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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62

260. 약혼관계 – 이혼

칠흑 같은 밤, 군영 이곳저곳에 놓인 화톳불들이 다양한 각도로 병사들의 얼굴을 밝혔다. 어떤 이는 벌어진 입으로, 어떤 이는 휘둥그레진 눈과 확장한 콧구멍, 굳어버린 동작으로 놀라움을 표했다.

레오가 웃음을 터뜨리며 월권(越權)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소드마스터도 별것이 아니구나! 모두 쳐라!”

{통솔}. 레오의 외침엔 병사로서는 거역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병사 대부분이 적습을 막으러 강을 건너가 많지 않았으나, 지휘관의 통제에서 벗어난 그들은 우렁찬 함성을 질렀다.

“자, 잠깐…!”

왕자의 외침은 소용이 없었다. 병사들이 포르테 백작과 그의 기사들을 향해 용맹하게 달려들면서 군영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화했다. 포르테 백작이 소리쳤다.

“당초 계획대로 간다! 제2 기사대는 퇴로를 확보하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라! 왕자를 생포하겠다!”

기사 40명은 엄청난 전력이다.

그것도 벨리타라는, 대륙 최강국의 제1 기사단에 속한 기사들이고,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가르침을 받았다.

일당백이라는 말조차 부족한 초인들이다. 재능과 노력, 우수한 스승을 둔 마흔의 기사가 피바람을 일으켰다. 아스틴 왕국의 병사들은 함성을 질렀던 게 무색할 지경으로 처참히 쓰러져갔다.

포르테 백작이 불타는 눈으로 저를 막아선 검사를 내려다보았다.

오러블레이드를 막다니… 깜짝 놀랐지만, 이 세계에 신비한 일이란 얼마나 많은가. 콧김을 짧게 뿜어낸 백작이 이번엔 정말 죽여버릴 요량으로 검을 내리찍었다.

– 카앙!!

“레오!”

하얗게 불타오르는 오러블레이드와 연한 갈색의, 고색창연한 검이 부딪쳤다. 고막이 터질듯한 굉음이 울리며 레오의 무릎이 덜컥, 꿇렸다.

어마어마한 검압이다. 남들과 비교할 때 레오도 거구로 분류될 체격이었으나, 포르테 백작의 몸집은 차원이 달랐다.

9척(2m 13㎝) 장신에 사람 머리 다섯 개가 들어갈 만큼 활짝 벌어진 어깨, 팔다리는 인간이 아닌 말의 것과 비교하는 게 나을 만치 굵다. 레오가 이를 악물어 몸을 일으켰다.

“또 막아?”

포르테 백작이 몸무게를 기대어 왔다. 지지직, 레오의 몸이 밀리는 가운데 백작이 맞닿은 검 너머로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그래, 이상할 거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검술은 전조를 숨기는 데 특화된 검술이었다. 그는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무게 중심의 변화, 시선과 스텝을 감추거나 서로 엇갈리게 만들어 다음 동작을 예측하기 어렵게 하였다.

해서 백작보다 하수라면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실력이 달리니 상대가 못 되는 것이야 당연한 말이지만, 변변찮은 반항조차 하기 힘든 게 그의 검술이었다.

– 끼긱.

레오가 바짝 긴장하며 검을 기울였다. 오러블레이드를 일으키며 원 없이 싸워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겠지. 레오의 검이 오러블레이드가 일렁이는 백작의 검 면을 긁었다.

“레오! 조심해! 왕자님, 어서 자리를 피하세요.”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으나 두 번은 그럴 수 없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머리에 경종이 울렸다.

그는 상대가 새파란 청년이라는 걸 고려치 않기로 마음먹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눈은 때때로 사람을 속였고, 전조를 숨기는 검술에 통달한 백작은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여기서 이놈과 미적거리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포르테 백작이 레오의 검을 하늘 높이 쳐내며 발길질했다. 레오는 내쳐진 김에 뒤로 공중제비를 뛰어 발길질을 피했고, 백작은 그 틈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사들이 몰려들고 있다. 뒤에선 제2 기사대가 퇴로를 뚫는 중이고, 앞으로는 제1 기사대의 기사 스무 명이 왕자를 쫓고 있었다. 왕자를 호위하는 기사들과 천인장, 준기사, 병사들이 그들을 막아섰으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호위 기사를 제외한 대부분이 고작 너덧 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제1 기사대의 기사들은 뒤돌아 달아나는 왕자를 당장이라도 붙잡을 듯했다. 그러나 한 기사가 왕자의 망토를 움켜쥐려는 순간,

“Qualm!”

붉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그를 손가락질했다. 기사의 주먹은 허공을 움켜쥐었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왕자가 멀어져갔다.

“마법사다!”

현기증이 나는지 몸을 비틀거리는 기사들. 포르테 백작이 숨을 가다듬었다. 초조함은 날숨에, 긴장감은 들숨에 담아 정신을 통일했다.

기세가 달라졌다.

레오는 온몸에 짜릿짜릿하게 흐르는 전율을 느꼈다. 노구화호를 처음 마주했을 때 이랬던가, 백작이 실제보다 훨씬 거대해 보였다.

땅을 디딘 다리에 폭발적인 힘이 어리고, 단단하게 움켜쥔 장검이 서늘하다. 백작의 눈동자는 고요해,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러블레이드만 감췄다 뿐이지 레오도 배에 힘을 주며 만반의 대비를 마쳤다.

초고수 간의 대결은 발끝부터 시작된다.

엄지발가락으로부터 시작된 스웨잉(Swaying). 발끝을 세우고, 발목과 무릎으로 몸을 흔든다. 가시밭을 걷는 사람처럼 한 걸음 한 걸음을 신중하게, 결코 두 다리가 겹치는 일이 없도록 절반의 보폭으로 걸었다.

그러다 아차, 스웨잉이 심해져 반응이 늦어지는 순간 공격당한다. 대단한 고수도 종종 하는 실수인데, 그렇다고 멀뚱멀뚱, 스웨잉을 하지 않으면 상대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각도를 찾아 공격해온다.

포르테 백작은 쯧,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신중을 기한다고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서 선수를 취했다.

느릿하게 흔들리는 상체가 뒤로 가는 순간에 스텝을 뒤로 밟았다. 간격을 벌리는 듯한 행동으로 놈의 이목을 속이고 펑! 발을 박찼다.

그의 무게 중심은 아래에 있었다. 앞으로 뛰쳐나가며, 하체보다 뒤로 밀려난 상체에 힘을 주었다.

짧게 끊어치는 베기.

하지만 충분한 힘이 실렸다. 손잡이는 고작 다섯 치가 움직였을 뿐이지만, 검끝은 크게 움직여 레오를 사선으로 내리쳤다.

레오는 검을 눕혀 막았다.

한데 그가 검을 가져다 댄 위치가 다소 낮다. 포르테 백작은 상대의 의중을 삽시간에 파악하고 오른쪽으로 스텝을 밟았다.

감히 나, 포르테 백작과 ‘포르테(forte, 검신의 아랫부분)’를 맞부딪치며 힘을 겨뤄보자는 건 아닐 터였다. 또, 녀석의 검에는 검날 받침이 없으니 맞닿은 검을 축으로 검날을 회전시키는 수법을 쓰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역시나 놈은 오른쪽(백작의 시선에서는)으로 몸을 낮추며 들어오려 했다. 하지만 백작이 미리 움직여둔 덕에 끼기기기긱! 검과 검이 소름 끼치는 소음을 울렸을 뿐, 레오의 공격은 이어지지 못했다.

비로소 두 사람은 한 호흡을 소진했다.

누가 이득을 본 건 없지만 검이 맞붙으면서 체격이 큰 포르테 백작이 자세에 여유가 있었다. 백작은 레오를 검째로 힘껏 내리눌렀고,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었던 레오는 ‘포이블(foible, 검신의 윗부분)’을 다른 손으로 잡았다. 검날에 베이지 않게 검 면을 손바닥으로 받치며 백작의 검을 막은 것이었다.

이러면 검이 휘거나 부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레오의 검이 보통 검이냐. 업적에 파괴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으니 죽었다 깨어나도 부러질 일이 없었다. 물론 휠 가능성도 없다.

기다란 검의 저 아래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내리누르는 것과 양팔을 벌려 막대기를 들듯이 검을 들어 올리는 것. 아무리 포르테 백작의 힘이 장사여도 이길 수가 없다.

레오가 몸을 일으키며 자세를 잡았다. 다리를 넓게 벌려 호흡을 고른 뒤, 읏차! 백작의 검을 밀쳐내며 회전했다.

– 부우우웅! 쩌엉!

레오의 검이 사선으로 한 바퀴 돌았다. 한 손으로 잡은 검이 온몸의 가속을 받아 내리 찍혔고, 이번엔 백작이 검을 눕혀 막았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오가는 그때 레나는 근처에 다가와 있었다.

자신에게 달려든 기사를 다른 준기사들과 함께 가까스로 격퇴하고, 다른 호위 기사를 도울지, 아니면 왕자를 도우러 갈지를 고민하다 레오에게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우두커니 서서 레오와 소드마스터의 공방을 지켜보았다. 레오가 살짝 밀리는 듯하지만, 오가는 한 수, 한 합이 예술이다.

혼신의 힘이 담기지 않은 일격이 없었다. 발자취 하나하나에 너덧 개의 견제와 의미가 담겼다.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합이 오간 다음에야, 아! 깨닫게 되는 게 많았다. 지금 서로에게 몰두해 무아지경이 된 두 사람은 더 많은 걸 주고받고 있을 터였다.

부럽다.

나, 나도…

레나는 뭐에 홀린 것처럼 다가갔다. 레오의 {합격술}이 그녀가 있을 자리를 지정해줬고, 포르테 백작이 그녀의 존재를 눈치챈 건 레나가 서늘한 찌르기 자세를 취했을 때였다.

“이런.”

여태껏 그들의 싸움에 끼어든 사람이 없던 건 아니었다. 종종 어떤 병사가 주제도 모르고 끼어들었다가 백작의 검에 무심히 쓸려나갔다.

병사는 두 사람의 공방에 끼어들 자격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백작은 ‘또 뭐가 껴들었나 보다.’ 레오의 다음 수를 추측하며 끼어든 놈과 함께 갈아버릴 작정이었는데, 이상하게 꺼림칙한 위치였다.

더군다나 괴이한 연계가 느껴지는 게, 정면에서 검을 세운 청년이 검을 살짝 왼쪽 위로 치우치자 오른편 뒤의 떨거지가 검을 아래로 낮추며 호응하는 것이었다.

쓸어버릴 각이 안 나온다.

그제야 백작은 무아지경에서 빠져나왔다. 옆걸음치며 주위를 둘러보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왕자가 달아났다. 제1 기사대의 기사들이 분투하고 있긴 한데, 병사들을 앞세운 마법사에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마법사는 기사들에게 병사를 아낌없이 던져주며 갖은 마법을 부렸다.

작전은 실패다. 왕자를 설득하든, 재빨리 생포하든 둘 중 하나는 했어야 하는데 일이 심하게 꼬여버렸다.

지금이라도 달려간다면 저 괘씸한 마법사 년을 때려죽이고 왕자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 갔지… 포르테 백작이 통탄하며 눈앞의 기이한 청년을 바라보았다.

이놈이 다 망쳤다.

허나 장차 위대한 검사가 될 것이 분명한 청년에게 백작이 예의를 갖췄다. 아직 오러블레이드는 사용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머지않아 쓰게 될 것이다.

“대단하시군요.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존칭을 붙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운 좋게 왕족으로 태어난 사람과 베나르 타티안 후작과 같은 정말 뛰어난 능력을 갖춘 극소수의 인물들. 그뿐이다.

그에게서 존칭을 받은 것 자체가 크나큰 영광이고,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방증하는 것이었는데…

“적으로 만난 게 아쉽습니다. 검을 더 섞어보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군요. 전쟁이 끝나면 꼭 한번…”

“왜 아가리를 털지?”

돌아온 건 폭언이었다.

“왜, 안 되겠다 싶으니까 입이라도 털어서 달아나려고? 파하하. 웃기는군. 적진에 들어왔으면 옥쇄(玉碎)할 각오를 했어야지. 비겁한 놈.”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사십칠 년 평생 그가 언제 이런 말을 들어봤을까.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청년에게.

백작은 내로라하는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나 오직 왕도만을 걸어왔다. 나이 다섯 살에 검을 잡았고, 열세 살에 기사를 이겼다.

16살, 성년이 되었을 때는 포르테 백작가에서 아버지를 제외하고 그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지루함을 느낀 헤르만 포르테는 왕국 기사단에 입단했다.

17살의 그는 제1 기사단의 기사대장이었다. 세상은 헤르만을 벨리타 왕국의 최연소 기사가 아닌, 최연소 기사대장으로 기억했고, 스물다섯 살에 제1 기사단장이 되었다. 그가 소드마스터가 된 건 서른 살, 카로만 드 타탈리아 왕이 즉위했을 무렵이었다.

헤르만 포르테가 정계에 발을 들인 시기도 그때쯤이다.

왕궁에 개인 집무실을 빌려다가 매일같이 들락거렸으니 귀족들을 만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는데, 정치에도 수완이 있던 그는 한 파벌의 수장으로 자리매김하며 독보적인 자리를 굳히고 있던 왕당파의 수장, 베나르 타티안 후작과 경쟁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자식 농사 빼고는 다 성공했다. 설령 적이고, 지금 처지가 좀 웃기게 됐다 할지라도 그는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었다.

후우. 포르테 백작은 심호흡으로 살짝 동했던 심기를 다스렸다.

예의가 없는 젊은이로군. 그래, 뭐 어차피 적이고, 적에게 존칭 따위는 필요 없지.

그는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궁리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레오가 이 말을 던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러니 아내랑 이혼했지. 네 아내가 아이셀 왕국의 공주라며? 뭐가 문제여서 아들까지 낳아준 아내랑 이혼했을까? 나였으면…”

포르테 백작의 인내심이 끊어졌다. 다시 서늘하게 돌아선 백작은 눈을 깜박이지도 않았다. 차갑고, 단단한 얼굴로 레오를 노려보았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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