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54

253화.

전면파업에 돌입한 지 열흘째.

파업이 길어지며 노조 역시 큰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에 따라 파업 기간 동안에는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때문에 은성차 노조는 작년과 재작년에 임금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개념 순환파업을 벌였다. 각 부품 생산자들이 두세 시간씩 돌아가며 파업을 벌이는 방식이다. 컨베이어벨트 특성상 한 곳의 공정만 멈춰도 후속공정이 불가능하다. 일부 노동자가 돌아가며 부분파업을 할 뿐이지만, 나머지 노동자들은 자동적으로 놀게 된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의 임금손실로 최대한의 파업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좋은 방법이 있음에도 굳이 전면파업을 택한 것은 사측을 최대한 압박하기 위함이다. 어차피 은성차 상황이 안 좋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만큼 속전속결로 협상을 끝낼 생각이었다.

자녀 우선채용만 해결된다면, 임금인상과 성과급에 대해서는 충분히 양보할 의향도 있고.

주성무 노조위원장은 파업을 진두지휘하며 사측이 사흘을 넘기지 않고 협상 테이블로 나올 거라 장담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까지도 사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협력업체들은 극심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1차와 2차 밴더야 이를 악 물고 버텼지만, 그 밑의 협력업체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사정이 알려지자, 파업에 대한 여론이 점점 악화되었다. 특히 자녀 우선채용에 대해서는 다들 고용세습이라며 비난하는 분위기였다.

은성차 노조는 이슈를 키우지 않기 위해 대응을 자제하며, 물밑에서 사측과 접촉을 시도했다.

이렇게 조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강진후가 나서서 작심하고 노조를 비판했다. 이는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진후의 발언으로 언론과 인터넷은 연일 시끌시끌했다.

은성차 노조 입장에서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조합원들은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놈은 왜 자꾸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야?”

“지가 뭘 안다고 나대?

“이 자식은 대체 누구 편이야?”

강진후와 은성차의 악연은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설마 그래서 노조까지 비난하는 건가?

이제는 대응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은성차 노조는 금속노조와 함께 OTK컴퍼니 본사 앞에서 상경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노조를 우습게 보는 강진후를 혼내주러 가자!”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옳소!”

그런데 막상 시위 날이 되자 강진후는 아예 회사 문을 닫아버렸다.

주성무 노조위원장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본사 사옥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면, 회장이 출근을 안 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회사를 통째로 비우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건 뭐지? 신개념 청야전술인가?’

이래서는 시위를 한다고 해봐야 빈집 앞에서 소리치는 꼴밖에 안 된다. 그렇다고 준비를 다 끝내놓고 언론에도 발표를 해 놨는데,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위 날이 되자 OTK컴퍼니 본사 앞과 강남역 일대에 금속노조 노동자들 수천 명이 집결했다.

주성무 노조위원장은 문이 닫히고 불이 꺼진 건물 앞에서 목청껏 소리쳤다.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고, 노조파괴행위에 앞장서는 강진후를 규탄한다!”

“규탄한다! 규탄한다!”

“강진후는 전국 노동자들에게 사죄하라!”

“사죄하라! 사죄하라!”

* * *

우리는 거실에서 TV를 통해 시위 장면을 지켜보았다.

택규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와아! 많이도 모였네.”

어디 노조, 어디 지부라고 적힌 깃발들이 힘차게 휘날렸고, 붉은색 머리띠를 맨 노조위원들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목청껏 소리쳤다.

전의경들은 그 주변을 에워싸고 거리를 통제했다.

“어! 방금 저 아저씨가 니 욕했어. 입모양 보니까 강진후 식빵 색이 어쩌고 한 것 같은데.”

“…….”

출근 안 하길 잘했구나.

나 때문에 올라온 것인 만큼 발언 내용은 대부분 나에 대한 비난이었다. 여기저기서 욕도 좀 들려오는 것 같고.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이젠 별로 감흥도 없다.

택규는 창밖을 둘러보았다.

“설마 집 앞으로 몰려오지는 않겠지?”

“괜찮아. 주택가는 시위허가가 안 떨어져.”

OTK컴퍼니뿐만 아니라 은성차 본사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주말에는 광화문에서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릴 예정이고.

괜히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조용히 집에만 있어야겠다.

상엽 선배는 옆에서 피자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역시 피자는 M피자야. 한 번 먹어보니 다른 피자는 못 먹겠네.”

얼마 전, 역삼동 실론스테이트에 M피자 매장이 들어섰다. 덕분에 강남에서도 시켜먹을 수 있게 됐다.

M피자 운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실론호텔 측에 맡겨두고 있다.

국내 피자시장은 치킨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말하면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도 볼 수 있다.

임수미 사장은 무리하게 지점을 늘리기보다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쌓는 것에 주력했다. 그래서 본점을 남산 실론호텔에 둔 거고.

M피자는 초기투자 비용이 많이 들지만, 그 이후부터는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절약한 인건비를 재료에 투자해 건강하고 맛있는 피자를 만든다.

덕분에 시장반응은 대단히 좋고, 아주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다.

강남점은 오픈하자마자 줄이 길게 늘어섰고, 배달예약은 개점한 지 30분도 안 돼 전부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난 피자를 짚어들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대낮부터 여긴 왜 왔어요?”

“우리 회사 대표님께서 출근하지 말라고 해서 놀러왔어.”

“재택근무하라고 했지, 휴가준 건 아닌데요.”

“그래? 아까 기홍이한테 당구장 한 게임 치자고 했더니, 현정이랑 남이섬 놀러간다던데.”

“…….”

이래서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안 시키나?

택규는 소파에 드러누운 채 말했다.

“출근 안 하니 심심하네.”

“넌 출근해도 심심해하잖아.”

아마 직원들은 다들 은성차 노조에 감사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은성차 노조를 건드린 거야? 알겠지만, 그 박시형조차도 쟤들한테는 손도 못 썼어.”

“정치인들이야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름 모를 중소기업 노조라면 모를까. 대기업 노조를 건드리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은성차노조는 금속노조에, 금속노조는 민주노총에 속해 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시위가 문제가 아니라, 수백만의 표가 날아갈 수도 있다. 때문에 보수와 진보 모두 노조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이다.

“정말로 아시아에 전기차 생산단지 만들려고?”

“아직 구상단계고, 임진용 회장과 얘기 중이에요.”

카로스가 직접 자동차를 생산하기로 마음먹은 시점부터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했던 부분이 바로 생산량이다. 그래서 기존 공장인수는 물론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 러스트벨트에 새 공장들을 지었다.

그러나 향후 판매량을 추산해 보면, 그 공장들을 다 가동한다 해도 북미와 유럽 시장 물량 대기도 힘들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생산기지는 계속 늘려나가야 한다.

만약 아시아 쪽에 공장을 지어야 한다면, 어디가 좋을까?

중국은 합작사 설립과 기술력 유출 우려 등으로 제외. 일본은 토요타와 혼다 같은 강자들이 버티고 있는 데다가 이쪽 역시 인건비가 만만치 않다.

“태국이나 베트남도 있잖아.”

“그쪽은 전기차 인프라가 우리나라보다 더 열악하잖아요. 내수시장도 생각해야죠.”

난 테이블에 있는 자료를 상엽 선배에게 건네주었다. 서성경제연구소에서 만든 것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공장들을 비교분석해 놓은 것이다.

만약 인건비만 생각한다면, 전 세계 모든 공장이 중국, 아프리카, 동남아 등에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인건비가 높은 미국과 서유럽에도 수많은 공장들이 있다. 인건비 외에도 여러 다양한 조건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상엽 선배는 자료를 살펴보며 말했다.

“한국이 제일 괜찮아 보이네.”

“행정, 물류, 기반시설, 정부지원, 각국과의 FTA 등을 고려하면 그렇죠.”

내 말에 상엽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날드가 한미FTA 개정해 한국 자동차 수입관세를 올린다 해도 카로스랑은 별 관계없을 테니.”

“어차피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는 전량 미국에서 생산하니까요.”

난 피자를 먹으며 계속 말했다.

“노동자들 교육수준도 높고, 근면하고, 기술력이 뛰어난 협력업체들도 많고. 무엇보다 서성SB와 OTK연구소도 다 한국에 있잖아요.”

“문제가 되는 건 고임금과 잦은 파업인가?”

“그것만 해결할 수 있다면, 한국에 새로운 자동차공장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겠죠.”

“대략 20년 만이네. 서성이야 당연히 하자고 할 테고. 은성차는?”

“생각 중이에요.”

아쉬운 건 은성차지 우리가 아니다. 기왕 손을 잡을 거면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야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있어?”

“이거 한 번 봐 봐요.”

난 또 다른 자료를 내밀었고, 상엽 선배는 그것을 살펴보았다.

“직접 만든 거야?”

“그럴 리가요.”

내가 무슨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석학도 아니고.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세상에 나보다 똑똑한 사람은 많고, 필요하면 그 사람들 머리를 빌리면 된다.

이런 거 하라고 학자나 교수가 있는 것 아니겠나?

“선배도 알다시피 이대로 가면 한국 제조업은 위험해요.”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특히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경제성장은 경이로울 정도다.

고도성장은 빈부격차라는 부작용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이때 한국은 빈부격차도 줄고 중산층도 늘어났다. 그야말로 한국경제의 황금기였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이 제조업 위주의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공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갔고, 일자리는 넘쳐났다.

제조업은 여전히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IMF 사태와 금융위기를 극복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미국은 리쇼어링이다 뭐다 외국에 나갔던 공장도 본국으로 돌아오는 판에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외국에만 공장을 짓고 있으니. 이래서야 죽도 밥도 안 되지.”

상엽 선배는 TV에 나오는 시위대를 가리켰다.

“그런데 말 한마디 했다고 저렇게 들고일어나는데, 이런 거 한다고 하면 양대 노총이 가만히 있겠어?”

난 피식 웃었다.

“안 되면, 수만 개의 일자리가 다른 나라로 가는 거죠.”

상엽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공장 세운다고 하면 환영할 나라가 한둘이 아니지.”

* * *

은성차 파업은 어느새 보름을 넘어섰다.

은성차의 국내 점유율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국 자동차산업 전체가 멈춰선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국내업체의 반사이익이라고 해봐야 그리 크지 않았다. 생산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협력업체는 쓰러지기 직전이었고, 지역 경제도 휘청거렸다.

여야는 한 목소리로 빠른 노사협상을 촉구했다. 지역구에 공장이 있는 국회의원들은 해당 지역으로 내려가 주민들을 만나거나, 은성차를 찾아가 사정했다.

주성무 노조위원장은 한찬영 회장의 사과 없이는 대화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사측은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은성차그룹의 주가는 계속해서 하락했다. 한때 200조를 훌쩍 넘었던 시총은 이제 100조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재계순위는 SSK그룹에 이어 CL그룹에게도 밀리며 4위로 주저앉았다.

은성차만 놓고 보면 현재 시총은 46조에 불과하다. 반면 은성차가 헐값에 팔아넘긴 카로스는 비상장기업임에도 2천억 달러가 넘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니 주주들이 열 받을 만도 하겠지.

OTK컴퍼니와 골든게이트는 조용히 은성차 주식 매수에 나섰다. 현주 누나는 협상팀을 꾸려 비밀리에 은성차와 접촉해 각종 조건을 조율했다.

그러는 사이 나도 임진용 회장과 전문가들을 만나며 투자계획을 점점 구체화시켰다. 그 전문가들 중에는 한국대 교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난 오랜만에 김명준 교수님과 통화했다.

[또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네. 정말 한국에 투자할 생각은 있는 거야?]

“돈만 된다면요.”

[하하! 돈 밝히는 걸 보니, 진짜 경영자 다 됐네.]

“교수님께 잘 배운 덕분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로 연락한 거야?]

“경제학과 학과장님과 함께 한 번 뵙고 싶은데요. 투자 때문에 여쭤볼 것도 있고 해서요.”

[장세명 교수님?]

장세명 교수는 젊은 시절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이때 낸 경제학 책이 흥행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이후 한국대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다.

“예. 괜찮을까요?”

김명준 교수님은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이지. 안 그래도 장 교수님도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마침 잘 됐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