수행하지 않을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의지’와 굴레가 맞물려 만들어지는 게 삶이고, 인간을 선택하는 존재로 거듭나게 한다는 주장이었다.

레아의 이 77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은 수도교회에서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동기인 베로니안도 제4 성인인 우데안의 ‘우데안 강독(講讀)’을 발전시킨 ‘교회의 도구적 기능과 방랑하는 목자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것과 레아의 논문이 엮이면서 베르크 추기경의 ‘만인사제설’ 이후로 정체된 신학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그에 발맞춰 십자교회의 엄격한 규칙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물론, 레아의 논문에 사제가 결혼해도 된다 안 된다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논거를 제공하였고, 베로니안의 논문으로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던 고대 성직자들의 생활상이 재조명되면서 교회의 규칙이 사제의 자유의지를 제한한다는 주장이 일었다.

이를 막아섰을 법한 ‘피조물의 굴레’의 신봉자, 미하에르 추기경은 성녀에 의해 실각한 지 오래였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다소 느슨해진 분위기. 거룩함만이 넘치던 교회에 사람 내음이 풍기기 시작했다. 레아와 레브는 남모르는 연인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어쩌다 한 번씩 손이나 잡아보는, 남들이 보기엔 세상 건전한 만남이었으나 레브와 레아, 두 사람에게 그 이상은 필요치 않았다.

레아와 레브는 한동안 수도교회에 머물렀다.

레아로서는 레브가 곁에 있으니 굳이 다른 곳으로 갈 이유가 없었고, 또한 수도사가 된 베로니안이 교회를 개혁하는 데 도움을 달라 청했기 때문이었다.

레브는 수도교회 교육시설에 입학 신청을 넣었다. 레아를 호위할 성전사가 되기 위함이다. 오른 왕국에서 명성을 떨친 소드마스터가 검술을 평가받을 이유가 없으니 신학만 좀 공부하면 됐다.

공부는 레아가 도와줬다. 수도교회 근처에서 숙박하며 레아를 만나러 다니다 봄을 맞았다. 학기가 열리기 전날, 레브가 말했다.

“이제 축복을 내려줘.”

두어 달가량을 레아와 함께했다.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천년만년, 축복을 안 받고 싶지만, 레오 덱스터와 레나 아이나르가 마음에 걸렸다.

엉망이 된 약혼관계 회차를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못 할 짓이다. {추적술}로 보아하니 둘은 고향으로 돌아가긴 했는데…

‘그래. 난 이만하면 됐어.’

“괜찮겠어?”

레아가 물었다. 레브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응. 나도 예언 하나 할까? 다음엔 지금보다 더 행복할 거야. 내가 널 쫓아다닐 거거든.”

“으엑. 그건 좀 싫다. 징그러워.”

레아가 짓궂게 웃었다. 그녀는 레브의 뺨에 쪽! 키스하고는 성녀에게 받은 황동 술잔을 들었다.

술잔에 빛무리가 얽혔다. 황동 술잔은 자신의 옛 주인에게 눈부신 광채를 쏟아내었다.

[ 진엔딩 2/2 : 완료 ]

레아에게 눈인사하느라 알아채지 못했지만, 레브의 손바닥에 찍힌 ‘오리아스의 발자국’이 사라졌다. 지난 거지남매 회차 엔딩처럼 레브의 시선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교회 한구석에서 와락 포옹하는 자신과 레아가 멀어져간다. 두 사람을 감싼 정원과 나무, 조각상들이 시야에 잡히고, 웅장한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어둠이 깔렸다.

[ 레나 키우기를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레아 ]

[ 최종직업 : 추기경 ]

[ 결혼 상대 : 레브 가이단 ]

[ 레브 가이단 ]

[ 최종직업 : 성전사 ]

[ 결혼 상대 : 레아 ]

[ 소꿉친구 엔딩 : The Bishop ]

[ 진엔딩 ]

– 데모스 마을에서 태어난 레아는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비록 가난했지만, 부모님의 따뜻한 관심을 받으며… (중략) …사제가 된 레아는 오른 왕국으로 발령이 났다. 성전사 레브와 함께 네비스 교회에 정착했고, 교회법이 개정되자 레브와 혼인해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 –

– 데모스 마을에서 태어난 레오는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부모님의 따뜻한 관심을… (중략) …성전사가 된 레브는 네비스 교회로 발령이 났다. 누이인 하리에 가이단을 보살피며, 레아와 함께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 –

[ 약혼관계 시나리오 엔딩이 변경되었습니다. ]

[ 레나 아이나르 ]

[ 최종직업 : 요리사 ]

[ 결혼 상대 : 레오 덱스터 ]

[ 레오 덱스터 ]

[ 최종직업 : 요리사 ]

[ 결혼 상대 : 레나 아이나르 ]

[ 약혼관계 엔딩 : 에이브릴 성의 평화 ]

+ 에이브릴 성에서 태어난 레나 아이나르는… (중략) …간의 전쟁에 준기사로서 참전했으나, 검을 포기했다. 곧장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제롬 신성 왕국에서 결혼한 뒤, 오른 왕국까지 갔다가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세 명의 아이를 낳은 레나는 남편인 레오 덱스터와 함께 음식점을 운영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

+ 수도 바르나울에서 태어난 레오 덱스터는… (중략) …은퇴한 이후 오른 왕국에서 벌어진 토착민 봉기에 관여해 무위를 떨쳤으나, 모든 보상을 마다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레나가 차린 음식점 일을 도우며 조용히 살아갔다. +

[ 거지남매 시나리오 엔딩이 변경되었습니다. ]

+ 루티나 왕성에서 태어난 레리아나는 불행한 유년기를… (중략) …돌아와 공주가 되었다. 수없이 많은 구애와 청혼을 받았으나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시종, 산티안 라우노를 선택했다. 두 명의 아들을 낳았고, 오라버니인 레안 드 예리엘 왕의 보호 아래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말년에는 다소간의 곤궁을 겪었다. 레안 드 예리엘 왕 슬하에 자식이 없어 공석이 된 왕위를 놓고 그녀의 두 아들이 벌인 계승권 다툼으로 첫째를 먼저 떠나보냈다. +

+ 루티나 왕성에서 태어난 레안은 불행한 유년기를… (중략) …돌아와 에릭 드 예리엘 왕자와 오리아스를 물리쳤다. 그땐 카데릭 드 예리엘 왕이 이미 승하했기에 즉각 왕위를 물려받았다. 레안 드 예리엘 왕은 현명한 통치자로 이름을 남겼다. 베르크 추기경과 함께 ‘공립 학교’를 전국에 설치하였고, 오래도록 신경전을 벌여온 이웃, 오른 공화국(共和國)과 화평을 맺으며 대륙 남부를 평화롭게 하였다. 그러나 왕비, 크세니아 예리엘이 회임하지 못하여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이는 그의 여동생을 닮아 아주 뛰어난 두 조카의 야심에 불을 지폈다. +

일찍 끝내기를 잘했다.

동그란 구체가 된 레브는 주르륵, 길게 나열된 엔딩 크레딧을 착잡하게 읽다가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건 각 시나리오에서 알아서 처리해야 할 문제였으므로 자신의 것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떠오른 세 장의 사진들.

첫 번째는 추기경이 된 레아와 성전사가 된 자신이 교회의 예배당에 마주 앉아 차를 홀짝이는 사진이었다.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걸 봐서는 결혼한 상태였는데… 그냥 저러고 살았나 보다.

나쁘지 않다. 좋다.

레브는 충분히, 정말 충분히 만족하며 다른 사진들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들도 당장은 행복해 보였다.

두 번째 사진에서는 요리사가 된 레나 아이나르가 사고를 치고 있었다. 국이 끓어 넘치고, 저쪽엔 불이 붙었다. 뒤집기를 시도한 계란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데, 깜짝 놀란 아이들 뒤에는 엄청난 속도로 사고를 수습하는 레오가 있었다.

와하하하! 폭소하는 손님들.

아이나르 부족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어찌 행복하게 살았구나, 레오가 고생이 많았겠구나, 생각하며 레브는 다음 사진으로 눈을 돌렸다.

세 번째 사진의 주인공은 의외로 레리아나가 아니었다.

금자수가 새겨진 적색 망토, 화려한 차림의 레안 드 예리엘이 위풍당당하게 선 사진이었다. 동생은 사진 저 구석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고, 왕의 뒤를 노려보는 아들들을 붙잡고 있었다. 춤바람이 난 크세니아와 학교를 세우는 베르크 추기경도 보인다.

엔딩 크레딧이 워낙 길었던지라 글을 다 읽었을 때쯤의 레브는 서서히 의식이 지워져 갔다.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민서, 괜찮아. 난 널 원망하지 않아. 너도 신에게 휘둘렸을 뿐이니까. 모두 잘 될 거야…’

그걸 마지막으로 적막한 어둠 속엔 민서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대역죄인이 된 민서는 죄책감과 먹먹함에 사로잡혔다.

‘꿈… 이라고?’

그럼 나는 여태껏 무엇을.

내가 모든 걸 망쳤다. 레나들의 꿈을 이뤄주는 게 진엔딩의 조건이었다면, 훨씬 빠르게 엔딩을 볼 수 있었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온갖 수난을 거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까짓 것이 진엔딩의 조건이라니.

그럼 프린O스 메이커인 척은 왜 해서 사람을 속여? 이럴 거였으면 내가 왜 필요해? 레오랑 레나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지. 그랬어도 됐을 거 아냐.

─ 투정하려는 찰나에 채하의 목소리가 그를 후려쳤다.

– “그럼 나더러 하기 싫은 거 하면서 평생 살라는 거야? 난 못해. 솔직히 너도 공무원 하기 싫잖아! 너도 극장 일 하고 싶다면서. 극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었잖아!”

…그랬지.

그랬었지.

아니… 그렇지.

채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었다.

나는 극작가가 되어 그녀가 연기할 대본을 만들어주기로 약속했고, 그게 우리의 꿈이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내가 공무원 준비를 시작하며 흐지부지 사라졌다. 채하는 끝까지 기대했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잊어버렸다. 먹고 살 궁리를 핑계로 나라가 보장하는 철밥통을 찾았다.

나와 채하의 꿈을 버리고.

구체가 된 민서가 부르르 떨었다.

게임이 프린O스 메이커의 아류작인 척했던 게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고 눈물지었다.

바라는 게 있었던 레나들.

그녀들의 꿈을 한 번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이뤄줄 생각을 했더라면 금방 끝났을 것이다. 채하에게 그랬듯 나는 레나의 꿈을 저버리고 있었다. 공주라는 그럴싸한 명분에 홀려서.

민서가 자책하는 그때, 반짝. 엔딩 크레딧과 사진이 사라진 어둠에 텍스트가 떠올랐다. 그건 늘 그랬듯 무심하게 민서를 몰아세웠다.

[ 시나리오 보상을 선택하세요. ]

선택지는 없었다. 허공에도 민서의 마음속에도. 민서는

‘레나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선택이 아닌 소망을 빌고 말았다.

어둠에서 하얗게 빛나는 텍스트는 그게 정말로 네 소원이냐? 민서를 잠시 멀뚱멀뚱 바라보다 픽, 꺼졌다.

[ 레나 키우기를 클리어하셨습니다. 플레이하고자 하는 시나리오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

[ 소꿉친구 – 진엔딩 ]

[ 약혼관계 ]

[ 거지남매 – 클리어 ]

이번엔 어떤 욕을 얻어먹을까.

레오 덱스터를 만나기 무서웠지만, 민서는 약혼관계 시나리오를 선택했다. 그쪽이… 가장 급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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