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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57

Chapter 256 – 256. 학예회 (2)

시간을 조금 되돌려서.

학예회 당일 아침. 결전의 날이다.

[그런데, 엘판테 학예회가 정확하게 뭐 하는 행사인데?]

“…당신 엘판테에 재학도 해봤었잖아요. 그걸 몰라?”

[나야 좀 다니다가 곧바로 제국군에 차출되서 모르지. 1년도 못 채웠는데.]

“아.”

[그리고 그 뒤엔 곧바로 가디언에 박혀서 신상도 죄다 기밀 처리되고. 학예회고 뭐고 내가 알게 뭐냐?]

아, 그렇군.

엘리야가 엘판테에 온 것도 이 사람의 마지막 발자취를 찾기 위해서라는 설정도 있었던가.

그러면 여기서 이게 뭔지도 모르는 칼리반을 위한 개괄적인 설명.

“뭐, 전에도 말했지만 대충 박람회 같은 거에요.”

그렇게 말하며 숙소 창문의 커텐을 쫙 걷는다.

다만, 박람회긴 박람횐데.

스케일이 조금 남다르긴 하다.

슬쩍 위를 올려다보자, 그쪽엔 허공에 마력 스파크로 새겨둔 거대한 글자들이 있었다.

하늘에 거대한 캘리그라피 문구를 새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면 빙의 전 세계에서 가끔 본 스카이쇼를 생각나게 하거나.

[ 제 1022회 엘판테 학예회에 오신 모든 귀빈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

무시무시한 길이의 엘판테 연혁에 비례한 개최 회수도 눈에 띄지만, 그것 이상으로 주목할만한 건 저런 ‘돈지랄’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저만한 크기로 허공에 마력 스파크를 새기는 건 마석을 물처럼 퍼붓는 게 아니면 불가능하니까. 모르긴 몰라도 대도시의 한달 치 운영비 정도는 썼을 거다.

그걸 고작 글자 환영 인사에 써먹었다는 건, 이 행사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급’을 맞추기 위한 퍼포먼스라 그거지.

“…전 제국, 아니, 거의 전 대륙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죠. 엘판테뿐만 아니라 제국 전체에서 가장 커다란 행사 중 하나니까요.”

실제로 성황국의 대신전이나 부족 연합의 투쟁의 용광로도 비슷한 행사를 열긴 하지만, 규모든 이쪽에 나오는 각 부스의 ‘품질’이건 압도적으로 열세다.

몇 년에 한 번씩 열리지만, 그만큼이나 다른 곳에서 구경하기 힘든 온갖 종류의 발명품이나 연구 결과등이 쏟아져 나온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행사를 학예회라고 부르냐?]

칼리반이 어이가 없다는 말을 흘렸지만, 이번에는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이 정도 규모의 행사는 황궁에서 열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사실 제국 입장에서 다른 나라한테 ‘자랑’할 만한 거리가 별로 없거든요.”

기술 면에서는 부족 연합에게, 학술/문화적 성취나 역사적 상징성 면에서는 초대 용사를 배출한 성황국에게 밀린다.

비록 현대의 용사는 제국민인 엘리야라지만, 그럼에도 문화적으로 크게 우위를 점하는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면 제국에서 타국에 가장 강점으로 내세울 만한 건, ‘인적 자원’의 양과 질이다.

“몇 년에 한 번씩은 이렇게 뽐내주는거죠.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우리가 가장 잘한다.”

말하자면, 기선 제압 같은거다.

성황국과 부족 연합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각종 자원의 ‘양’. 뭐든 크고, 거대하고, 화려하게.

그리고 그만한 인적 자원을 투자한다면, 당연하게도 대단히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것들도 가끔씩 튀어나오기 마련이고. 그러니까 다른 나라들도 그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거다.

“…그런 특성상 제가 하려는 짓을 드러내기도 제격이긴 하지만.”

일명, 다우드 캠벨 쇼케이스다.

내가 준비한 걸 통해 ‘대륙 전체’에 파급력을 발휘하려면, 이 수준의 행사가 아니면 힘들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며, 퇴마부에게 배정된 부스로 이동하기 위해 방을 나선다.

그리고, 기숙사실을 나서자마자.

“오, 또 뵙습니다.”

젠틀한 사이보그와 다시 마주쳤다.

“…”

마탑의 집행관이란거, 칼리반의 반응을 생각하면 그냥 뜨는 것만으로도 제국 전체가 경악할 만한 수준의 고급 인재라고 들었는데.

너무 운신이 가벼운 것 아닌가?

“뭘 그렇게 떨떠름한 반응이십니까. 처음 본 것도 아니시면서.”

“…아뇨, 뭐.”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답한다.

이름이 알파 11이라고 했던가.

어색하게 말을 흐리고 있자니, 마탑의 집행관께서 친화력 있는 몸짓으로 내 옆쪽에 따라붙었다.

걸음걸이를 맞춰 성큼성큼 걷고 있자니, 주변의 시선이 이쪽으로 한 번에 쏠리는 게 느껴진다.

“…이쪽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설마 진짜 학예회 하나 보겠다고 이쪽에 오진 않았을거란 확신을 담아 질문한 것이었고, 어깨를 으쓱하는 알파-11을 보니 그렇게 틀린 예측도 아닌 것 같았다.

“호위를 위해서 온 겁니다. 하도 그분이 당신을 보겠다고 극성이셔서요.”

“…”

그런 말을 듣자마자 불길함을 곱씹기는 했다.

얼마 전에 이 인간이 나를 찾아와서 한 말도 있고, 자꾸 등장하려는 떡밥을 뿌리는 부담스러운 인간도 있고 해서.

그리고 그런 사실에 몸을 떨면서 퇴마부의 부스에 도착하자마자.

불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아드으으으을-!]

“…아스트리드 교수님. 친자 살해라도 저지르실 생각이십니까.”

나를 격하게 껴안으려다 알파-11에게 제지되는 5m짜리 거대 로봇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형이상학적인 공포를 주는 장면이 틀림없었다.

[어머, 어머, 얘네 얼굴들 좀 봐. 하나같이 다 미인들이네?]

“…”

“…”

“…”

세라스, 빅토리아, 페이놀에 엘리야까지도 대체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굳어있었다.

사실, 아마 누구나 입장 바꿔놓고 그들 자리에 앉아있다고 해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가장 커다란 이유라면 부스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어서 입구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강철 거인의 존재 자체가 그렇겠지.

그리고 두 번째로는.

[아들. 어디서 이렇게 미인들만 골라서 사귀었니?]

“…”

[아들?]

“…”

[아들…?]

“…”

그런 강철 거인의 모습을 이 악물고 무시하는 다우드 캠벨의 존재렸다.

안쓰러울 정도로 어떻게든 말을 붙여보려는 강철 거인의 존재를 완벽하게 무시하는 그 모습은 가히 철벽도 이런 철벽이 없으리라…

“…”

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다우드로서도 나름 할 말은 많은 상태였다.

‘이상한 점 투성이잖아.’

이렇게 어떤 방식으로건 ‘의사 소통’이 가능한 상태였다면, 지금까지 찾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인간이, 이제와서 자기가 어머니네 어쩌니 해도 공감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상대방이 쩔쩔 매는 태도야 어찌되었건 반갑지 않을 이유야 차고 넘친단 소리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가족된 입장에서 이 사람의 존재가 아르민 캠벨에게 얼마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진 영혼에 새겨지도록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방에는, 아직도 어머니의 물건이 가득했으니까.

자신이 어릴 때부터, 장성한 성인이 되기까지.

그 몇 십년의 세월을, 꼼꼼하게 관리된 모습으로.

어느 정도로 이 사람을 그리워 했으면 그리할까.

어느 정도로 이 사람이 큰 의미를 가지면 그리할까.

그런데.

이렇게 찾아올 수 있었으면서.

단 한번도.

단 한번도, 그 사람한테.

“…”

다우드 캠벨의 표정이 더더욱 찌푸려졌다.

아예 상대도 하기 싫다는 표정이 된 그가,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표하고 온다.”

[어…]

아스트리드 교수라고 불린 강철 거인이 뭐라고 말을 붙이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다우드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스 바깥으로 나섰다.

자리에는 이내 어색한 침묵이 가득 찼다.

이 자리에 있던 퇴마부 일원들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 있던 알파-11마저도 아스트리드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으니까.

“…괜찮으십니까?”

전자음 섞인 걱정에 아스트리드 교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글쎄…]

강철 거인이 푹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뭐, 예상대로 그렇게 환대받지는 못 하는 모양이네.]

“…”

아마.

그 자리에서 그 미묘한 ‘변화’를 감지한 이들은 조금 눈치가 빠른 자들이었을 것이다.

다우드 캠벨이 자리에서 벗어나자마자, 강철 거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섞인 ‘감정’이 아주 미묘해졌으니까.

[그래도, 잘 자랐어. 무리를 해서라도 바깥에 한 번 나와보기를 잘 했다니까.]

마치.

더 이상 자신이 ‘눈치 볼’ 대상이 없어졌단듯이.

[…그 외에는 내 기억대로 충분히 짜증나지만.]

그 목소리에 담겨 있던 ‘따뜻함’이 일거에 사라졌으니까.

비인간. 비인격. 더 나아가, 비유기체.

조각같은 형태로나마 남아있던 ‘인간성’이, 다우드 캠벨이 없어지자마자 스위치가 내려간 것처럼.

흘러나오는 건, 끔찍할 정도로 무기질적인 목소리뿐이다.

[그래서.]

아마,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런 변화를 감지한 인간들은 더더욱 늘어났을 것이다.

겉보기에는 별로 다를 게 없어보인다. 하지만, 그 문장 기저에 깔려있는 건.

상대에 대한, 깊은 ‘경멸’이다.

[너희들이 그 분수도 모르는 도둑년들이구나?]

-일순.

공기가 급격하게 냉각되기 시작했다.

제국 안보회 소속의 셀림 브롱스는 대단한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엘판테 학예회라고 하면 각국에서 온갖 인간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사건 사고의 온상이다. 당연히 제국 입장에선 이만한 대형 행사를 망치고 싶어하진 않기 때문에, 그녀같은 정예 요원도 자주 투입되곤 했다.

‘…저번 학예회보다 훨씬 못한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런 중대한 임무를 맡았음에도 그녀가 느끼는 건 끔찍한 지루함뿐이었다.

전부 뚜렷한 활용처도 보이지 않는 괴상한 발견이거나, 실용성이 없는 겉멋뿐인 연구거나, 하다못해 눈을 확 사로잡을만한 화려함마저 없다.

물론 학예회가 보통 큰 행사가 아니니만큼 앞으로 남아있는 타자도 한참 남아있지만, 시작이 이래서야 앞으로도 큰 기대를 하기는 힘들 정도로.

마탑의 인원까지 온다고 해서 제법 기대했는데, 이래서야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일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감상은 이어지는 동아리의 발표에서 더욱 극대화되었다.

‘…퇴마부?’

이름부터가 괴상하다.

발표회라고 해봤자 이전 차례에 나왔던 타자들처럼 쓸모없는 것들이겠지.

학생 기준으로도 별 것 없어보이는 저 남자에게서 무슨 기대할만한 발표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여러분들.”

셀림이 그렇게 생각하며 하품을 하는 사이.

“전쟁을 세상에서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라고 보십니까?”

-느닷없이, 그런.

수상하기 짝이 없는 화두가 떨어졌다.


           


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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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V FTBLBV It's Fate To Be Loved By Villains It Is Fate to be Loved by Villains 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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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proposed to by the Final B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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