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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65

라이온하트 vs 오크 (11)

만신전과 레온의 등장 이후 마법사들의 위치는 처참하게 뒤로 밀렸다.

화살에 마력을 실어 쏘아대는 원거리 궁병과와 마찬가지로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은 이 중세의 기사왕에게 터무니없는 폭언을 당했다.

「기사는 비겁한 원거리 무기 따윈 사용하지 않는다.」

「마법은, 성법보다 열등하다.」

그의 발언은 한동안 지구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게이트 공략의 핵심은 우리다.

-궁병과 마법사의 화력이 없으면 대체 어떻게 게이트를 공략하겠다는 거냐?

-원거리 병과 무시하지 마!

하지만.

그들은 목격한다.

칼질에 바다가 갈라지고, 기마의 충돌에 괴수들이 하늘을 나는 기이한 광경을.

인간 본연의 완력이 극한까지 다다르면 칼날이 일으키는 검풍이 마법과 다를 게 없다는 걸.

거기다 만신전의 신들을 신앙함으로서 사용하게 되는 성법의 존재는 기사 계급을 탱커, 딜러, 마법사가 결합되는 올라운더로 둔갑시켰다.

거기다 평균 C급. 성배기사의 가호를 받으면 B급이라는 터무니없는 양질의 중장보병대 맨앳암즈의 등장은

보병진이 모루 역할로 버티고 기병대를 중심으로 운용하는 전투체제의 부활.

원거리 병과는 보조군으로 남을 수 있었지만, 마법만큼은 철저하게 성법에 밀렸다.

하지만 의외로 레온이 마력을 다루는 기술 그 자체를 혐오하는 건 아니다.

단지. 지구의 마법이 자신이 알던 ‘마술’에 비해 터무니없이 수준 낮았을 뿐.

“흡···!?”

하리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대마술전에 숨을 삼켰다.

천둥이 내리치고 멸리의 빛이 공간을 잠식한다.

하나하나가 A랭크로 규정되는 대마법 레벨. 지구 인류가 30년 동안 정립한 전투마법체계를 아득히 웃도는 신화적인 마술들이 숨 쉬듯 전개된다.

스페로 왕국의 마술사 여왕.

베아트리체 알리기에리 스페로가 전개하는 마술전이라는 건 지구인 입장에선 원숭이가 항공모함 전단의 전력전투를 보는 것 같겠지.

현 시대의 마법사들은 그저 그녀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마술과 그 은혜를 받을 뿐인 존재들.

이 마술사 여왕에게 있어 지구의 마법사들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신생아에 가깝다.

그 정도의 대마도사. 하리는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베아트리체가 얼마나 대단한 마도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이에 대등히 맞서는 저 오크는 대체 뭐지?’

쏟아지는 멸리의 빛 앞에 녹색 광선이 맞서 길항한다.

천지개벽의 천둥벼락이 떨어져도 그것을 유도, 흡수하는 피뢰침들. 반격으로 던져지는 바윗덩어리는 지형을 통째로 들어 쏘아진다.

오크 대장로 크란.

레온과 같은 세계 출신이라는 저 오크는 명백히 마술사 여왕과 대등한 마술전을 펼치고 있다.

‘레벨이 틀려!’

일찍이 하리는 레온 세계의 마법사들을 본 적이 있다.

제국 선제후라 불리는 마법사들. 레온의 세계에선 마법의 정점에 있는 실력자들이라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마술사 여왕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라이온하트라는 거인에 억눌려 악마의 마법에까지 손댔음에도 철저하게 주살당했다.

그들은 나름의 실력자들이었고 지구에서라면 마탑주들을 압도할 존재들이었지만, 그마저도 불카누스의 칼질 한 번 견뎌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오크 주술사들도 그리 대단한 실력은 아니라 여겼는데······.

‘여왕님이 밀리고 있어.’

도시 한복판에 형성된 서리여왕의 성. 그것을 공략하기 위해 진입한 것은 마술사 여왕뿐만이 아니다.

하리를 비롯한 기사단과 두 마리 용도 지원왔지만, 크란의 주술에 당했다.

꽝꽝 얼어붙은 동료들과 용들은 하리의 불꽃이 달라붙어 녹이고 있지만, 간신히 생명을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저 대주술사는 서리여왕의 냉기마저 완벽하게 제 것으로 삼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WHAAAAAAAAAA────!!”

괴성을 지르며 여왕에게 달려드는 블랙오크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죽음의 성법을 뿌리는 베아트리체.

그녀는 성법으로 몽환과 죽음의 안개를 펼쳐 블랙오크들을 저지하고 있다. 성법으로는 블랙오크들을, 마술로는 크란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네 역할이 중요하다, 하리야.]

페토스 신의 당부에 하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남은 유일한 조력자는 자신뿐. 이대로 베아트리체는 지키는 선택지도 있지만, 베아트리체는 그것을 거부했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물량에 압도될 거예요. 제 성법은 오크라면 몰라도 서리병정들 상대론 먹히지 않고요.”

반면 하리는 서리여왕의 권속들에게 극상성이다. 그녀가 다루는 불꽃의 성법은 얼음을 녹였으니까.

그러니 하리의 임무는 홀로 서리여왕의 권속들을 뚫고 크란을 격살하거나 방해하는 것.

베아트리체는 하리를 믿고 그 역할을 맡겼다.

“하지만 파도의 성법을 봉쇄당했는데, 불꽃만으로 이길 수 있을까?”

반면 파도의 성법은 사용하지 못한다. 파도를 일으키기 위한 물을 생성하는 것만으로 놈의 얼음의 재료가 될 뿐이니까.

[믿어라, 하리야. 네 불꽃은 이 불꽃의 신이 인정하고 있으니.]

페토스의 격려에 하리는 각오를 다잡았다. 그래, 결국 가능한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해야만 하는 것이다.

“간다···!”

하리가 기회를 엿보며 얼음성을 향해 내딛는 순간──

“크르···!”

사나운 오크 주술사의 시선과 마주친다. 동시에 얼음성에서 쏟아지는 냉기가 하리의 발을 묶는다.

고장 힘의 파동. 그러나 압도적인 냉기가 하리를 앞으로 나갈 수 없게 한다.

‘여왕전하와 마술전을 펼치면서 이런 여력이 있다니······.’

무릎이 꺾인다. 관전이 얼어가는 감각. 하지만 하리는 심장의 불꽃을 일으키며 몸을 녹였다.

“과연, 내 유일한 상성인가.”

그 불꽃을 보며 크란은 병력을 움직였다. 서리여왕의 심장으로 재현해낸 얼음 권속들. 그중에서도 오크 대륙연방 결성 이전부터 꾸준히 양산해둔 기사급 권속들이다.

“가라, 저 작은 기사 계집의 목을 가져와.”

얼음의 기사들이 하리를 향해 달려든다. 서리여왕 성의 백업을 받아 맥스치로 마력을 충당한 서리기사의 얼음송곳이 재빠르게 내리친다.

“후···!”

목을 젖혀 그것을 피하는 하리. 하지만 동시에 뒤를 잡은 서리기사가 하리의 등 뒤를 찔러온다.

-까락!

등 뒤에서 찔러오는 송곳을 검으로 쳐내고 휘릭! 하고 스탭을 밟아 돌아서는 하리. 빈 왼손이 서리기사의 안면을 붙잡고 발화가 쏟아진다.

“녹아버려!”

-콰앙!

흡사 폭발과도 같은 화염이 서리기사의 얼굴을 제로 거리에서 덮친다. 머리가 사라진 서리기사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타탁!

-타타탁!

얼어붙은 땅을 달리는 서리기사들. 그들은 하나로 링크된 자의식 속에서 완벽에 가까운 연계공격을 가한다.

-콰아!

쏟아지는 불길. 순간 생성된 불의 벽이 서리기사의 눈을 가렸지만, 그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불을 견뎌내 휘두른 너머 하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

아니, 사라진 게 아니다. 그저 불의 벽으로 시선을 가리고 극단적으로 자세를 낮춰 공격을 피했을 뿐이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다음 공격에 대비할 수 없는 극단적 회피. 하지만 시야를 가린 것으로 생기는 반응속도의 차이, 또한 본인의 유연한 몸놀림으로 고양이처럼 단숨에 도약한다.

-······!!

제게 뛰어드는 하리에게 송곳을 찌르는 서리기사. 하지만 검날로 가볍게 궤도를 수정하고 하얀 무릎이 그대로 기사의 안면을 박찼다.

-콰앙!

다시금 터지는 불꽃. 마치 전신이 불꽃의 발화기관인 것처럼.

휘릭! 하고 또다시 쏘아지는 송곳을 피해 이번엔 오금으로 서리기사의 목을 휘어잡는다.

“뒈져!”

살과 맞닿은 부위에서 어김없이 불꽃이 서리기사를 잡아먹는다. 거의 일방적인 압도.

검의 기량과 유연한 몸놀림, 극상성의 불꽃이 서리기사들을 완전히 압도한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적은 서리기사뿐이 아니다. 서리기사들이 하리를 상대하는 사이 털복숭이 예티가 그녀를 덮친다.

거대한 이 괴수는 S급 필드보스라 평가받는 괴물. 짐승의 하울링과 함께 작은 소녀가 덮쳐진다.

성법 <불타오르는 검>

본래라면 군단을 축복하는 전쟁기수들의 가호. 그것을 하나의 검에 집속시켜──

“벤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검이 벼락처럼 내리친다. 예티의 정수리부터 고간까지. 깔끔한 일직선으로 내리친 검.

“크륵?”

자신이 베어진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예티가 갸우뚱거리는 사이 절단된 단면이 타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호오?”

베아트리체와 마술전을 하면서도 하리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크란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과연, 단장급 기사인가.”

오크들의 숙적, 그중에서도 타고난 전쟁꾼들이 있었다.

페토스의 전쟁기수들.

전쟁과 불꽃을 신앙하는 이 화염의 기사들은 라이온하트 전선 최강의 존재들이다.

그리고 저만한 불을 다루는 기사라면 다음 패턴은──

“후읍···!”

서리기사들과 예티를 상대했던 불을 끌어모아 하나로 뭉친다.

레온이 보여주고, 불카누스가 가르쳐 불꽃계 성법의 정점.

신벌 <전장의 불꽃>

붉은 화염이 지면을 불태우며 하나의 유성이 되어 쏟아진다. 구름이 갈라지고 얼음이 증발하는 초유의 자연재해. 불기둥이 사람의 손에 의해 휘둘러지는 순간이었다.

“흥. 겨우 이건가.”

그 거대한 불기둥을 보고 크란은 코웃음을 쳤다. 그의 의지에 호응해 서리성이 반응한다.

-콰아아아아아!

솟구치는 얼음은 그야말로 무진장. 세상을 덮칠 것처럼 거대한 얼음이 불기둥을 막아섰다.

“무슨···!”

“이걸로 끝인 줄 아느냐?”

속성부과 <서리심장x고크록의 시선>

불기둥을 가로막는 얼음의 벽을 관통하는 녹색섬광. 하리가 그것을 인지한 순간, 섬광은 그녀의 심장을 관통했다.

“커흑···?!”

“하리 양!!”

다급한 베아트리체의 목소리를 인지할 틈도 없이 관통당한 심장에서 얼음꽃이 핀다. 그것은 순식간에 하리를 뒤덮었고, 한하리라는 모양을 한 동상이 위태롭게 무너졌다.

“불카누스 놈의 불꽃에 비하면 이따위 불은 미지근한 수준이지.”

너흰 그들을 대체할 수 없어.

전설들과 싸워온 늙은 오크의 조롱을 끝으로 하리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 * * *

한하리는 엄밀히 말하면 그리 참된 신앙인은 아니다.

정의롭고, 순한 성격에 웃어른을 공경하는, 요즘은 천연기념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순수하지만 그것이 신에 대한 신앙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어음··· 저는 일단 무교인데요.」

레온이라는 기적을 눈앞에 두고, 실재하는 신들 앞에서는 뺨을 긁적이며 그리 말했다.

신들이 실재함을 알고 성법의 대단함을 알지만 딱 거기까지.

신실한 신앙으로 이어질 만큼 그녀는 절박하거나 바라는 게 없었다.

어쩌면 그 순수가 도리어 신들의 관심을 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정신 차려라···! 이대로 잠들면 죽는다!]

신의 다급한 외침. 하리는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어떻게?’하고 되뇌었다.

관통당한 심장은 텅 비어버렸고, 싸늘한 냉기가 몸을 잠식해간다. 밖에서도 안에서도.

힘이 부족하다. 불꽃이 펼쳐지지 않는다. 이대로 꺼져가는 의식에 맡기면 편해질 것 같다.

[네가 여기서 포기하면, 전우들이 죽는다. 너는 그것을 포기할 기사가 아니야.]

그 말에 꺼져가는 의식을 붙잡는다. 그래, 여기서 포기하면 다 죽는다. 자신뿐 아니라 동료들도.

정의롭다는 건 곧 순수한 이타성을 말한다. 남을 위해 힘을 낼 수 있는 고결함. 그 순수가 기사도에 있어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미덕이다.

‘하지만 페토스 님··· 저, 심장이··· 심장이 없어졌는데요.’

[멍청한 것. 네 심장은 무엇이냐? 무엇이 너의 심장이더냐.]

‘그야······.’

문득, 하리는 자신이 가진 심장의 존재를 떠올렸다.

달과 순결의 신관장 이사벨이 그녀에게 이식해준 불의 심장.

[르노아가 남긴 불의 심장은 겉보기에는 결정의 형태지만 불꽃은 본디 결정이 아니다.]

바람에 손쉽게 흔들리면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 그 이글거리는 형태야말로 불의 본래 형태.

[불을 지펴라. 네 심장의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는 영겁의 겁화이니.]

페토스의 조언에 심장 속에 남아있는 잔불을 느낀다. 언젠가 불카누스가 말했다.

「그것은 사자심장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성력을 생산해내는 성물이다. ──불의 심장을 이식받은 그대라면 부족함 없는 성력을 생산했을 테지.」

라이온하트의 사자심장.

드라고니아의 용의 심장.

그리고 오크 장의사의 불의 심장.

라이온하트에 전해져내려오는 3대 수호성물. 그 하나를 이식받았다는 영광을, 기적을 떠올려라.

“······!!”

심장의 잔불이 타오른다. 작은 불씨만 남아도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리고 작은 불씨는 곧 거대한 불꽃으로 화했다.

-콰아아아아아!!

솟구치는 화염이 모두의 시선을 끈다. 베아트리체를 점차 압도하고 있던 크란은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불꽃에 시선을 빼앗겼다.

“무슨······.”

거기에는 불을 휘감은 기사가 있었다. 심장에서부터 자라난 얼음을 모조리 녹여버리고 그마저도 ‘파도’로 다루며 ‘불꽃’을 쏟아내는 기사가.

“설마······.”

불과 파도. 그 상극의 두 힘을 성녀급의 힘으로 다루는 존재가 있을 수 있나?

아니, 역사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신의 축복을 받아 그 힘을 다루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으니까.

하지만 그걸 살아있는 성녀 클래스로 다루려면 얼마나 대단한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 것인가.

“오는가!”

성녀가 달린다. 그 앞을 가로막은 수백의 서리기사와 서리병정들은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성녀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려 했다.

-······?!

-······!!

하지만 휘두르는 얼음송곳은 닿기도 전에 녹아내리고, 휘몰아치는 불의 파도가 그들을 태워버린다.

이윽고 녹아버린 얼음들이 성녀의 불의 파도에 합류해 더더욱 커진다.

전진하는 것만으로 얼음이 녹고 불이 커지는 기현상. 그것에 맞서는 것은 이제 서리여왕의 권속 최강급 개체들.

─────!!

거대한 서리거인이 괴성을 지른다. 예티조차 어린애처럼 다루는 이 거인은 성을 향해 뛰어드는 하리에게 거대한 주먹을 내질렀다.

“나 지금 파도 탔다고!!”

그러나 성녀와 동반하는 불의 파도. 그것이 서리거인을 먼저 덮쳤다.

아무리 거대한 거인일지라도 자연 그 자체인 파도 앞에선 버틸 수 없는 법. 서리거인은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며 실시간으로 녹아내렸다.

“오크···!”

“네놈···!”

순식간에 주술사가 있는 성벽 위까지 도달한다. 더이상 견고하고 높은 성벽 따윈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하리의 불의 파도 앞에선 모든 것이 태워지고 녹아내렸으니까.

“그렇다면···!”

크란은 제 품에서 다루고 있던 서리여왕의 심장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그것은──

“어엇?!”

서리여왕의 성이 흩어진다. 아니, 정확히는 한 곳으로 집중됐다. 크란을 향해, 그 거대한 얼음들이 압축되어 크란에게 갑옷처럼 덕지덕지 붙는다.

“달라지는 건 없어!”

하리는 타오르는 불꽃의 검을 그대로 크란에게 내리쳤다. 하지만······.

-깡!

그것을 막는 크란의 얼어붙은 팔. 마치 갑주처럼 보호되는 크란의 팔에서 붉은 기운이 솟구쳤다.

<헬칸의 큰손>

그 주먹이 그대로 하리를 후려친다. 검날로 겨우 막았지만, 몸이 날아가는 건 막지 못했다.

“무슨···!”

주술사가 근접전을? 그것도 투신의 신력이 아닌가?

“나는 오크 대장로. 이전에는 수많은 오크 부족을 통합했던 오크 로드였다. 나는 이 주먹만으로 오크들을 제압했지.”

선입견이었다. 주술사는 주먹질을 못할 거라는, 당연한 상식.

하지만 상대는 오크. 그것도 한때는 오크의 정점에 있던 대장로였다.

비록 위대한 오크 대칸에게 패해 상처 입은 야수일지라도 오크는 여전히 오크.

“덤벼라, 지루한 주술전도 슬슬 질려가던 참이다.”

크란은 전장의 모든 부하들에게 베아트리체를 제압할 것을 명했다. 성녀로 각성한 한하리를 상대하면서 마술사 여왕까지 상대하는 건 아무리 그라도 버거운 일이었으니.

“후우···!”

하리도 검을 양손으로 쥔다. 하지만 곧 그녀의 눈앞에서 크란의 모습이 사라졌다.

“무슨···!”

주력을 모두 가호로 치환한 크란은 압도적인 피지컬로 하리에게 근접했다. 하지만 성녀로 각성한 하리도 거기에 반응했다.

휘두르는 검이 크란의 어깨를 가른다. 고열로 시뻘겋게 물든 검은 이전처럼 손쉽게 얼음을 가를 것 같았다. 하지만······.

-캉!

들리는 건 둔탁한 소리. 다음 순간, 쇄도하는 크란의 주먹.

“큭···!”

순간 몸을 비튼다. 하지만 공간째로 사라지게 만드는 막강한 권압이 관자놀이를 스쳤다.

-투쾅!

권압에 밀려 튕겨 나간다. 정면으로 맞았으면 그대로 사라졌을 거라는 걸 직감하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직이다!”

휘둘러지는 팔짓만으로 얼음의 폭풍이 쏟아진다. 하리의 불의 파도에 맞설 만큼 거대한 자연재해.

그것이 하리의 최대급 힘을 가로막아 시간을 번다.

“크크큭, 상성이 나쁜 만큼 이겨내진 못하겠지만, 내 계산으로는 앞으로 1분은 버틴다.”

“1분······.”

다시 말하면 1분 동안 저 괴물 같은 피지컬과 압도적 방어력을 가진 오크를 맞상대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싸울 거야.”

아직 그녀의 심장엔 불꽃이 휘몰아치고 있다. 그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다.

불괴(不壞)의 성검은 기사의 의지만큼이나 단단하여 결코 무너지지 않으니.

“승부···!”

“와라!!”

격돌한다.

성법과 주력이라는 이능력이 격돌하는 재해현장에서 승부를 가르는 건 야만적인 권투와 검술이다.

“흥···! 내 권압은 성을 무너뜨린다!”

휘둘러지는 주먹. 나아가는 파형만으로 공간이 으깨지는 것 같다. 분명 검을 휘둘러도 손쉽게 튕겨내겠지.

“내 검은 절대 안 부서져!!”

“······!”

정면으로 맞서는 검. 하지만 기어코 검을 튕겨낸 권이 하리의 어깨를 강타한다. 우득, 하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지만──

“······!”

검을 정면에서 튕겨낸 크란의 주먹에도 선혈이 튄다.

얼음이 깎여나가며 안의 단단한 주먹까지도 벤 것이다.

‘어떻게? 지금의 내 주먹은 투신 헬칸의 권능을 머금고 있거늘.’

물론 아무리 육체가 단단해도 성배기사들의 검격까지 막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오크들도 본디 무장을 사용하는 존재. 크란이 맨주먹으로 싸우고 있는 건 성을 압축해 두른 상태에선 무기술을 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괴의 성검’ 수준이라면 자신을 벨 수 없을 거란 확신도 있었고.

‘설마··· 그것인가?’

가능성을 점친 오크 대장로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크크, 좋군! 좋아! 설마 성배기사와 다시 한번 주먹을 맞댈 날이 오다니!”

그것은 늙은 오크에게 절망이 아닌 환희를 가져왔다. 대장로로서 몸을 사려야 했던 어쩔 수 없는 순간들. 젊은것들에게 맛있는 상대를 내줘야 했던 아쉬움.

하지만 지금 눈앞의 이 투쟁은 오롯이 나만의 것.

“죽어라, 깡통!!”

“너나 죽어!!”

검을 휘두른다. 그것을 막는다. 얼음이 깎여나가고 베인다. 주먹이 강타한다. 뼈가 으스러진다.

하지만 점점 상처가 늘어나는 건 오크 대장로. 재빠르게 기민한 움직임으로 적을 베어가는 이 어린 기사에게 압축된 얼음은 오히려 움직임에 방해된다.

“그렇다면···!”

“······!!”

얼음이 순식간에 흩어진다. 막대한 방어력을 자랑하던 얼음의 갑주를 스스로? 멈칫거린 찰나, 크란의 시선이 녹색으로 변한다.

<고크록의 시선>

<파도치기>

쏘아지는 광선에 맞서 순간에 대기 중 물을 퍼부어 파도로 만든다. 광선은 파도를 손쉽게 관통했지만, 하리의 어깨를 스치는데 그쳤다.

“······!”

“빛은 원래 쉽게 굴절돼!”

중학교 때 배운다. 거기까진 말하지 못했다. 진짜 공격은 섬광 따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헬칸의 큰 손>

붉은 기운이 주먹에 집중된다. 얼음의 방어를 포기하고 훨씬 빠르고 강력해진 권압이 하리의 존재를 지우려 다가왔다.

죽음. 그것을 직감한 순간, 하리는 저도 모르게 검을 양손으로 잡고 있었다.

이 거대한 폭력에 맞서 마지막에 의존하는 건 그저 검 한 자루.

성녀로 승화한 한하리가 모든 진력을 다해 내리치는 이 검은──

<불꽃의 휘황(輝煌)>

세상을 태우고 또한 비칠 휘황의 성검이다.

“······!”

주먹을 가르고 위대한 역사 속 오크 대장로를 벤다. 시간이 멈추는 것 같은 찰나의 순간, 크란의 입술이 비틀렸다.

“크크··· 덕분에 잘 놀다 가오, 대칸.”

반으로 갈라진 오크의 육신에서 영혼이 떠나갔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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