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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55

253. 약혼관계 – 선물

눈발이 이는 산봉우리, 암석 지대 너머에 회색빛 성이 있었다. 영상은 약혼관계 시나리오의 시작을 알리며 에이브릴 성으로 떨어졌다.

나란히 선 두 채의 집.

2층으로 높이는 같았으나 형식이 달랐다. 왼편의 집은 근처의 다른 집들과 비슷하게 지붕이 길었다.

2층을 덮은 그 가파른 지붕엔 창문이 뚫렸고, 포개어진 돌들이 흩날리는 눈발을 미끄러뜨렸다.

거친 마감으로 드물게 튀어나온 서까래, 나무 기둥이 아니면 돌밖에 보이지 않는다.

반면 오른편의 집은 대패질한 나무가 두드러지는, 세련된 집이었다.

재료야 근처 산에서 캐온 얇은 회색 돌이긴 마찬가지고 들어간 나무도 양이 비슷하겠으나, 돌을 무작정 수더분하게 쌓아 올린 여타 집들과 달리 그 집은 연출이 훌륭했다.

돌벽 사이사이로 나무가 보인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벽에 나무를 섞어 멋을 부린 것이었다.

과연 명망 있는 덱스터 가(家)의 집이다. 그 뒤의 공터에서 레오 덱스터는 변함없는 집과 억세게 느껴지는 자신의 신체, 체온, 자신만만하게 검을 휘두르는 레나 아이나르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눈발이 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레오! 내 말 듣고 있어?”

레나가 뒤돌아섰다. ‘목검’을 턱, 어깨에 걸치는 그녀가 반갑다. 그녀의 긍지가… 기쁘다.

“그럼. 듣고 있지. 듣고… 있었어.”

[ 업적 : ‘20’번째 레오 – 플레이어가 레오에게 동화되는 속도가 미약하게 빨라집니다. ]

[ 20/23 ]

[ 진명을 알지 못합니다. ]

민서, 이 개새끼.

뭐? 레나를 공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염병.

그 잘못된 판단으로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소드마스터가 됐고, 레나에게 내 실력을 감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과정이 너무 끔찍했다.

약혼한 관계.

이걸 알았으면 진작에 레나를 공주로 만드는 게 엔딩이 아니겠구나, 짐작했어야 할 것이 아니냐. 매 회차,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언젠간 레나와 파혼해야 할 거라는 생각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기사가 되려는 연인을 답답해했다.

인제 와서 돌이켜보면 레나가 잘못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파혼하겠노라 모질게 구는 약혼자를 저버리지 않았고, 전장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다. 훈련하길 게을리하지도 않았고, 잔재주를 부린다거나 기사의 명예에 흠집이 될 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잘못은 민서가… 더 나아가 내가 했다. 그 쓸모없는 불순물이 하는 말을 그래도 조력자라고 받아들인 것부터가 실수였다. 애당초 내 인생을 남에게 맡긴 것부터가 잘못된 행동이다.

레오가 머릿속에 남은 민서의 잔재를 쫓아내었다.

20번째 레오. 동화 카운터가 쌓이고 쌓여 희미해진 민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잠잠해졌다. 못내 미안해하며 ‘그래도 전쟁은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조언했으나 레오 덱스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레나가 말했다.

“있지, 지금 와 있는 상단 있잖아. 이따 뭣 좀 사러 같이 가자.”

“그래. 나도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잘 됐다.”

잘그락. 레오가 주머니에 ‘초기 자금’이 들어 있는 걸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레나, 그 전에 우리 대련 한 판 더 안 할래? 해보고 싶은 게 있어.”

“응? 대련은 아까 했잖아. 흐음… 좋아. 아직 맛을 덜 봤구나!”

레나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목검을 치우고 검을 잡았다. 레오도 자신의 검을 들었다.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 검. 레오는 단단한 결속감을 고의로 떨어내었다. 검을 느슨하게 잡으며 말했다.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레오가 오늘따라 말이 많네. 얼른 들어오기나… 앗!”

레오가 후웅! 몸을 작게 회전하며 들어 올린 검을 내리찍었다. 레나는 시작부터 강격인가, 생각하며 검을 눕혔다.

– 캉.

“어?”

일격필살의 공격인 줄 알았건만 레오의 검은 그녀의 검을 가볍게 때렸다. 그의 하체가 회전하고 있음을 알아챈 레나가 급히 무릎을 들었다.

“이게…!”

레오의 발차기를 막아낸 레나는 자신이 시작부터 손해를 봤음을 깨달았다. 발차기한 레오는 여유만만하게 걸음을 디뎌 그녀의 안쪽으로 침입해왔다.

손잡이에 맞겠다.

레오가 그녀의 눕힌 검을 축으로 검 손잡이를 들어 올렸다. 이대론 턱이 나갈 위기였으므로 레나는 들었던 다리로 땅을 찍었다. 레오의 오른편으로 이동하며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우왓!”

레오가 호들갑을 떨며 물러났다. 치사한 속임수로 호흡을 소진했으니 이번엔 내 차례다!

이어진 찌르기.

물러서는 레오가 막지 못하리라 판단했다.

그러나 흠칫, 레오의 동작에 여유가 비쳤다. 위치를 잃고 방황하는 검을 빙글 회전해 막으면 그만일 것 같아서 레나는 찌르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으악! 레나가 사람 죽이네.”

“어어?! 미, 미안해. 괜찮아?”

찌르기가 그대로 들어갔다.

“조심해야지. 실전도 아니고 대련인데 이렇게 찔러버리면 어떡해.”

엉덩방아를 찧은 레오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간 허리를 매만졌다.

진짜 아슬아슬했다. 옷이 찢어지고 살갗에 생채기가 났을 정도로.

넘어지던 레오가 순간적으로 땅을 옆으로 박차지 않았더라면 배가 뚫렸을 것이다.

“미안해. 일어날 수 있겠어?”

“아니. 다리가 풀려서… 나 좀 일으켜 줘.”

레나가 미안해하며 레오의 손을 잡았다. 그때, 레오가 그녀를 확 잡아당겨 넘어뜨렸다.

“요게! 하마터면 교회에 갈 뻔했잖아. 내 옷 물어내.”

“나, 나 돈 없는데…”

돈이야 또래에 비하면 넉넉하지만, 이따 장터에 가서 가죽끈 살 돈을 빼면 한 푼도 없었다.

“배 째라는 거야? 너도 어디 한번 당해봐라.”

“자, 잠… 꺄하하하하하! 간지러워! 그만… 꺄악! 차가워!”

눈발이 흩날리는 공터에서 잠시간의 소동이 일었다. 간지럼을 태우던 레오는 이거론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주위의 눈을 긁어모아 레나의 옷에 털어 넣었다.

레나라고 가만히 있진 않아서 한참을 뒹구르던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드러누웠다. 레오는 레나의 손을 꼬옥 붙들고 있었다.

먹구름 낀 하늘. 그러나 대기는 깨끗하다. 레오가 몸을 일으켜 레나를 내려다보았다.

“…”

“…잘생겼네.”

“얼른 옷이나 물어내.”

레오가 레나에게 키스했다. 서로 코를 부비며 미소 짓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먼저 씻으러 간다. 지은 죄가 있으니까 정리는 네가 해.”

“응.”

레오가 저쪽 우물로 사라지고, 공터에 남은 레나는 이리저리 떨어진 검을 주워 정리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있어 다시 검을 잡았다.

아까 레오가 어떻게 했더라?

더듬더듬, 레오가 보인 특이한 검식(劍式)을 따라 해봤다. 그녀로선 알 길이 없었지만, 그건 카트리나의 검술이었다.

* * *

“레오, 아까 네가 했던 거 있잖아…”

레오와 레나는 서둘러 장터를 향하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서 닫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직 열려 있었다.

“응? 아까 그거? 그냥 괜찮겠다 싶어서 한번 해봤는데, 안 되겠더라. 몸에 무리가 와. 어지간히 유연하지 않고는 못 쓰겠어. 레나야, 우리 뭐 먹을까?”

“잠깐만.”

레나가 주머니를 뒤적였다. 은화 한 닢. 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나 돈 없어.”

“내가 살게. 나 돈 많아.”

“어쭈. 웬일이래? 넌 오늘 죽었다. 그러면~”

이죽거리며 말한 것치고 레나는 값싼 요깃거리만 골랐다. 달콤한 양념에 절은 고기 조각을 우물거리며 장터를 둘러보다 말했다.

“레오, 잠깐만 기다려. 나 저기서 뭣 좀 사 올게.”

가죽을 사고파는 노점이었다.

레오는 빙긋 웃으며, “그래. 천천히 다녀와.” 말하곤 걸음을 돌렸다.

이상한 게 있어서다.

지난 회차에서는 신경 쓰지 못했는데, 란 아비커와 앤 아비커, 바르나울까지 동행했었던 야만인 자매가 엉뚱한 방향에 있었다.

이 좁은 에이브릴 성에 그녀들이 와 있다면 내가 조금 걸어 다니는 정도만으로 {추적술}이 가리키는 방향이 휙휙 변해야 했다. 그러나 두 자매를 가리키는 방향은 북동쪽에서 변하지 않았고, 이는 그녀들이 꽤 멀리 있음을 의미했다.

레오는 버논이라는 장구류 상인을 찾아갔다. 그가 이 상단의 주인이자 란과 앤 아비커 자매를 상행에 동행시켰던 사람이었다.

“어서 옵쇼!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십니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석이라고 다 비싼 건 아니니까요. 예물을 구하러 오셨다면…”

“죄송합니다. 뭘 사러 온 건 아니고,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무엇이든요. 견적 상담도 환영입니다.”

…좀 미안한데.

“란과 앤 아비커를 아십니까?”

“어? 손님이 란이랑 앤을 어떻게 아십니까? 혹시…?”

“오해하지는 마세요. 전 아비커 부족 사람이 아닙니다. 전 바르나울에서 태어났거든요. 그때 잠깐 인연이 있었는데, 듣자 하니 바르나울에서 오셨다고 해서 여쭤봤습니다.”

“아아. 운이 좋으시군요. 제가 란이랑 앤을 잘 압니다. 뭐가 궁금하시죠?”

왜 여기에 안 왔는지가 궁금하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는 없어서 레오가 말을 돌렸다. 늘 그랬듯, 거짓말이 필요했다.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가 궁금하네요. 제가 뵀을 때는 아이들이 요만했는데…”

“허허. 지금은 많이 자랐죠. 잠깐 앉으시죠.”

버논은 란과 앤을 아는 레오가 반가웠는지 자리를 권하고는 차를 한 잔 내왔다.

통성명도 하고, 자잘한 이야기가 오갔다. 레오는 자신을 ‘유안’으로 소개했는데, 자신이 바르나울에서 악명이 자자한 노엘 덱스터의 아들임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버논이 말했다.

“한데 참 걱정입니다. 란이랑 앤이 무슨 병이 있는지… 밤마다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이상한 행동이라니요?”

“간혹 밤마다 뭐에 홀린 것처럼 돌아다닙니다. 애랑 남편도 있는데. 처음엔 옛날 구일 전쟁 때처럼 순찰을 다니는 줄 알았는데, 자기들은 기억이 안 난다더군요. 뭐, 걱정하실 만큼 큰일은 아닙니다. 의사 말로는 몽유병이라더군요.”

“흐음…”

란과 앤한테 병이 있었나 보지?

레오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애당초 그는 란과 앤 아비커를 만났던 14번째 회차의 기억이 없었다.

란과 앤에게 아이가 있다는 것, 그녀들과 함께 설각사록이라는 마수를 잡고 바르나울로 떠났던 것 등은 모두 그 회차의 엔딩이 났을 때, ‘내’가 정신줄을 놓은 민서에게 말로 전한 정보들이었다.

세밀한 이야기가 빠져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하지 않은 정보라 전하지 않았나 보다 생각하며 레오가 입을 열었다.

“저런. 그럴 땐 생활환경을 바꿔보면 좋을 것 같은데… 여행을 다녀온다거나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솔직히 그것만은 아니고, 아마 아시겠지만, 란과 앤이 참 훌륭한 전사잖습니까? 용병 수수료를 아낄 겸, 상행에 동행하자 꼬드겼는데 싫다더군요.”

“왜요?”

예전 회차에선 동행했다.

이번엔 왜 오지 않았을까 의아해하며 물었으나 버논은 어깨를 으쓱, 들었다.

“아이들 때문이겠죠.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니까요.”

“…아쉽네요. 동행했더라면 저도 그 누나들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을 텐데요.”

레오는 아쉬운 척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 상인한테 브리나 자작령에 가지 않는 게 좋을 거라 알려주고 싶었지만, 지나친 오지랖이고 설득할 방도도 없어서 잠시 입만 오물거렸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야! 레오! 한참 찾았잖아. 여기서 뭐 해?”

레나였다. 레오는 고개를 꾸벅, 서너 주일 뒤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상인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버논은 미소로 그를 돌려보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혹시 나 선물 사주게? 내가 괜히 불렀나?”

“선물이라면 이미 샀지.”

레오가 품에서 ‘예쁜 목걸이’를 꺼냈다. 이름 그대로 청색의, 예쁜 목걸이다. 목걸이는 레나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어어… 농담이었는데. 고마워. 안 비쌌어?”

“엄청나게 비쌌지. 에이브릴 성을 팔아도 두 개는 못 살 거야.”

파하하하!

레나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녀는 인심 썼다는 듯이 허리춤에 감춰둔 가죽끈을 내밀며 말했다.

“자. 그럼 나도 선물. 생일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에잉. 그냥 받아. 너 검 손잡이가 좀 낡았더라.”

예상한 선물이었으나 레오는 깜짝 놀라 하며 기쁘게 웃었다.

나는 레나와 행복하게 살 거다.

레나의 꿈을 이뤄주고, 연인답지 못하게 차나 홀짝이는 걸 진엔딩이랍시고 맞은 레브가 배 아파할 정도로 행복하게.

에이브릴 성의 장터. 눈치 볼 게 없는 연인은 팔짱을 끼고 돌아다녔다. 짓궂은 장난으로 레나의 머리를 헝클어뜨렸고, 볼에 뽀뽀를 받았다. 레나도 표현이 솔직해진 레오가 싫지 않아 즐거이 떠들었다.

행복한 밤이다.

홍련달이 붉게 떠올라 있었지만.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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