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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6

26화 기사와 용병 (1)

26화 기사와 용병 (1)

나는 세실을 보며 강한 불안을 느꼈다.

“세실. 테오 일행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세실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실.”

“그건. 아니야.”

“아니라고?”

세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테오 일행도 데리고 가야지.”

잠시 침묵하던 세실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두고. 가자.”

“뭐라고?”

“돌아가면. 위험해.”

나는 세실의 음성이 멀게 느껴졌다.

“나. 데미안. 지켜.”

“세실!”

낮게 소리쳤다.

그러자 세실의 얼음 같은 눈동자에서 한기가 지워졌다.

세실은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친구들을 두고 가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내 마음 한구석에서 죄책감이 피어났다. 불과 며칠 전 광산의 숲을 달릴 때, 나는 테오 일행을 버리고 갈 것인지를 고민했었으니까.

세실이 바르르 어깨를 떨며 고개를 숙였다.

“······데리고. 가자.”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곳이 카론 늪지를 완전히 벗어난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어?”

“······사흘.”

사흘이면 카론 늪지를 벗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나는 지난 사흘간 있었던 일에 관해 세실에게 물었다.

***

세실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돌아가면 상황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모른다.

‘깨어났을지도 몰라. 어쩌면 벌써 추격을 시작했을지도.’

세실은 수 시간 전, 잠든 데미안의 주머니에서 ‘드림 위스퍼’를 꺼냈다.

드림 위스퍼의 효과는 레이븐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세실은 그것을 몰래 음식에 섞어 쿠에게 먹였고, 식사를 마친 쿠는 금세 곯아떨어졌다.

세실은 일행이 잠든 틈을 타 데미안을 등에 업었다. 동료들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모두를 업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섣불리 깨우다가 쿠가 기척을 느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걷지 않아 데미안이 일어나려는 낌새를 보였다. 그래서 세실은 데미안을 바닥에 내린 뒤 흔들어 깨웠다.

.

.

.

“세실. 사흘 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데미안이 물었고, 세실은 설명을 시작했다.

세실의 어투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실은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고, 데미안은 세실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단검이라고?”

세실은 지난밤, 쿠의 품에서 어떤 단검을 봤다.

그 순간 세실은 얼어붙었다. 그 단검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네몬.’

네몬 블레오파드.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자였다.

가문의 수장인 아버지도 네몬만은 극도로 경계했다.

수년 전, 네몬은 장난을 빙자해 세실의 목에 단검을 들이댄 적이 있었다. 세실은 그날의 공포를 잊지 못했다. 싱긋 웃는 네몬의 눈동자에서는 정말로 살기가 느껴졌다.

아버지가 나타난 뒤에야 네몬은 그 장난 아닌 장난을 멈췄다. 이후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기억나지 않는다. 세실이 기억하는 것은 살기 가득했던 네몬의 붉은 눈동자와 그가 드리웠던 단검뿐이었다.

“세실. 괜찮아?”

세실은 자신의 몸이 식은땀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다.

“······괜찮아.”

세실은 생각했다.

네몬에 관해서만큼은 데미안에게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데미안이 위험해질 거야.’

그래서 세실은 네몬의 단검이 아닌, 암영의 단검이라고 고쳐 말했다.

그리고 쿠가 ‘올빼미’일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올빼미라고?”

올빼미는 대륙 전역에 퍼져 있는 암영의 끄나풀을 가리키는 은어다.

아마도 쿠의 목적은 자신을 생포해 네몬에게 넘기는 것이겠지. 또한 임무가 완료되면 그는 데미안 일행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세실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쿠와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세실은 그에게서 따스함을 느꼈다. 마치 레이븐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게다가 쿠는 데미안을 구해줬다. ‘금발 꼬마!’ 라고 외치며 늪으로 뛰어드는 그의 모습에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찾을 수 없었다.

“······.”

설명을 마친 세실은 고개를 떨군 채 데미안의 대답을 기다렸다.

세실은 데미안이 동료들을 아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아무리 데미안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해도, 자신은 동료들을 내버렸으니까. 그들의 말로가 죽음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아니, 정말로 데미안을 위해서였을까.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리고 데미안과 함께하기 위해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마워 세실.”

세실은 고개를 들고 데미안의 푸른 눈을 봤다.

“나를 구해줘서.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줘서.”

그 눈은 너무도 맑아서 하늘과 별, 그리고 내 안의 어둠마저 환히 밝히는 듯했다.

***

상황은 알았다.

쿠는 늪으로 빨려들던 나를 구했고, 기절한 나를 등에 업은 채 카론 늪지를 빠져나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동료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것 같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맛 좋은 음식에, 아늑한 잠자리까지.

다행인 점은 동료 중 누구도 그에게 목적지를 밝히지 않았다는 거다. 테오가 입단속을 시켰겠지. 세실이야 굳이 말할 이유가 없었을 테고.

문득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기사의 검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세실. 내 검은?”

“늪. 삼켰어.”

세실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늪에 빨려들며 세실의 이름을 외쳤던 것이 생각났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었다 해도 명백한 실수였다. 다른 사람에게 세실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쳐 놓고서.

하지만 사과보다는 감사를 전하는 게 먼저겠지.

“고마워 세실.”

“······?”

“나를 구해줘서.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줘서.”

이후 늪지에서의 이야기를 꺼내자, 세실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했다.

살짝 눈을 빛내며 세실이 말했다.

“데미안.”

“응?”

“그거. 뭐였어?”

“그거?”

세실이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요만한. 돌. 보석.”

세실은 혼돈의 조각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당연하게도 조각은 만져지지 않았다.

“혼돈의 조각이야.”

“혼돈의. 조각?”

“응.”

“그게. 뭔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모르니까.

“정확한 것은 나도 몰라. 다만 그 안에는 ‘혼돈’이라 불리는 마력이 담겨 있대.”

“혼돈. 마력?”

세실이 중얼거렸다.

“데미안. 혼돈?”

“응?”

“데미안. 마법사.”

세실이 땅을 향해 팔을 뻗는 자세를 했다.

뭘 하는가 했더니, 내가 리메이크 스킬을 발현하는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었다.

“이거. 혼돈?”

아무래도 세실은 내 리메이크 스킬을 혼돈의 마력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설명하기도 애매했기에 나는 그저 살짝 웃었다. 그러자 세실도 배시시 따라 웃었다.

“다. 왔어.”

저만치 수풀에서 새어 나오는 빛의 일렁임이 보였다. 우리는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쿠는 대자로 뻗어 코를 골고 있었고, 테오 일행도 저마다의 담요를 덮고 잠들어 있었다.

내가 테오를 깨우고 세실은 덩치를 깨웠다. 기절에서 깨어난 나를 보고 반가워하던 테오는 이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족제비를 깨웠다.

세실은 긴장한 얼굴로 쿠를 경계했다. 마지막까지 쿠가 잠에서 깨지 않은 것을 확인한 우리는 발소리를 죽이며 그곳을 벗어났다.

***

“남서쪽 숲에 작은 마을이 있어.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조용한 마을이니 잠시 몸을 숨길 수 있을 거야.”

나는 정말 크게 놀랐다.

그런데 나보다 족제비가 더욱 놀란 모양이다.

“뭐, 뭐, 뭐야 덩치! 말을 할 수 있었어?”

“조. 실례잖아.”

“테, 테오! 덩치가 말을 해! 덩치가 말을 한다고!”

“실례라니까. 조.”

그렇게 말하는 테오도 놀란 얼굴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세실은 고개를 갸웃했고, 덩치는 소리 없이 히죽 웃었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덩치가 말한 마을로 목적지를 바꿨다. 페르디나로 갈 생각을 버린 것은 아니다. 다만 쿠와, 혹시 모를 암영의 추격을 한 차례 따돌릴 필요가 있었다.

“괜찮냐. 덩치.”

테오가 덩치에게 말을 붙였다.

나는 페르디나로 가겠다고 처음 말했을 때 덩치가 지었던 묘한 표정을 기억했다. 테오도 그때의 덩치에게서 무언가를 감지했던 거겠지.

덩치는 어깨를 으쓱하며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분위기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테오도, 나도 알았다.

“근데 정말 쿠가 위험한 사람이라고? 난 그렇게는 안 보였는데.”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는 거야, 조.”

“그, 그야 그렇지만······.”

쿠와 동료들은 제법 가까워졌던 것 같다. 족제비뿐만 아니라 테오와 덩치에게서도 묘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가장 아쉬워하는 이는 세실이었다. 세실은 내게 지난 사흘간 쿠가 벌였던 웃긴 일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세실어에 익숙해졌다.

우리는 발자국이 남지 않는 길을 골라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휴식도 취하지 않았다. 해가 머리 위를 지나 조금씩 서쪽으로 기울 무렵, 주머니 속의 먼지가 살짝 몸을 떨었다.

“누구. 와.”

세실의 눈빛이 변했다.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하필이면 아무것도 없는 벌판을 지나고 있었기에 몸을 숨길 곳도 없었다.

두두두두두두!

기병대다. 그들도 우리를 발견한 것 같았다. 열 마리가 넘는 군마가 우리 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나는 관찰력을 발현해 기병대의 깃발을 확인했다. 푸른 바탕에 은색 방패. 루베르 자작령의 기병대다.

‘브리앙스 백작이 탈출 노예들에게 두둑한 현상금을 걸었거든.’

쿠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쳤다. 루베르 자작은 브리앙스 백작의 봉신. 그렇다면 백작의 명을 받은 추격대일까.

“데미안. 혼돈.”

나는 단검을 뽑으려는 세실의 손목을 붙잡았다. 내게 남은 RP는 4뿐이다. 세실이 기대하는 혼돈(?)은 발현할 수 없는 상태다.

게다가 저들은 평범한 기병대가 아니다. 선두를 달리는 회색 머리칼의 사내. 분명했다. 루베르 자작령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이자 소드 엑스퍼트(Sword-expert)인 ‘앙리 몽포르’다.

“안 돼. 세실.”

세실은 블레이드가 봉인됐다. 오러를 발현하는 기사를 상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더해 앙리 몽포르는 소드 엑스퍼트 중에서도 상당한 강자다. 내가 그에게 섣불리 통찰을 발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테, 테오······!”

족제비가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 나는 일행이 무기를 뽑지 못하도록 막았다. 싸우면 무조건 진다. 앙리 몽포르 혼자서 우리 모두를 죽일 수 있다.

전투 없이 빠져나갈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다행인 점은 루베르 자작과 그의 최측근인 앙리 몽포르가 이 세계에서 선인(善人)에 속한다는 것.

“너희들은 누구지? 왜 이런 곳에서 어슬렁대고 있는 거냐.”

군마를 멈춰 세운 앙리가 말했다. 뒤따라온 기병들이 둥글게 우리를 둘러쌌다.

내가 말했다.

“우리는 남서쪽 숲의 마을에서 왔어요. 부모님께 혼이 나서 홧김에 가출했는데, 점점 무서워져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에요.”

이동하며 간간이 나눈 대화로, 나는 덩치가 말한 마을이 여기서 멀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앙리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봤다. 우리의 복장을 살피던 그의 눈길이 테오 앞에서 멈췄다.

“옷 안에 감춘 게 뭐지?”

빌어먹을.

테오가 가진 기사의 검이 발각됐다.

앙리가 테오에게 손짓했다. 테오는 머뭇거리며 앙리에게 다가가 검을 보여줬다.

“좋은 검이군.”

“제 아버지는 용병입니다. 홧김에 아버지의 검을 들고나왔어요.”

다행히 테오는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을 했다. 검을 손에 들고 살피던 앙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서쪽 숲의 마을이라. 혹시 보아클레르 마을을 말하는 건가.”

“네. 맞습니다.”

앙리의 입가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휙! 바람을 가르는 소음과 함께 테오의 목에 칼날이 겨눠졌다.

“너희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테오를 노려보는 앙리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보아클레르 마을은 불타 없어졌다. 일 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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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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