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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58

256. 약혼관계 – 길 잃은 편지

“왜 너희만 천막을 둘이서 쓰나? 아주 개판이야. 둘이서 알콩달콩 소꿉놀이라도 나온 겐가?”

에이브릴 성에서 출발한 병사들은 중간에 수도 바르나울에서 남하해온 병사들과 합류해 전장을 향했다. 규모가 커지면서 부대를 인솔할 임시 지휘관이 배정됐고, 레오는 들창코 백인장을 다시 만났다.

대포 같은 코를 가진 백인장은 이번에도 꼬장꼬장하게 굴었다. 레오를 향해 대포를 정조준하며 3인이 사용해야 할 천막을 왜 둘이서만 쓰느냐 질책하는 것이다. 레오는

“죄송합니다. 저희가 약혼한 사이라…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건 아는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반짝, 레나 몰래 은화 한 닢을 보이며 사죄했다. 아껴둔 {초기 자금}을 뇌물로 털어버렸고, 레나는

“어라? 엄청 혼날 줄 알았는데 그냥 가시네? 다행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천만다행이라는 듯이 파닥거렸다.

이것도 민서가 생각해낸 방법이다.

{뒷골목의 규칙} 정보에서 힌트를 얻긴 했으나, 기사가 되길 희망하는 진짜 레오 덱스터였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민서가 없었더라면 레오는 ‘덱스터’라는 유명한 기사의 성(姓)을 과시해 백인장을 물려 세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태껏 유용하게 쓰였고, 변수를 피하고 싶은 레오는 민서의 방식을 답습했다. 덕분에 그들은 ‘무사히’ 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빨리! 빨리 병영으로 데려가!”

– 꿀꺽.

도착하니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부상병들이 거동조차 못 하는 병사를 병영으로 수송했고, 갓 도착한 신참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전장의 평범한 풍경이다.

아스틴 왕국군과 벨리타 왕국군은 한 달 전부터 가벼운 전초전을 치르고 있었다. 이제 충원이 이뤄졌으니 아스틴 왕국이 본격적으로 공세를 펼칠 것이었다.

임시 지휘관이었던 들창코 백인장은 (이전 회차들에서도 그랬지만) 레나와 레오의 상관이 됐다. 그는 각 분대당 아이나르 부족 6명과 병사 3명, 그리고 십인장을 배정하여 백인대를 재편성했다.

레나와 레오는 같은 분대에 편성됐다. 일반 병사로. 자기소개조차 생략한 십인장은 병사들의 장비를 점검하고, 우측 능선을 향했다.

‘기분이 묘하네.’

언덕을 오르며 전장을 휙 훑어본 레오는 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각을 느꼈다.

{전술} 능력 때문인지 전황이 한눈에 보인다. 초봄임에도 군데군데 살얼음이 남은 평원에 수백 개의 분대가 넓게 흩어져 대치하고, 여력이 생긴 아스틴 왕국군이 좌우 능선의 언덕들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정공법이다.

이로써 레오는 양측의 마법 전력이 충분하고, 비슷한 상황이란 걸 유추해냈다. 이럴 때는 장군이 기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마법사의 견제를 피해 분대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기 마련이었다.

분대별 진격 전술이 언뜻 보기엔 그냥 숫자 싸움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포진을 갖춰 충돌하는 회전(會戰)이 “한 방에 끝나서 차라리 쉽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지형 파악 능력과 예견에 가까운 예측 능력이 필요했는데, 아무리 분대를 잘 흩트려도 싸움이 벌어지면 분대들이 자연스럽게 뭉치기 때문이었다.

그게 이합집산(離合集散, 헤어졌다가 만나고 모였다가 흩어짐)의 원리다. 장군은 어디서 싸움이 벌어질지, 어떻게 얼마나 뭉칠지를 시시각각 판단하여 기사 또는 마법사를 미리 파견하거나 적을 안쪽으로 끌어들였다. 적의 강력한 전력인 기사와 마법사가 어디에 배치되어 있을지를 가늠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전장을 훑어본 레오는

‘우리 측 장군이 더 낫겠지.’

장군의 우수성을 쉽게 판별해냈다. 총사령관을 직접 만나봤기 때문에, 그에게 {전술} 능력이 있어서는 아니고…

‘초반에는 아스틴 왕국이 항상 이겼으니까.’

미래를 알기 때문이었다.

레오는 일개 병사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이윽고 떨어진 돌격 명령. 레나와 레오가 포함된 분대가 적의 분대를 만났다.

“좀 긴장되는데.”

“나도.”

레나는 첫 실전을 앞두고 바짝 긴장해 있었다. 검을 세게 움켜쥐며 레오에게 “다치지 않게 조심해. 사제가 한 명도 없다더라.” 충고했다. 레오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하지만,

– 촤악!

“어라?”

쉽다. 레나는 처음으로 조우한 적병을 손쉽게 베어냈다. 무식하게 달려든 적을 피해 한 발짝 사선으로 발을 디뎠고, 그녀의 검이 그자의 배에 박혔다.

푸확! 튀는 뜨거운 핏방울.

레나가 첫 살인의 감흥과 얼떨떨한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다른 병사가 달려들었다. 미처 배에 박힌 검을 회수하지 못한 레나는 빙글, 그녀가 막 죽인 시신을 추로 삼아 적이 검을 내리치기 전에 그의 가슴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이러면 검을 내리치지 못한다.

‘이건 왜 이렇게 말썽이야.’

한숨 돌렸지만, 배에 박힌 검이 뽑히질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란 레나는 검을 버리며 적의 가슴팍에 왼 팔꿈치를 꽂았다.

“억!”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근접한 거리다. 뒤이어진 레나의 오른 팔꿈치가 녀석의 턱을 올려 쳤고, 레나는 재빨리 녀석이 떨어뜨린 검을 집었다. 낯선 촉감이 손아귀에 잡혔다.

난장판이다.

그녀가 여태껏 해온 대련과 실전은 전혀 달랐다. 지금 집어 든 검의 무게 중심도 이상하다.

하지만 레나는 그 검으로 적병을 마무리하며 첫 실전을 성공리에 마쳤다. 휘유- 이마의 피를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전투가 끝나 있었다.

레나가 기쁘게 외쳤다.

“레오! 내가 두 명을 잡았어!”

“이야! 우리 레나 대단한데?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응. 너는?”

“나도 안 다쳤어.”

“아니, 몇 명 잡았냐고.”

“난 한 명.”

“헤헤…”

레나가 허리에 척, 손을 올리며 가슴을 폈다. 기분이 좋을 때, 또는 뭔가를 자랑하고 싶을 때 하는 행동이다.

그동안 레나는 자신의 실력을 잘 몰랐다. 검술이 부쩍부쩍 늘었지만, 그녀가 대련한 상대는 노엘과 레오 덱스터 부자(父子)뿐이었다.

은퇴하지 않았더라면 최소 기사단장이었을 노엘 덱스터를 그녀가 이길 수 있을 턱이 만무하고, 레오는 희한하게도 언제나 실력이 비등비등했다. 검술 솜씨가 제법 늘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다 처음으로 비교 대상이 생긴 것이었다.

전령이 승리했다는 보고를 올리러 백인장이 이끄는 본대로 달려갔다. 십인대는 재정비를 위해 전선에서 잠시 물러났는데, 가는 길에 레나가 우쭐대며 말했다.

“혹시 나 엄청 강한 게 아닐까? 뭔가 굉장히 쉬운데?”

쉽다라… 레오는 하하!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기뻐하는 연인을 비웃는 건 아니었다.

‘그래. 이게 맞지. 애당초 어려울 게 하나도 없었던 거야.’

[ 레나 키우기 ]

전쟁에 나와 공을 세우며 레나를 성장시킨다. 카트리나가 큰 고비이긴 한데, 어떻게든 그녀만 넘어서면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벨리타 왕국의 소드마스터는 어떡하냐고?

레오의 품에는 아버지, 노엘 덱스터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해피엔딩을 맞이하기 위한 레오의 마지막 준비물이다.

– “너 그때 옆에 없었나? 한때 저분의 후배였다고 하셨잖아. 은근히 자랑하셨는데?”

적에게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있다면 우리에겐 아르펜 알바세테 남작이 있다. 노엘 덱스터는 알바세테 남작과 사수, 부사수로 엮였던 직속 후배였고, 이를 알바세테 남작을 처음 만났던 8번째 회차 때 레나를 통해 들었다.

해서 아버지께 부탁했다. 우리가 전공을 세우고, 충분히 기사가 될 수 있을 것 같거들랑 소드마스터께 편지를 전하고 싶노라고.

아버지는 내가 이런 부탁을 할 줄은 몰랐는지 좀 놀라셨지만, 어쨌든 편지를 작성해 주셨다.

이제 우리는 헤르만 포르테 백작을 만나게 되는 밤에 알바세테 남작 근처에 있기만 하면 됐다. 그간 이뤘던 성취를 소드마스터 앞에서 선보이며 남작과 함께 포르테 백작을 물리치는 게 이 약혼관계 시나리오의 종착점이 아닐까.

이를 방증하듯 고정된 {이벤트}는 반드시 일어났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헤르만 포르테 백작은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와서 죽게 되리라.

‘하하. 그래… 그 자식한테는 갚아줄 게 아주 많지.’

놈에게 두 번이나 죽었다.

내가 한 번, 레안이 한 번. 레나도 그의 손에 전사했었고, 레리아나도 놈이 보낸 기사들의 손에 살해당한 적이 있었다. 창관을 지키는 깡패가 된 레안 드 예리엘과 함께.

이번이 마지막 약혼관계 회차일 건데, 깔끔하게 복수까지 하고 끝낼 수 있게 됐다. 굴레에서 벗어났기 때문인지 카트리나가 전쟁터에 등장하지 않을 거라 하였으므로 조금의 찝찝함도 없이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 터였다. 기사 작위를 내려줄 아놀프 드 클라우스 왕자에게 호감을 받는 업적도 있고.

완벽하다.

레오는 다음번에 만난 적 분대를 갈아버렸다. 순식간에 다섯 명을 도륙해 기고만장해진 레나의 콧대를 꺾었고, 레나는 “이익!” 레오가 여전히 자신을 앞질러 있다는 생각에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연속된 대승에 분대를 이끌던 십인장은 매우 얼떨떨해했다. 그러나 이내 이유를 알게 되었다. 분대에 포함된 아이나르 부족의 전사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운 좋은 줄 아슈. 레나랑 레오가 기사 지망생이거든. 레오네 아버지는 대단한 기사고. 나도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맞아. 나도 레나가 저렇게 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걸. 하하! 정말 대단해. 역시 대전사님의 딸이야. 레오도 그렇고.”

“…그렇군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십인장은 가식 없이 기뻐했다. 레오는 그의 칭찬에 겸양하며

“다 함께 이겨낸 거죠. 공을 저희에게만 돌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전공을 나누어 가졌다. 전장의 살벌함에 기가 죽어있던 분대원들이 의기투합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덕분에 그 이후로 레오가 딱히 실력 발휘를 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계속 이겼다. 겁먹은 건 상대도 마찬가지라 기세에서 먹고 들어가니 두려울 게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카트리나는 끝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위 사실은 전황을 살피는 총사령관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스무 차례의 전투를 겪었음에도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고, 무적의 십인대로 전장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적 기사의 표적이 될 것이다. 기사의 공격을 받아 허무하게 몰살당하느니 전군의 사기를 독려하는 데 써먹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총사령관은 그 기이한 분대를 본진으로 귀환시켰다.

전선에 나간 지 오래되어 보급이 필요하다는 게 핑계였는데, 사실 꼭 핑계만은 아닌 게, 잦은 전투로 부상자가 발생하면 해당 분대는 즉석에서 다른 분대와 합쳐지거나 충원을 위해 복귀하기 마련이었다.

처음에 들고 간, 식량이나 응급 의약품 따위의 보급품이 떨어지기 전에 돌아오게 되는 게 보통이다.

한데 레나와 레오가 속한 분대는 두 달 가까이 최전선에 있었다. 실제로 보급이 떨어져 백인대로부터 식량을 얻어먹고 있었으므로 귀환 명령을 받을만했다.

커허허허험.

역전의 용사가 된 그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본진으로 귀환했다. 때는 초여름, 아놀프 드 클라우스 왕자가 곧 대단한 규모의 원군을 이끌고 전선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무렵이었다.

레나와 레오가 속한 분대는 왕자의 사열식에 참석해 두둑한 포상과 치하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뭐?! 아르펜 알바세테 남작님이 안 온다고?”

아놀프 드 클라우스 왕자를 호위하며 왔어야 할 소드마스터가 출발조차 하지 않았다. 레오의 품에 든 편지는 갈 곳이 없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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