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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69

레온 드라고니아라이온하트(2) 完

평양에서 남포로 향하는 길을 쭉 내려가다 보면 태정호라는 호수가 있다.

통일 전에는 북한의 고위간부들이 이용하기 위한 골프장이 지어져 있고 인민들의 접근을 엄격히 금지하여 자연경관을 유지한 이곳은 통일 이후에는 남포에 자리잡은 끼끼룩족들의 제2서식지로 발전했다.

그리고 지금, 종전식이니 연방협의니 하는 일들을 마친 만신전의 간부들은 때아닌 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끼룩끼룩!

(끼끼룩호 출발합니다!)

-끼끼룩!

(불카누스 경, 갑옷 벗고 올라타세요!)

“어허! 갑주는 기사의 생명과도 같은 것! 어찌 생명을 내려놓으라 말하는 겐가!”

“전시도 아닌데 좀 벗으십쇼.”

“라이하르 경! 자네마저!”

꽃놀이와 뱃놀이는 귀족들의 소양이라던가. 지구의 화려한 문명을 누리고 있지만, 때아닌 왕국 시절의 문화를 추억하는 그들은 저마다 서로를 밀어댔다.

“근데 수호야, 여왕님은 어디 계시냐?”

“글쎄. 누나하고 소연이가 배 타고 나간 건 봤는데, 아마 그 앞에 타지 않으셨을까?”

“폐하는 언제쯤 오시려나.”

재혁은 지금도 레온이 흑룡과 함께 평양시에 있다는 걸 떠올렸다.

라이온하트 연방 관련 일로 여러가지 조율할 문제들이 많아 연방 소속국 관료들이 평양에 죄 몰려있다나.

“그나저나 뱃놀이는 하리 선배가 있어야 제맛인데. 파도치기로 좀 다이나믹하게 놀 수 있을 듯.”

“성법을 그렇게 사욕으로 쓰면 되냐······.”

돈복사 해보겠다고 배터리에 울티마의 천둥을 내리쳤다가 크게 혼났으면서 또 이런다.

한 편. 태정호의 중심에는 몇 척의 배가 띄워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호화로운 배가 한 척.

왕족을 모시는 배에 장식과 화려함이 부족해서야 안 되는 법이다.

나무 판자 위에 비단을 깔아 부드럽게 만들고, 바람 따라 배를 움직이는 돛에는 화려한 라이온하트 연방의 사자국기가 걸려있다.

반짝반짝거리는 조명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보석을 깎아 안에 조명을 넣은 터무니없는 사치품.

그곳에서 시설을 관리하는 잿빛머리의 미소녀가 레몬에이드를 쪽쪽 빨며 끼끼룩족들에게 지시한다.

“저기, 17번 조명 각도 세우셈. 꽃장식은 지정해둔 플래너를 따라야 함.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음.”

-끼룩!

(알겠슴다!)

끼끼룩족들을 손짓으로 부리는 이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는 제 미니멀한 사이즈의 별철동체를 끌어안고 흔들의자에 몸을 뉘였다.

“열등한 유기체의 유희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음.”

야피는 가끔은 불량식품도 먹어줘야 한다는 인터넷 속의 근거 없는 말들에 동의했다. 아무런 지식적, 논리적 근거도 없는 말이지만 제 꼴리는 대로니까 상관 없다.

[아이고, 우리 야피는··· 언제 후손을 보여줄꼬.]

철과 대장장이 신 헤토의 말에 야피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본기는 유기체의 열등한 번식수단에 의존할 필요가 없음. 본기는 무한히 증식할 수 있음.”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아.]

헤토는 이 자칭 완전무결한 무기물의 이마를 콩 쥐여주고 싶었지만, 결국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세상을 더 많이 겪거라.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먹어보기도 하고 그러면 너도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니.]

“???”

야피는 아직 헤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양념치킨을 추가로 주문하는 걸 잊지 않았다.

“어머, 맛있어요?”

그때, 선미로 나오는 드레스 차리의 베아트리체. 그녀는 양념치킨을 먹는 야피를 보며 말을 걸었다.

“꿀맛임. 여왕전하 드실?”

“식사는 아까 해서 사양해둘게요.”

베아트리체는 야피의 머리를 다소곳이 쓰다듬곤 선미에 준비된 푹신한 소파 위에 앉았다.

야피가 차후 끼끼룩족의 경제자립을 위해 호화 관광 서비스의 일종으로 만들었다는 유람선은 왕족인 그녀가 즐기기에도 충분했다.

“후~”

“왜 그러심?”

“이렇게 좋은 곳에서 공기를 쐬면 뭐하나요~ 같이 즐길 사람이 없는데.”

거대한 전쟁이 끝났다. 오크 대륙연방을 흡수하고 짐승신들의 권속들을 소탕했고 게이트는 이제 나타나질 않았다.

전쟁의 시대는 이제 끝난 것이다. 물론 레온에게는 아직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있는 듯했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이제 다 끝냈으니··· 슬슬 저를 좀 챙겨줬으면 하는데요.’

최측근으로서 보좌해야 할 야피와 자신까지 이렇게 휴가를 보내놓고 정작 자신은 평양에서 일을 보는 중이다.

베아트리체로선 이번이 레온과 함께할 귀중한 기회라고 여겼건만, 정작 그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저런. 본녀의 신관장이 단단히 삐진 모양이구나.]

그런 베아트리체의 속상함을 플르는 귀엽다는 듯 웃어 보였다.

“놀리지 마세요, 플르님. 저는 꽤 심각하답니다.”

[그럼 네가 좀 더 적극적으로 구애해봄은 어떠하냐?]

“안 돼요.”

단호한 거부였다.

“구애는 신사분이 먼저 하시는 거랍니다. 어찌 여인이 먼저 구애를 할 수 있죠? 상스러운 일이에요.”

[저런··· 본녀의 신관장은 고루하여 언제 연애를 해볼꼬~]

하지만 뭐,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본디 구애라는 것은 사내가 먼저 청해야 하는 법. 그것이 낡은 관념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두 사람은 낡은 관념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니 문제될 건 없다.

[몸가짐이나 바로 하거라. 온다.]

“예?”

펄럭, 하고 힘찬 날갯짓과 함께 하얀 백마가 선상에 착륙한다. 빛의 여신께서 제 기사를 아껴 직접 내렸다는 빛의 신수.

“워워~ 비행하느라 수고했다. 저쪽에서 식사라도 하거라.”

-히힝!

그 위에서 내린 사내는 하얀 신수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폐하, 오셨군요!”

바삐 몸가짐을 바로하는 베아트리체. 그녀의 환대에 레온이 웃으며 대답했다.

“기다렸소?”

“그럼요.”

레온은 베아트리체의 손등에 입을 맞추곤 선미로 향했다.

“어찌 이리 늦으셨나요?”

“옛 인연들을 만나고··· 또 허락을 좀 맡고 오느라 늦었소.”

“허락이요?”

일이 바빴다더니 그런 게 아니었나? 의아해하는 베아트리체에게 레온이 진지한 시선으로 물었다.

“큰 전쟁이 끝났소. 한동안은 싸움에 나설 일은 없겠지.”

“그렇지요.”

할 일이 없다는 건 아니다. 신생국가나 다름없는 라이온하트 연방을 기초부터 바로 세워야 하며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계를 재건해야 한다.

아직 야생에서 떠도는 몬스터들을 토벌하고 백성의 안녕을 도모해야 하며 또한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은 왕족의 의무이니.

지금까지 단순히 전쟁만 해야 했더라면 이젠 통치와 안정의 시대다. 해야 할 일은 더욱 늘어나리라.

“허나, 짐은 전쟁이 진정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소. 언젠가는 그곳으로 향해야겠지.”

“······네.”

레온이 말하는 바를 베아트리체는 충분히 알았다.

마계.

악마들의 서식지이며 악이 창궐한 세계.

그곳은 수많은 차원과 차원으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세계이며 악마들은 세상의 악과 그 추종자들을 끌어모아 세력을 늘리고 있다.

비록 지금은 악마들이 군주를 잃어 쇠락했다지만, 언젠가는 다시 세를 늘려 돌아올 것이다.

그것이 당대의 사자심왕이 승천한 뒤일지도 모르지. 악마들은 레온을 두려워하니까.

레온은 그를 두고 볼 생각이 없다.

“비체. 나는 언젠가 마계로 향할 것이오. 또다시 싸우겠지. 그것은 고단하고 험난한 길이네.”

그런 자신을 끝까지 따라줄 수 있겠소?

레온의 물음에 비체는 조금의 고민도,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폐하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언제까지라도.”

레온은 이 사랑스러운 여왕의 헌신에 감사했다. 결심을 마친 그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폐하?”

갸웃거리는 그녀에게 레온은 품에서 꺼낸 작은 상자를 건넸다. 그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짐은··· 아니, 나는 훌륭한 왕이었고 명예로운 기사였음은 자신할 수 있네. 허나, 좋은 연인은 못 되었지. 실패한 아버지이고 아내를 구하지 못한 남편일세.”

레온의 삶은 싸움의 연속이었다.

영광스러운 드라고니아 대공의 적자로 태어나 마땅한 의무를 위해 여정을 떠났다.

여신의 퀘스트를 받아 수행해냈고, 워나이트가, 성배기사가, 성배의 수호자가 되어 훌륭히 나라를 통치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는 불굴로 살아왔고 끝내 악을 멸했으니 그의 삶은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영광스럽고 명예로웠으리라.

그러나.

그는 결코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

훌륭한 아버지가 되지 못해 딸을 오랫동안 잃어왔고 사랑하는 아내를 되살리고 싶어도 섭리를 거슬러선 안 된다고 말하는 벽창호다.

그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실패한 아버지의, 아내를 저버리는 대의를.

그는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있어 마땅한 의무를 끝내 지켜내야 하기에.

“그대 앞에 있는 것은 비루한 사내이고 빈말로라도 아내를 우선할 수 없다 말하는 벽창호요. 그럼에도··· 그럼에도 비체··· 베아트리체 알리기에리 스페로.”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공개한다. 그 안에 있는 건 보석에 대한 심미안이 누구보다도 뛰어난 용이 고심하며 함께 골라준 아름다운 반지였다.

“이런 모자라고 한심한 사내와··· 함께해주겠습니까?”

“······.”

베아트리체는 레온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토록 대단한 사내가, 기사들의 왕이자 만신의 대리인인 사자심왕이 전에 없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서.

혹여나 자신이 거부할까 걱정하는 것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

몹시 기쁘고 사랑스럽다.

“폐하······.”

그는 많은 것을 잃어온 사내다.

그녀는 많은 것을 잃어온 여인이다.

그들을 잃게 한 것은 공통된 악의 창궐이었고, 두 사람의 과정은 비슷했으되 결말은 달랐다.

사자심왕은 끝내 홀로 전쟁을 이겨냈고,

마술사 여왕은 충성스러운 기사들의 헌신에도 타락의 결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존경스러웠고, 고마웠으며, 경외롭기까지 했다.

그때가지만 해도 베아트리체에게 있어 레온은 경외해 마땅할 반신.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위대한 존재였다.

사자심왕 또한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가 옛 성배기사의 희생을 뒤로하고 게이트를 빠져나왔을 때.

성배기사 게오브릭이 스스로 자멸을 택하고 왕에게 그 의지를 맡겼을 때, 베아트리체는 레온의 얼굴을 보았다.

고통스러운 치욕을 감내하는 그 얼굴을.

「그대는 짐보다 먼저 죽지 말게. 옆 사람이 죽는 것은 몇 번을 겪어도 뼈에 사무치거든.」

그날 함께 마신 술맛은 지금도 기억한다.

결국, 당신께서도 상처를 입은 한 사람의 인간이란 것을.

그는 무너지지 않거나 넘어지지 않는 인간이 아니었다.

쓰러져도 언제나 다시 일어서는 사람.

분명 다시 일어서는 그런 사람.

그때부터 이 사람이 좋았다.

존경할 수 있었던 영웅이 사랑스러워지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폐하.”

레온의 팔을 붙잡는다. 그를 일으키고 함께 걸어갈 미래를 떠올린다.

그 미래는 분명 험난한 굴곡의 여정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 사람은 언제까지고 제 옆에서 걸어갈 테니까.

“같이 걸어갈게요.”

떨리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베아트리체에게 뺨과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주고 신들조차 시선을 피해준 찰나의 시간.

잔잔한 호수의 선상 위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가까이했다.

분명 이 순간이 엔딩은 아니겠지만.

오늘만큼은 해피엔딩을 속삭여도 괜찮을 것이다.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본편 完

– 외전에서 계속 –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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