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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63

261. 약혼관계 – 구금(拘禁)

느릿한 동작이 공포스러울 때가 있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무심한 눈동자. 그는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레오를 똑바로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섬찟한 살기에 레오도 자세를 바로잡았다. 하지만 백작이 그를 어떻게 죽일지 궁리하는 것만큼이나 레오도 백작을 죽이고 싶었다.

놈의 손에 내 목이 날아오른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 머리가 허공에 떠올라 빙그르르, 시야가 회전하며 레나와 눈이 마주쳤었다.

그 찰나에 찍힌 레나의 참담한 표정. 경악에 물들어 “레… 오…!” 소리쳤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내 귓불을 스치며 내리 찍히는 오러블레이드를 느꼈다.

레나, 도망쳐.

그리고 난 죽었다. 미처 소드마스터 앞에 남겨진 연인에게 도망가라 외치지도 못하고.

헤르만 포르테 백작, 이놈을 내가 어찌 용서할 수 있으랴. 이젠 없었던 일이라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날의 무력감을 떠올리면 아직도 손이 떨린다.

여태껏 손속을 나누며 새삼 확실해졌다. 그때 백작이 우리를 죽이는 건 달팽이를 짓밟아 죽이는 것만큼이나 쉬웠다는 것을.

하하하! 그러니 춤추자.

오늘은 네놈이 죽는 날이고, 내 원한을 갚을 마지막 기회다. 레오가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소리치며.

* * *

‘레오가 왜 이러지?’

비록 적이지만, 존중받아야 할 사람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레오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

언제나 젊잖고, 기사도를 중요시하던 그가 왜 이러는지 레나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지만, 레나도 포르테 백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 쩌엉!

레오가 힘껏 내리찍었다. 백작과 레오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맞붙은 순간, 레나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여기가 아니다.

좀 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레오와 합을 맞추려면 내가 여기에 있어선 안 됐다. 지금 백작을 찌르면 될 것 같았는데, 레나는 직감에 이끌려 자리를 이동하였고, 그 까닭을 이내 알게 되었다.

– 쓰아앙!

백작이 레오의 검을 미끄러뜨렸다.

레나의 등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가는 오러블레이드. 레나는 백작이 그녀를 베어버리려 준비했음을 깨달았다. 또, 레오도 그걸 예견했다는 듯이 무게 중심을 기울여 백작의 검을 내리눌렀는데, 레나는 크게 감동해버렸다.

레오가 내가 칼에 맞지 않게 도와줘서는 아니다. 소드마스터와 레오의 공방에 끼어들면서 그들의 동작에 담긴 의미가 읽혔기 때문이었다.

{합격술}도 그녀가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깨달음에 한껏 취한 레나가 발을 디뎠다. 소드마스터의 뒤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굴다가 부웅! 허리를 회전해 백작을 베었다.

소드마스터가 피했다.

그럴 줄 알고 있었다.

레나는 백작의 도주를 견제하고자 검을 회수하는 즉시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와우! 백작은 레오를 방패로 삼으려 들었고, 레오는 벌써 오른쪽으로 이동해 검을 내리치고 있었다. 내가 찌르기 수월하도록 자리를 피해줌과 동시에 백작의 동선을 방해하는 거다.

레나가 백작을 찔렀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은 후읍! 호흡을 삼키며 검을 내질렀다.

사선 베기.

검압에 머리칼이 일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쩡! 캉! 레오와 레나의 검을 연달아 쳐낸 백작이 그 기세를 이어 회전했다.

브우우우우우우- 듣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파공성이 울렸다. 엄청난 게 온다. 레나는 순간 당황해 몸이 굳었다. 그러나 레오가 백작의 회전이 마무리되기 전에 몸을 던졌고, 레나는 자신이 할 일을 깨달았다.

저건 레오가 막아줄 거다. 믿자.

자칫하면 저 강격에 그녀와 레오가 함께 갈릴지도 몰랐으나 레나는 방어가 아닌 공격을 택했다. 백작이 쳐내어 뒤로 돌아간 검을 회전하여 소드마스터의 허리를 노렸다.

– 쩌엉-!!

회전이 채 끝나지 않은 중간지점에서 맞부딪쳤음에도 레오는 다섯 걸음을 뒷걸음쳤다. 레나의 검은 포르테 백작의 옆구리를 옅게 베는 데 그쳤다. 백작이 레오를 날려버림과 동시에 땅을 박찬 것이다.

뒤로 물러선 백작이 제 옆구리에 손을 대었다. 손바닥에 묻어나온 피. 이를 생경하게 바라본 백작이 뚜둑, 목을 풀고는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타겟을 바꿨다.

아까부터 성가시게 구는 저 여자를 먼저 죽여야겠다.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백작이 보기에도 그녀는 매 순간마다 강해지고 있었다.

검이 점점 정교해진다.

방금은 조금 위험하기까지 했다.

생사를 건 싸움에서 기사가 찬란하게 빛나며 성장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게 아주 젊디젊은 청년이고, 예쁘장한 아가씨라 평소의 그였다면 박장대소하며 기뻐했을 터였다. 설령 적이라 할지라도.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차갑게 분노한 백작이 돌진했다. 쿵. 쾅. 대지가 아리도록 연달아 박차며 번개처럼 접근하였는데, 이건 백작이 상대의 목숨을 초장에 끊어버리려 할 때 쓰는 수법이었다.

이 수법을 아는 사람은 없다. 다 죽여버렸으니까. 저 여자도 그리될 것이었는데…

“차합!!”

레오가 검 손잡이를 오른손바닥에 받치며 검을 길고 강하게 찔렀다. 부지불식간에 레나와 간격을 좁히는 백작의 경로에 검을 찔러넣었고, 헤르만 포르테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이나 당했으니 세 번은 안 통한다.

옛날 포르테 백작을 처음 만났을 때, 경계 근무를 서던 우리 앞으로 백작이 불쑥 튀어나왔었다. 어둠이 흔들렸다고밖에 느끼지 못했는데, 엄청난 강격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고, 레나의 도움을 받아 천운으로 막아냈었다. 내가 내 검에 코와 입술을 베이긴 했지만.

백작에게 강력한 돌진기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그냥 실력 차이가 극심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차후 15번째 회차, 포르테 백작과 맞붙은 레안 드 예리엘이 그 돌진기의 존재를 확인했다.

덕분에 막을 수 있었다.

레오는 레안에게 감사해하며 당혹스러워하는 백작을 레나와 함께 차분히 상대해나갔다. 이놈에게 복수하기 위한 준비는 아주 오래전부터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는 헤르만 포르테 백작을 너무 급하게 몰아붙이지 않았다.

레나에게 자신감이 붙어 저번처럼 검을 포기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최대한 실력을 감추고 싶었다. 해서 여태껏 차근차근 공을 들여온 게 있었다.

[ 레오 당신은 소드마스터와 치열한 격전을 벌였습니다. 그 업적으로 {검술.4v : 자코브류(流)} 능력을 드립니다. ]

– 쩡!

한참 피 터지게 싸우던 도중에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안색이 까맣게 물들었다. 그의 검에… 저 무례한 청년이 가진 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오르빌 최고의 대장장이가 만든 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무기 파괴술.

아스터 왕국의 소드마스터, 자코브 모드레드 백작의 검술이다. 레오의 검이 무기를 전문적으로 파괴하는 소드 브레이커(Sword Breaker)가 아니어서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레오는 꾸준히 포르테 백작의 검에 충격을 몰아넣고 있었다.

그 성과가 드러난 것이다. 백작의 검은 기어이 쨍! 깨져버리고, 검에 어려있던 오러블레이드도 픽 하고 날아갔다.

“앗?!”

레나는 백작의 무장이 해제되자 주춤거렸다. 어떡하지? 잠시 고민한 그녀는 ‘이건 사고다.’라고 생각하며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 이건 피차 검을 다루는 검사로서 안타까워해 줘야 할 일이었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님. 하늘이 당신을 돕지 않는군요. 항복하세요.”

포르테 백작이 밑동만 남은 검을 돌려보았다. 허 참, 인생이 얄궂다고 생각했는데, 그도 그럴 게 포르테 백작가의 상징은 ‘부러진 검’이었다.

아주 먼 옛날, 그의 선조는 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다. 왕을 대피시키고, 홀로 싸우던 그 기사는 검이 부러졌음에도 부러진 검으로 끝까지 분투했고, 그를 잊지 못한 왕이 이를 기리며 그의 아들에게 ‘포르테(forte, 검의 하단부)’라는 성을 하사하였다.

포르테 백작가의 상징, 부러진 검은 치욕이 아닌, 변함없는 충절과 용맹의 상징이었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웃음을 터뜨렸다.

“국왕 폐하! 제 아들놈을 잘 부탁드립니다. 비록 모자란 자식입니다마는…”

백작이 부러진 검을 들었다. 주위에 깔린 병사들과 준기사들이 헉! 숨을 삼켰다.

어두운 밤, 난장판이 된 군영을 찬란하게 비추는 오러블레이드. 포르테 백작의 검에서 오러가 분출하듯이 솟아올랐다.

검의 형상은 아니다.

과거, 바르바토스의 사도였던 레브가 신력을 쏟아부어 뿜어낸 오러블레이드보다 한참 짧고 모양도 엉망이었으나, 부채꼴로 솟아난 그것은 용맹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백작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놈들과 싸우는데 정신이 팔려서 제2 기사대는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전멸하고, 제1 기사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적진에 들어왔으면 옥쇄할 각오를 했어야지. 알바세테 남작이 없다고 내가 너무 방심했구나.”

포르테 백작이 검 손잡이를 빙글, 한 손으로 돌렸다. 저렇게 커다란 게 달렸음에도 무게는 가벼운지 부채꼴의 오러블레이드가 땅을 지지직 그어버렸다.

백작이 선언했다.

“난 여기서 계속 싸울 것이다. 네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래도 내가 살아 있다면 돌아가겠다. 거기 청년, 이래도 내가 비겁자인가?”

“……혀가 길군요.”

“하하! 이제야 존칭을 붙이는군. 그래, 그럼… 더 놀아보자고.”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땅을 박찼다. 고대의 영웅과도 같은 거구의 기사가 태양처럼 빛나는 부채꼴의 검을 하늘에서 땅으로, 힘차게 내리찍었다. 상대적으로 어둠에 잠긴 레오 덱스터는 오러블레이드가 꺼진, 결코 부러지지 않는 검으로 하늘을 치듯이 베어 올렸다.

와아-! 경탄한 레나 아이나르는 총총, 주위를 돌며 그들의 검술을 주워 먹었다. 마치… 정말 빠르게 성장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처럼.

* * *

결국, 헤르만 포르테 백작은 전사했다. 그가 선보인 오러블레이드는 장엄하였으나, 그건 소드마스터로서 뿜어낼 수 있는 최후의 불꽃이었다.

몸에 쌓인 마나는 무한하지 않다.

부채꼴의 오러블레이드는 시간이 갈수록 차츰 사그라들었고, 그러지 않았더라도 적진에서 발이 묶인 그의 운명은 결정돼 있었다.

벨리타 왕국군의 움직임에 놀라 강 너머로 나갔던 병사들이 배다리를 건너 돌아왔다. 기사들까지 후방에서 벌어진 습격을 막고 돌아오면서 포르테 백작은 달아나고 싶어도 달아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그는 달아나지 않았다.

제3 기사단장인 옌센 바일레이가 합세하고, 수십의 기사가 달라붙었음에도 반절밖에 남지 않은 검으로 분투했다. 그러다 결국, 끝이 뭉툭한 옌센의 검에 난도질당하면서 영광된 삶을 마감하였다.

그는 두 개의 기사대를 사지로 내몰고, 죽음을 선택한 어리석은 기사단장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깐깐한 역사가라도 ‘그래도 그는 용맹하게 싸웠다.’라는 첨언을 붙일 수밖에 없으리라.

“왕자님은 어디 계신가?”

옌센이 물었다. 레나와 레오는 왕자가 어떻게 됐는지 몰랐지만, 뒤에 있던 병사가 답했다.

“무사하십니다. 배다리를 건너시는 걸 제가 봤습니다.”

“다행이군. 휘유. 헤르만 포르테… 정말 괴물 같은 놈이었어. 하하하! 그보다 레오 덱스터! 대단한 전공을 세웠네. 역시 노엘 선배님의 아드님이라 해야 하나. 아, 레나 아이나르, 자네도 정말 잘해주었네. 왕자님이 무사히 대피하시고, 백작을 잡을 수 있던 건 자네들의 공이야.”

“…운이 좋았습니다. 백작의 검이 부러지지 않았더라면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그랬나? 하하하하. 크게 될 무장(武將)에겐 운이 따라줘야 하는 법이지. 그렇지 않으면 성장하기 전에 강적을 만나 죽어버리거든. 나도 옛날 구일 전쟁 때 죽을뻔했던 적이… 아, 저기 왕자님이 오시는군. 가세, 자네들이 소드마스터를 묶어둔 덕에 그를 잡았노라고 보고해야지.”

옌센 바일레이가 대견하다는 듯이 레오의 등을 두드렸다. 허나 레오는 표정이 썩 밝지 못했다.

기왕이면 목숨을 구걸하다 죽을 것이지… 복수를 마쳤음에도 기분이 찝찝하다.

후우. 그래도 이걸로 됐다. 레나가 무사하고, 나란히 기사가 되기에 충분한 전공을 세웠다. 또, 소드마스터가 죽었으니 이번 전쟁은 아스틴 왕국의 승리로 끝날 터였다.

이젠 왕자에게 기사 서임을 받고, 그와 동시에 레나와 결혼하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

분명 진엔딩일 거다. 레나가 왈칵, 울어버리기까지 한 그 결말이 진엔딩이 아니면 세상 그 무엇도 진엔딩일 수가 없었다.

‘이걸로 내 이야기도 끝났다.’

소꿉친구에 이어서.

거지남매 시나리오가 ‘클리어’라 뭐가 남아 있긴 한데, 그건 레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민서가 거지남매 시나리오를 몇 번을 더 하든, 이번 회차에서 한 일에 변동이 생기진 않을 테니까.

드디어… 끝났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심장이 뻐근하고 숨을 들이쉬어도 모자라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끝났다는 감격과 마지막이 해피엔딩이라는 사실이 몸서리쳐지게 기쁘다. 나와 레나는 에이브릴 성으로 돌아가 고향을 지키는 기사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겠지,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랬… 어야 하는데,

아놀프 드 클라우스 왕자가 난도질당한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레오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저놈을 잡아 가둬라.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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